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흑곰파(19)
5. 흑곰파(19)
“다연아!”
날아드는 촉수를 피해 여자 친구를 안고 몸을 날린다.
“꺄아악!”
이대로 시멘바닥에 뒹굴게 된다면 여자 친구가 크게 다칠 거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쿠션을 자처한다.
쿠웅.
“아아악!”
둔탁하게 울리는 등의 충격을 느낄 새도 없이 파공음과 함께 눈 위를 스쳐 가는 촉수.
하지만 남자의 눈은 이내 절망으로 물들어간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 눈앞을 스쳐 간 촉수가 방향을 바꿔 다시 노리고 날아 든 것이다.
“으윽! 아... 안 돼!”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추적하듯.
촉수는 둘을 향해 정확하게 내려 꽂이고 있었다.
몸이 멀쩡하더라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들고 있건만.
시멘트바닥과의 충격으로 몸이 굳어진 듯 옴짝달싹 할 수조차 없다.
그때, 날아드는 촉수사이로 끼어드는 검은 그림자.
“으악! 더러워!”
퍼억.
그림자는 끼어드는 동시에 날아드는 촉수를 걷어차 버린다.
후두둑.
덕분에 번들거리는 촉수의 분비물이 두 사람의 위로 떨어져 내렸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발길질에 날아갔던 촉수가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마치 히어로물의 영웅처럼 쫄쫄이를 입고 나타난 이가 투덜거리며 촉수를 향해 마주 달려간다.
“씨발! 아주 태워 버려주마!”
거친 말투와는 달리 널따란 등이 참으로 듬직하다는 생각하며 남자는 검은수트영웅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디서 본 듯한... 아...!’
익숙한 검은수트를 바라보며 남자는 어디서 저 모습을 보았는지 기억해 냈다.
거대한 늑대가 찍혔던 사진이 떠돌았을 때, 흐릿하게 찍혀 있던 두 남녀의 모습과 닮았다.
피잉.
송곳처럼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슬쩍 피하고는 검은수트의 인물이 촉수를 양손으로 휘어잡았다.
“촉감이 좆같다고!!!”
파지지지직. 파지직.
그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푸른 스파크가 눈앞을 장식했다.
사람이 몸에서 전기를 뽑아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부 기관의 요원일까?
저 전기를 뿜어내는 것은 신무기?
그의 손에 잡힌 촉수가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지렁이처럼 몸을 뒤틀지만 남자는 악을 쓰면서도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검게 그을리며 연기를 피어대는 촉수는 이내 말라버린 가지처럼 부서져 버렸다.
“으~ 씨발 좆 됐네!?”
정부 기관의 요원이라기엔 입이 너무나도 방정맞다.
촉수의 위협에서 벋어난 남자는 그제야 주변의 상황을 똑똑히 눈에 넣을 수 있었다.
거대한 괴물로부터 뻗어 나온 촉수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하던 이들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사람들도 누구 하나 서 있는 이들이 없었다.
빌딩은 무너졌고, 주변은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엉망으로 부서졌다.
사람이었다고 짐작되는 말라버린 시신들이 거리에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거대한 괴물의 촉수와 검은수트의 인물들.
검은수트를 입은 인물들은 초인이라도 되는 양, 풀쩍 풀쩍 뛰며 촉수를 상대하고 잘라 냈다.
새하얀 빛과, 검고 푸름의 향연.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빛무리가 허공을 수놓는다.
‘이게 무슨...’
이 걸 무슨 장르라고 해야 하나?
SF? 판타지?
“우리도 도와줄 여력은 없으니까 알아서 피하세요.”
그러곤 몸을 돌려 괴물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는 검은수트의 남성.
남자는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
터졌다.
기필코 결계가 터져 버리고야 말았다.
그뿐인가?
저 미친 곰 새끼의 촉수는 점점 더 숫자를 늘려가며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아비규환.
한 폭의 지옥도가 이러할까?
영문도 모르고 촉수에 꿰어 말라비틀어지는 사람들.
“이런 씨발놈이!”
절로 욕이 나온다.
나에게 딱히 큰 인류애 따위는 없다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볼 정도로 비인간 적인지도 않다.
학살.
손을 쓸 틈도 없었다.
줄기줄기 뻗어나간 촉수들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주변을 쓸어 버렸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놈의 양분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여자 친구를 감싸며 몸을 날린 한 남자와 그의 품 안에 있는 여자를 구 한 것이 최선 이었다 할까?
“우리도 도와줄 여력은 없으니까 알아서 피하세요.”
그렇다고 이 커플을 도와줄 여력은 없다.
내 일행들 또한 필사적으로 촉수에 대적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알아서 잘 피하길...’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 사람이 더 중요한 사람일 뿐이다.
수지의 방어결계도 깨어졌는지 촉수들은 계속해서 일행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하나둘 촉수에 의해 상처를 입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저 둘에 대한 동정도 걱정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누군가가 이런 나를 비난하고 욕할지라도 내 선택은 다음에도, 이다음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타앗.
발을 박차 일행들이 고군분투하는 곳으로 달린다.
내 앞길을 막는 촉수들을 태워 버리며 그렇게 달려 일행들의 곁에 당도했다.
“서방님!”
“인한아!”
“이것들 너무 귀찮다고!”
촉수들은 잘라 내고 태워 버려도 계속해서 생성이 되었다.
‘결국은 본채를 처리해야 하는 건가?’
-구어어어어! 죽인다! 전부 죽인다!-
그렇게나 공격을 때려 박았고.
무식한 프리지아의 해머도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차라리 도망가는 것이 좋을까?
위이이잉~
그런 우리들의 귀에 낯익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 사태에 경찰들이 출동한 모양이다.
이면의 경계를 닫은 시각은 대략 40분.
더군다나 입구는 저 괴물 새끼의 지척과 마찬가지다.
“인한아! 아무래도 우리가 처리하기엔 무리인 것 같다.”
정욱아저씨의 외침을 들으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을까?’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울리는 소리.
투타타타타타타.
촉수를 태워 버리는 한 편, 황급히 하늘을 살피자.
멀찍이 떠서 주변을 배회하는 헬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상태라면 수상한 우리들은 저 헬기의 눈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제기랄!”
헬기는 무슨 명령이라도 들었는지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배회할 뿐 근처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요란한 세이렌을 울렸던 경찰차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의 이면이 드러나는 것은 상관없다 여겼지만, 지금 우리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달갑지 않다.
‘결국은 이면의 경계로 숨어들어야 하나?’
괴물이 된 오대석은 시끄러운 소음을 울리는 헬기와 세이렌 소리에 더욱 광분하며 촉수를 휘둘렀다.
-크아아아앙!-
촉수의 사정거리를 인지하지 못한 헬기한대가 촉수에 꿰뚫리며 빙글빙글 돌며 추락을 한다.
날개하나 잃은 잠자리처럼 중심을 잃고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던 헬기는 결국 건물 하나를 들이박으며 처박혔다.
그리고 이어진 폭발.
콰아앙.
실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다.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헬기에는 미사일이라도 달려 있었음이 분명하다.
“허억... 허억... 인한님... 이렇게는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본채를 공략해 봐요.”
헐떡이는 건 이은지 뿐만이 아니었다.
상연누나, 나대명, 정욱아저씨, 성기형까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듯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연누나의 능력으로 상처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프리지아가 만들어 준 수트도 방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나연누나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마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과 창백한 얼굴이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로 조잡한 기운들이 뭉쳐 있는 것이다.-
마엔의 음성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신의 힘을 탐낸 이들의 비참한 말로인 것이다. 주제넘은 힘을 탐한 자들의 말로인 것이다. 놈의 심장을 부수는 것이다.-
‘저렇게 커다란 덩치니까 심장도 크겠지?’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씨발... 저 두꺼운 놈의 심장이 어디 있는 줄 알고!-
-너의 눈을 믿는 것이다. 너의 심안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안이 여자들의 성감대를 보는 것에만 사용하는 능력은 아닌 것이다. 쯧쯧~-
마엔이 그리 말한다면 분명히 맞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갖춘 능력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갖춘 능력에 비해 내가 모자랄 따름이다.
-이제야 네 주제를 파악한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의젓해진 것이다.-
“본채로 다가간다!”
촉수를 쳐 내며 먼저 몸을 박찼다.
그러자 정욱아저씨가 뒤를 따르며 일행들의 위치를 선정해 준다.
나를 중심으로 삼각형의 형태로 늘어선 상태.
“프리지아 앞에 걸리적거리는 촉수들 좀 전부 쳐 내 줘!”
놈의 심장을 찾아내려 해도 시야를 가리는 촉수들이 거슬렸다.
“후아아아~ 역시 나만큼 믿을 여자는 없지?”
신나게 외친 프리지아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갔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린 해머가 빙글빙글 돌며 촉수들을 쳐 냈다.
부웅. 부웅. 부웅.
“수지야! 프리지아가 쳐 낸 것들은 전부 잘라버려!”
“네! 서방님!”
물컹이는 촉수들은 크게 밀려날 뿐 잠시 충격으로 멈칫했다가도 다시금 시야를 매워 버렸기에, 수지가 나서서 특유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움직임이 멈춘 촉수들을 잘라 냈다.
그렇게 시야가 확보될 때마다 프리지아의 가랑이 사이로 놈의 모습을 스캔했다.
“찾았다!”
놈의 거대한 곰 대가리 밑 목의 중앙.
참으로 어이없는 위치이지 않은가?
무작정 심장을 찾아 공격했다면 그 전에 우리가 지쳐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목이라고 해서 결코 다른 곳보다 얇지 않다는 것.
이미 풍선처럼 부푼 놈의 목은 두툼하고 붉은 살덩어리가 잔뜩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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