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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185화 (185/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12)

3. 경계안의 뱀파이어.(12)

화아악.

갑작스레 사위가 밝아지며 어둠에 적응했던 눈이 통증과 함께 멀어 버린다.

“으윽...”

나는 팔로 빛을 막아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경계에 들어선 후 나연누나의 푸른 기운이나 나의 뇌전에서 뿜어지는 빛 이외에는 처음 보는 밝음이다.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모든 감각이 차단된 것만 같다.

돌발 상황에 대처가 안 되었기에 오는 단절.

“제기랄... 이런 장난 같은 짓을! 로드라는 년이 좆나 치졸하네! 겁이라도 먹었냐?!”

혹시 기습이라도 당할까 당당한 목소리로 도발을 해 본다.

행여 기습하려다가도 자존심 때문에 멈춰주기를 바라며.

-깔깔깔~ 재미있는 가축이잖아? 설마, 내가 겁을 먹었다고 말하는 거니?-

귀를 파고드는 낭랑한 음성.

제법 높은 톤의 음은 뱀파이어의 음침함과는 달리 꽤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그 사이 빛에 적응한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것을 노리고 했던 도발이기에 만족을 느끼며 팔을 내렸다.

그제야 주위의 사물과 멀찍이 도도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돌과 같은 재질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중앙.

뼈로 만들어진 것 같은 커다란 의자에 몸을 기대앉아 있는 여인이 보였다.

피처럼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

피를 머금은 듯 붉은 입술.

그와는 대조적으로 새하얀 얼굴은 너무나도 창백해 알비노에 걸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씨익.

반원을 그리며 올라간 입 꼬리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는,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여성 뱀파이어를 종종 봤지만, 단연코 눈앞의 뱀파이어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리라.

처치해야 할 뱀파이어가 아니라면 홀리고 말았을 절대적인 미를 지니고 있었다.

“네가 뱀파이어 로드냐?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보냈지!?”

사각의 공간은 너무나도 넓고 높아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못해도 100미터는 되는 것 같다.

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아무래도 보통의공간이 아닌 결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인 듯하다.

-다른 사람들? 깔깔깔~ 그 가축들이라면 내 수하들의 놀이거리로 던져 주었지.-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뱀파이어 기사단장은 다섯.

그리고 일행들의 숫자도 다섯이다.

뱀파이어로드는 게임처럼 중간보스들을 일행들 한 명 한 명에게 배치를 한 모양이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딱 맞아 떨어지는 형국.

“네 수하들도 곧 뒈져버리겠군.”

-내 수하들이? 너희들이 싸우는 건 다 보고 있었어~ 제법 대단하긴 하지만 내 수하들을 당해내지는 못할걸?-

“기사라는 놈들도 맥도 못 추고 나자빠진 거 못 봤냐? 네 부하들을 전부 죽이고 이곳까지 왔거든?”

-그것들을 부하라고 하는 것도 웃기네. 내 직접적인 권속은 단장들뿐이야. 나머지는 버러지들이나 마찬가지지.-

아무래도 저년은 동족애도 없는 것 같다.

수하취급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 단장들도 곧 뒈져 버리겠네.”

-깔깔깔~ 그래도 이런 흥밋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어~ 정말로 그것들이 죽어 버린다면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면 되겠다~ 호호홍~-

“동족애도 없는 거냐?”

-동족애? 자기의지도 없는 인형들을 동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뱀파이어들을 인형이라 표현한 그녀의 말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담겨 있는 듯하다.

나는 뱀파이어로드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뇌기를 굴리고 있었다.

당도하기까지 뇌기를 사용했기에 상당한 손실이 있었기 때문.

사용할 수 있는 기운과, 뇌기가 날뛰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멀리 떨어져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런데도 쿡쿡 찌르는 날카로운 직감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의자에 기대 있던 뱀파이어로드가 우아한 몸짓으로 몸을 일으켰다.

멀리서 보기에도 굉장히 큰 키가 돋보인다.

펄럭.

감싸고 있던 망토를 뒤로 넘기곤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꿀꺽.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목을 달래려 마른침을 삼켰다.

망토를 걷어낸 그녀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굴곡을 드러내는 육체.

검정의 들러붙는 모노키니 형태의 무언가를 걸친 모습은, 옷을 입고 있다기보다는 반쯤 헐벗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했다.

또각. 또각. 또각.

살짝 굽이 있는 힐 형태의 신발에선 연신 또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곳에 갇혀 있는 뱀파이어라기엔 너무나도 과감하고 세련된 패션이다.

남자를 단숨에 홀려 버리는...

그녀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나는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매혹적인 붉은 눈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함이 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는 존재감.

“허업!”

이런 존재감을 언제 느껴봤을까?

마마에게서 느꼈던 그 존재감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들어서기 전 가졌던 자신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자만이었는지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내보인 여유는 나와는 달리 자만이 아니었다.

자신감.

이곳에서 자신을 해할 존재는 없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그저 한낮 유흥거리도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일행들에 대한 걱정에 마음을 잡을 길이 없다.

‘크... 크다.’

지척까지 다가온 뱀파이어로드.

불과 5미터여가 남은 거리에서 멈춰 선 그녀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여자가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전 세계를 뒤진다면 당연히 꽤 있겠지만, 결코 눈앞의 뱀파이어 로드만큼 큰 여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못 해도 2미터30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아니, 거대한 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크다.

반쯤은 밖으로 드러난 가슴 한 짝이 내 얼굴보다 크다.

드러난 살덩이만도 두 손으로 감싸야 할 정도다.

유려한 곡선을 지나 자리한 골반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양팔로 감싸야 겨우 두를 수 있을 정도로 보인다.

본능적으로 골반의 중앙에 있는 가랑이 사이로 시선이 옮겨졌다.

적당히 살집이 잡힌 허벅지의 중앙.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감싸고 있는 쪼가리 위로는 선명한 도끼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두근. 두근.

‘저... 정신 차려...’

거인.

뱀파이어 로드는 말 그대로 거인이라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했다.

그런데도 전체적인 모습은 완벽한 여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눈과 입을 잔뜩 벌리고 헤벌쭉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인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지금의 이런 생각들은 저년의 어떠한 힘이 작용한 탓이리라.

그리고...

‘안... 보여...?’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그녀.

당혹스럽게도 그녀의 정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처음이기에 점점 심란해지는 마음을 잡을 길 없다.

능력이 이 정도로 발달된 후, 마마를 본 적은 없기에 그녀의 정보를 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마마에 비견될 정도의 존재감을 내보이는 이의 정보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마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법 튼실한 몸을 가지고 있네?-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는 뱀파이어 로드의 눈은 부드럽게 반달을 그렸다.

그 모습이 치명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여운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든 일행들을 구하고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 본다.

하지만 도저히 눈앞의 존재를 어떻게 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 말이 없느냐? 방금 전까지는 잘도 재잘재잘 거리더니. 이 몸의 아름다움에 홀리기라도 한 것이야?-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코로 빨려 들어오는 몽롱한 향기.

미약한 혈 향이 섞인 그녀의 향기는 마약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내 상대는 없다 생각했던 그 자존심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들이 득실거릴지도 모른다.

겸손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저주스럽다.

차라리 꽁꽁 숨거나 은밀하게 경계의 핵에 도달했어야 한다.

후회스럽고 후회스럽다.

나의 주제 넘는 자만 때문에 모두가 위험하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정말로 경계에 갇혀 가축이 되어 버리는 것뿐만이 남은 듯하다.

화들짝.

‘저... 정신 차려! 강인한!’

나는 나약해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는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소중한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일행들은 내가 저년을 처치하고 구해주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생각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뱀파이어로드에게서 멀찍이 물러선다.

파지직. 파지직.

뇌기를 힘차게 돌리자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됨을 느낀다.

푸른 스파크가 두 손 가득 위협적으로 튀었다.

그 모습에 뱀파이어 로드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호오~ 직접 보니까 색다른데? 내 기운하고는 상극이야. 맞으면 꽤 간지러울 것 같앙~ 하으응~ 어디 한 번 때려보지 않으련? 오랜만에 자극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거든?-

붉은 혀로 입술을 핥는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은 잔뜩 발정 난 요녀를 연상케 했다.

너무나도 아찔한 모습에 잠시 정신이 흐트러질 정도로 말이다.

“미친년! 그 말을 후회하게 해주지!”

나는 단숨에 전력을 끓어 올리며 뱀파이어 로드를 향해 튀어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뿜어지는 뇌전.

뇌전은 주먹은 물론 점점 퍼져나가며 전신을 휘감았다.

거대백사를 상대할 때 이상의 힘이 몰아친다.

그렇다고 자만에 빠지지는 않는다.

얼마 되지도 않아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는 쓸 대 없는 자만 따위는 하지 않으리.

“흐아아압!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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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은 한 편 더~ 연참입니다. ㅎㅎ

연재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어요.

곧 200화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일찌감치 놓는 것이 좋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네요.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연재하다보니 벌써 이렇게~ ㅎㅎ

너무 반응이 없기에 오는 수많은 유혹을 잘도 헤쳐나온 것 같습니다.

휴우~ 매일 매일이 연중마려운 것을 감내하는 중이지요.

이게 어디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의 잘못이겠습니까?

모두 지지리도 늘지 않는 작가의 능력부족 때문이지요.

아무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비록 모자라지만 많은 응원과 댓글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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