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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294화 (294/297)

6. 드러나는 세상의 이면.(22)

6. 드러나는 세상의 이면.(22)

“날 기다렸나?”

어김없이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주선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내의 얼굴을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 제압당할 것이 당연하기에.

“개소리.”

“후으읍~ 깨끗하게 씻은 모양이야? 냄새가 좋은데?”

주선우의 귓가를 간질이는 사내의 숨결.

스멀스멀 몸을 타고 사내의 손이 주선우의 슬립원피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덥석.

움찔.

“흐으...”

커다란 가슴이 사내의 손에 이리저리 짓이겨졌다.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사내의 물음에도 주선우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닫았다.

“삼영과 연관 돼서 몇 번이나 목숨을 위협받았다고.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말이야. 너는 억울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 삼영사람이지만 네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말이야... 삼영과의 일 중, 네 남편도 깊게 연관이 되어 있거든.”

흠칫.

“나, 남편...? 현성씨...?”

“왜 그렇게 놀라? 사랑하는 남편 이야기가 나오니까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

주선우는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말에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해 결혼한 것은 아니라지만, 감내하려 했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1년이 넘도록 방치를 해 버렸다.

더군다나 들려오는 더러운 소문들이란...

“그런 놈 따위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호오~ 남편인데 궁금하지도 않은 거야? 실종이 되었는데도?”

“네가 그것을 어떻게...”

사내는 당황하는 주선우의 물음에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하하~ 당연히 알 수밖에. 그 새끼는 내가 잡아 놓았으니까 말이야.“

“뭐, 뭐라고?”

놀란 주선우가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돌리려하자 사내가 이를 저지했다.

“어허~ 누가 움직이라고 했지?”

“그를 왜 잡아 놓은 거지...?”

“내 여자를 노렸거든. 거기에 더해 내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했지.”

“제 버릇 남 주지 못하는 건 여전하네. 그따위 놈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을 당하는 거라고?”

“하하하하~ 남편인데 그따위라니? 그리고 부부는 일심동체 아니야?”

사내의 말에 주선우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런 놈 따위... 삼영 따위... 없어졌으면 좋겠어...”

‘진실.’

사내는 주선우의 진실을 들으며 가녀린 어깨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사내의 품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문에 쌓인 게 생각보다 큰 모양인데?’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내가 도와줄까?”

“너 따위가, 뭘 도와준다는 거야.”

“들었다시피 나도 삼영에 쌓인 게 많거든.”

“겨우 이곳을 들락날락 한 것으로 삼영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믿든가 말든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차피 넌 오늘 나에게 네 처녀를 바치게 될 거니까.”

사내가 주선우의 귓가에 낮게 속삭인다.

“혹시 알아?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이 나에게 있을지. 거기에 더해 네가 협조한다면 삼영을 무너트리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이, 이 새끼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삼영을 무너트려?’

“흥. 네가 삼영을 무너트리던 말든 내가 이득을 볼 건 없는 것 같은데?”

사내의 허장성세가 어이없기도 했지만, 결국은 더러운 사내의 손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게 된다.

결국은 사내 또한 주선우에겐 삼영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과 같다.

“왜 없다고 생각해? 대신 너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쾌락의 끝을 볼 수 있을 텐데.”

“더러운 네 손 따위에? 하읏!”

“푸흐흐흐~ 그런 주제에 내 손에 느끼는 너는 뭔데?”

“치, 치워!”

“그럴 순 없지. 이제 대답해 보라고. 나랑 손을 잡는 건 어때?”

사내의 손길이 볼을 스치자 절로 몸이 떨려온다.

구역질이 난다 생각하면서도 절로 반응하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네, 네 정체나 밝히고 말을 꺼내!”

우뚝.

슬금슬금 주선우의 몸을 주무르던 손길이 멈춰 섰다.

“뭐, 사실 못 밝힐 것도 없는데.”

“뭐?”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사내를 향해 돌려졌다.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음에도 무엇이 두려웠던 것인지 주선우의 눈이 질끈 감긴다.

“이제 와서 갑자기 뭐가 무서워 진 거야?”

“누가 너 따위를 무서워한다고! 네 더러운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아서야!”

“지금 네 표정 생각보다 더 귀여운 것 같은데?”

“뭐, 뭐?”

귀엽다는 말에 화들짝 놀락 주선우가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어라? 더러운 얼굴 보고 싶지 않다면서? 궁금하기는 한 모양이야? 서로 얼굴은 처음 보네? 내 소개를 할게. 나는 강인한이라고 해. 큭큭~”

두근.

자기 방에 멋대로 침입해 저지르면 안 되는 짓거리를 저지른 침입자.

키득거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순박한 얼굴의 사내였다.

‘너무 평범해... 그리고 누군지 짐작도 하지 못하겠어.’

삼영에 원한을 가진 자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원한을 표출하기도 전 세상에서 지워졌을 뿐.

“삼영이 기르던 늑대 새끼들하고, 흑곰파를 무너트린 게 나야. 그리고 네 남편 주현성하고 주무성을 납치한 것도 나고.”

너무나도 담담하게 꺼내는 사내의 말에 주선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사내가 저질렀다는 일은 이렇게 쉽게 꺼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 네 남편은 아직 살아 있는데, 그중늙은이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여자도 삼영에 원한이 아주 깊거든. 혹시 리엔이라고 알아?”

“리... 엔...?”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주선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삼영의 치부와 마찬가지인 실험.

그 실험에서 가장 큰 성과라면 리엔이라 할 수 있었다.

“어라? 리엔이 내 여자라는 게 더 놀랄 일인가?”

“어, 어떻게!? 그녀는 절대 삼영을 벗어날 수 없어!”

강인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것도 못 믿겠으면 어쩔 수 없고. 더 이상 리엔은 삼영에 매여 있지 않아.”

도대체 이 사내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쉽게 일일이 말을 꺼낸다는 것은?

“나를 죽일 생각이군.”

“왜 생각이 그렇게 되는 거야? 그럴 생각 없는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해 놓고 살려 두겠다고?”

“너도 삼영이 무너지길 바란다며? 그럼 우리는 같은 편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

“킥. 삼영이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나에겐 너도 삼영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스윽.

사내의 손등이 주선우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었다.

두근.

생각과는 달리 주선우의 심장은 크게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자, 두 번에 걸쳐 느꼈던 사내의 손길이 되살아났다.

잊을 수 없는 그 감각.

몸이 망가져 버린 것처럼 주체할 수 없던 육체.

“말과는 달리 네 몸은 솔직한 것 같네.”

주선우의 눈이 살며시 뜨여졌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의 숨결이 얼굴을 스친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내의 체격은 상당히 컸다.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

살짝 헐렁이는 옷 안에 단단한 육체가 숨어 있음이 절로 느껴진다.

‘이, 이상해...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야. 그리고...’

강인한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너무나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몸을 몇 번이나 찌릿하게 만들어 주던 기운.

고향땅을 그리는 향수병에 걸린 듯 주선우는 또다시 그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다.

항상 보던 사내들과는 다른 무언가.

더럽게 여기던 뭇 사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강인한에게는 있었다.

비릿하게 웃는 그의 입과는 달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단단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사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하는 것이 연기라면 사내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자이리라.

‘나 정말 미친 거야...?’

이 번이 세 번째 만남이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닌 강제적인 만남.

더불어 사내는 자신의 방을 멋대로 침범한 침입자이자 성폭행 범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내에게로 향하는 호기심을 끊어 낼 수가 없다.

‘궁금해...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

주선우.

호감 : 65

신뢰 : 5

애정 : 5

변했다.

드디어 주선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은지도 나에게 주선우만큼 적의와 살의를 보내진 않았었다.

그런데 살의와 적의밖에 없던 주선우가 드디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 여세를 모아 그녀의 마음을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남았다.

“평생 삼영이라는 새 장 속에 갇혀 지내고 싶은 거야? 설마, 부와 명예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지?”

“그런 것 따위...”

“뭐, 부 정도는 나도 어느 정도 되는데. 그리고 나는 너를 그저 가두어 놓을 생각이 없다고. 자유롭게 날게 해주지.”

주선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이나 입을 닫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가 입을 연 순간.

“하아... 지금 나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지금은 네가 하려던 것을 해.”

“흐흐흐~ 맞아. 싫다고 해도 나는 널 범할 거야.”

나는 주선우를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앗! 뭐, 뭐야!”

“뭐긴 뭐야. 공주님 안기지.”

그 말에 지금까지 당한 것은 생각도 않고 얼굴을 잔뜩 붉히는 주선우.

나는 주선우를 안아 들고는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혔다.

“뭐, 뭘 그렇게 봐!”

“예쁘네.”

주선우의 얼굴이 더욱더 붉게 변한다.

“다, 당연한 거 아냐?”

음성을 높이며 내 시선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그녀.

그저 감정 없는 인형 같던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부턴가 복잡한 감정을 잔뜩 담고 있었다.

“오늘 이후로 넌 내 여자가 되는 거야.”

“누... 누가 너 따위 여자... 하흡!”

나는 거침없이 주선우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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