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계안의 뱀파이어.(53)
3. 경계안의 뱀파이어.(53)
“너에게 날 죽이라 명령한 것들. 삼영이냐?”
흠칫.
냉정하게 바라보던 리엔의 얼굴이 무너진다.
“그럴 거라 짐작했어. 그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없애라는 것은 나뿐 인 거야?”
그 물음에 리엔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이미 무표정을 고수했던 얼굴은, 나름 표정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그만큼 동요가 큰 것인가?
“금제 때문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총탄이 되었을까?
리엔의 얼굴은 완전히 가면을 벗어 버렸다.
“그... 그게 무슨...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너 혹시 날 죽이는 것 말고도 다른 임무는 받지 않았어? 가령... 없어진 주무성이나 주현성을 찾아보라는?”
“어...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그놈들 내가 데리고 있는데.”
“네가? 네가 잡아 놓고 있다는 말이야?”
“그래. 그리고 나는 네 금제를 없애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네 불안정한 기운도 안정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다면 믿지 않아도 되지만, 일말의 기대라도 걸고 싶다면 나에게 협조를 좀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이리저리 일그러지는 리엔의 표정.
역시 미인은 저런 일그러진 표정도 예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저렇게 냉정한 인형 같은 얼굴이 다채롭게 변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
“나... 난... 난... 으으윽... 크흑... 어쩔 수 없어. 너를 죽이지 않으려 하면 난 폭주할 거야. 그러면 위험해져... 흐으윽...”
야릇하게 느껴지는 고통의 신음.
머리를 쥐고는 통증을 호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묘한 섹기가 느껴진다.
슈트와 비슷한 옷차림.
프리지아표 슈트를 입힌다면 상당히 잘 어울리지 싶다.
어찌되었든 리엔의 저 말은 진실임이 분명하고.
결국은 나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인데.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해?”
도리도리.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머리를 내젖는다.
“그래? 그럼, 내가 너를 제압하면 되는 거네? 불리해져도 도망가지 마. 내가 어떻게든 널 제압해 보도록 할게.”
“나... 난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
“그럼, 평생 놈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거야?”
“그건...”
“그럼, 전력을 다해 덤비라고. 듬직한 이 남자를 믿으라고~”
“네가 강하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내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결국은 폭주를 할 거야. 감당할 자신... 있어?”
주무성과 주현성을 제압했다면 리엔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인한은 강하다.
강인한과 회사도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알았고.
그가 무사하다면 미약하게나마 회사를 무너트리는 것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폭주하게 되면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흉포해질 것이기에.
그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회사에서도 그토록 자신의 세뇌에 힘을 기울인 것이다.
이 자리만 피할 수 있다면 충분히 회사를 흔들 수 있거늘.
저 남자는 자신을 제압하는 것에 마음을 굳힌 듯했다.
차라리 자신을 피해 도망을 가는 것이 그에게나 자신에게나 더욱 이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인의 힘을 과신하기에 부릴 수 있는 만용이거나.
자신의 폭주한 힘을 겪어보지 못 했기에 할 수 있는 무지이거나.
그녀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하지만 그것은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도대체 왜...?’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말에도 태연하게 말을 맞받아치며 생글거리는 얼굴.
강인한과 리엔의 접점은 단 한 번.
우연을 가장한 리엔의 접근에서 시작되어.
독약을 주입하며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와중 독약을 해독해 버리며 목숨을 연명한 그이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악감정뿐이겠거늘.
왜 호의를 보이려 한다는 말인가?
리엔은 강인한의 저 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저 자도 나를 어떻게든 이용하려 드는 건가?’
구속할 수만 있다면 최악의 병기가 될 그녀.
어쩌면 주무성에게 자신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도망이나 가지 말라고.”
강인한은 리엔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정수지나 프리지아가 살벌하게 강해서 그렇지.
이미 초인을 간단히 제압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삼영 최강의 초인은 아니지만, 주무성이라면 상위권에 속한 초인이라 들었다.
이미 그는 인간 중 당당한 강자라 할 수 있는 입장이다.
“좋다... 이후의 모든 책임은 너에게 있는 것...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마.”
폭주하게 된다면 상대뿐 아니라 자신마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둘 모두 문제가 생긴다면 회사를 무너트리는 일은 영영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정말로 저 남자의 말대로 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로 거리낄 것이 없어진다.
어쩌면 지금이 그녀에게 온 하나의 기회가 아닐까?
지금껏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지금.
어쩌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적이나 마찬가지인 남자에게...
지금껏 누군가에게도 품어보지 못한 기대감.
적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믿음까지.
너무나 혼란스럽다.
‘지금 내 정신이 정상이기는 한 것일까?’
약장수의 입담에 속아 넘어 간 어르신처럼 리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득하면서도 거림직한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좋아. 그럼 어서 덤벼 보라고. 내가 싹 낫게 해 줄게~”
언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던가?
회사의 명령을 수행하며 위기의 상황은 언제나 있었고.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려다 발각될 위기에 처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금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몸 자체를 실험체로 실험하기도 수어 번.
그런데도 그녀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 이제는 나도 지쳐. 나는 마음껏 그놈들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을 뿐이야! 지금, 이곳에서 부질없이 무너질지라도. 지금의 가능성에 걸어 보겠어.’
리엔은 정말로 강인한을 죽일 듯 몸을 날렸다.
명령에 따라 죽인다는 각오를 다지자 머리를 쿡쿡 쑤시던 두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안광을 뚫고 나오는 검은 기운의 스모그.
리엔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파파팟.
검은 안개와 함께 리엔의 몸이 흩어지며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곤 안개 입자가 모이듯 강인한의 앞에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파캉. 캉. 캉. 캉.
회초리처럼 휘둘러지는 리엔의 팔.
그 빠름에 놀랄 법도 하건만 강인한은 그녀가 쏟아 내는 날붙이의 공격을 유유히 막아 내었다.
그때마다 눈앞에서 뇌전과 검은 안개가 충돌하며 무수한 스파크를 튀겨내었다.
“흐윽!”
잠깐 사이에 수어번의 공방을 펼친 후 훌쩍 물러나는 리엔.
‘이... 이 기운!’
강인한과 맞닿을 때마다 그녀의 기운을 침범하며 그 기운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소름 끼치는 느낌.
마치 짐승에게 몸뚱이를 통째로 물어뜯기는 기묘한 기분에 절로 오싹해진다.
“하하하~ 그게 다야? 그러다간 금방 제압되겠는데?”
얄밉게 입을 나불거리며 달려드는 강인한을 보며 리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런 조롱을 언제 받아보았을까?
이제까지 자신의 적들은 조롱 따위는 할 시간조차 없이 생을 달리했다.
빠드득!
“죽여 버리겠어!”
그녀의 역할은 진심으로 강인한을 죽이는 것.
그 진심에 정말로 죽어 버린다면 그것은 그저 저 자의 운명이다.
운명을 바꾸고 함께 대항할 수 있는 자라면 분명 무슨 수를 내더라도 낼 것이다.
진심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리엔.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타날 때마다 그녀의 거센 공격이 퍼부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형체 없는 귀신과도 같았다.
전신의 요혈을 노리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에는 그녀 특유의 검은 기운이 덧씌워져 강인한의 목숨을 위협했다.
파카카캉. 파캉. 파캉.
“대단한데! 이 정도면 주무성인가하는 늙은이 못지않잖아!”
이 전이었다면 그야말로 놀라자빠질 정도로 매서운 공격.
어쩌면 그날 리엔이 뇌기에 놀라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는 것은 강인한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운이 좋았던 건가?’
지난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듯.
그날의 자신은 살아남았으며 리엔은 지레 겁을 먹고 몸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의 강인한은 그날의 강인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상황.
초인이라도 움직임을 전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공방 속에서.
강인한의 왼손이 뇌기를 담고 움직인다.
지금까지는 오른손의 단검에 기운을 실어 공격을 막아 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공격할 요량.
팡. 팡. 팡. 팡.
“허읍!”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왼 주먹에 리엔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피해낸다.
그때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귓가를 울렸다.
“피하는 재주만큼은 대단한데?”
“이익!”
“어디 계속 피해 보라고~”
단검과 주먹을 사용해 압박하는 와중에 이제는 발까지 차올리기 시작했다.
“하윽!”
적중은 아니지만 점점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격.
그 공격 안에는 삿된 기운을 정화시키는 뇌기가 어려 있었다.
조금씩 스며든 뇌기가 리엔의 기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리엔은 의도하지 않아도 온몸을 누비며 달라붙던 기운이 맥을 잃고 툭툭 끊어지는 것을 느낀다.
꿈틀 꿈틀.
생전 겪어보지 못한 적의 침입에 검은 기운이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마치 성난 야수처럼 흉포하게 날뛰는 기운.
“쿨럭! 커억!”
검붉은 피를 울컥 토해내며 리엔이 빠르게 몸을 물렸다.
새우처럼 허리를 웅크렸던 그녀가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어 올린다.
“사... 살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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