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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236화 (236/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63)

3. 경계안의 뱀파이어.(63)

시장바닥처럼 떠들썩한 틈을 타고 커다란 소리가 장내를 뒤덮는다.

쿠웅!

쩌저저적.

거대한 대리석 탁상이 길게 쪼개지며 김우혁의 묵직한 음성이 회의실을 울렸다.

“모두 조용! 조용히 해 주십시오!”

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 김우혁보다 연배가 높은 인물들도 있지만.

그의 기세에 모두가 찔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가 이렇게나 공식석상에서 언성을 높였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손으로 꼽으려야 꼽을 수 없을 만큼 적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었다.

그런 그가 기세까지 방출하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은.

그만큼 심기가 불편하다는 말.

평소에는 그저 형식적으로 자리만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뭐라 해도 김우혁은 일명의 정점에 선 가주이자 최강의 초인이었다.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쓸어보자 찔끔한 원로와 임원들이 시선을 내리깐다.

그만큼 그의 눈초리에 담긴 거력이 절절하게 느껴진 탓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가문만을 위하는 집단이 되었단 말입니까? 막대한 돈과 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이 땅의 수호가 아닙니까? 그 놈의 가법도 그저 가문만을 위해 여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전에는 남아든 여아든 공평했던 것이 그저 가문의 명맥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어요! 초인가문의 사람도 그저 하나의 인간인 만큼 자신만의 의지가 있을 것인데, 어찌 이리 가문의 영달만을 바란단 말입니까?”

“가주... 그것은... 가법이 있기에 이렇게 우리가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오.”

“하... 그 힘이 무엇을 위한 것이냔 말입니다!”

“당연히 가문과 더 나아가 이 땅의 수호를 위해...”

“수호요? 자신의 가족의 행복마저 박탈한자들이 이 땅의 수호를 논합니까? 내 딸이, 가문의 딸들이! 원하지 않는 이와 강제로 혼인을 하고 피를 나눈 형제와 이어지는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면서요!?”

“가... 가주는 지금 이어져온 가법을 부정하는 것이오?”

“가법! 그 것이 언제부터 이어졌다고 이럽니까? 그리고 초인과 초인이 아니면 초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그저 지금까지의 확률에 불과할 뿐! 어디서도 신빙성 있는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가주! 가주는 지금 가문의 전통을...”

콰앙.

다시 한 번 김우혁의 주먹이 탁상을 후려쳤다.

파사사사삭.

갈라졌던 대리석이 산산이 쪼개지며 가루처럼 날린다.

“히익!?”

“지... 지금! 이게 무슨!”

“아니! 가주!”

“지금 무력으로 회의의 본질을 흐리는 겁니까!?”

따지고 드는 원로들과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뒤로 물린 임원들을 바라보며 김우혁의 눈은 분노로 물들었다.

저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 또한 등을 떠밀려왔다.

자신의 누이가 피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압박에 못 이겨 비명횡사했다.

자신의 딸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애원하는 지금.

더 이상 이 빌어먹을 가법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억지로 내려오는 썩어빠진 가법은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로 고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고칠 수 없다면 힘으로라도 뜯어고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결심을 지금에서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할일이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불행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쓸어보며 억눌린 김우혁의 음성이 회의장을 잠식했다.

“보름가까이 해 온 회의는 오늘 종결을 짓겠소. 썩어버렸다면 그 것을 도려내는 것이 인지상정. 오늘부로 가문의 여아들에 대한 인권을 회복토록 하겠소. 더불어 김나연의 일은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하에 놓는 것으로 결정하리다. 이에 어떠한 반박도 불가함을 선언하겠소!”

“가... 가주!”

“이건 말이 안 되오!”

“가문의 일은 아무리 가주라도 독단적으로 할 수 없음이오!”

무수한 음성들이 김우혁의 귓속을 파고들었지만, 김우혁은 덤덤하게 그 말들을 흘려들으며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

“대단하구나.”

김나연과 마주앉은 김우혁은 그녀를 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경계에서 귀환했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은 거칠던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 했다.

이렇게나 재능이 뛰어날 줄이야.

자신도 저 나이 때 딸아이만큼의 진전은 보지 못했던 터라 그 놀람은 더욱 컸다.

일명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로 칭송받았던 그다.

“이게 전부... 그 덕분이에요...”

김나연의 입에서 나오는 그라는 말에 김우혁의 얼굴이 성난 호랑이처럼 일그러졌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에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다.

얼마나 아끼던 딸인데...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남긴 하나의 흔적.

그 것을 괘씸한 늑대 놈이 앗아가는 것만 같아 배알이 뒤틀렸다.

“아빠...?”

아빠라는 말에 일그러졌던 얼굴이 금세 헤벌죽하게 변한다.

“크흠... 흠... 그 빌어... 아니, 그 녀석 덕분이라고...?”

“네... 정말 아빠처럼 강하고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에요.”

“흠흠... 그... 그래? 그래도 이... 애비보다 강하고 너를 사랑하지는 못할 거야. 흠흠...”

“지금 질투하시는 거예요?”

“허... 질투라니. 세상 어느 놈도 이 애비보다 멋지고 강하고 잘난 남자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큼큼... 그래도 발끝에나마 닿은 놈이라면 영 글러먹은 놈은 아니겠지.”

“푸후후... 맞아요... 아빠 같은 남자는 세상에 다시없을 거예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김우혁은 회의장에서의 일이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져 버렸다.

불쾌했던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언제 막내딸과 이러한 대화를 나누어 봤는지 가물가물 할 정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빌어... 아니... 남자라면 한 번 봐야겠구나.”

“저... 정말이요?”

“이 애비가 거짓말을 하겠느냐? 다만, 영 시원찮다면 당장에 내칠 것이니 그리 알고 있거라.”

“네!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아빠...”

눈시울이 붉어지는 딸을 보며 김우혁 또한 눈가가 뜨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딸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법.

그는 애써 눈물을 말리며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면상의 빌어먹을 놈을 향해 이를 갈았다.

‘내 딸 눈에서 눈물이 나는 날에는 아주 갈아 마셔 버릴 것이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것도 있고.

빌어먹을 놈의 주변에 얼쩡거리는 여인들.

일부다처제의 가문에서 자라고 두 명의 부인을 두었던 그에게 그 것이 큰 흠으로 다가올 수는 없었지만.

원래 자신이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 것이다.

그 것에 자신의 가족이 연관되었다면 더더욱.

‘일단은 한 번 보기는 하겠다.’

그 후엔 다른 여자들을 깔끔히 정리하도록 만들어야겠지.

딸의 마음을 훔쳤다면 놈은 오로지 딸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비서님.”

“하하하~ 그렇게 됐네요. 회장님도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저야... 뭐... 요즘 그렇습니다. 다 아시는 거 아닙니까?”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굴러들어온 돌이 그렇게 거슬리게 만든다고요?”

활기를 띤 서로의 인사 속에는 상대를 탐색하는 날카로운 눈빛이 자리했다.

대웅빌딩의 최상층에 자리한 흑곰파 보스 오대석의 집무실.

책상에 번듯하게 자리한 명패에는 회장 오대석이란 글자라 유독 눈에 들어온다.

“업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혼란종이 물을 흐리는 탓에 어떻게 낚아 먹을까 고민 중입니다.”

“정말 염려가 크시겠습니다.”

“염려까지야. 제 까짓게 해 봤자 손바닥 안이지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삼영의 회장님 비서께서 친히 발걸음을 하셨는지...?”

“우리가 안 보던 사이도 아니고. 회장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 안부 차 이렇게 들렸습니다.”

“하하하~”

주비서의 말에 호탕하게 웃어보이던 오대석의 웃음이 돌연, 뚝 하고 끊어졌다.

가늘게 뜨여진 그의 눈 사이로 형형한 안광이 자리한다.

보통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법한 매서운 기세.

주비서도 초인이지만 오대석의 기세는, 아무리 그라 해도 덤덤하게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괴물 같은 작자가...!’

주비서는 안간힘을 쓰며 오대석의 눈을 주시했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등허리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싸늘한 한기가 맴돈다.

“하하하하하~”

다시 터져 나온 오대석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를 압박하던 기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후우... 자...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이런~ 이런~ 장난이라니요. 설마, 그 대단하신 삼영바이오 회장님의 비서인 주비서님께 제가 장난이나 치는 그런 이로 보이십니까? 길게 돌려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보시지요. 이렇게 찾아 온 이유가 뭡니까?”

주비서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오대석의 얼굴을 슬쩍 훔쳐봤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단단해 보이는 외형.

반달 진 눈매의 안 쪽은 여전히 매섭게 빛난다.

그 눈빛이 마치 야수의 눈빛과도 같아 절로 등골이 시려왔다.

웨어비스트.

그 중에서도 최강의 웨어비스트로 꼽히는 자가 바로 오대석이다.

괴물 중에 괴물.

비록, 자신이 모시는 가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대석은 무시할 수 없는 절대강자다.

아무리 삼영이라 해도 손쓰기엔 쉽지 않은 세력을 지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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