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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240화 (240/297)

3. 경계안의 뱀파이어.(67)

3. 경계안의 뱀파이어.(67)

힘껏 빨아들이며 붉게 타오르던 불똥은.

이내 뿜어지는 연기와 함께 비벼지며 그 생을 마감한다.

거칠게 담배를 비벼 끈 오대석의 눈은 식어 버린 불똥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양 옆으론 두 명의 사내가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참의 침묵이 지난 후.

느릿하게 열리는 그의 입.

“놈들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나직하게 읊조리는 그의 말에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여 보이는 두 남자.

그의 말이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취한 행동이다.

“그럼, 그놈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지? 일명인가? 아니면 도원? 그도 아니면 인간이 아니었던가?”

자신에 미치지는 않지만, 뭔가 거림직한 기분을 느끼게 하던 그 기운.

알 듯 말 듯 하던 그 기운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어딘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알 수 없던 그 기운.

그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리했어야 하는가?

답지 않게 혹시나 해 돌려보냈던 것이 괜스레 귀찮음을 몰고 온 듯하다.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나 보았던가?

“삼영에서 늑대놈들을 컨트롤하고 있던 것은 왜 전해지지 않은 거지?”

그 물음에 그제야 두 사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답한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회장님.”

쌍둥이처럼 답한 그들을 향해 오대석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피식.

“언제부터 우리가 인간이 되었던가? 나는 로드다. 웨어비스트 모든 종을 다스릴 로드. 그런데 그 망할 늑대 놈들이 내가 아닌 인간들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당장 놈들을 잡아 처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로드시여.”

“풋. 되었다. 웨어 베어도 아닌 그것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다. 먼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면 모르되, 인간에게 고개를 숙인 놈들에게는 손을 쓰는 것마저 아깝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하찮아도 웨어비스트일진대.

그깟 인간의 제안에 넙죽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다니.

멍청한 놈들은 인간이 얼마나 교활한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인간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애완동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들 생각하나? 삼영의 제안.”

“받아들여도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됩니다.”

“저희가 잃을 것은 없습니다. 웨어 울프들이 실패한다 해도 뒤처리정도는 피해 없이 가능합니다.”

삼영이 내건 조건은 말 그대로 그저 내주는 수준의 것.

웨어 울프들을 선봉으로 보내줌은 물론, 혹시 모를 뒤처리를 해 주는 정도로 지배권의 압박을 해소시켜 주기로 했다.

그는 강남 상권의 주인과 마찬가지기에.

그에게도 자금은 넘치도록 많지만.

거대그룹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다.

하물며 강남 이외의 영역조차 진출에 압박을 받아왔다.

인간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선 무력만으로는 불가능했기에.

또한 무력이 있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군경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기에.

적당한 타협점을 만들어 놓은 상황.

이 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삼영이 힘 써줄 것은.

강북까지의 진출.

현재 강북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만큼.

자금의 흐름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서울 전체라면 믿지 못했겠지만, 강북까지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삼영도 강북이라는 노른자만을 제안한 것이겠지.

아무리 거대기업이자, 초인가문이라지만.

모든 것을 마음대로 쥐고 주무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

오대석은 일단은 그것에서 만족했다.

꾸준히 세력을 키워나가, 언젠가는 그 콧대 높은 놈들도 자신의 발아래 두리라.

선조들은 실패했지만.

자신은 기필코 인간들의 위에 설 것을 다짐한다.

“웨어 베어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알겠습니다. 로드시여.”

“명을 받겠습니다. 로드시여.”

***

인간이 경계에서 멀쩡하게 견딜 수 있는 기간은 30일 정도.

밖의 시간으로 따지면 3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의찬이형등이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지아의 마법에 의해 수면을 취하였기 때문.

그게 아니었다면 그 안에서 봤던 인간들처럼 변해 버렸을 것이다.

나와 일행들이 그 이상을 지내도 멀쩡했던 이유는.

이미 보통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주인인 내가 아닌 이상 그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외라면 지금의 프리지아인데.

그녀는 애초에 주인과 동급으로 프로그래밍 되었기에 가능했는데, 한 마디로 내가 운영자라면, 프리지아는 부운영자와 같은 위치다.

그렇다고 모든 경계가 이와 같은 법칙을 따르지는 않는다.

칼라쿠니아도 인간처럼 각각의 개성과 능력이 있기에.

처음 경계를 만들 때 적용시키는 법칙이 제각각이다.

이것이 내가 경계의 주인으로 올라서며 알게 된 사실이다.

프리지아를 아랫도리로 완전히 굴종시킨 후.

내 여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워낙에 자유분방한 프리지아이기에.

그녀 자체는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지만.

상연누나와 은지를 제외하곤 꽤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날 리엔의 살벌한 분위기와 진심으로 보이는 수지의 살기는.

감히 내가 입도 벙긋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결국은 프리지아와 수지의 공방으로 이어졌는데.

나조차 감히 그 싸움을 말릴 생각도 못 할 정도.

그 와중에 안개로 흩어진 리엔의 말이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인한. 저 둘 말이야. 둘 다 잘못되면 내가 세 명 몫을 할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낮게 가라앉아 싸늘하게 내뱉는 말이건만, 그 음성이 왠지 모르게 즐거운 듯 느껴지던 것은 내 착각이겠거니 애써 자위했다.

정말이지, 상연누나가 나서서 수지를 달래지 않았다면...

그녀들의 무력에 손조차 쓰지 못했던 한심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이번에야말로 절대로 자만하지 말자 결심에 결심을 거듭했다.

그야말로 천외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올라섰다 생각했거늘.

지금의 내가 서 너 명은 있어야 수지나 프리지아와 겨우 동수를 이룰 수 있을 듯했다.

마치 나를 비호하듯 안개처럼 흩어져 날아드는 파편을 쳐 내던 리엔.

제약을 벗어던진 리엔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

그때, 그렇게나 무력하게 나에게 당했던 이유는.

나와의 상성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최악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다시 목숨을 걸고 붙는다면?

정말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다.

‘제기랄!’

내 여자들이 제 한 몸 지킬 정도로 강해 위협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옹졸한 내 마음은 당당하게 내 여자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언제나 남자는 여자를 지켜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깔깔깔~ 재미있는 것이다~ 성별 따위로 강함을 논하고 있다니 참으로 미개한 것이다.-

‘닥쳐! 마엔!’

저리 말하는 마엔도 내 짐작으론 여자.

그녀 본신의 강함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가질 않는다.

진실을 마주하고 보니, 나는 거의 최약체나 마찬가지 아닌가?

-멍청한!-

마엔의 고성이 머릿속을 울린다.

-너는 충분히 강해진 것이다! 다만, 저 여아들이 갖고 태어난 것이 다를 뿐. 그러고 있을 시간에 더 훈련에 매진하는 것이다! 너는 더욱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호통을 치듯 말하지만 그녀의 어조에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잔뜩 배어 있다.

‘휴... 그래... 내가 너무 못난 꼴을 보였다.’

그래도 마엔 덕분에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다.

앞으로는 정말로 마음을 비우고 제대로 된 훈련에 임할 것이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절로 피어오르는 뇌전.

파지지지직.

능력을 얻었던 처음을 상기하자면.

나는 말도 안 되게 강해진 상태.

주먹을 한 번 쓸어보고는 뇌기를 잠재운다.

뇌기가 사라진 두 주먹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두 주먹이야말로 오롯이 내가 가지고 태어난 무기.

“하아아압!”

콰앙. 콰앙. 콰앙.

나는 기합성과 함께 미친 듯이 바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짓거리도 벌써 일주일 째.

그렇다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내지른다.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도록 그렇게 내지르고 내질렀다.

***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 위로 두 주먹을 올려다본다.

피투성이가 되어 뼈가 훤히 드러난 주먹.

흐르던 피는 어느새 멈춰있었고.

느리지만 눈에 뛸 정도로 살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현대 의학계가 보면 까무러치게 놀랄 정도의 회복력.

스윽.

슬쩍 고개를 돌려 내가 만들어놓은 바위의 상태를 확인한다.

산산이 부서지진 않았지만.

나보다 열배는 커다란 바위의 이곳저곳이 갈라지고 움푹 패어 있다.

뇌기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

설마 가능하리라 생각 못했건만.

나는 기어코 두 주먹만으로 바위를 깨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단 열흘 만에.

주변에 널브러진 즉석식품과 칼로리바 포장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력을 다하는 만큼 음식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기에 틈만 나면 칼로리를 보충했다.

오로지 이곳에서, 저 바위가 부서지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서방님...”

그때 들려오는 수지의 음성.

지친 몸을 추스르며 힘겹게 몸을 세웠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열흘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 좋아하는 섹스마저 멀리하며 주먹만을 내질렀다.

“죄송합니다... 서방님...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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