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흑곰파(17)
5. 흑곰파(17)
“네놈!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
화염에 여기저기 그을린 털이 우스스하고 흩날린다.
털이 사라진 피부 위로 언제 그랬냐는 듯 돋아나는 새 털.
‘나사장이 부러워하겠는데?’
으르렁거리는 거대 흑곰의 뒤로 살아남은 웨어베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처음의 웨어베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던 이들이다.
“억하심정? 이렇게 된 마당에 구차하게 설명이 필요한가?”
강인한의 말에 오대석의 주둥이 사이로 두터운 송곳니가 드러난다.
“그래. 어차피 네놈이 다 망쳤다! 아니! 더러운 인간 놈들이 전부 망쳤어! 전부 죽여 버리겠다. 네놈들이고, 삼영이고 전부 물어뜯어버릴 것이다!”
‘삼영이야 상관없지만. 우리가 물어뜯길 수는 없지.’
어디서부터 온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크허어엉!-
오대석이 거대한 덩치를 일으키며 크게 포효했다.
이에 오대석의 뒤에 도열해 있던 웨어베어들도 덩달아 시끄럽게 짖어댄다.
놈들에게서 휘몰아치는 기운이 장내를 뒤덮었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웨어비스트의 기운은 요괴의 기운과는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놈들에게선 묘하게도 요기가 뒤섞인 음습함이 느껴졌다.
놈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신경 쓰이던 그 기운이다.
“버서커를...”
낮게 으르렁거리는 오대석에게 웨어베어 한 놈이 주사기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들도 주사기들을 일제히 꺼내 들었다.
‘으응?’
주사기 안에서 찰랑이는 액체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놈들에게서 느껴지던 위화감.
그것은 저 약물과 관련이 있다고.
그리고 지금 저 주사기를 주입하게 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라는 것도.
“씨발! 프리지아! 막아!”
다급하게 외치며 튀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놈들의 심장에 주삿바늘이 꽂혀 들었다.
-커허어엉!-
-크와앙!-
-크헝~!-
약물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
퓨리다크니스.
놈의 입에서 나온 버서커라는 말이 너무나 신경 쓰였다.
퓨리다크니스는 보통 사람을 강제적으로 각성시키는 약물이다.
더불어 그것을 연달아 사용하게 되면 광기에 물드는 대신 어마어마한 힘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이성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지만.
그 강력함은 직접 겪어봐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약물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버서커다.
지금 오대석이 발산하는 기운마저도 살갗이 저릿할 지경인데.
버서커라는 저 의문을 약물을 또다시 주입한다면 굉장히 위험해 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을 향해 튀어 나가던 나는 급격히 팽창하는 기운에 사정없이 튕겨 나갔다.
“커흑!”
“인한!”
프리지아가 황급히 달려와 나를 부축한다.
그녀 또한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음습한 기운에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서방님!”
“인한아!”
“강인한 괜찮아!?”
굳어진 얼굴도 다가온 이들.
이들도 웨어베어놈들의 기운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 될 것 같군.”
“아저씨 그리고 나사장님. 상연누나 좀 부탁할게요.”
이에 정욱아저씨와 나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르르르~ 웨어비스트의 이름에 먹칠하는군. 빌어먹을 곰 새끼들.”
장수언이 털을 잔뜩 세우며 으르렁 거리고 있지만, 그의 모습에선 긴장한 것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만큼 놈들의 기세는 불길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없다.
여파를 피하지 못하는 이들을 경계 안으로 피신시키고 문을 닫아버린 관계로 다시 열기 위해선 1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문을 닫은 이유는 프리지아의 마법이 워낙에 강렬했기에 이를 감당 못하고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프리지아의 잘못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프리지아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대부분의 웨어베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상황을 인지한 프리지아의 표정이 다소 침울하게 변한다.
저 망나니가 미안함을 떠올린다는 것 차체만으로도 인성적으로 꽤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프리지아.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놈들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미안해...”
“미안한 걸 알고 있으니 다행인 것이에요. 앞으로는 우리 서방님 말씀 잘 따르도록 하세요.”
“칫... 그래... 미안하다...”
입을 삐죽이면서도 프리지아는 수지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근엄한 척 새초롬하게 흘겨보는 수지나, 입을 삐죽이며 시선을 회피하는 프리지아나 내 눈에는 그저 귀엽게만 보이는 모습이다.
우리는 다소 긴장의 표정으로 기운의 소용돌이를 바라봤다.
그 기운이 어찌나 건샌지 놈들이 쳐 놓은 결계가 불안하게 일렁거린다.
정말로 저러다 결계가 당장에라도 박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쯤.
흩날리는 잔해와 먼지 속에서 놈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웨어비스트 특유의 흉포한 기운과 살갗에 들러붙는 음습한 기운에 치가 떨려왔다.
그리고 드러난 놈들의 모습.
“저... 저게 곰이라고...?”
성기형이 넋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어떤 놈이 오대석인지를 분간하기는 어렵다.
그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놈이 오대석 이겠거니 짐작할 뿐.
나머지 놈들도 4미터는 훌쩍 넘는 거대한 덩치로 변모했다.
탈모라도 왔는지 전신의 털들은 전부녹아 붉은 살 위에 눌러 붙어 있고.
번들거리는 피부는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듯 꿀렁이고 있었다.
-쿠어어어엉!-
이미 웨어베어의 모습을 잃어버린 놈들.
그 모습은, 언젠가 본 퓨리다크니스를 무리하게 주입한 마물과 흡사하기도 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그때의 마물이 된 김동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
마물처럼 변한 웨어베어들과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르르릉.
단전을 울리며 뇌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이제는 너무나도 수월하게 퍼져나가는 뇌기를 느끼며 발을 박찼다.
파지지지직.
팟. 파파파팟.
눈부신 뇌기가 온몸을 감싸며 터져 나온다.
이에 나란히 달리던 이들이 나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산개했다.
나의 뇌기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기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었지만.
지금 나를 중심으로 발산되는 뇌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계속되는 발전을 거듭하며 진정으로 전력을 쏟아보기는 나조차 처음이다.
“으아아아아!”
넘치는 힘에 절로 웅장한 포효가 뻗어 나왔다.
내 몸을 전부 감싼 뇌기가 사이키처럼 마구 번뜩인다.
나는 박차는 발에 뇌기를 보내 하나의 벼락이 되어 오대석을 향해 날아든다.
-크허어엉!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같은 말을 연발하는 오대석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놈의 눈동자가 향하는 것은 오로지 나.
나에 대한 분노와 광기만을 줄줄이 뿜어내고 있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나는 지상을 향해 벼락을 내리쳤다.
파지지지직.
콰앙. 쾅. 쾅.
허공에서 내리치는 벼락이 오대석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모든 삿된 것을 정화하는 순수한 힘.
-크아아아악!-
벼락에 적중당한 오대석이 팔을 휘저으며 벼락에 대항했다.
붉은 피부가 시커멓게 그을렸다가도 순식간에 회복되는 모습은 정말이지 괴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저 정도라면 웨어울프 이상의 회복력이라 볼 수 있다.
허공으로 떠오른 나도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상으로 낙하했다.
낙하속도에 힘을 실어 놈의 두개골을 향해 주먹을 내리친다.
주먹에 실린 거력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최선을 다한 일격이놈의 머리에 작렬했다.
쩌어억.
-크아아아악!-
주먹에 적중당하며 놈의 머리뼈가 움푹하고 주저앉았다.
충분히 뇌를 휘저을 정도로 심하게 파고들었건만.
오대석은 오히려 괴성과 함께 커다란 앞발을 휘두른다.
후우웅.
설마, 뇌까지 전해지는 충격에도 움직일 거로 생각 못한 나는, 황급히 가드를 올리고 몸을 움츠려 방어를 한다.
퍼어엉.
놈의 앞발에 실린 기운과 뇌기가 충돌하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윽!”
그 반동으로 나는 한참이나 날아가 몸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놈은 내가 몸을 추스르길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대로 육탄돌격을 감행하며 달려드는 모습에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앙!
놈의 몸과 충돌한 건물 잔해가 잘게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놈의 몸엔 어떠한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콰아앙!
쩌어억.
“미친...”
몸통 박치기 한 번에 결계가 요동을 치며 갈라진다.
아무리 세상의 이면이 까발려지던 말든 상관없다 생각했더라도.
정말로 이 모습이 세상에 공개될 지경에 이르자 괜히 마음이 조금해졌다.
“미친 새끼야! 저리 꺼져!”
몸을 띄우며 다리에 힘을 싣는다.
뇌기에 둘러싸인 다리가 놈의 안면부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쩌어억.
-쿠아악!-
튀어나온 주둥이가 뭉그러지며 피를 뿌리고 날아가는 놈의 거대한 몸.
그만큼 내 발차기에는 무시 못 할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쿠웅. 쿵. 쿵.
와르르르르.
오대석의 커다란 몸뚱이가 땅을 구르며 잔해들이 무너져 내린다.
‘뭐야? 존나 쉽잖아!?’
놈을 상대하는 지금.
생각보다 큰 위협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지도 모르겠다.
-죽인다! 죽인다! 크와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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