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웨어울프.(11)
4. 웨어울프.(11)
웨어울프로드의 눈이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윤기가 흐르던 회색털은 그 빛을 잃고 검게 그을려 모락모락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다.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놈에게로 다가갔다.
놈의 앞에 서서 죽어 가는 시선을 마주한다.
끝까지 머리를 숙이지 않고 오연하게 치든 모습.
스스슥.
작은 인기척과 함께 검은 안개가 모여들며 리엔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잠시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금 웨어울프 로드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리엔은 그런 나를 향해 묵묵히 시선을 던질 뿐이다.
“그르르르르... 그르르르르...”
비록 뇌전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지만.
그런데도 놈의 모습은 전설의 신수라 일컬어도 될 만큼 위압적이다.
네 발로 서 있음에도 180cm가 넘는 내 키를 넘는 눈높이.
생기를 잃어감에도 절대로 숙이지 않겠다는 듯 꼿꼿이 선 목.
웨어울프의 왕이라는 놈의 자존심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절대로 굽혀지지 않을 듯했다.
죽음으로써 놈의 네 발을 꿇리겠다하였지만.
죽음의 순간까지도 굽히지 않는 놈의 의지가 사뭇 대단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
“크르릉... 죽여라... 너의... 승리다...”
놈에겐 더 이상 삶의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다.
웨어울프들을 처리하면서 느낀 것은.
놈들도 인간처럼 제 목숨 중한 것을 안다는 것.
용맹하게 덤비는 놈이 있는가 하면.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놈들도 있었다.
웨어울프 로드의 하울링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몸을 숨기고 보신에 여념이 없었을 놈들도 보았다.
결국은 놈들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걸까?
-쓸 대 없는 감정을 갖는 것은 모든 필멸자의 숙명인 것이다. 후후후후~-
‘마치 너는 필멸자가 아니라는 듯 말하는구나?’
-모탈은 모두 이모탈을 꿈꾼다. 하지만 육신을 가진 이상 언제고 그 생은 끝을 보기 마련인 것이다. 자신들을 이모탈이라 칭하는 저들 또한 결국은 모탈. 겨우 상처가 낫는 것을 두고 이모탈이라 칭한 저 늑대들은 진정한 이모탈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끽해야 수 백 년도 못사는 주제에 자신들을 너무도 과대평가한 것이다.-
변명을 하듯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는 마엔.
하지만 그 말 속에 내가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은 없었다.
한 가지 유추하자면.
육신을 가진 이들이 모탈이고, 지금의 내 정신 안에 있는 자신은 이모탈이라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그렇다면 내가 죽게 된다면 마엔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지금 마엔은 나에게 기생하는 기생충 신세가 아닌가?
숙주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기생충도 따라 죽는 것이 순리라면.
아무리 정신체라 해도 결국은 모탈이라는 말 아닌가?
-.......-
내 생각을 읽었음에도 마엔은 더 이상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복잡해 보이는 마엔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나의 승리를 인정하며 죽여 달라는 웨어울프 로드를 바라봤다.
미련 없이 죽여 달라는 놈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허탈하기까지 하다.
내가 바란 것은.
내 무력에 굴복하여 살려 달라 애원하는 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를 죽이려던 놈을 발아래 두고 살려 달라 애원하는 놈을 잊을 수 없는 수치를 주며 결국엔 고통 속에서 죽어 가게 만드는 것.
흠칫.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한 심성을 갖게 된 걸까?
계속해서 피를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광기가 뇌에 스며든 것일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이질감에 급격한 혼란에 휩싸인다.
-그것이 내가 본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힘이 있다면 그것이 정의인 것이다. 후후훗~-
악마의 속삭임처럼 머릿속을 울리는 마엔의 음성.
자칭 신과 같은 존재라 말하던 그녀는 사실 악마가 아닐까 하는 깊은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짧게 보았던 칼라쿠니아의 영상.
행성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은하를 지배하며 그들이 벌이던 행위들.
그것은 정말로 신이라 보이기보단 악마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쿡쿡쿡~ 악마라니 참으로 웃긴 것이다. 지금 나는 네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 성향은 어디까지나 너의 내면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나에게서 악마를 보았다면 그것은 네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너의 본성인 것이다.-
‘그 위대하다는 칼라쿠니아가 겨우 인간인 나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냐?’
-.......-
‘왜 대답이 없어?’
마엔은 그저 묵묵히 답을 피할 뿐이다.
마엔... 네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과연 내가 보았던 영상과, 마엔이 한 말이 전부일까?
칼라쿠니아의 유흥을 위한 전장.
그로 인해 선택된 지구.
정말로 그녀의 말처럼 모든 칼라쿠니아는 죽은 것일까?
생각할수록 의문투성이인 것들이 많았지만.
이에 확답을 줄 수 있는 마엔이 입을 닫아버렸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우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은.
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니까.
순간 눈앞의 죽어 가는 웨어울프로드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너도 삶의 목적이 있었나?”
얼마 후.
나의 손은 웨어울프 로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푸욱.
“커... 커어어...”
스르륵 무너져 내리는 웨어울프 로드.
쿵.
마침내 웨어울프 로드의 거대한 동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
인터넷과 SNS에 퍼지기 시작한 사진과 영상.
충격!
도심 속 거대늑대!
그렇게 올라오기 시작한 영상과 사진 중에는.
웨어울프 로드의 발에 밟혀 사망한 이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번지던 사진과 영상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이에 대한 것에 궁금증을 갖고 찾는 사람들은.
뉴스와 기사에서 의문을 풀게 되었다.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 촬영 중 사고.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진행하던 영화 제작 중, 시민들의 부상과 사망으로 잠정 중단.
투자와 제작은 CS그룹.
CS그룹. 불의의 사고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철저히 진행할 것.
유족을 찾은 CS그룹의 대변인.
거액의 블록버스터급 영화 무산되나.
CS그룹 영화제작 잠정중단.
제작 책임자 경찰 소환.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올라오는 뉴스와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직접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던 이들은.
영화 촬영현장이 아니었다며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랬던 그들의 하소연은 순식간에 인터넷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떤 식으로 손을 쓴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고작 이틀 만에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미 유출이 되었던 사진과 동영상은.
나오는 족족 사라져 버렸고.
그것을 올렸던 이들은 두 번 다시 그와 관련된 것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
나와 리엔의 흐릿한 뒷모습이 찍혔던 사진도 모두 사라졌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괜히 입맛이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스마트폰을 소파에 던져 놓으며 웨어울프 로드와의 마지막 대화를 회상한다.
-너도 삶의 목적이 있었나?-
-나의 목적은... 우리 종족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
결국은 놈이나 나나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놈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삼영과 손을 잡았던 것이고.
삼영의 의뢰받아 강일파를 급습했다.
나 또한 나를 건드린 놈들을 지워 버린 것뿐이다.
결국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
나는 절대로 웨어울프와 같은 일은 겪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웨어울프의 급습으로 업장의 일부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큰 전력의 누수는 없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전력의 누수를 생각하는 내 모습이 일견 낯설기도 하다.
“아무래도 곰 새끼들도 빨리 처리해야겠어.”
웨어울프 로드의 말에 의하면 이 일에는 흑곰파도 한 손 보태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놈들도 삼영의 칼과 같다는 이야기.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건 사양한다.
“이 쪽에서 먼저 선빵을 날려주지.”
-이제야 화끈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흥분이 되는 것이다! 전부 네 발아래 꿀리는 것이다!-
***
나연누나가 돌아왔다.
안 그래도 슬슬 초조해지고 있던 와중이다.
때마침 이렇게 돌아오니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
“나연아!”
도도한 얼굴이 나를 향하며 부드럽게 바뀐다.
“인한아!”
나는 나연누나를 향해 바짝 다가섰다.
반가움에도 먼저 안겨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연누나는 아직도 나와의 애정 표현이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는 남자로서 그녀를 리드해 품에 안는다.
“흐읍...”
“정말 보고 싶었어. 더 늦었으면 일성에 찾아가 사고를 쳤을지도 몰라.”
“나도... 보고... 싶었어...”
얼굴을 붉히며 그것을 들킬 새라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오는 그녀.
품에 안은 나연누나의 향긋한 체취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당장에라도 들쳐 매고 침대에 눕혀 버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일은 잘 풀린 거야?”
“응? 응...”
그 말이 왜 자신감 없게 들리는지.
“정말?”
“응... 아버지는 널 한 번 만나보고 싶으시데...”
“나를?”
그 말에 갑자기 긴장감이 바짝 하고 올라온다.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교재를 하는 건데 아버지까지 뵈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연누나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아버지를 만나 뵙는 건 조금 부담스럽지 않나하는 생각.
내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일까?
“왜? 부담 돼?”
그녀의 음성이 조금은 뾰족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가 결혼이라도 하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어느새 내 품에서 빠져나간 나연누나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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