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268화 (268/297)

5. 흑곰파(15)

5. 흑곰파(16)

웨어베어의 두터운 손이 프리지아의 머리를 가격하며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냈다.

씨익.

하지만 비릿하게 올라가는 프리지아의 입꼬리.

이에 웨어베어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린다.

프리지아의 머리를 부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머리는 무쇠라도 되는 듯 멀쩡한 상태다.

아니, 자세히 보면 웨어베어의 손은 프리지아의 머리에 닿아 있지 않았다.

불과 몇 센티미터를 남겨두고 멈춰버린 손.

그렇다면 뼈가 흔들릴 만큼 얼얼한 이 느낌은 뭐란 말인가?

“큭... 마법...!”

정신을 차린 웨어베어는 상대가 뱀파이어임을 다시금 상기한다.

“흥~! 난 마법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뱀파이어로드라고~”

공격이 실패하며 마법이 날아올 거로 생각한 웨어베어.

웨어베어의 생각과는 달리 복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진다.

퍼억.

마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면서 그를 공격한 것은 프리지아의 주먹이었다.

‘씨... 씨발... 하나만 하라고...!’

본인 스스로 능수능란하게 마법을 다룬다 하였지만.

그녀에게 있어 능수능란한 마법은 의복을 만드는 마법과 자신의 무기를 소환하는 마법.

그리고 몸을 보호하는 방어 마법이 전부이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플리모프도 이제야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고.

덥썩.

그녀가 눈앞의 웨어베어를 날려 보내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웨어베어 한 놈이 그녀를 뒤에서 양팔로 꽉 붙들어 맸다.

그로 인해 거대한 프리지아의 가슴이 짓눌리고 엉덩이를 무언가가 쿡쿡하고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뭐 해! 내가 잡았어! 빨리 공격하라고!!!”

“으응? 이런 개새끼가!? 꺄!!!!! 당장 더러운 좆 치우지 못해!!!!”

이제껏 이만큼이나 불쾌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이만큼이나 타오르는 분노를 느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강인한을 위한 자신의 몸에 더러운 수컷의 손과 양물이 닿아버렸다.

“죽여 버릴 거야!!!”

강인한은 자신의 몸 곳곳을 물고 빨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녀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라고.

오로지 자신만이 만지고 입을 맞출 수 있는 것이라고.

어떠한 수컷도 자신의 소중한 프리지아에게 손조차 댈 수 없게 할 것이라 말하곤 했다.

프리지아는 강인한의 그런 이기적인 소유욕이 너무나도 좋았다.

분노한 프리지아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뻗어 나온다.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붉은 오오라의 향연.

“으으으윽! 도... 도와줘!”

힘겹게 프리지아를 옥죄고 있던 웨어베어가 외치자.

웨어베어 둘이 붉은 기운을 뚫고 달려든다.

“■■■■■■■■■■”

잊어졌던 고대 뱀파이어의 언어가 프리지아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어엇!?”

프리지아를 꽉 붙들어 매고 있던 웨어베어는 품안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황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며 프리지아를 찾았다.

그의 눈이 밑으로 향했을 때에서야 찾게 된 그녀의 모습.

동시에 프리지아가 훌쩍 뛰어 날아오른다.

허공에 붉은 날개를 펄럭이며 오연하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지독하게 요염한 마왕과도 같은 모습이다.

줄기줄기 뿜어지는 붉은 안광과.

머리 양쪽에 돋아 오른 두 개의 뿔.

피를 머금은 붉은 입술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번뜩였다.

“■■■■■”

손에 쥐고 있던 해머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허공을 향해 들어 올린 그녀의 손바닥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번쩍.

넘실거리던 붉은 기운이 빛을 폭사하며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선명한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

“■■■■■■■”

고고하게 울려 퍼지는 프리지아의 음성과 함께 이글거리는 화염덩어리들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저... 저게 무슨...”

“크르릉... 피... 피해야 해!”

모두의 시선이 셀 수도 없이 많은 화염덩어리로 향했다.

셋의 웨어울프에서 시작된 동요는 장내에 있는 모든 이에게로 번졌다.

“위... 위험해...”

어느새 전투는 멈춰진 채, 두려운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수많은 눈동자.

지독한 침묵 속에서 강인한의 고성이 장내를 강타한다.

“모두 경계로 대피해!”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일파 조직원들과 뱀파이어들이 경계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들었다.

하나둘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웨어울프들도 그들을 따라 마구 몸을 날린다.

“크허엉! 뭐야!”

“크아앙! 씨발! 우린 들어갈 수가 없어! 로... 로드!!!”

강인한이 주인인 이면의 경계는 오로지 그가 허락한 이들만이 들어설 수 있다.

조직원들과 뱀파이어들이 빠르게 경계로 사라져갔고.

프리지아의 손은 지상을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손이 완전히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수백의 화염덩어리가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전부 이쪽으로 모여!”

“서방님. 정말 생각이 없는 여자입니다!”

프리지아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면서도 정수지는 빠르게 주술의 술식을 그려 나갔다.

떨어져 내릴 화염을 피해 방어의 술식을 그려 내는 것이다.

이제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은 웨어베어들과 나를 포함한 내 여자들, 그리고 중심을 맡은 인물들.

‘하아... 상연누나는 왜 남은 거야...’

강인한은 남아 있는 이상연을 보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몸을 피하지 않고 그녀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를 알고 있는 탓이다.

이럴 때는 몸을 피해 주는 것도 도와주는 것이거늘.

불안한 얼굴의 이상연은 애써 걱정스러운 강인한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곤 중얼거리듯 말을 꺼낸다.

“방해되는 거 알아. 미안해... 하지만 경계의 긴 시간으로 걱정하며 기다릴 순 없었어...”

그녀가 얼마나 힘겹게 훈련을 버텨 내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쓴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정수지의 주술이 발동되고 김나연이 푸른 실타래로 수를 놓듯 촘촘하게 안을 매웠다.

이어서 그 위로 화염의 소나기가 퍼부어졌다.

쾅. 쾅. 쾅. 쾅. 쾅.

그 파괴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정수지와 김나연이 펼쳐 놓은 방어막이 미친 듯이 울렁인다.

콰콰콰쾅.

와르르르.

쿵. 쿵. 쿵.

화염의 소나기는 모든 것을 부수었다.

높다란 20층짜리 대웅빌딩은 물론.

그 밑에 있던 웨어울프들도 재앙을 피할 길 없었다.

마치 미사일 폭격이 일어나듯 귀를 사납게 울리는 파괴 음.

-크워어엉! 뱀파이어 계집!!!-

그 굉음들을 뚫고 웨어베어로드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쩌정. 쩌저정.

계속해서 일어나는 폭발에 밖의 결계가 미친 듯이 요동을 쳤다.

결계 안은 이미 손 쓸 수도 없을 정도로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저 결계가 깨져나간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참상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파괴의 소나기가 서서히 잦아든다.

다행히 밖의 결계는 힘겹게나마 버티게 된 모양이다.

마침내 퍼 붙던 화염의 소나기가 막을 내리고.

후끈한 열기와 뿌연 먼지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프리지아는!?”

강인한이 프리지아를 찾기 위해 안력에 집중하는 사이 정수지가 답한다.

“멀쩡하게 있어요. 서방님이 제대로 경고를 해 주어야 합니다.”

정수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강인한은 무사한 모습으로 허공에 떠 있는 프리지아를 향해 땅을 박찼다.

그녀를 향해 다가서는 흐릿한 잔상을 본 탓이다.

“수지야! 누나! 방어 유지해 줘!”

밖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상황.

정수지나 리엔 나연누나 정도가 아니라면 아직은 이 안이 안전할 터였다.

으득!

정수지가 입술을 곱씹으며 몸을 움찔거린다.

당연히 따라서 움직이려던 것을 저지당한 탓이다.

하지만 지엄한 서방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법.

“리엔도 잠시 안에 있어!”

리엔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르다 몸을 멈칫한다.

그 사이 강인한이 빠져나가고.

빠져나간 방어결계가 단단하게 입구를 틀어막았다.

“어? 한 번 더 열어 줘.”

리엔이 싸늘한 눈으로 정수지를 노려본다.

정수지는 그런 리엔의 말을 싸늘하게 응수했다.

“흥!”

“쳇!”

***

“프리지아! 뒤!”

자신을 향해 뛰어오며 외치는 강인한.

프리지아는 강인한의 말과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방어 마법을 힘겹게 끌어올렸다.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강력한 공격 마법에 순식간에 기운이 쭉 빨려 나갔다.

입버릇처럼 뱀파이어로드라 떠들었지만.

이제야 진정한 로드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된 프리지아.

진정한 로드로서 각성을 하며 고대 뱀파이어 마법이 프리지아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분노에 의해 각성하고 마법을 사용하며 급격하게 기운이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모자란 기운으로 그녀의 방어 마법은 완벽하게 펼쳐지지 못했다.

꽈앙.

그녀가 펼친 방어막을 거대한 곰의 앞발이 후려친다.

눈앞까지 다가온 웨어베어로드의 몸체는 거대버전의 프리지아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 보였다.

“꺄흑!”

단숨에 방어막이 깨어져 나가며 작고 가녀린 프리지아의 몸이 휘청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프리지아!”

이를 본 강인한이 프리지아를 향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프리지아를 품에 안으며 몸의 뇌기를 일깨운다.

빙글.

강인한의 몸이 한 바퀴 돌며 힘찬 발길질이 뻗어 나갔다.

쩌엉.

아가리를 벌리고 고개를 들이민 오대석의 얼굴이 휙 하고 돌아갔다.

그 반동에 몸을 빙글 돌리며 땅에 내려서는 오대석.

강인한도 프리지아를 안아 든 상태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윽...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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