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23)
3. 경계안의 뱀파이어.(23)
강원도의 깊고 깊은 산골짜기.
사람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깊고도 우거진 숲 허공에 일렁이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공간이 뒤틀리듯 일그러지던 틈 사이로 불쑥 하며 빼꼼이 고개를 내미는 여인의 얼굴.
허공에 머리만 둥둥 뜬 것 같은 기괴한 모습에 지나던 누군가라도 봤다면 당장에라도 귀신이라 소리 지르고 까무러칠 모습이다.
흩날리는 백발과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얼굴, 새빨간 입술 사이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자리했다.
기묘할 정도로 아름다움에도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이질감과 함께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폴짝.
말괄량이처럼 뛰어 발을 디디는 여인의 육중한 상하가 탄력적으로 흔들렸다.
으슥한 숲 어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현듯 나타난 여인.
신기하게도 그녀의 포동포동한 엉덩이 사이로는 아홉 개의 꼬리가 어지럽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구미호.
전설이나 민화에서나 화자 되는 요물이자 인간의 간을 빼먹는다는 악명을 달고 있는 요괴.
여인의 모습은 마치 그 구미호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 것도 미화된 지독히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르르륵.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여인의 머리카락이 흑발로 바뀌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흑색을 띄며 바뀌었고, 송곳니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으로 아홉 개의 꼬리도 언제 사라졌는지 그 자리에는 보기에도 탐스러운 달덩이 두 짝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드디어 세상으로 다시 나왔습니다아~ 하으으~ 서방님~ 수지가 이제 서방님을 보러 가요오~!”
그녀의 정체는 정수지.
이질적인 모습에서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모습이다.
인간의 형상에서 벗어났던 그녀가 이제야 자기 힘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되기 위한 수련.
그 수련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아니, 이제는 오히려 그런 수련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되어 살기 위한 수련이다.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구미호이되 구미호가 아닌, 인간이되 인간이라 하기에는 모호한 어떠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마마... 안 좋은 건가요?-
-글쎄다. 다만, 네가 그 힘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구나.-
-그럼, 이제 서방님을 뵈러 가도 되는 건가요?-
-휴우... 네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놈 생각뿐이니?-
-죄송해요... 마마... 하지만 저는 서방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걸요.-
-그래... 우리 수지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지. 이제는 네 등대가 되어 줄 이가 있으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도록 하려무나.-
-네! 헤헤~ 마마 사랑해요!-
-절대로 주식과 코인은 손대지 말도록 하고. 알겠니?-
수지는 웃는 낯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귀에는 마마의 염려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강인한과의 재회만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었던 까닭이다.
***
정수지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린다.
이곳에 당도하기 전부터 불안했던 그 느낌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이다.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서방님에게로의 전화.
아무리 걸어도 연락되지 않는 통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혹시 자신을 잊기라도 한 걸까?
언니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져 그녀가 자신을 만나는 것에 반대를 했다던가.
아니면 더 좋은 여자를 만나 떠나갔다던가.
온갖 상상에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이상연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래도 나름 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연락 한 번은 받으리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녀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다.
뚝. 뚝. 뚝.
정수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망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실종이 된 서방님이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을, 이런저런 의심을 한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차라리 서방님이 자신을 떠난 것이라면 최소한 멀리서나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됐다는 것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정수지는 자신을 버려도 좋으니 서방님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흑... 흑... 언니...”
연신 울먹이는 정수지를 이상연이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런 이상연의 몰골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인한이는 무사하니까.”
“흑흑흑... 죄송합니다. 언니도 계속 힘들었을 텐데...”
“아니야. 나는 괜찮아. 인한이가 무사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던 정수지의 고개가 번쩍하고 들렸다.
무사함을 안다며 되풀이 하는 말.
“정말요? 어... 어떻게 확실 하시는 건가요!?”
“어느 순간부터 인한이가 느껴지는 것 같더라... 이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수지는 못 느끼는 거니?”
“네? 왜... 왜 저만... 알려주세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누가 듣는다면 그저 위로의 말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수지는 그 말에 희망을 느끼고는 방법을 일러 달라 재촉했다.
“방법은... 나도 잘 몰라... 처음에는 나도 착각이라 생각했는데, 인한이로 인해 변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것을 느낀 모양이야. 휴... 이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말을 하는 이상연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애매한 모양이다.
그저 나대명과 고정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강인한의 무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정수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뇌기. 서방님께 뇌기를 받은 이들이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것을 알 수 있을 테지요!’
일종의 추적술과 비슷하다 보면 될 것이다.
도술에는 본인의 기운을 특정한 것에 깃들게 만들어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이를 깨달은 정수지가 조용히 눈을 감고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이상연은 그런 정수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이미 정수지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기대감이 비춰졌다.
***
“휴... 고문님. 도저히 파고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대명의 말에 고정욱의 얼굴도 과히 좋은 표정은 아니다.
강인한이 실종 되었다는 것이 확실시 된 순간부터 그가 사라진 곳을 조사하기 위해 나섰다.
문제는 그곳을 철통 같이 둘러싸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
요원처럼 무장한 이들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특히,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강인한으로 인해 각성까지 한 고정욱조차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기운을 풍겼다.
“조금 더 기회를 엿보도록 하지.”
사냥꾼과 관련되었으리라 생각은 했건만.
저들의 행세로 보아 사냥꾼 따위는 비벼보지도 못 할 조직이 분명하다.
사냥꾼 웹이 갑작스레 사라지며 어떠한 정보도 접할 수 없었던 고정욱.
다만, 확실한 수 있는 건, 저들이 초인과 관련된 집단이라는 것이다.
“쇼핑몰 쪽은 어떤가?”
“그쪽은 이제 잠잠한 것 같습니다. 조직원들 모아서 몰아붙이는 것은 어떨는지요?”
나대명이 초조한 듯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불가. 자네도 느끼고 있지 않나?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나대명도 고정욱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인한의 생사가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숨어서 지켜만 본다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했던 탓에 꺼내 본 말이다.
그에게 있어 강인한은 없어서는 안 될 주인이자, 보스, 가족이다.
“나사장이 어떤 심정인지 모르는 거 아니야. 나에게도 인한이는 가족이고 아들이야.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
고정욱은 인내를 갖고 틈을 찾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이는 초인으로 짐작되는 일인.
그만 자리를 비운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뚫고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
“저도 누이를 찾는 걸 돕도록 하겠습니다!”
김우혁회장은 침을 튀겨 가며 언성을 높이는 사내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가 있어 감히 일명그룹 회장실에 독단적으로 찾아와 이렇게 언성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나이 지긋한 대그룹의 회장도 아닌 서른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말이다.
“주이사. 우리 가문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이만 나가보게.”
주이사라 불린 사내.
그가 이렇듯 회장실까지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삼영바이오 주대왕 회장의 둘째 아들 주성현이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바이오 그룹.
수많은 특허약물을 내세워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바이오계의 공룡.
그렇다고 일명그룹의 회장실까지 독단적으로 찾아와 막무가내를 부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명그룹 역시 삼영바이오만큼 거대한 공룡그룹이기에 앞서 초인가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영바이오 또한 대한민국의 초인가문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이렇듯 회장실에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이었고.
“아니! 어찌 일명의 일이 저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엄연히 누이의 정인입니다!”
빽빽거리는 주성현의 말에 김우혁회장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눈앞의 주성현은 어릴 적부터 김나연을 마음에 두고 있던 이였다.
그 마음이 어찌나 거센지 삼영 측에서도 상당히 골머리를 싸맸더랬다.
그렇다고 삼영에서 반푼이와 짝을 맺을 리는 없었고.
결혼은 짝을 지어 준 이와 하되 첩으로 들이는 것은 허락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상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지 않지만, 이들끼리는 은연중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손이 워낙에 귀하기에 그런 이유도 포함되었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글을 쓰게 된 이유라... ㅎㅎㅎ
말문이 막힙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연참해야 하는데 요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네요 ㅜㅜ
빠르게 정신좀 챙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