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흑곰파(3)
5. 흑곰파(3)
나연누나가 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밖에 리엔의 기척을 느끼고는 모른 척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여자의 일은 여자들끼리 해결 보는 것이 좋다는 교훈은 이미 얻었다.
괜히 나서서 껄떡대다가는 좋은 꼴 못 본다.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간이 지나버렸다.
이래서 섹스는 경계에서 해야 하는 건데.
그때그때 공을 들여 여체를 탐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 버린다.
보름 넘도록 모였던 음기가 들어왔음인가.
몸 안의 뇌기가 더욱 충만해진 기분이 들었다.
격렬했던 정사를 떠올리며 입술을 핥자 오묘한 맛이 입안으로 스며든다.
나연누나가 남기고 간 그녀의 체취.
그 맛을 음미하고 있자니 돌연 머릿속에 익숙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띠링.
<경계의 기능이 활성화 됩니다.>
띠링.
<경계의 유지 시간이 무제한으로 활성화 됩니다.>
띠링.
<경계의 입구를 열 수 있는 횟수는 시간당 1회로 제한됩니다.>
“어? 1회?”
제한된다고는 하지만 기존에 열 수 있던 횟수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경계의 기능을 전부 활성화 한다면 수시로 열 수 있다는 것이겠지.
더군다나 열어놓은 경계는 계속해서 유지할 수도 있다는 조건.
그렇다면 지정 된 이들은 더욱 자유롭게 경계를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띠링.
<하루에 한 번 경계입구의 위치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능력의 상향에 따라 경계의 제약도 풀리고 있는 모습이다.
경계입구의 위치를 하루에 몇 번이고 바꿀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전략적으로도 엄청 유용하게 쓰일 터였다.
물론, 하루에 한 번 바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차고도 넘치기는 한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듯 끝이 없는 법이다.
흑곰파를 완전히 쓸어버릴 최고의 한 수가 생각이 났다.
경계 안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흑곰파의 중심부인 대웅빌딩에서 단숨에 풀어버려 몰아친다.
언제고 등에 칼을 찔러 넣을 놈들을 놔둬봐야 뒤만 찝찝할 따름이다.
안 그래도 삼영이라는 거대가문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 그런 찝찝함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법.
웨어울프들을 쓸어버린 지금의 여세를 몰아 놈들을 몰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이다.
나는 우리의 전력을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수지나 프리지아라면 홀로 오대석을 상대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나도 오대석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성기형, 정욱아저씨, 장수언, 이은지, 나대명, 나연누나, 상연누나, 스쿡까지.
중심인물들의 눈부신 발전도 한 몫 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밑받침해주는 강일파 조직원들과, 경계에서 스쿡에게 교육 중인 뱀파이어들까지.
지금 우리의 전력은 절대로 무시 못 할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
“로드. 강일파에서 계속해서 도발을 해 오고 있습니다.”
“허허허... 뉘미럴. 순식간에 늑대 새끼들이 쓸려 버릴 줄이야.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서 우리를 건드리고 있다?”
실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놓여 버렸다.
그저 뒤처리나 좀 하겠거니 생각했던 그 일은.
어마어마하게 덩치를 불려 심각한 상황까지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마터면 언론까지 장식할 뻔했던 사건.
초인가문들에서 급하게 불을 끄지 않았다면 참으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멍청한 늑대놈들. 뒤지려면 그냥 뒤질 것이지. 그렇게 광고를 하나. 쯧쯧쯧. 그나저나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면 상당히 귀찮게 된 것 아니야?”
“아무래도 이 번 일은 삼영에 따져야 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늑대 놈들처럼 인간들의 손에 놀아날 수는 없지. 그렇다고 강일파가 계속해서 커가는 걸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삼영에 연락해. 당장 만나자고.”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마이 로드.”
***
만남의 시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주비서가 대웅빌딩을 찾았고.
“아무래도 이번 일 조건에 비해 너무 큰 것 같소만.”
“무슨 말씀이신지. 어차피 흑곰파도 더 이상 강일파를 두고 볼 수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야 서로의 구역을 인정하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오히려 삼영에서 강일파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거요?”
“솔직히 말해서 눈에 거슬렸던 것은 맞지만 그것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행할 일은 아닙니다.”
서로 간의 눈치 싸움.
강일파는 두 세력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웨어울프가 전멸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
뒤를 받쳐주기로 한 흑곰파조차 그것을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쓸 모 없는 설전은 그만두고 단도직입적으로 대화를 합시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그놈들의 힘이 만만치 않소. 이에 우리만 피를 볼 수는 없는 법 아니오?”
“저희는 웨어울프들을 지원으로 보냈습니다.”
“하~ 어찌 그게 삼영의 전력이오? 그들은 웨어비스트. 나 웨어비스트 로드의 세력이 될 놈들이었소.”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들을 지원하던 것은 어디까지나 삼영인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됐고~ 어차피 당신도 뭔가를 들고 왔을 것 아니오. 그냥 쉽게 갑시다. 해 줄 수 있는 것 해주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말이오.”
숨을 깊게 내쉰 주비서가 들고 온 007가방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오대석.
주비서는 그의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가방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탁. 탁.
짧은 소리와 함께 열리는 가방.
오픈된 가방 안에는 초록의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들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버서커입니다.”
“버서커?”
“지금껏 삼영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결과물입니다.”
그 말에 오대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그도 삼영에서 사냥꾼웹을 운영하며 시행했던 실험을 알고 있다.
사냥꾼들을 매개로 한 퓨리다크니스의 실험.
“지금... 그것을 주고 우리보고 사용하라는 거요?”
끄덕.
“크르르르! 감히 실험채로 취급을 하겠다는 거냐!”
“크허엉! 로드시여! 당장 이 자를 물어뜯어 버리겠습니다!”
단숨에 반수의 모습으로 변한 수하 둘이 살기를 뿜으며 주비서를 향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만.”
“로드시여...”
“크르릉...”
“일단 들어 보도록 하지.”
그의 말에 주비서는 씨익 웃어 보이고는 약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버서커의 실험은 성공적입니다. 인간과 웨어비스트에게 인상실험을 마쳤고.”
주비서가 가방 안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 안의 영롱한 초록액체가 찰랑인다.
“그 효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심장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푸욱.
초록의 액체가 점점 자취를 감추며 그의 심장으로 사라져갔다.
“후우...”
눈을 감고 낮게 숨을 내뱉는 주비서.
잠시 숨을 고르던 그의 눈이 번쩍하고 뜨인다.
초록 안광이 폭사되며 그의 전신에서 미증유의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그의 기운에 지진이라도 난 듯 건물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오대석.
“후우... 후우... 후우... 제 안에 담긴 힘이 느껴지십니까.”
“대단하군... 부작용은 없는 건가?”
“후우... 후우... 말 그대로 버서커... 두 배 이상 힘의 증폭이 가능하지만... 후우... 어느 정도 광기가 도는 것은 감내하셔야 합니다... 후우... 후우...”
“그 말은 진실인 것 같군. 주비서 당신 꼴이 발정 난 망아지 같으니 말이오. 크흐흐흐흐.”
“후우... 후우... 그리고 버서커모드가 끝난 뒤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후우... 후우... 최소 몇 시간은 아주 무력할 겁니다. 후우...”
“양날의 검과 같군. 폭발적인 힘을 쓰는 대신 장기전에서는 극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겠어.”
“후우... 마... 맞습니다... 후우... 잠시만... 후우...”
주비서는 잠식하는 광기를 내리누르며 가방 하나를 더 탁자위로 올린다.
마찬가지로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가방이 열렸고.
그 안에는 투명의 액체가 든 주사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황급히 주사기를 꺼내 심장을 향해 푸욱 하고 찔러 넣는다.
심장을 통해 직접 주입되는 투명의 액체로 인해 주비서의 안색이 점점 정상을 찾아갔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오대석.
“후우... 이것은 버서커리무버 약효를 즉시 없애주는 효과를 줍니다.”
어느새 차분한 안색으로 돌아온 주비서를 보며 오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버서커라... 쓸 만하겠어. 그런데... 그뿐인가?”
오대석의 말에 주비서는 이빨이 갈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는 입을 열었다.
“가주께선 대웅의 엔터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이르셨습니다.”
***
빠드득.
주비서는 흔들리는 몸을 겨우 곧추세우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대웅빌딩을 빠져나갔다.
“주비서님!”
“그만! 아무렇지 않게 나가도록 하세.”
“죄... 죄송합니다.”
퓨리다크니스를 잇는 버서커.
몸 안의 잠력을 폭발시키는 이 약물은.
결국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리무버로 진정시켜 놓았지만.
이미 버서커를 주입했기에.
한시라도 빨리 연구소로 이동해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시간이 더욱 지난다면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 터다.
한 마디로 삼영의 실험은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크크큭... 더러운 짐승 새끼들. 결국 너희들은 한낮 실험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이 좋아 리부버지.
버서커를 주사하고 10분이 지나면 하등 쓸모없는 약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그저 죽을 때까지 적을 몰살 시키는 광전사.
그는 약물의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하며 푹신한 뒷좌석에 몸을 묻었다.
“빨리 가지.”
“알겠습니다. 주비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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