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32)
3. 경계안의 뱀파이어.(32)
‘확실히 단순한 실종 사건은 아니야. 어디가 연관 된 거지?’
사냥꾼은 아니겠지?
사냥꾼 따위가 감히 일명의 딸을 건드릴 수나 있을까?
그렇다면 인외의 존재가 연관된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몰아치던 중 김영욱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종원인은 알아냈습니까?”
고정욱이 좌우로 고개를 저어 보인다.
“이쪽에서도 솔직하게 밝혔으니 고정욱씨 이야기 좀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짐작 가는 부분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목적을 밝힌 만큼 너희들도 밝히라는 뜻인 듯했다.
일명의 사람답게 손해는 안 보겠다는 듯, 어차피 알게 될 것은 미리 밝혀 버리고 이 쪽 정보부터 듣겠다는 속셈.
자신들이 물꼬를 튼 만큼 너희부터 말 해보라는 뜻이다.
고정욱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더욱 혼란스럽군요.”
“괜찮으니 말씀해 보시지요.”
“음... 사실, 사냥꾼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
반문하는 김영욱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렇습니다.”
고정욱은 사냥꾼과 강인한에게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나마 사실대로 설명해 주었다.
이미 그리 이야기한 상황에서 숨기려 해도 이들은 충분히 밝혀낼 힘이 있었기에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확실히... 그랬던 모양이군...”
홀로 중얼거리는 김영욱.
“뭐가 말입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사실, 저희도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긴가민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충분히 의심의 여지가 있겠군요.”
사냥꾼웹이 제 기능하지 않는 것을 이 자리의 모든 이가 알고 있다.
강인한과 김나연이 사라진 그 시점에 운영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도출된 내용으로 보아 사냥꾼과 연관이 된 것은 기정사실과 같다.
누군가가 흔적을 지우기는 했지만, 초인이라 짐작되는 이들의 전투흔적을 찾기도 했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김영욱이 탄식하듯 말을 내뱉는다.
“상당히 난감하군요...”
정말이지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가주에게 알려진다면 꽤 시끄러워질 터다.
그렇다고 김영욱의 처지에서 마냥 입을 다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에잉~ 쯧쯧쯧. 그래서 성현이놈은 벌써 그리 향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원로님.”
“몇 놈이나 데려갔누?”
“2팀 인원 5명, 특수 기동대 1개 팀과 함께 움직이셨습니다.”
“에잉~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누? 첩 될 년 하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누.”
주무성의 주름진 눈가가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반듯한 호감형 인상과는 달리 자신의 둘째조카손자가 얼마나 개망나니인지 알고 있는 주무성이었다.
여색을 알고부터 뒤치다꺼리 한 것만 해도 벌써 수어 번.
이제 이십 대 중반이 된 주성현의 가학에 죽어 나간 여자만 다섯이다.
마땅히 혼처가 없어 같은 핏줄과 맺어 주었더니.
변태 같은 그놈도 가리는 것은 있는지, 친척누이이자 제 마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도 주지 않았다.
피가 이어진 것만 뺀다면 그렇게 예쁜 아이도 드물건만...
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이상하리만치 집착을 보이는 주현성이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일명의 반푼이에 대한 집착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래도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실험체에게 관심을 보여 꽤 골치가 아팠더랬다.
아직 완전제어가 힘들어 자극이 강해지면 세뇌가 풀려 버려 폭주할 수도 있는 실험체였다.
이미 한 번 폭주를 해 많은 희생자를 만들기도 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폐기할 수도 없는 것이, 들인 돈도 돈이지만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체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연구를 진행하는 지금, 그 실험체보다 좋은 연구 자료는 없다 보아도 무방했다.
“실험체에 대한 접근은 잘 차단하고 있지?”
“네. 원로님. 둘째 도련님도 실험체의 중요성을 알기에 섣부르게 다가가진 않을 것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망나니라지만, 주무성에게는 소중한 조카손자다.
주무성은 초인의 저주를 넘치게 받았는지 자식하나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카의 손자들을 친손자처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놈이 향한 곳이 어딘지 알아봐.”
“원로님께서 직접 움직이십니까?”
“가주의 부탁이니 직접 움직여야겠지. 다른 놈들이 가서 그놈 제어나 하겠어? 쯧쯧쯧~”
주무성은 가주의 음색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당장에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
혹시라도 주현성이 일명과 사소하게나마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고 싶은 뉘앙스였다.
“알아보고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끝없이 이어지는 국도를 달리던 중 주현성은 괜한 짜증을 운전기사에게 풀었다.
“야! 씨발넘아. 더 빨리 안 가? 존나게 머네. 도대체 이런 시골구석에는 왜 놀러 간 거야! 쓰바.”
“그... 그러게 말입니다 도련님.”
퍽. 퍽. 퍽.
뒷좌석에서 운전기사의 의자를 발로 퍽퍽차며 주현성이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게 말입니다? 씨발. 너 지금 우리 나연이 욕하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퍼억.
“윽!”
손바닥으로 운전기사의 옆머리를 가격한 주현성.
운전하는 와중 위험 따위는 아랑곳 않는 모습이었다.
삼영 밖에서는 바르고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인 반면, 실상은 이렇듯 개망나니다.
“남자들이랑 놀러 갔다고? 하... 씨발. 내년이면 결혼할 년이 씨발! 남자 새끼들하고 외박질이나 한다고? 개 같은 년. 그년 딴 새끼랑 자빠져 잔 거 아니야?”
주현성은 김나연이 실종된 것보다 다른 놈과 같이 놀라갔다는 것에 더욱 열불을 토해냈다.
사실, 말이 실종이지.
일명의 딸이자 반은 초인인 그녀가 실종 될 리는 없다 여기고 있었다.
어떤 놈과 실종이라는 핑계로 붙어먹고 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운전기사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침묵을 고수했다.
저 망나니 같은 성격에는 뭐를 해도 답이 없었다.
특히나 아랫사람에 대한 갑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참이나 주둥이를 털어대던 주현성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 도도한 김나연이 여행이라니.
그것도 남자들까지 섞여서.
아무리 반푼이 취급을 당한다지만, 초인가문의 일명이란 거대 그룹의 막내딸이다.
웬만한 일반인은 눈에 차지 않을 것이 당연하건만.
괜스레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 리엔 쌍년이라도 따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껏 주변에 두고도 어쩌지 못한 여자를 보자면, 김나연과 실험체 리엔이다.
실험체주제에 언제나 경멸이 담긴 눈으로 도도하게 구는 년.
십수 년 전, 실험체가 폭주했던 사건의 영상은 봤다.
인간병기.
초인에 필적하는 능력으로 특수 기동대와 연구진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어린 주현성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전신을 피로 물들이고 검은 기운을 몰아치는 어린 실험체의 모습은 오싹함과 더불어 묘한 아름다움까지 엿보였다.
당시에는 한 자락 공포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았으나, 지금에 와선 자신이 충분히 짓누를 수 있다 여겼다.
‘실험체주제에... 뭘 그렇게 아끼는 거야?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는데.’
김나연은 반푼이라도 일명의 딸이었고, 리엔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아무리 망나니인 그라도 일명의 딸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고, 가주인 아버지가 아끼는 실험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다 내가 갖는다. 쌍년들.’
“크크크크큭~”
홀로 큭큭 거리는 주현성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운전기사는 괜히 등골이 쭈삣해졌다.
다행히 손찌검은 날아오지 않는다.
올림픽에 나간다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능력을 지닌 운전기사지만.
자신이 속한 삼영에서는 그저 이리저리 차이는 운전기사에 불과했다.
그것도 삼영 최고 망나니의 수발을 들며.
‘씨발. 좆 같은 삼영.’
아무리 나서 자란 삼영이지만 운전기사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지옥과 같다.
자기 능력을 세상에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일반인처럼 자유를 만끽할 수도 없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휑한 국도로 한 대의 세단과 세 대의 벤이 그 뒤를 따랐다.
***
부우우웅~
30분 전 주현성이 지난 국도를 흰색의 벤츠가 내달린다.
유명 연예인이라도 명함하나 못 내밀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둘.
“너무 걱정하지 마. 수지야.”
“네...”
이미 고정욱과 나대명이 현장 조사차 나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상연은 정수지의 재촉에 이렇게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냥꾼에게 습격을 당하고, 하물며 사람까지 죽이게 되었다.
이 전에는 절대로 꿈도 꾸지 않았을 살인이라는 행위.
아무리 습격을 한 이들이라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을 수 없다.
잠을 잘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는 꿈을 꾼다.
자신에게 죽은 이가 매일 밤 나타나 살인자라며 원망스럽게 외쳤다.
그때마다 강인한을 생각하며 버텨 내던 이상연.
정수지가 돌아오면서 그 트라우마가 급격하게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옆에 있음으로 안전하다는 안도감.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약간의 질투가 이를 옅어지게 만든 것이다.
“너도 느꼈다며. 인한이가 살아 있는 거.”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이상연은 쓰게 웃으며 괜히 입맛을 다셨다.
한 남자를 공유하는 관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한다.
강인한의 생각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절대로 그에게서 떨어질 마음은 없다.
그것은 정수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정수지를 보며 반가움과 함께, 묘한 경쟁심이 들끓기도 한다.
마음을 편히 먹겠다고 생각했거늘.
정수지가 자리를 비웠던 그 사이에 욕심이라는 것이 은근히 고개를 치켜든 듯하다.
하지만 저렇게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괜한 욕심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수지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네? 네... 알겠습니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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