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흑곰파(14)
5. 흑곰파(14)
간부의 말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 걸 누가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것이겠는가?
오대석의 눈은 건물 밑 한 남성에게로 향했다.
강인한.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제는 살기를 풀풀 풍기던 그때의 초인 애송이가 아니었다.
어딘가 찝찝하더라니.
‘뒤에 마마가 있었던가? 아니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여겨 찝찝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마가 나설 상황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은연중 지금쯤이면 마마를 상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 마음을 애써 눌러 잡게 된다.
그러하기에 최대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자제해 왔다.
그저 보통의 인간 조직이 그러하듯 교묘하게 선을 넘나들었을 뿐.
‘어쩌면 그날 놈을 죽이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날의 물러 터졌던 자신을 자책하며 오대석이 명령을 내렸다.
“전력을 다해 놈들을 멸살하라. 구미호는 최대한 신상을 확보하되 여의치 않으면 죽여도 무방하다.”
이 상황을 마마가 인지하고 있다면 딸이 죽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고.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도박이라도 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마마가 나타난다면 어떻게든 협상의 여지라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묻는다. 어떻게 해서든 삼영놈들과 엮이게 만들 것이다!’
***
건물 밑으로 떨어져 내린 웨어베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나하나가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
둔해 보이는 커다란 몸과는 달리 웨어울프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민첩성까지 지니고 있었다.
“크허어엉! 나는 유일한 웨어비스트가 될 장수언이다!”
그들보다 더 커다란 덩치의 새하얀 백호가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힘찬 호랑이의 발이 웨어베어들을 후려쳤다.
퍼어억. 퍽. 퍽. 퍽.
그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웨어베어들이 맥없이 이리저리 나동그라진다.
“크허허허헝~ 잔챙이들은 꺼지거라~ 잔챙이들 말고 로드대 로드로서 붙어보자!”
‘힘이 넘치는군.’
웨어베어들을 후려치면서도 나를 힐끔거리며 눈을 빛내는 것이 무언가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눈치이다.
나는 그게 꼴 보기 싫어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내 권속임에도 그렇게나 나를 이겨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그런 각자의 개성이 없다면 그저 인형과 다를 바 없겠지.
내 기운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본연의 성격이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가족과 권속 중, 권속은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에 더욱 큰 작용을 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과 권속을 나누는 것은 나의 마음이 크게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막 시작된 전투현장을 한차례 쓸어 담는다.
그로 인해 떠오르는 사람들의 정보창.
처음에는 색으로만 표현되던 것이 글을 띄워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칼라쿠니아의 시스템에 의한 것.
마엔으로 인해 칼라쿠니아와 직접 접촉한 나는.
능력을 개화하며 칼라쿠니아의 일부 권능을 본능적으로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지구에 구축해 놓았던 멈추어져 버린 시스템을 말이다.
정보창은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가 편하게 인식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상대의 맥박, 표정, 감정의 파장, 행동, 기운 등을 토대로 구축된 시스템에 의해 현상화를 시켜 보여 지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내 기운을 주입 당한 이들은 같은 기운의 파장으로 나를 친숙하게 생각하게 되고, 절로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원리.
내가 아무리 내 팔이 싫다 해도 스스로 잘라 내는 것이 힘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이 나를 거부하고 부정한다면 팔다리를 잘린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퍼억. 퍽. 퍽. 콰직.
빠드득.
거의 웨어베어만큼이나 체구를 불린 성기형은 놈들과 정면으로 주먹을 맞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실로 무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결에서 월등히 우세를 점하는 것은 성기형이다.
나로 인해 각성하기 전부터, 성기형은 타고난 기질이 싸움꾼이다.
이미 고딩 때부터 어른인 조폭을 떡 주무르듯 하던 인간이었으니 형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었다.
정욱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이 누구보다 능숙하게 웨어베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기운을 덧씌운 단검과 지금껏 단련하고 겪어온 실력.
거기에 더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각성을 겪으며 더욱 빠르고 더욱 신속하게 웨어베어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이은지 또한 수년의 사냥꾼 생활과 경계 안에서의 경험, 그리고 나로 인한 각성을 겪으며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웨어베어들의 급소를 찌르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힘과 체력이 다소 달리지만, 그것을 민첩으로 극복해내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성기형이나 나대명과 이은지가 맞붙는다면 이은지의 승리를 점쳐줄 정도.
민첩함이 압도적일 뿐, 힘과 체력이 그들보다 현격히 떨어진다곤 할 수 없었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충분히 그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다.
상연누나도 힘겹게 웨어베어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언급한 이들 중 실력향상이 가장 더디기는 하지만 그녀 또한 피나는 노력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충분히 웨어베어 하나는 상대할 정도의 실력.
다만, 둘 이상이 들러붙는다면 상당히 위태할 지경일 뿐.
다행이라면 항상 나대명이 그녀의 옆에서 함께 보조를 하고 있기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 외에 스쿡은 특유의 빠른 발로 웨어베어를 농락하며 뱀파이어들을 잘 지휘하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은 무리하기보단 다섯이 한 팀을 이루며 적절하게 상대를 하고 있었다.
강일파 조직원들도 마찬가지.
강일파 조직원들에게 주어진 것은 총기만이 아니다.
프리지아가 거대백사의 비늘로 만들어 낸 방패를 쥐어들고 열 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어지간해선 사망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이 된다.
그것을 위해선 여기서 가장 큰 무력을 지닌 수지, 프리지아, 리엔, 나연누나, 그리고 내가 많은 활약을 해야 하겠지만.
“서방님의 앞길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무식하지만 활약하는 프리지아를 봤음인가?
수지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 시퍼런 손톱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허공에 그려지는 주술의 술식이 어지럽게 그려지기를 반복한다.
마법이나 주술의 술식은 그려내는 술사나 마법사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나는 그 것을 그린 듯 볼 수 있었다.
술식은 그녀에게 가속을 주기도 하고, 웨어베어를 둔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새하얀 머리칼과 아름다운 꼬리를 휘날리며 웨어베어를 쓰러트려가는 수지의 모습은 게임 속의 아름다운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확실히 존나 대단하잖아? 저거야말로 혈통인가?’
“깔깔깔깔~ 다 뒈져 버렷! 냄새 나는 짐승들아!”
콰지직. 콰직.
‘프리지아도 어쩌면 혈통의 영향일지도.’
그녀는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뱀파이어라기보단 여전사에 가깝다.
권속들도 로드를 따라간다고 하는데.
그녀의 권속들이 마법을 쓰지 않고 육탄공격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스쿡또한 특화된 능력이 빠른 발인 것을 보면 알만하다.
나는 허공에 넘실거리는 실타래들을 바라본다.
이 전보다 훨씬 많은 실타래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적에게는 파고들어 고통을 주는 반면, 아군에게는 상처의 회복을 돕고 있는 모습.
상처 입은 아군을 스쳐 지날 때마나 나연누나의 고운아미가 살짝살짝 일그러지고 있었다.
내 여자가 고통스러운 것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의지가 완강했기에 이를 말리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서거걱.
“크허억!”
형체를 드러낸 리엔이 나를 향한 웨어울프의 팔을 날려 버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인한.”
그녀가 부른 뜻을 짐작하고 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모두가 잘 싸워주고 있기에 나도 걱정을 덜고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것에 주력해야 할 때다.
***
오대석은 눈 아래서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쪽수가 비등비등하다면 전원 웨어비스트인 자신들이 유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물며 저쪽은 반푼이도 못 된 인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웨어베어 한 명이면 애송이 초인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저들이 숙련된 병사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차곡차곡 인원을 늘려온 웨어베어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웨어베어의 머릿수를 늘리는 것은 인간이 애를 낳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도 관계를 통해 임신하고 임신한 상태로 열 달을 머물러야 하는 만큼 쉽다고는 볼 수 없지만.
웨어비스트의 경우는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여성의 수가 극도로 열악하기에.
인간보다 한참이나 어렵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버서커를 써야 하는가?’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휩싸였다.
그 약이 안전하다는 것은 확인을 받았지만.
어쩌면 그조차 비열한 삼영의 꼼수일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오대석은 저런 미천한 강북의 조직 따위에게 이 약을 쓰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웨어베어 몇 마리가 처참하게 도륙되었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그의 세력은 급격하게 쪼그라든다.
‘이 일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 같구나...’
이왕지사 벌어진 일.
이제는 놈들을 전부 쓸어버린 후 생각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빠드득.
‘두고 보자 삼영.’
“전부 버서커를 투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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