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26)
3. 경계안의 뱀파이어.(26)
소멸.
거대한 폭발은 은하계의 소멸이라 생각할 정도로 강력했다.
은하계를 뒤흔드는 커다란 폭발은 모든 것을 무로 만들어 버렸다.
신이라 칭할 정도로 위대한 종족인 칼라쿠니아도 우주가 폭발하는 그 여파를 빗겨갈 수 없었다.
‘내가 봤던 그 영상. 아마도 그때의 일을 단편적으로 보여 준 것이로군.’
[응. 그런 것이지.]
‘그럼, 그때 칼라쿠니아는 멸망한 건가?’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그 폭발에 휘말렸다면 아무리 우리라도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너와 같은 종족 아닌가?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는 거야?’
[흐응~ 우리는 애초에 유대라는 것이 없는 존재. 너희 인간처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데 불완전한 너희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인 것이지.]
문득 그런 존재들이 인간이나 할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재빠르게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내 머릿속을 읽는 마엔이기에 이 생각 또한 그대로 전달될 터였다.
그래서 나는 황급히 다른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마엔은 그 물음에 이 전의 내 생각은 듣지 못했다는 듯 그 것으로 분개했다.
[멍청한 놈들인 것이다. 어찌 칼라쿠니아인이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인지!]
마엔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다스리는 행성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능력이 넘침에도 아직은 나이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그런 그녀는 그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는데, 성인이 되기 전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우주 한 공간에 새겨진 균열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할 것 없는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싸움에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가 놀아주는 이가 없어 심심하기에 균열이라는 놀이터에서 소꿉장난했다는 것으로 들렸지만.
어찌 되었든 마엔은 균열이 생긴 것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를 하던 중 은하가 폭발하는 충격에 그 균열 안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이미 균열을 통과해 그들이 말하는 외우주로 가는 길이 열기긴 했지만, 통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이 뒷받침되어 무사히 균열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
어린 칼라쿠니아가 균열을 통과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위대하기 때문이라 자화자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칼라쿠니아였다면 그저 우주 먼지가 되었을 것이다. 후후후~]
마엔이 있는 우주와 지구가 있는 우주는 힘의 작용이 다르다.
따라서 칼라쿠니아는 지구가 포함된 은하에서는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그래. 대단하네.’
나는 마엔의 자화자찬에 설렁설렁 답해주며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내 몸에 들어 온 거야?’
[아무리 위대한 나라도 이곳에서 부상은 위험한 것이다. 그때의 폭발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었기에 균열로 튕겨 나간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는 것이지.]
반쯤 정신을 잃고 있던 마엔은 지구로 추락하게 되었다.
심각한 상태의 그녀는 몸을 회복할 곳이 필요했고, 회복하지 못하면 정말로 소멸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본능의 이끌림에 의해 자신과 파장이 일치한 곳으로 날아들게 된다.
하늘을 뚫고 벼락이 되어 날아든 곳이 바로 절벽으로 뛰어 든 강인한의 육체.
어릴 적 번개에 맞았던 강인한은 지구에서 그녀와 가장 파장이 비슷한 육체를 지니고 있던 것이다.
‘뭐야? 그럼 너한테는 내가 생명의 은인이잖아?’
[무... 뭣이! 그... 그건... 음...]
‘부인하는 거야? 네 말을 들어 보니까 내가 없었으면 꼼짝없이 소멸 되었겠구만.]
[이이익! 하찮은 피조물에게는 그조차 영광인 것이다!]
‘흐음. 칼라쿠니아인은 원래 그렇게 염치가 없나?’
[윽!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는 네게 감사를 하고 있다!]
‘그래그래. 생명의 은인이니 앞으로 제대로 감사를 좀 하라고.’
[이... 인간 따위가...]
‘그런 인간 따위로 인해 생명을 건졌네? 위대한 종족 칼라쿠니아는 은인에게 따위라는 말을 쓰는 구나? 아니면 칼라쿠니아 중에서도 더욱 위대하다던 노히드르 다스리다 마엔만 그런 것인가?’
[그... 그건! 흠흠... 나는 칼라쿠니아중에서도 아주 위대하지. 나는 너를 은인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후후후~]
‘뭔가,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너는 내 은인인 만큼 뛰어난 인간이지 않은가? 잠자는 내 능력을 스스로 가져가 자기 것으로 만드니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
‘응? 네가 직접 나한테 힘을 빌려 준 게 아니야?’
[어... 어? 그... 그건... 으... 그런 것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인데, 저 마엔이라는 칼라쿠니아는 약간 어수룩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대가리가 좀 달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생각을 두 개로 쪼개면 감추는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같다.
이야기를 나누며 떠오르는 다른 생각에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신을 비하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가져다 썼어도 네 힘이니 충분히 고마워.’
[푸흐흣! 그래 그런 것이다. 너도 내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 역시 괜찮은 인간인 것이야!]
잠시 풀이 죽었던 마엔이 신난 듯 떠들어댔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내가 과거로 돌아가게 된 거야? 그것도 네 능력이야?’
움찔.
모습을 볼 수 없음에도 마엔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 뜻은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그 단순한 반응에 괜스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오만한 말만 주저리 떠들 것 같은 마엔의 색다른 모습이었다.
‘네가 그때는 심각하게 부상을 당해서 경황이 없었을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아는 것만이라도 이야기해줄래?’
[그런 것이다. 역시 너는 보통 변태와는 달리 제법 똑똑한 구석이 있다. 내가 지구에 떨어지면서 발생한 힘의 간극에 시간이 뒤틀린 것 같다는 것이지. 이 지구에서 나 같은 지엄한 존재의 힘은 그만큼 큰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뒤틀렸다라...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저 자신도 시간을 역행시킬 능력은 없는가보다.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쳐 그런 현상이 발생한 듯하다.
‘그럼, 시간을 임의적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거야?’
[으잉?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럴 때 보면 참으로 멍청한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게 신인 것이다. 쯧쯧쯧.]
지가 신과 같은 존재라면서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 버렸다.
그것을 따지기에는 나도 애새끼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나는 이런저런 것을 질문했다.
내가 쓰고 있는 능력들에 대해서.
우선, 매직아이라 지칭한 능력은 상대의 생체데이터를 토대로 결과를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근접한 현대의 기술로는 거짓말탐지기 정도?
물론, 그 정확도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도 없다.
사람의 체온, 심박수, 뇌파, 근육의 움직임, 호흡 등 모든 반응들을 종합해 수치를 보여주는 것.
물론, 그 수치가 눈앞에 글과 숫자로 표기된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각성시켜 버리는 능력은.
마엔이 본능적으로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린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섹스를 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행위인데, 그 만족감이 클수록 서로의 파장이 일치해지고 만족도가 높을수록 뇌기는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쉬워진다.
나는 이 전에도 섹스에는 유독 자신이 있었고, 매직아이를 통해 상대의 성감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고로 나와 섹스한 여성은 그 누구보다 큰 만족감을 느낄 수밖에.
남성들이 각성하게 되는 것도 파장이 일치하게 되면 힘을 전해 줄 수 있다.
그것의 전제조건이 바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라디오도 주파수가 맞아야 방송을 들을 수 있듯.
왜, 나에 대한 호감, 신뢰, 애정 등이 모두 MAX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여자를 좀 밝히기는 하는데. 그때 이후로 정도가 좀 심하거든? 한 번씩 맛탱이가 간 것처럼 이성을 잃을 때도 있고. 그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
[모든 생명체에는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지구의 말로 해석을 하자면 뇌기는 극양의 기운. 따라서 극양의 기운이 골수로 파고들면 인간이 미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네 몸은 본능적으로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 음기가 강한 여자를 찾게 되는 것이지.]
요기와 같은 음습한 기운도 나에게는 맛 좋은 먹이가 된다.
그래서 여자만 보면 뇌기가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것이었나 보다.
아니, 정확히는 마엔이 살기 위해 저도 모르게 음기를 탐한 것이 아닐까?
내가 미쳐 죽으면 저도 살아갈 길이 없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대략적인 의문의 풀렸고, 이제 슬슬 후리지아년도 신경을 써야겠지.
그 동안 쌓아왔던 음기와, 뱀파이어의 강한 음기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마엔까지 깨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 후리지아년을 컨트롤할 자신감도 생겼다.
‘크흐흐흐흐~’
[웃음이 참으로 경박한 것이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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