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34)
3. 경계안의 뱀파이어.(34)
정신없이 단검을 휘두르는 상황에서도 주현성의 음성은 똑똑히 들려왔다.
고정욱은 새로 합류하기 위해 뛰어드는 다섯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저들 하나하나가 상대함에 있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볍게 몸을 날리는 몸짓하나도 자신이나 나대명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사장!”
카카캉.
나대명이 쿠크리로 날아오는 날붙이들을 쳐 내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런데도 그의 팔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허억... 허억... 네. 고문님.”
“내가 어떻게든 뚫을 테니까 무조건 빠져나가!”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도망간다 해도 잡힐 것 같은데 끝까지 날뛰겠습니다!”
“내 말대로 해! 인한이 섹시 데리고 숨어!”
고정욱이나 나대명에게, 이상연은 이미 강인한의 안사람과 다름없었다.
나대명은 고정욱이 하는 말의 의미를 단숨에 알아챘다.
저들이라면 이상연의 존재는 쉬이 알아낼 수 있을 터.
결코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미래가 암담해지는 순간이다.
엮여도 하필 삼영과 엮이게 되다니.
강인한과 함께 일명의 딸이라는 여인이 무사히 돌아와 비호해주지 않는다면 목숨을 연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큭... 알겠습니다...”
이를 악물며 나대명이 쿠크리를 힘껏 휘두른다.
동시에 새로 합류한 다섯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본 고정욱이 품에서 총을 꺼내 든다.
저들도 총기들을 소지하고 있겠지만, 이미 뒤섞인 상황에서는 이쪽이 사용하기 용이하다.
연사에 고정시킨 권총을 들어 사방으로 갈기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둑.
쉼 없이 쏟아지는 탄환.
“아아악!”
“피... 피해! 커헉!”
“으아악!”
총에 맞은 이들이 기겁하며 아우성을 쳤다.
머리에 적중되며 그대로 널브러지는 이들도 몇이나 되었다.
“이런 개새끼가!”
“피해!”
새롭게 합류한 이들은 냉정하게 특수 기동대를 방패 삼아 총알을 막고 피했다.
같은 편을 무심하게 방패로 사용하다니 실로 냉정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특수 개조된 권총은 탄창 하나를 단숨에 소모하고 두 번을 더 갈아 끼워 쏠 때까지 멀쩡했다.
세 개나 되는 탄창의 총알이 소비될 때까지 쏟아지는 총알.
그렇게 많은 총을 난사하고도 다섯밖에 죽이지 못했다.
철컥.
총알이 떨어지자마자 고정욱이 외쳤다.
“지금!”
그러곤 권총을 집어던지며 단검을 손에 쥔다.
단검의 날붙이 위로 회백색의 기운이 덧씌워졌다.
“하아아압!”
기합과 함께 고정욱이 튀어 나갔다.
이를 본 나대명도 쿠크리에 기운을 덧씌운다.
고정욱에 비해 옅긴 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기운.
검기라 볼 수 있는 기운이 덧씌워진 쿠크리가 위협적으로 휘둘러졌다.
스거억.
나대명의 앞에 얼쩡거리던 특수 기동대원 하나가 들고 있던 단검과 함께 이등분 되었다.
튀어 나가려던 나대명을 다른 특수 기동대원이 막아선다.
“씨발! 좀 비켜!”
한 손이 열손을 당해낼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수적인 차이를 뛰어넘을 방도가 없어 보인다.
나대명이 쿠크리를 열심히 휘두르며 힐끔하고 고정욱을 살폈다.
네 명에 둘러싸여 그 사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
그래도 한 놈은 어찌어찌 처리한 모양이다.
고정욱의 계획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렸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바에야 도주는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냥 한 놈이라도 더 저승으로 데려가는 것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스억.
“으윽!”
단검이 스치고 지나가며 옆구리가 길게 갈라진다.
제법 깊게 베였는지 허공으로 튀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
갑갑하기 그지없는 상황.
“뒤져!”
퍼석.
단검이 특수 기동대원의 두개골을 파고든다.
단단한 두개골을 파고들어 뇌를 비집고 들어가는 더러운 기분.
살인의 경험이 있더라도 여전히 속이 매스꺼워지는 느낌이었다.
푸확.
단검을 뽑아내자 피에 섞인 뇌수가 허공에 흩뿌려진다.
푸욱.
“으윽!”
동시에 등을 파고드는 알싸한 통증.
나대명이 몸을 비틀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퍼억.
등에 단검을 꽂아 넣은 이가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무너져 내렸다.
“허억... 허억... 허억... 씨발 새끼들... 드루와! 새끼들아...!”
‘진짜 끝이군.’
얼핏 보이는 고정욱의 움직임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를 향해 매섭게 날아드는 날붙이들.
나대명도 반쯤감긴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너무 많은 힘을 쓰고 출혈도 적지 않았다.
점점 아득해지려는 정신.
이를 본 특수 기동대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거의 본능에 의해 쿠크리를 휘두르는 나대명.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에 언뜻 익숙한 여인의 모습이 비쳐진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며 입을 벙긋거리는 모습.
‘사모님...?’
나대명이 세차게 머리를 뒤흔들었다.
이곳에 이상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을 때가 되니 이제는 헛것까지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이상연을 앞질러 불쑥 다가서는 또 한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빠른지 잔뜩 집중을 하고 나서야 제대로 눈에 넣을 수 있었다.
‘어... 어...?’
어찌 저 모습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비록 그날처럼 백발이 아닌 검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지만, 그녀의 모습만큼은 뇌리에 정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예전 스카이클럽의 뒤 창고에 나타났던 무시무시한 그 여인이었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모습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흐흐흐~”
저도 모르게 낮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미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게 생겼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아득해지던 눈앞이 선명해진다.
자신이 모시는 강인한에게 서방님이라 부르던 묘령의 여인.
처음 세상의 이면을 접하던 그날 충격을 선사했던 그 여인임에 분명하다.
여인의 몸이 날듯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가볍게 뛰었음에도 엄청난 도약에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무려 10여 미터는 불쑥 날아오른 여인이 싸움의 중앙으로 떨어져 내린다.
‘흐흐흐~ 그래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아니, 사람이 아닌가?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저 그녀가 아군이라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콰앙!
땅을 울리는 어마어마한 진동.
여인이 떨어져 내린 자리는 큰 사발 모양으로 움푹하고 패여 버렸다.
그 여파에 싸우던 자들의 움직임이 일순 굳어져 버린다.
난대 없이 등장한 정체불명의 여인.
하늘에서 뚝 떨어져 착지한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와 집업재킷.
운동하러 나온 것 같은 가벼운 복장의 여인은.
피가 튀는 이곳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스란히 드러난 굴곡은 사내라면 누구라도 눈이 돌아 갈 정도로 대단한 볼륨을 자랑하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옹기종기 예쁘게 보여 있는 이목구비.
완벽하다 못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은, 누구라도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 낸다.
여인이 아름답다는 것은 공통의 생각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의 중앙에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난입한 것이다.
한눈에 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그 모습에 특수 기동대와 고정욱을 압박하던 네 명의 호위가 공격을 멈추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정수지가 몸을 일으키고 잠시간의 정적이 주변을 감싼다.
뒤이어 나타난 이상연이 나대명의 곁에서며 보호하듯 경계했다.
“사모님... 어떻게...”
“일단, 지금상황부터 해결하죠.”
끄덕.
이상연의 말이 맞다.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보다 지금의 상황을 먼저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대명이 정수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연도 나날이 그 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사람인지 무엇인지 모를 저 여인은 현실불가라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미모였다.
거기에 더해 엄청난 무력까지.
괜히 입안이 씁쓸해 입맛을 다신다.
‘사모님이 잘하셔야 할 텐데... 쩝...’
몸을 일으킨 정수지가 주위를 스윽 하고 훑는다.
검었던 눈이 붉게 변하는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반대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매서웠다.
그렇게 주변을 한차례 훑은 정수지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서방님은 어디 있습니까?”
일순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한 한 마디.
서방님?
초인이라 생각되는 저 여인은 어째서 이곳에 와 서방님을 찾는단 말인가?
그 황당한 한마디에 멍한 표정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말았다.
그 틈에 고정욱과 나대명 이상연이 조심스럽게 정수지의 곁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
누구보다 정신을 빨리 차린 주현성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싸움은 꼬맹이들의 싸움이라도 재미있다.
그렇게 흥미롭게 관전을 하던 중 끼어든 불청객.
단숨에 흥이 깨져버려 화를 내려던 찰나 그 불청객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침을 흘리고 말았다.
세상에 어떻게 저만큼이나 완벽한 여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첩이 될 김나연이나 실험체년도 다시없을 미모를 소유하고 있지만, 저 여인 또한 더욱 뛰어나면 뛰어났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한 또 한 명의 여인.
그 여인 역시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디서 저런 여인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등장장면만 보아도 빼박 초인이라 침작되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더없이 완벽한 여자들이지 않은가?
주현성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한없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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