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52)
3. 경계안의 뱀파이어.(52)
강인한이 예사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수지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답을 바라는 연지의 시선이 강인한에게로 향하고.
강인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이야기하기에는 꺼려졌기 때문이다.
“자~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수지를 잘 좀 부탁할게.”
“오... 오빠...? 여기 수지씨가 한... 그 말은...”
“윤지 이야기? 나중에 하자.”
“아... 아니... 처... 첩이니 뭐니... 그게 도대체 무슨...”
“아... 아하하하하... 그게... 이따 마치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네? 네...”
“수지야. 그럼 오늘부터 연지가 알려주는 거 제대로 배우도록 해.”
“네! 서방님! 열심히 배워서 서방님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어찌나 컸던지 카페안의 시선이 모두 모여들었다.
남자들의 부러움과 질시가 담긴 눈빛.
절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강한 부정이 담긴 눈빛이다.
“이거 아니라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흐응... 서방님...”
감동한 정수지의 시선과 연지의 얼떨떨한 표정.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강인한을 노려보는 윤지까지.
너무도 많은 시선에 일단은 내빼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 난 볼일이 있어서 먼저 나간다!”
‘여자 문제는 여자끼리~ 나 너무 이기적인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자신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왠지 생각보다 잘 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승합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은지가 도와줄 거였는데, 수지가 직접 대놓고 터트릴 줄이야...’
구미호는 개과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고양이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정 난 인간아. 그냥 저리 두고 가도 되는 것이냐?]
‘수지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수지가 아무에게나 해코지하는 아이도 아니고.’
[아이라고 하기엔 너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것이다.]
‘됐거든? 수지는 영원히 귀여운 나의 수지라고!’
[욕심 많은 인간.]
‘이게 나를 위해서만 인 줄 알아? 내가 강해져야 너한테도 좋은 거 아냐?’
[흠... 그 말은 동의하는 것이다.]
내 힘이 강해져야 경계를 더욱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마엔의 운신이 자유로워진다.
아직은 내 능력이 모자라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수지 앞에서 쪽도 제대로 팔아버렸고.
더군다나 프리지아를 데리고 나오려면 그녀보다도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굴복했다고는 하지만 워낙에 어디로 튈지 모를 뱀파이어이기에.
내 주위에 모여든 여자들은 아름답기는 하나 어째 평범한 성격은 없다.
[그나저나 아주 잡스러운 기운인 것이다.]
마엔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거리를 걸었다.
승합차를 나대명에게 건네주고 나오던 그 순간부터 느껴지던 기운.
마치 어둠의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진득한 기운이 은밀하게 뒤를 따랐다.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느꼈던 익숙한 기운.
기억을 떠올리자, 나에게 독극물 키스를 시전 했던 한 여자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피식.
[흥! 네놈을 죽이려 했던 년인데도 아주 태평한 것이다. 저 요망한 년 때문에 더러운 기운에 샤워한 내가 얼마나 불쾌했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리엔 이라고 했던가...?’
[아주 이름까지 기억하고 실실거리는 것이다!]
‘뭐랄까... 죽음의 키스가 치명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미친 것이다!]
‘농담이고. 그때 그 눈빛이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무슨 또라이 같은 잡소리인 것이냐?]
‘내가 제발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야 하나?’
[지금 하는 말을 보니 그 요망한 년도 잡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무슨 표현이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요괴라도 되는 줄 알겠네?’
[밝히는 것은 요괴보다 더 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한테는 이득이라고.’
[음음~ 그건 그런 것이다. 그때는 비록 예상하지 못해 불쾌하였다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맛 좋은 먹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그런 거야~ 잘 지내면 얼마나 좋아~ 마엔~ 리엔~ 이름도 비슷하고 네 잃어버린 자매가 아닐까? 크크큭~’
[흥! 위대한 칼라쿠니아 노히르드 다스리다 마엔님에겐 자매가 없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떠들어 대는 마엔.
마엔의 말에 의하면 리엔의 상태는 당장에 폭주를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많은 기운들이 강제로 주입되어 얽히고 얽힌 상태라 했다.
[피조물들이 신의 흉내를 내었으니 저럴 수밖에. 그래도 나름 유지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안정시킬 수는 있어?’
[네가 가진 기운이 누구로 인한 것이라 보는 것이냐? 바로 나! 칼라쿠니...]
또다시 말이 끊이지 않는 마엔의 음성을 외면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결국 말의 끝에는 리엔이 아주 좋은 먹잇감이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것은 이미 나도 느끼고 있던 터.
본능이 이끌린다는 것은 리엔의 음기가 아주 대단하다는 것과 같다.
더럽다느니 어떻다느니 불평불만을 쏟아 냈던 마엔마저 돌고 돌아 하는 말이, 결국은 맛있게 따 먹으라는 것이니 몸에 좋고 영양가 좋음에야 두말할 필요 없음이 분명하다.
그럴 거면서 왜 저렇게 서론이 길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입을 놀리고 싶은 본능이 더 컸는지도.
그 와중에도 리엔은 내 뒤를 꾸준히 뒤따르는 중이었다.
참으로 대단하다 여길 능력.
분명 존재함을 인식하는데 흩어진 안개처럼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영화 속의 닌자가 인술을 펼치는 것만 같다.
나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우리의 추억이 자리한 곳으로 향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흠칫.
‘크크큭~ 당황할 법도 하지.’
[꽤 짓궂은 것이다.]
내 발걸음이 멈춘 그곳은.
바로 리엔의 손에 이끌려 왔던 을씨년스러운 공원 옆 터널.
스으으윽.
당황한 기척과 함께 검은 안개가 모여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간다.
“언제부터 눈치 채고 있었지?”
그리고 들려오는 나직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
절로 발기를 유도하는 음성이다.
“처음부터?”
“날 가지고 논 건가?”
“그건 아니고. 그런데 무슨 볼일? 숨어서 미행했다는 것은, 호의라고 보기는 애매한데~?”
멀찍이 모습을 드러낸 단발머리의 창백한 얼굴의 리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어떻게... 경계에서 나온 거지?”
“어? 내가 경계에 들어간 것은 어떻게 안 거야? 내 스토커야? 직접 들이댔어도 나는 받아 줄 용의가 있는데 말이야.”
“헛소리는 그만! 어떻게 된 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렇게 너와 내가 재회한 것이 중요한 거지. 그날의 키스는 잊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경계에 빨려 들어간 게 너와 관련된 거냐?”
리엔은 그 말에 대꾸 없이 지그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어찌 보면 죽일 듯 쏘아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어린 흥분과 호기심을 정확하게 짚어 낼 수 있었다.
“그건 아니야.”
역시 진실이군.
다행히도 리엔이 그 일에 나서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에 리엔이 엮여 있었다면 아무리 맛 좋은 먹잇감이라도 쉽게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지.
결과적으로 나에겐 이득을 본 일이지만, 진심으로 날 죽이려 했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다.
“다행이야~ 네가 날 정말로 죽이려 한 것은 아니라서. 나 정말 안심하고 있다고.”
“안심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난 너를 죽이기 위해 온 거야.”
“나를? 왜?”
그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색에서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리엔의 눈동자에 어린 나에 대한 관심이 여실히 느껴졌기에.
그것이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 등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답하기... 곤란하군... 그런데 널 죽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나로선 다행인 것인지 불행인 것인지 알 수가 없군.”
“그 말은 날 죽이려는 것이 네 의지가 아니라는 말이겠지?”
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마엔이 머릿속에서 떠들어 댄다.
[호오~ 저년에게 금제가 가해져 있어. 마치 뱀파이어의 권속과 비슷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야. 저 애송이년의 의지가 대단한 것이다. 어떻게든 그 금제를 벗어나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 그 금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다. 너는 무력보다 그것이 더욱 강한 것이다. 푸흐흐흐흐~]
비웃듯 웃어대는 마엔.
정력이 강하다는 말이 이렇게 기분 나빠 보기는 처음이다.
아무래도 난 대인배는 아닌가 보다.
어쩌면 수지보다 약하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 수도.
[호호호호~ 그래 너는 속 좁은 남자가 맞는 것이다~]
‘젠장! 닥쳐!’
리엔.
호감 : 70->80
신뢰 : 20->28
애정 : 22->43
이 전에 보았을 때보다 한 단계 올라간 수치.
제대로 몇 번만 눌러준다면 금방 MAX를 찍을 텐데.
이 전을 생각해 보면 리엔을 확실하게 제압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다만, 저렇게 멀찍이서 경계하는 통에 기습을 가하기도 모호하다.
돌발적으로 움직여 버리면 또다시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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