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38)
3. 경계안의 뱀파이어.(38)
묵직하게 울리는 파공음.
서로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한 첫 공격이었다.
스슥!
주무성의 팔을 둘러싼 기운이 주욱 늘어지더니 뾰족하게 변하여 강인한의 어깨를 베고 지나간다.
경계안의 괴물들에게는 없는 변칙적인 공격.
기운을 실어 날카로운 날처럼 기운을 변환시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던 듯 주무성이 혀를 찼다.
“무슨 옷이...!?”
상당히 놀라긴 했지만 주무성은 이미 다음 수를 준비한 듯 계속해서 팔을 휘둘렀다.
민망할 정도로 전신에 달라붙은 요상한 슈트.
프리지아가 만들어 준 전신슈트는 거대백사의 가죽과 그녀의 마법이 섞여 뛰어난 방어력과, 자가 수복이 가능했다.
팡. 팡. 팡.
강인한이 그의 공격을 피할 때마다 공기를 두드리는 파공음이 귓가를 때렸다.
주무성의 공격은 바위라도 단숨에 가루로 만들 정도로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공격이었다.
‘이게 초인인가?’
그의 기운이 주무성보다 훨씬 강력한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주무성은 늙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기운의 우월함만을 노리고 무식하게 밀어붙였다면 베어진 곳은 어깨가 아니라 목이었을 것이다.
경계 안에서 두 달이 넘는 전투는 풍부한 실전감각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었다.
파가가각!
스걱.
강인한이 피할 때마다 주무성의 손날로 인해 숲의 나무들이 벌목 하듯 베어져 나간다.
칼로 단숨에 잘라 낸 것만큼 매끈한 단면.
그의 손은 이미 어떠한 날붙이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기와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몸을 튕겨 내며 거리를 벌리는 강인한.
그때마다 이상연과 나대명 고정욱의 몸이 들썩들썩 거렸다.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그대로 몸이 으깨지거나 잘려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공격들.
그들이 보기에는 강인한이 주무성에게 연신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수... 수지야...!”
이상연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수지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라면 이런 상황에 뭐라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방님은 저 늙은 인간과의 싸움을 그저 놀이로 보고 계십니다.”
“저... 정말이야?”
“저쪽을 보십시오. 서방님과 함께 나온 이들은 누구도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방님은 제가 본 누구보다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시 마십시오.”
정수지의 눈에 강인한보다 잘생기고 대단한 사람은 없었다.
콩깍지가 잔뜩 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건 처음 본 그때부터 느끼던 것이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뇌기를 끌어 쓰는 것이 아닌, 오롯이 담고 있는 그.
볼 때마다 강인한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어떠한 간섭이 작용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강인한이 지구상의 필멸자라곤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두근거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 어느새 자신의 몸을 그에게 바치고 있었다.
구미호로서 수련을 하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200년에 가까운 그 시간을 무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수지는 그에게 끌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등에 업혔을 때부터 자신은 그에게 구속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강인한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으며,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였고, 요기를 잠재워준 신적인 존재였다.
이것은 구미호들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마마라도 할 수 없는 대단한 권능이다.
당장의 강함이 중요하지 않다.
정수지에게 그는 이제 갓 탈피를 한 어린 신일뿐이다.
정수지의 확신이 담긴 말에 이상연은 강인한과 등장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그들.
가까워진 두 무리는 서로를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이며 적당한 인사를 나누고는 두 사람의 대결로 눈을 돌렸다.
옆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에 자연적으로 귀가 간다.
“호오~ 인간주제에 꽤 하잖아? 대장 어깨에 흠집까지 낸 걸 보면 말이야. 과연~ 삼영가의 혈족이라는 말이군.”
장수언의 말에 왕성기가 괜히 핀잔을 주었다.
“거참. 인간~ 인간~ 인간이 아니라는 거 티내는 거요?”
“뭐? 그 말은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엄연히 나도 인간이야. 그것도 보통 인간보다 더 진화한 우수한 종이지.”
“언제부터 웨어비스트가 인간의 진화한 종이 되었수? 그냥 다른 세계에서 온 이계종 아닌가? 지구에서 말하자면 짐승에서 인간화가 덜된 것 아닌가?”
이에 이은지가 오랜만에 강인한의 이야기가 아닌 것에 관심을 보였다.
“아! 이계종! 판타스틱해요! 그렇게 싸우길 좋아하는 장수언씨는 인한님에게는 싸움을 왜 안 걸어요?”
“큭! 우리 은지씨는 이제 대장 취급도 안 해 주는 것 같네?”
“대장은 무슨~ 그저 필요에 의한 동업자였죠. 진화한 종이라면 그 호승심으로 인한님하고 한 판 떠보세요~”
“크흠흠~ 부하는 아무리 강해도 상관을 따라야 하는 것이 군율이야.”
“에? 언제부터 군인이었어요? 용병도 군인인가? 아니지? 지금은 용병도 아니잖아? 사냥꾼이지.”
“사냥꾼도 그만둘 거야. 대장을 따라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거든. 흐흐흐~ 우선 웨어 비스트의 정점에 서는 것이 내 목표다.”
경계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곰들에 대한 말을 들었던 장수언.
흑곰파의 간부들이 곰이라는 건 알았지만, 감히 손톱을 들이밀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혼자였기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이상연과 정수지는 온통 이은지에게 신경이 쏠렸다.
둘의 머릿속에 동시에 든 생각.
[저 여자는 왜?]
강인한을 보는 이은지의 두 눈매는 연신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반달을 그린 눈동자에 담긴 그 의미.
여자로서의 직감이 경고성을 울리고 있었다.
콰콰쾅.
그러던 중 엄청난 굉음이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다.
도약해서 내려친 강인한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하며 수 미터크기로 움푹 패여 버렸다.
“허억! 허억! 허억!”
멀찍이 물러나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을 고르는 주무성.
그의 앞섬은 톱날에 뜯기기라도 한 것처럼 중앙이 뜯어져 가슴과 배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주무성이 노기충천하게 외쳤지만 강인한의 입엔 그저 비릿한 비웃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너희 초인가문들만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녔다 생각했어? 그런데 어쩌지? 난 당신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말도 안 돼! 사... 사술이다!”
“무협지 애독자인가?”
말과 동시에 강인한이 대뜸 달려들며 단검을 꺼내 들었다.
휘익.
휘둘러진 단검을 피해 헐레벌떡 몸을 날리는 주무성.
그의 안색은 경악과 피곤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나... 난 삼영가의 직계혈족이야!’
강인한의 검날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빼내던 주무성이 삼영의 초인 뒤로 몸을 날렸다.
“워... 원로님!?”
놀란 그가 몸을 움찔하는 사이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권총.
타타타타탕.
권총을 꺼냄과 동시에 강인한을 겨누며 연속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런 쓰바!”
삼영삼영하며 그렇게 자부심을 내비치더니 총질을 할 줄이야.
총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마주해봤지만 영 적응이 안 되는 물건이다.
총알이 날라 올 때면 언제나 느끼는 긴장감.
‘당연한 건가?’
우르르릉.
강인한의 단전에서 뇌기가 날뛰기 시작한다.
펌프질을 하듯 전신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총소리가 전부 지워지지도 않았다.
총알 다섯 발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으으으윽!’
강인한이 팔을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팔이 들림에 따라 손과 손에 들린 단검이 따라 들린다.
단검의 위로 덧씌워지는 뇌기.
은빛의 날붙이가 시퍼런 뇌기를 품고 번쩍였다.
카카카카캉.
인간이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로 팔이 휘둘러졌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누군가 본다면 그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길 수 있는 모습.
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며 울린 ‘탕’ 소리와 총알을 쳐 내며 울린 ‘캉’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총알을 쳐 내자마자 땅을 박차며 주무성을 향해 다가들었다.
휘이익.
사선으로 그어지는 단검.
“허업!”
헛바람을 들이킨 주무성이 몸을 기울이며 검날을 피했다.
“허읍!”
하지만 단검을 피한 주무성을 기다리는 것은 어느새 안면 앞에 당도한 시퍼런 손바닥.
시퍼런 뇌전이 튀기는 모습은 절로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강인한의 손이 주무성의 안면을 움켜쥐어 버린다.
“이런 개새끼가! 깜짝 놀랐잖아!”
강인한은 달리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무성의 안면을 손에 쥔 채로 몸을 훌쩍 뛰었다.
콰앙.
훌쩍 뛴 강인한이 주무성의 안면을 쥔 채로 땅에 처박아 버린다.
어째 그 모습이 조카손자가 당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커허억!”
“워... 원로님!”
“쏴!”
주무성과 함께 온 삼영의 초인 삼인방.
너나 할 것 없이 총을 꺼내 들며 강인한을 향해 겨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헛!”
“어... 언제!”
“흡!”
그들이 총을 꺼내 드는 것과 동시에 수 미터나 길게 자란 손톱이 그들의 목젖을 누르고 있었다.
총에 적중당한다고 강인한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수지는 자신의 어린 신이 조금의 상처라도 입는 걸 원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을 살려 두고 있는 이유는.
강인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뿐.
그가 원한다면 저기 누워 있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목숨을 거둘 뿐이다.
강인한이 결정할 때까지 어떠한 방해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위협만을 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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