3. 경계안의 뱀파이어.(8)
3. 경계안의 뱀파이어.(8)
아홉 번째 마을은 지금까지 지난 마을 보다 수 배 이상 컸다.
또한 울타리나 정문은 훨씬 단단하고 두터워 보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를 반기는 뱀파이어는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머리 위를 배회하는 패밀리어가 보였다.
‘죽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름 유희를 즐기기에 우리에게 여유가 주어진 것일 테다.
일단은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그그그긍.
중앙의 정문을 열어젖히며 들어간 마을의 광경.
빼곡하게 늘어진 판자 집들.
판자 집들은 집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저 판자로 만든 그늘막이라고 해야 할까?
그 안에는 회색피부의 젊은 남녀들이 들어차 있었다.
확실히 현대의 사람이라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모습.
몸에 털만 없다뿐이지 원시인에 더 가까운 외모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오로지 먹고 싸고 교배를 하는 것.
마을 전체에서 들려오는 교성과 헐떡이는 숨소리.
코 속을 찌르는 오묘한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불쾌감을 조성했다.
“이건 도대체...”
“크르르~ 마치 짐승과도 같군.”
‘짐승이 짐승 같다는 건 아닌 것 같다만...’
그들은 누군가가 들어왔음에도 열심히 허리를 놀릴 뿐이다.
남아 있는 본능이라곤 그저, 번식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이미 임신해 출산직전까지 배가 부른 여성위에서 헐떡이는 남성들을 보며 나연누나와 이은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진짜로 가축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스쿡을 보며 말하자 그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답한다.
“저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스쿡의 단어는 전과는 달리 많이 순화되어 있었다.
“크크큭~ 로드라는 새끼는 진짜 미친놈인가 보네. 아무리 그래도 뱀파이어와 인간들은 외형도 비슷한데. 쯧... 하긴... 인간 중에도 그런 미친 것들이 있기는 하지.”
그 말에 스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곤 꺼내는 말.
“주인님? 로드는 놈이 아니라 년입니다만...”
“뭐? 여자라고?”
“그렇습니다.”
나는 왜 지금껏 뱀파이어로드를 남성이라 생각했을까?
이런 악역의 대가리는 대부분 남자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하다.
나는 남녀차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군.
“크흠흠... 그렇군. 그거 정말 미친년이군.”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뱀파이어 대부분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그러한 듯하다.
그나저나 뱀파이어들의 외모는 대부분이 상당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로드라는 년은 어쩌면 더 죽여주지 않을까?
물론, 내가 뱀파이어에게까지 성욕을 해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극히 본능적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뱀파이어도 섹스를 하나?’
슬쩍 스쿡을 바라보지만,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나연누나의 눈치가 보인다.
***
-캬아아악!-
-캬아악!-
아홉 번째 마을엔 광란의 섹스 파티를 하는 사람들밖에 없기에 서둘러 뱀파이어로드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막 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백사 두 마리.
“저 새끼들이 또 있었어!?”
한 마리는 전에 보았던 거대백사와 비슷한 크기였고, 다른 한 마리는 훨씬 커 보이는 놈이다.
놈들은 덩치에 걸맞게 쉭쉭 거리기보다는 괴물들처럼 캬악캬악 거리고 있었는데 눈빛이 보통 흉흉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등에 매어진 거대백사의 가죽보따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늘은 무기로서 다 사용했기에 보따리만 남은 상태.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동족을 죽였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어쩌면 부부일수도 있고.
저 커다란 새끼가 남편인가?
그런데 뱀도 암수가 있나? 모르겠다. 내 지식은 파충류에게까지 뻗어있지 않다.
나중에 나가면 검색해 봐야겠군.
“로드의 애완동물입니다.”
걱정으로 물든 스쿡의 표정.
그렇다고 처음 만났을 적 겁쟁이의 얼굴은 아니다.
이 놈도 이제는 제 몫을 역력히 해내고 있다.
기사까지 처리한 정예인지 않은가.
일행들도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진한 긴장이 드러났다.
한 마리를 상대하는데 다섯이서 죽음까지 각오했던 괴물이다.
위안이라면 그때보다 일행들의 전력이 월등하게 올라갔다.
성기형이 몸을 부풀리며 호기롭게 외친다.
“그때랑은 다르다고. 제대로 박살내 주지.”
“크르르르~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저도 인한님이 삼킨 놈을 용서할 수 없어욧!”
한 번 경험이 최악의 경험이었건만 모두 투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그 중 이은지의 눈은 거대백사를 향해 과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뱀 구이가 되겠네.’
다들 너무 많은 피를 봐서 정신이 헤까닥 하기라도 한 것 같다.
나도 거대백사와 다시 싸운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맞닥뜨리니 긴장감이 솔솔 올라오는데... 그래도 잔뜩 움츠러드는 것보단 훨씬 낫다.
몸속의 뇌기를 슬슬 움직여 본다.
확연하게 불어난 뇌기의 양.
처음 거대백사와 싸울 적보다 최소 3배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났다.
‘가능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피할 수는 없겠지?”
내 물음에 모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스톤구울을 상대하기도 벅찬 그때도 거대백사와 싸웠다.
지금은 일행모두 스톤구울 몇 마리 정도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스쿡의 말에 의하면 기사들은 스톤구울 정도는 쉽게 상대할 전력이라 했으니 말이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
“전과는 틀릴 거다.”
“크르르~ 웨어타이거의 힘을 제대로 보여 주지.”
과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보이는 성기형과 호랑이.
“그럼, 저 큰 놈은 내가 상대할게. 옆에 놈을 상대해 줘.”
“인한아? 그건 위험해!”
나연누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크르르르~ 대장! 내가 큰 놈을 혼자 상대하지. 웨어타이거는 도전을 즐기거든. 크아앙!”
“다들 우리 목적을 잊지 마. 우리는 최대한 안전하게 경계를 벗어나는 게 목적이야. 정 걱정이 되면, 빨리 처리하고 도와주면 되잖아.”
“그렇지만...”
“누나.”
“아... 알겠어...”
이어서 장수언을 바라봤다.
“크르르~ 어쩔 수 없지. 단숨에 해치워 보이겠다.”
지금까지 대장역할을 해 온 나다.
그리고 지금의 내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결국은 동의했다.
-캬아아악!-
-캬아아악!-
그러던 중 지척까지 당도한 거대백사 두 놈이 붉은 눈을 부라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때의 놈처럼 무작정 달려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놈들도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듯하다.
“스쿡. 너도 저쪽을 맡아. 빨리들 처리하라고.”
“주인이시여. 알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의 스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 중 나에게 가장 큰 믿음을 보이는 놈이다.
나로 인해 각성을 한 이후부터는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명령을 따랐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말과 함께 거대백사 중 큰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쉬에에엑!-
거대백사는 혼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나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가 있는지 보자고!’
그러곤 거대한 얼굴을 마주 들이밀었다.
아가리가 벌어지며 사람 몸통만 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덩치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
콰앙.
옆으로 몸을 날리자 놈의 아가리가 땅에 틀어박혔다.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뒤꿈치로 놈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터엉.
-캬아아악!-
역시나 이놈의 비늘은 보통 단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뇌전으로 인해 검게 물든 것이 보인다.
확실하게 공격은 먹혀들고 있었다.
쉬이이익.
흉악하게 일그러진 놈의 눈가.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몸놀림으로 꼬리를 말아왔다.
“허업!”
콰앙. 콰앙. 콰앙.
마치 창날처럼 찍어오는 꼬리를 비해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었다.
그때마다 땅에는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렸다.
“뭐가 이렇게 빨라!”
확실히 이 전의 놈 보다 크고 빠르다.
크면 동작이 느려지는 것이 정상이건만, 오히려 더 빠르다니.
이놈은 혹시 전설의 이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카카캉.
캉. 캉. 캉.
뇌기를 덧씌운 단검으로 놈의 몸을 가격했다.
비늘의 역방향을 노리며 찔러보지만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캬아아아!-
놈은 내가 요리조리 잘 피해내자 성이 난 듯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그때마다 땅은 지진이 난 듯 마구 흔들린다.
20미터를 훌쩍 넘어 30미터는 될 법한 길이.
두께는 버스보다 두껍다.
그런 놈이 펄떡 펄떡 뛰니 땅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단검을 집어넣고는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전의 놈을 속에서부터 꿰뚫었다.
더군다나 바위도 쉽게 부수는 주먹.
어쩌면 쇠도 뚫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힘은 넘쳐 오르고 있었다.
뇌기까지 씌었으니 오히려 단검보다 놈에게 더 타격을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제 내 주먹은 그냥 주먹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흉기다.
촉수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잡아채려는 혀를 피해낸다.
저 혀 놀림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면 엄청난 키스실력을 자랑할 수 있지 싶다.
“입 냄새가 너무 지독하잖아!”
혀가 옆을 지나는데도 지독한 독기가 느껴진다.
덩치가 클수록 입 냄새도 더 지독해지나?
터엉. 터엉. 터엉.
촉수 같은 붉은 혀를 피해내며 놈의 몸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시퍼런 뇌전을 머금고 뻗어나가는 주먹.
너무나 큰 몸통은 휘두르는 족족 내 주먹을 맞이했다.
-캬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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