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24)
3. 경계안의 뱀파이어.(24)
갖춘 능력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에, 김나연과 같은 반쪽짜리는 평생 가문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하고 독수공방하는 처지가 된다.
그것도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가문에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며, 오로지 가문을 위해 일하는 꼭두각시로 말이다.
그나마 다른 가문의 첩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나아진다.
일종의 유대관계를 위해 어느 정도 존중을 해주는 경우도 있고, 가문에서처럼 부려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상대 될 사람이 끔찍이 아낀다면 금상첨화이고 말이다.
몰론,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김우혁도 처음에는 주성현이 워낙 김나연을 끔찍이도 위하는 모습에 내심 잘된 일이겠거니 싶기도 했다.
자신 또한 한 여성하고만 맺어진 것이 아니기에 당연시 생각했던 것인데.
딸아이의 생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반박은 하지 못하고 홀로 시들시들 시들어갔다.
그래서 가주의 직권으로 2년의 자유를 허락했다.
남자관계가 아닌 한 허락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그리고 그 막바지에 사고가 터져 버렸다.
애지중지하던 딸이 실종이 되어 버린 것.
다른 이들에게는 반푼이취급을 당하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었기에.
“자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그리하게.”
가문의 일에 타 가문이 나서는 꼴이 되지만, 생각해 보면 수많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딸에 대해서는 물불을 안 가린다는 것이 썩 나쁘지만도 않았고.
***
영혼이 떠오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체 이탈?
나는 반쯤 위로 솟구친 허리를 접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씨발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어느덧 빠져나오던 내 영혼은 육체를 완전히 벗어나 버린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기라도 한 것인지 지독한 혼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죽음을 한 번 겪어봤다고는 하지만 영혼이 빠져나오는 상황은 꽤 당황스럽다.
지금, 이 상태가 정말로 영혼인가도 알쏭달쏭하고.
고통이 느껴진다거나 무서운 기분은 아니다.
다만,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뭔가 멍한 기분이 든다.
지금 내 상태가 윤지랑 비슷한 건가?
귀신이 된 걸까?
생각을 마치기도 전 갑자기 몸이 훅하고 떠오른다.
그러곤 눈으로 인지하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멀어져가는 대지.
단숨에 솟구친 내가 당도한 곳은.
우주...?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봤던 지구의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주위를 살펴보니 새까만 우주 속 반짝이는 행성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이거 뭐...?’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토록 살기 위해 발악을 했고, 하물며 죽음에서까지 살아 돌아갔는데 정말로 죽어 버렸단 말인가?
‘크... 크크크크큭...’
이렇게 어이없고 황당할 수가.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뱀파이어와 떡을 치다 복상사를 했다는 말 아닌가?
정말이지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당할 줄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착정을 당한 것이 원인 이었을까?
문든 40번이나 딸을 잡고 뒈졌다는 외국 어느 소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잠시 허공에 머무르던 몸이 다시금 솟구치기 시작한다.
죽으면 이렇게 우주로 떠올라 어딘가로 향하게 되는 모양이다.
후우우우욱.
인지 할 수조차 없는 속도에 눈앞이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온몸이 길게 늘어지는 기묘한 느낌에 몸을 맡긴다.
그러던 몸이 다시금 우뚝 하고 멈춰섰다.
동시에 암전되었던 시야가 돌아온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다 슬쩍 고개를 내렸다.
‘응? 저것들은 뭐야?’
밀실처럼 어두운 공간.
그 밑에 모여 있는 몇몇이 눈에 들어온다.
명확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들의 중앙에 자리한 널따란 테이블만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 위로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영화의 CG이상으로 생생한 화면이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며 무언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어 보려 잔뜩 귀를 기울이지만 귓가에는 적막감만이 맴돌 뿐이다.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 보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몸은 못이라도 박힌 듯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다.
‘저승사자야 뭐야?’
그런데 저들은 내가 공중에 떠 있음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달리 방도가 없기에 나는 그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눈으로만 바라보며 휙휙 하고 변해가는 테이블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들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행성을 터치 할 때마다 그 행성의 정보가 재생되었다.
지금 바라보는 것이 꿈인지 실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재생되는 영상들은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바라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다.
무슨 영화라도 보고 있는 것인가 싶던 그 순간.
‘어? 뱀파이어?’
인간들과 전쟁이라도 하는 듯 전투를 벌이는 뱀파이어들.
손가락으로 뱀파이어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
이어서 다른 행성으로 넘어간다.
‘웨어 비스트...?’
마치 역사를 지나가듯 웨어비스트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다른 동물형상을 한 이들이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들이민다.
역시나 웨어비스트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호랑이놈이 다른 웨어비스트를 달갑게 여기지 않던 이유가 저 것인가?
아무래도 유전자 깊게 새겨진 본능이 아닌가 싶다.
‘이거 설마...?’
그렇게 화면은 계속해서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설마 하는 마음에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새끼들은 도대체 누구지?
이면의 경계를 만든 것이 저것들인가?
뭐야? 신이라도 되는 거야?
깊은 로브를 머리까지 쓰고 있어 모습은 알 수 없으나 드러난 형체를 보았을 때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쓰벌. 복장은 존나 음침한데...?’
그들은 계속해서 테이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 저었다.
마치 상품을 두고 초이스를 하듯 말이다.
‘어어어? 구... 구미호?’
그리고 구미호를 보았을 때는 후두부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저들은 각각의 행성에서 초이스를 하듯 고른 것들을 지구에 뿌려 놓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눈앞이 빨리 감기를 한 듯 마구 지나간다.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찬성과 반대를 하던 무리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싸움이라도 하는 듯 들썩이며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저런 모습은 인간의 국회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가 보다.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듯 흥미롭게 보려는데.
‘으윽...’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동시에 눈앞이 뿌옇게 변하며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다시 움직이는 몸.
후우우우욱.
내 영혼이 시커먼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엄청난 속도로 추락을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쭈뼛 서는 그 느낌에 어떻게든 제어를 해 보려 하지만 여전히 통제권은 나에게 없었다.
‘크으으윽! 씨바알! 도대체 뭐냐고!’
발악을 하며 감겼던 눈을 뜨기 위해 노력했다.
죽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죽는 것인지 눈에 넣고 싶었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눈앞이 궁금하다는 강렬한 호기심.
그렇게 힘겹게 시야를 되찾았을 때 어마어마한 폭발을 목격하게 되었다.
폭발?
저런 것을 폭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크기를 불려 나가는 공간의 일그러짐에 행성이 하나하나 먼지가 되어 바스러진다.
수없이 많은 반짝이는 불빛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마치 우주 전체가 소멸하는 광경이 이러할까?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우주의 소멸은 우주에서 본 밤의 지구가 단번에 정전을 일으킨 듯 고요하면서도 묘한 공포를 주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몸은 끝없이 추락을 하고 있었다.
***
[.......나....어나....고..... 야! 일어나라고!]
나는 귓가에 울리는 시끄러운 음성에 정신이 들었다.
계속해서 땍땍거리는 소리에 짜증이 일 때쯤.
‘으으으... 꿈이라도 꾼 건가?’
[꿈은 무슨~ 네 나약한 몸뚱이가 기절을 해 버린 거야.]
화들짝.
잠시 헛소리라도 들었나 싶었는데 음성의 주인은 정확하게 내 의문에 대꾸를 해 왔다.
아직도 꿈꾸고 있는 건가?
[꿈은 무슨~ 일어났으면 어서 일어나 몸부터 추슬러.]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것이 확실히 아직 꿈에서 안 깬 모양이다.
내가 무사한 것을 보면 후리지아년을 제대로 눌러 준 것 같은데?
[제대로 누르기는 무슨~ 저 커다란 년이 네 좆으로 제대로 만족이나 했겠어?]
발끈.
아무리 꿈이라지만 남자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뭉개는 음성에 화가 난다.
[어쭈? 발끈하는 꼴이, 꼴에 남자라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저렇게 실감 나게 비아냥거린다고?
[어이없는 놈이네. 이 정도면 이제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느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둔하니까 그렇게 오래 걸린 거지. 쯧~ 이래서 제대로 능력이나 쓸 수 있겠어?]
이쯤 되니 슬슬 불안 해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건가?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눈떠서 몸부터 추슬러. 그러다 너 진짜로 뒤진다?]
진짜로 뒤진다고?
도대체 뭐야?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사실, 내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소처럼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고 있는 후리지아년이었다.
“와씨! 깜짝이야!”
[킥킥킥킥~ 아무튼 웃긴 놈이라니까?]
현실로 돌아온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 허허허... 점점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이제는 귀신에 씌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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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으으윽~ 오늘 쉬려다 눈꽃송이73님의 코멘트로 겨우 하나 올립니다.
시간이 촉박해 연참은 못했네요.
응원해주시는만큼 최대한 연참 많이 할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