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9)
3. 경계안의 뱀파이어.(9)
놈의 커다란 몸에 비해 비루하리만치 작은 주먹이지만.
가격하는 부위는 주먹모양으로 움푹움푹 파였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고통을 느끼는지 거대백사도 몸을 마구 비틀며 피해보려 애를 썼다.
나에게 가격당한 부위는 어김없이 검게 그을려 변색이 되어 버린다.
내 주먹이 놈에게는 이쑤시개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 위력은 이쑤시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후욱~ 후욱~ 후욱~”
놈과의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몸을 활보하며 더욱 덩치를 불리는 뇌기.
뇌기가 전신을 돌아다닐 때마다 아찔한 흥분이 내 몸을 감싼다.
섹스와는 다른 극상의 쾌감.
쾌감을 넘어선 극도의 희열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순간을 미치도록 즐겁게 해준다.
저 거대한 놈이 내 공격에 맞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에 짜릿함을 느낀다.
“크하하하하! 왜 그렇게 맥을 못 춰! 어서 제대로 덤벼 봐!”
내 조롱을 알아들은 듯 거대백사의 눈은 저릿할 정도로 살기를 뿜어댔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은놈에게 농락을 당한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가 보다.
그래봤자 이제 나에겐 위협거리도 되지 않는다.
-캬아아아악!-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나를 향해 놈의 아가리가 다가든다.
입을 최대한으로 벌려 낸 놈의 아가리는 버스도 단숨에 삼킬 정도로 커다랬다.
아가리 안의 목구멍은 지옥으로 향하는 동공처럼 보인다.
“이런 젠장!”
너무 흥분한 나머지 놈에게 뜻하지 않은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이 전처럼 놈의 입에 먹혀 버리고 말 거다.
‘그냥 먹혀서 또 뚫고 나오는 게 더 간단하려나?’
뜨겁게 풍겨 오는 숨결에 섞인 입 냄새.
그건 두 번 다시는 못하겠다.
“하아압!”
놈의 아가리가 나를 덮치려는 순간 윗입술을 힘껏 차올린다.
뻐어억.
-꾸웨에엑!-
동시에 번쩍 들려 버리는 대가리.
저 거대한 머리통이 내 발길질 한 방에 번쩍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
싸우는 것이 이렇게나 신나는 것이었던가?
머리를 흔들며 비틀거리는 거대백사의 몸뚱이에 주먹을 우겨 넣었다.
두두두두두두.
깐대만 또 깐다는 어느 영화 속 행동을 따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비늘 위를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북을 정신없이 두드리는 소리와 닮았다.
-캬아아아악! 키에엑!-
거대백사의 괴성은 언제부터인가 고통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시퍼런 뇌기를 뿜어내며 연신 뻗어나가는 주먹과, 시커멓게 그을린 듯 검게 변하는 비늘.
쩌적. 쩍. 쩍.
놈이 자랑하는 그 단단한 비늘이 갈라져 부서진다.
그 안으로 비늘 속 질긴 가죽이 드러났다.
비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거죽을 또 다시 두드린다.
퍼버버버벅.
가죽위를 두드리는 충격에 거대백사가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쳤다.
쿠웅. 쾅. 쾅.
거대한 거대백사의 몸은 주변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며 거대한 공터로 만들어 버렸다.
기운에 기운이 덧씌워져 점점 불어나는 뇌기.
쉬이익.
그가가가각.
놈의 꼬리 공격을 풀쩍 뛰어 피해내자 지면을 훑으며 거대한 크리에이터를 만들어 낸다.
나는 놈의 몸 위로 착지하고는 마구 내달렸다.
당황한 놈이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어보지만 이미 놈의 머리까지 도달한 상태.
쉬이익.
촉수처럼 유연한 혀가 다시금 나를 덮쳐오고.
단검을 꺼내 들어 뇌기를 덧씌워 날려 보낸다.
-캬악!-
단검은 놈의 혀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로 작지만, 실린 뇌기의 기운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고통에 찬 얼굴로 정신없이 대가리를 휘젓는 놈.
타앗.
놈의 몸을 밟고 다시 한 번 점프.
얼굴에 몰아치는 공기저항을 느끼며 놈의 머리통이 급격히 가까워졌다.
활시위를 당기듯 팔을 힘껏 뒤로 젖힌다.
파직. 파짓.
몸속을 누비며 주먹으로 몰려드는 거력.
마법진을 그리듯 어지러운 회로들이 몸속을 누비며 그림을 그리듯 주먹으로 타고 오른다.
전신에 느껴지는 희열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하아아아앗!”
절로 뿜어지는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내지른다.
푸화아앙.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놈의 붉은 두 눈이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향해 두려움을 드러냈다.
콰앙.
이윽고 놈의 미간에 틀어박히는 주먹과.
쩌저적.
가면이 갈라지듯 미간을 중심으로 균열.
파카캉.
깨어진 비늘이 조각이 되어 비산하고.
뇌기를 품은 주먹과 함께 팔 전체가 푹 하고 파고들었다.
속살을 파고드는 감촉이 기분 나쁘리만치 오싹하다.
-꾸아아아악!-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놈의 머리통이 크게 젖혀졌다.
푸화악!
놈의 미간에 틀어박혔던 팔이 쑥 하고 빠져나오자 뻥 뚫린 구멍을 통해 붉은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분수를 일으킨다.
파자자작.
팟팟팟.
이어서 구멍 안으로 잔뜩 밀어 넣은 뇌기가 놈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는다.
-꾸아악! 캬악! 꺄아아악!-
놈이 마지막을 알리듯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자 일행들이 상대하던 거대백사 또한 마구 괴성을 질러댄다.
자신의 짝이 죽어 간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악!-
그리고 두 마리 거대백사의 음성에 화답하듯 괴물들의 괴성이 귓가를 더럽힌다.
-구어어어어!-
-키에엑!-
지겹도록 들었던 구울과 스톤구울의 괴성.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며 몰려드는 괴물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미간에 구멍이 뚫린 거대백사의 거대한 동체가 지면으로 무너져 내린다.
쿠아앙.
놈들의 울음소리는 괴물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수십에 달하는 구울과 스톤구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백사를 쓰러트린 희열을 느끼기도 전에 황급히 일행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투성이의 거대백사와 현란하게 공격을 가하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모습이 역전의 용사와도 같다.
나연누나의 실타래가 거대백사의 비늘 사이를 파고들고, 성기형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놈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장수언과 스쿡의 손톱이 단단한 비늘에 계속해서 흠집을 내고 있었다.
이은지는 놈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단검으로 눈을 집중 공략한다.
그리고 그들의 틈을 파고드는 괴물들.
괴물들이 파고들자 스쿡이 이를 제어해 보려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놈들은 그의 제어를 따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대백사의 명령이 수쿡의 제어를 뛰어넘는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놈들의 사이로 뛰어 들었다.
“인한아!”
나를 발견하자 얼굴에 화색이 돈 나연누나의 음성.
“저놈들은 내가 처리할게!”
그렇게 외친 후 놈들을 향해 달려 나간다.
놈의 혀에 꽂힌 단검을 회수할 정신은 없었다.
두 주먹을 쥐며 뇌기를 돌렸다.
그저 주먹의 힘 만으로 구울들의 머리를 꿰뚫고 스톤구울의 몸을 두드린다.
콰직.
퍼어억. 퍽.
이런 괴물 따위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손과 발이 휘둘러질 때마다 뇌가 쑤셔지고 머리가 으깨어졌다.
단단한 스톤구울도 너무나도 쉽게 망가져 버린다.
주먹이 가격하는 족족 단단한 갑각이 으스러졌다.
내 주먹은 이제 사람의 주먹이 아닌 흉기와 마찬가지다.
놈들의 중앙에서 휘젓고 있는 나는 한 마리의 포식자와 같다.
뇌수가 흐르고 뼈가 부러져 나간다.
시뻘건 선혈이 슬라임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인간의 피와는 다른 혈 향.
놈들의 혈 향에는 썩은 악취가 섞여 있다.
“다 뒤져!”
내가 휘저을 때마다 순식간에 서너 마리씩 무너져 내렸다.
이놈들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거대백사를 보라.
나보다 압도적으로 큰 덩치로도 어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뱀파이어 로드라 해도 지금의 나를 어쩌진 못 할 것이다.
퍼퍼퍽.
콰직. 콰직.
호승심이 끓어오른다.
뱀파이어 로드는 얼마나 강할까?
다른 웨어비스트들은?
나연누나가 속해 있는 일성이라는 가문과, 그 이외의 초인들은 얼마나 강할까?
마마를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었다.
그때의 본능이 내게 속삭였다.
눈앞의 존재는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지금은?
“크하하하하! 다 뒤져 버려!”
정염귀.
그 빌어먹을 정염귀가 생각난다.
복수를 생각했지만 은연중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구상두?
그런 허접한 정염귀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복수를 꿈꿨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야만 했다.
힘을 키우기 위해,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만큼 놈이 선사한 악몽은 나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놈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모두 날려버렸다.
당장에 눈앞에 나타난다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버릴 수 있다.
퍼어억. 퍼억.
콰드득.
지금 눈앞의 하찮은 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염귀였던 구상두 따위는 스톤구울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힘을 지니고 있다.
끽해 봐야 몇 마리의 구울과 비슷 하려나?
지금의 나는 이런 놈들이 아무리 몰려와도 두렵지 않다.
이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그대로 뱀파이어로드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년을 제압해 온갖 치욕을 준 후, 이곳을 빠져나가 그 빌어먹을 정염귀를 추적해 찢어버릴 거다.
“흐흐흐흐흐~”
생각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진다.
“강인한!”
“크르르! 대장 정신 차려!”
“인한님!”
“주인님!”
나를 부르는 음성이 아릿하게 들려온다.
덥썩.
그리고 내 허리를 감싸오는 따뜻한 온기.
“인한아... 끝났어... 그만 진정해...”
진정하라고?
뭐를?
그 온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잔뜩 흥분했던 상태에서 싸늘하게 식어 버린 느낌이다.
‘도대체...’
나는 두 손을 들어 이를 내려다본다.
구울과 스톤구울의 진득한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두 손.
‘씨발... 또 광기가 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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