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198화 (198/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25)

3. 경계안의 뱀파이어.(25)

놀란 것도 잠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뇌기를 수습하는데 정신을 쏟았다.

눈을 뜬 나를 보며 프리지아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의 말에 응답해 줄 여력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는 것인지 이내 조용해졌다는 것이 다행이다.

‘달라졌어.’

단전에 웅크리고만 있던 기운이 몸 전체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전의 변화에서 통로를 구축했다면, 지금은 그 통로가 뇌기로 가득 채워졌다.

단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팔을 뻗어나간 모양새.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단단한 근육들의 맥동이 올올이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꿈틀거리며 한시라도 빨리 사용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능력이 치우칠 줄은 몰랐어.]

정신을 집중하던 그 사이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

‘무슨 말이지?’

[교미할 때 능력이 발현되는 현상을 말하는 거다. 짐승 같은 녀석아.]

‘.......’

[저도 민망한 줄은 아는 모양이네.]

음성이 하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여자를 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네 정체가 뭐야?’

[참 빨리도 물어보네. 이쯤 되면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갖춘 능력. 설마... 네가 준 거야?’

[푸흐흐흐흐~ 나로 인해 시작이 된 것은 맞아. 그렇다고 네가 발정 난 개처럼 쑤시고 다니는 것을 의도한 건 아니야. 나도 설마 너 같은 변태 같은 놈하고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 일이다.

지금 나는 뇌기를 제어하는데 전력을 다하느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변태라니.

그동안 해 온 성관계를 주욱 나열해 본다.

하지만 그렇게 변태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다소 과격하게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변태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지 않나?

야동만 해도 경악스러운 것이 얼마나 많은데?

[후아~ 그 다소 과격하다는 기준이 한참이나 초과했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아무래도 저 음성의 주인은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쪽 팔린 생각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떤 상대가 내 속마음을 전부 안다는 것이 이렇게나 불쾌한 기분일 줄이야.

서울 한복판에 발가벗겨져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쪽 팔려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내가 너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으음... 내 머릿속에서 떠들어 대는 것만 보아도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음성자체가 여성이라 짐작되기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귀신이라도 윤지가 내 속마음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하면 절로 식은땀이 날 것 같으니 말이다.

[귀신? 이 새끼가 어디 그런 잡스러운 것하고 날 비교하는 거야?]

‘귀신이 아니라고?’

[흥! 그런 집념체 따위가 너한테 그런 능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장난 해!? 내가 육신만 있었어도 넌 당장에 멱살을 잡혔을 것이다!]

‘그... 그래 미안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냐?’

[후후훗~ 이 몸은 은하계의 지고한 종족 칼라쿠니아의 노히드르 다스리다 마엔님이신 것이다. 너희 변방의 지구 종족 따위는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지엄한 존재이지. 흐흥! 그래. 이렇게 표현해도 되겠네. 너희가 믿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라. 그러므로 너 같은 인간에게 그러한 힘을 내려 줄 수 있는 것이다. 후후훗~ 이제 이 마엔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겠는 것이지?]

생각보다 자기소개가 장황한 마엔이라는 칼라쿠니아인.

이름이 제법 길기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묻는다.

‘그래 칼라쿠니아의 마엔아. 너는 어쩌나 내 머릿속에 들어 온 거냐?’

[이런... 쯧쯧 아직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지 못한 모양인 것이군. 다시 한 번 설명해주지. 나는 은하계 전체를 다스리는 칼라쿠니아의...]

나는 마엔이라는 년이 더 지껄이기 전에 잽싸게 말을 끊어냈다.

‘아 시끄럽고. 왜 내 머릿속에 있는 거냐니까?’

[뭐... 뭣! 씨... 씨끄럽다고! 정말이지 무엄한 것이구나!]

분명히 분노가 느껴지는 음성이지만, 이상하게 위기감은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한 년이라면 내 몸을 장악해 마음대로 하지 않았을까?

인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년이 맍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저년의 힘을 받은 것은 사실이겠으나, 무슨 제약이 있기에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이이익! 생각보다 똑똑한 놈인 것이군.]

‘이런 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흥! 내가 똑똑하다면 똑똑한 것이다. 하찮은 변방은하의 지구종족 주제에!]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이야기해 봐. 네가 나에게 빙의가 된 이유를.’

[빙의라니! 나는 그런 집념체가 아닌 것이다!]

‘아 그래그래. 내 머릿속에 강림하신 이유를 알려주시겠습니까?’

[후후훗. 이제야 고분고분 해졌네. 그렇게나 원하니 알려 주는 것이다.]

그때부터 마엔이 주절주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어찌하여 말도 없이 내 머릿속에 얌전히 있었는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마엔이 말하는 은하계의 지고한 종족 칼라쿠니아.

사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칼라쿠니아인이라 말하겠다.

그들은 성인이 되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하나씩 다스리게 되는데, 다스리는 행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행성을 맡은 이의 재량이었다.

그 성향에 따라 행성의 생명체들은 진화하게 되고, 발전이라는 것을 해 나가게 된다.

칼라쿠니아인들은 자기 행성이 발전해가는 것을 은연중 돕기도 하며 그것을 보고 즐기며 영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건... 신이잖아?’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말하는 칼라쿠니아인은 지구인 기준에선 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엔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과 같은 그들도 영생의 무료함을 이겨 내기는 힘들었는지 언제부턴가 하나의 놀이가 유행하게 된다.

그것은 판타지에서나 볼 수 있는 종족전쟁.

아니, 종족전쟁이야 어느 행성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한 전쟁은 행성전쟁이었다.

다스리는 행성에서 강한 종족을 선발해 서로 전투를 벌이는 놀이.

그렇게 시작된 행성전쟁은 점점 과열되기 시작했다.

그저 다스리는 행성의 발전에만 몰두하던 이들이 자극받기 시작한 것.

과열된 행성전쟁은 도박이라는 악수를 두게 되었고, 영생을 살아가는 칼라쿠니아에 뜨거운 바람을 몰고 올 수밖에 없었다.

무료하다면 무료할 수밖에 없는 영생의 존재들.

이긴 자가 기나긴 시간 공들인 행성을 가져가는 내기는 짜릿함과 함께 상실감 그리고 욕심이라는 소유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칼라쿠니아는 칼라쿠니아가 아니었다.

행성의 피조물들의 전쟁에 칼라쿠니아인이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 참여는 칼라쿠니아인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

영체와 다름없는 그들은 육체를 입고 참여하게 되었으나, 그것이 과열되자 서로 영체까지 해하는 경우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분명 크나큰 일임에 분명했다.

지고한 종이라 여긴 자신들이 피조물들과 같은 우를 범하기 시작한 것.

서로 반목하며 끊임없이 싸운다는 것은 칼라쿠니아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주었다.

이를 알면서도 이미 욕심에 눈뜬 그들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열이 넘는 칼라쿠니아인이 부딪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개개인이 행성을 다스리며 창조와 멸망을 행할 수 있는 존재들.

그들이 파벌을 만들어 싸움이 시작되자 은하계의 수많은 행성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힘의 파장에 의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우주 공간에 균열이 생겨 버리며 외우주로 통하는 길이 생겨 버린 것이다.

막연히 자신들이 사는 은하가 우주의 전부는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끝없는 넓은 우주에서 이를 발견하기란 그들에게도 막연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이로 인해 서로 반목했던 칼라쿠니아는 이를 잠시 멈추고, 외우주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주란 끝없이 넓기에 자신들이 사는 은하조차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새로운 우주라는 것은 탐구를 넘어 호기심의 영역임에는 분명했다.

기대와는 달리 외우주에서는 생명이 살만한 행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일부는 꾸준히 탐험을 계속했고 드디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구.

신기하게도 지구는 어떠한 존재의 개입도 없이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을 해 온 것이다.

더불어 자신들의 힘마저 완전히 닿지 않는 신기한 행성.

이에 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들이 다스리는 행성의 종족들을 지구에 풀어 새로운 게임을 즐겨보자는 것.

그렇게 지구를 먼저 찾아낸 몇몇 칼라쿠니아인이 독점적으로 이를 진행하자 또다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반발로 인해 그 게임의 진행은 어중간하게 멈추어 버렸고, 또다시 칼라쿠니아인끼리 견제와 반목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이지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사소한 이유의 불씨는 점점 거세어져갔고 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싸움의 시발점이 되었다.

전쟁.

스스로 은하계를 다스리는 지고한 종족이라 여긴 칼라쿠니아.

그들도 결국은 그들이 피조물이라 생각하는 생명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수가 수 천 단위에 불과한 칼라쿠니아 였지만, 하나하나의 힘은 행성 따위는 단숨에 지워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들의 전쟁은 우주대전쟁을 방불케 했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엔 영생에 가까운 시간동안 쌓아온 능력을 발산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도 그 거대한 힘이 한 번에 뿌려진 적 없었던 은하계.

수천이 넘는 칼라쿠니아의 힘이 한 번에 터져 나온 여파는 그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