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11)
3. 경계안의 뱀파이어.(11)
피잉. 피잉. 피잉.
우리를 노리고 쿼렐이 빗발치듯 쏟아져 내린다.
성에 당도하자 이제야 공격을 개시하는 놈들.
카강. 캉.
쿼렐을 쳐 내고 피해내며 성벽을 향해 달린다.
성벽을 향해 훌쩍 뛰어오르자 황급히 나를 향해 쇠뇌를 겨냥하는 뱀파이어와 눈이 마주친다.
놀란 얼굴의 눈동자는 진한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다.
-커헙!-
쭉 뻗어낸 손에 경악으로 물든 뱀파이어의 머리가 잡힌다.
그리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놈의 머리를 강하게 움켜 쥐어버렸다.
콰드득.
-커어억!-
콰직.
사람의 두개골보다 몇 배는 강할 뱀파이어의 머리통이 손아귀에서 그대로 으깨진다.
내 뒤를 따라 높은 성벽을 풀쩍 풀쩍 뛰어오르며 목표한 뱀파이어를 처리하는 일행들이 보였다.
성벽을 오르자마자 쇠뇌를 장전하는 뱀파이어들을 처리하고는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그리곤 허둥지둥 거리는 뱀파이어들을 사정없이 몰아쳐 남김없이 처리했다.
히어로물의 뱀파이어사냥꾼처럼 능숙하게 처리하는 모습은 한 편의 판타지와 같아 보였다.
죽음의 색과 같은 잿빛하늘 아래 을씨년스러운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우중충한 조경들은 나름 관리하는 것인지 꽤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가 처리한 뱀파이어들과 어우러져 꽤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너무 쉬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패밀리어를 바라 보았다.
여전히 우리를 감시하듯 유유히 유영하는 놈들.
나름 형식적으로 우리를 막고는 있지만 아직 기사단장이라는 놈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성안으로 유인해 철저하게 유린하며 즐기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주위를 경계하며 다가간 거대한 크기의 성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 키가 꽤 큰 편에 속함에도 높이만 내 키의 두 배에 달하고, 넓이만 사람 열은 줄줄이 세워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이런 문을 만들어 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성기형과 장수언이 근육을 잔뜩 부풀리며 문 한쪽씩을 잡고는 잡아당긴다.
불끈거리는 근육위로 힘줄이 도드라지며 서서히 열리는 문.
그그그그긍.
거대한 문이 열리는 광경은 이곳이 관광지였다면 입을 벌리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장엄해 보인다.
성문이 열리며 말도 안 되는 문 두께에 한 번 더 놀랐다.
삼십 센티는 되어 보이는 두터운 문.
문 한 짝의 무게만도 수 백 킬로그램은 나갈 듯 보인다.
서서히 열리던 문은, 이내 활짝 열렸고.
그 안으로 어둠의 동공처럼 짙은 어둠이 눈앞을 장식한다.
“쓰벌~ 존나 음침하네.”
성기형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말 그대로 넓은 대전 안은 아무것도 없이 휑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양옆으로 이어진 계단.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를 죽여보지만 휑한 대전 안에 울리는 소리를 지우진 못했다.
그그그그긍
콰앙.
그리고 우리가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닫혀 버리는 성문.
“어멋! 뭐야!”
“크르르...”
“문이 왜 닫혀?”
성기형과 장수언이 닫힌 성문을 열어 보려 밀어 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쾅. 쾅. 쾅. 쾅.
이에 부숴버리려는지 두드려보기 까지 한다.
덕분에 귓속은 강하게 울리는 소리에 먹먹할 지경이다.
“됐어. 어차피 들어가야 하잖아.”
정말로 부숴 버리려면 못 부술 것도 없겠지만, 나는 그들을 말리고는 어둠에 잠긴 전면을 주시했다.
조금씩 어둠이 가시며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익숙해진다.
심각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일행들도 어둠에 익숙해지는 듯 조금씩 차분해졌다.
“이곳에 들어와서 빛 한 번을 볼 수가 없네.”
긴장을 풀려는 듯 중얼거리는 성기형의 음성이 들려왔다.
“크르르~ 손님 맞을 생각은 없나 보군.”
“계단이 두 개인데 어디로 갈까?”
“인한이, 네가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도 동감이에요.”
정말로 선택 장애가 오는 순간이다.
잠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왼쪽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왼쪽으로 가 보자.”
반반씩 양옆으로 올라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찢어지면 영화 속 고구마 같은 장면이 연출될 것만 같아서 모두 함께 올라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다.
신기하게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단.
천장이 아무리 높더라도 이미 2층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올라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이제 한 사람이상은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앞이나 뒤에서 압박해 들어온다면 샌드위치 신세가 될 터였다.
오로지 제일 앞사람과 뒷사람만이 적들을 막아 내야 하는 상황.
“정신들 바짝 차려.”
나는 재빠르게 맨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다행히 맨 뒤에는 호랑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웨어비스트는 종족 특성상 상처의 회복이 굉장히 빠르다.
회복 속도가 거의 퓨리다크니스를 주입한 사냥꾼에 버금갈 정도다.
그런 그라면 어느 정도 안심이다.
딸깍.
“어어?”
“왜? 뭔데?”
“기다려! 뭔가 밟은 것 같아.”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발등을 바라봤다.
발이 올려져있는 계단은, 내 발이 위치한 부분만이 살짝 눌려 들어가 있었다.
재수 없게도 지뢰를 밟아버린 것 같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본다.
“뭔가 밟은 것 같아. 내가 밟은 부분만 들어가 있어. 발을 떼면 뭔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이런 간단한 함정에 빠질 줄이야.
정말로 이런 트릭을 사용하는 일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크르르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설마, 함정을 밟았다는 말인가?”
“그래. 함정인 것 같아.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것 같아.”
“쓰벌... 설마, 폭발한다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계단위에서 바위가 굴러온다거나?”
“성기씨! 그 입 좀 다물어 줄래요? 인한님 난처하게 왜 그딴 소리를 해요?”
“아니... 내가 뭘...”
“성기씨가 앞장섰다고 안 밟았을 것 같아요?”
“허... 나는 그저 걱정돼서...”
성기형과 이은지가 투닥거리자 나연누나가 한마디 했다.
“조용해주세요. 이곳이 어디인지 잊은 건 아니죠?”
“죄송해요. 언니.”
나연누나의 말에 즉시 고분고분해지는 이은지.
‘쟤는 나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나연누나에 대한 복종인 거 아니야?’
그것보다 문제는 발을 어떻게 떼어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지뢰 같은 경우는 같은 무게의 무언가를 올린 후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낸다고는 들었는데.
이것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의 앞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인님 대신 그곳을 밟고 있겠습니다.”
스쿡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감동이 밀려온다.
이은지 저년보다는 확실히 스쿡의 충성이 앞서 있는 것 같다.
“괜찮겠어?”
“저보다는 주인님이 움직이시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입니다. 로드를 상대할 이는 주인님뿐입니다.”
그런데 어째 제일 위험한 것을 떠넘기는 기분은 그저 내 기분이지?
“알았어. 그럼 앞으로 이동해. 다른 사람들은 스쿡이 넘어올 수 있도록 숙여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몸을 낮추던 중.
귓가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그 소리는 나만 들은 것이 아닌지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드드드드드드.
카카캉.
무언가가 계단을 굴러 내려오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듯 계단 전체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육중한 무언가의 소리는 쇳소리까지 섞여 있는 것이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진짜... 돌이라도 굴러오는 거야?”
“크르르... 돌이 아니라 커다란 쇠구슬이라도 되는 것 같군.”
“저봐! 성기씨 말이 씨가 되었잖아요!”
“모... 모두 뒤돌아 내려가!”
나는 저 멀리서 히끗하게 보이는 쇠구슬에 다급하게 소리쳤다.
정말 쇳덩이가 미친 듯이 굴러오고 있는 모습은 절로 오싹하게 만들었다.
말과 동시에 일행들이 몸을 돌린다.
나도 몸을 돌리며 밟고 있던 계단에서 발을 떼었다.
덜커덩.
발을 떼자마자 들려오는 이질적인 음.
“어어어?”
“뭐야!”
“크허엉~”
“아악!”
“허읍!”
“주인님!”
발을 디디고 있던 공간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밑을 바라보자 까마득한 동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있던 바닥이 꺼지며 모두가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터엉.
잠시 부유했던 몸이 바닥에 닿았다.
이윽고 급격한 경사로 인해 미끄럼을 타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흐어업!”
각기 다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며 외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이런 씨발.
일부러 한쪽의 계단으로 전부 몰려왔는데, 이렇게 되면 모두가 흩어져버리고 만다.
나는 몸을 멈춰 세우기 위해 손가락을 마구 쑤셔 넣어 본다.
하지만 손이 닿자마자 미끄러져 버리는 손.
아무래도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기에 특수 처리를 한 듯하다.
이런 조잡한 함정에 빠져 버리다니.
충분히 조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든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으아아악! 젠장! 로드 개 같은 년!”
쿠웅.
“어흑!”
한참을 미끄러져 내린 몸이 충격과 함께 땅에 닿았다.
등으로 떨어지며 순간 숨이 콱 하고 틀어 막힌다.
“허억... 허억...”
겨우 숨을 돌리고는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 질러 일행들의 이름을 불렀다.
“나연아! 성기형! 이은지! 호랑이! 스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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