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비밀 (4)-
석현이하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뒤 내가 학교에 왔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서 교무실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석현이의 만류 때문에 갈수가 없었다. 앞으로 2주 뒤가 시험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무실의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시험?"
"응"
"아니. 무슨 시험을 그렇게 늦게 봐? 다음주면 벌써 7월 이잖아? 거기다 다다음주면 7월 초인데.. 그렇게 되면 방학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게.. 니가 안나오는 동안 학교에 난리가 났었어"
석현이의 말을 들어 보니 이랬다. 1학기 기말고사는 내가 학교에 다니기 일주일전에 이미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기말 고사가 끝나고 얼마 뒤부터 기말고사 문제가 유출됐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더니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요 며칠사이 그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명이 관련된게 아닌 모양이였다.
유출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0점처리 되고 정학을 먹었다. 이사장이 학교의 망신이라면서 퇴학 시킬려고 하는것을 선생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말고사 문제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말고사는 다시 보기로 학교측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아니 이런 재수 옴붙은 일이 있나. 아직 수업 진도도 따라가지 못했는데 이를 어쩌지?
석현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난 석현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녀석에게 그 동안 내가 못 따라간 진도를 배워봐? 그러나 저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공부는 그다지 하지 않았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석현이에게 물었다.
"석현아. 너.. 내가 없는 동안 공부좀 했냐?"
"응?"
"너도 알다시피 난 공부를 전혀 못했잖아. 거의 2달 가까이 진도를 못따라 갔는데.. 다음주에 시험을 보게 된다면. 개망신 당할 확률이 얼마나 높겠냐.."
'예전의 몸이였다면 몰라도 지금의 몸으로서는 그거야 말로 개쪽이다' 라는 뒷 이야기는 삼켰다. 남자 였을때라면 뭐 시험쯤이야 못칠때도 있는거지 하고 넘어가겠는데.. 지금의 몸을 가지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 창피할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여자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평범하게 생겼거나 못생겼다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한번 이상씩 꼭 돌아볼 만한 외모를 가지고 시험을 떡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얼굴은 멀쩡한데 골이 비었다느니. 생긴것 답지 않게 공부를 못한다느니.. 보나마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께 뻔하지. 으으.. 그런소린 별로 듣고 싶지 않아.
음.. 근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내가 현재의 내 몸을 부정하는 것 일까? 아니지. 현재의 내 몸을 아끼는 것이기에 안좋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한 생각이잖아?
자자 보라고 육체야. 난 너를 이만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 이거야. 그러니 너도 이제는 나한테 협력을 해라. 알았지? 난 오래 살고 싶거든? 어? 뭐라고? 예전에 '나도 니가 싫다 이거야' 라고 한것이 언제냐고? 아아~ 우리 서로간에 지난 일은 잊자 응? 너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꽁 해놓고 있으면 병 된다? 너도 이 세상에 한번 태어 났으니 오래 살고 싶을꺼 아냐. 나도 역시 오래 살고 싶으니까 우리 서로 협력해서 남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살아가자. 앞으로 우리가 낳을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 헉! 나 지금 무슨소리 하는거냐.. 방금 마지막 말은 취소다. 취소. 그냥 남 부끄럽지 않을 인생만 살아가자. 알았지?
...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육체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나 밖에 없을것 같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의 그 소름 끼치는 생각은 갑자기 왜 떠오른 거야? 내가 낳을 자식들이라니.. 으히히힉. 아무래도 유모한테 옮았나 보다.
자식을 낳을려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다는 말은 곧 남자하고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내가 그게 가능할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만해도.. 우엑.. 생각하기도 싫어. 아니 그것을 하는것을 떠나서 애초에 내가 남자랑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결혼을 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내가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는것이 말이 되질 않는다. 동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들에게 사랑이라니..
그런데 내가 왜 지금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거지?
잠시 망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나는 그제서야 내가 석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석현이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석현이는 재미있어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환아. 너 혼자서 사색에 잠기는 버릇은 그대로구나?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못듣고"
".. 예전처럼 그냥 망상이라고 해라. 그리고 석현아. 너 이제부터 날 부를때 정환이라고 부르지 말고 혜린이라고 불러줘"
".. 왜?"
"후우~.. 너도 며칠전에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현재의 나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오래 못산다잖아. 그러니까 작은것 부터 변화시켜 가야지. 적응해 간다.. 랄까? 아하하.. 조금 이상하지? 이렇게 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내가"
"아니 이상하지 않아. 이해해"
석현이는 내가 무안하지 않게끔 웃으면서 이해 한다고 대답해줬다. 고마운 녀석. 나 역시 웃으면서 석현이에게 말해줬다.
"그래. 고맙다"
석현이는 이해한다고 해줬지만,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한 순간이라도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 공포와 마딱드려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원초적인 두려움과, 자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때 가족들이 슬퍼 할것을 생각 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엄청난 슬픔.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들을 알고 있고 경험한 사람만이 내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해 줄것이다.
"아참. 석현아 내가 너한테 조금전에 질문했던 것이 뭐였지?"
"나 한테 공부 잘하냐고 물었어"
뭔가 다른거 같은데.. 뭐 어쨋든 의미는 비슷한것 같군.
"역시 아니지?"
"..."
석현이는 대답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야야. 괜찮아. 창피해 할거 없어. 뭐 그런걸 가지고.. 그건 그렇고 슬슬 교실에 들어가 봐야 겠다. 같이 갈래?"
"아냐. 먼저 들어가. 난 종치기 조금전에 들어 갈께"
"... 그래"
내용물을 다 마시고난 빈 캔을 주워 드는 석현이를 뒤로 한채 난 교실이 있는 본관 건물로 향했다. 그런데 석현이랑 떨어져 혼자 교실로 가려니 참 이상한 기분이다. 나 때문에 석현이가 저리 됐는데. 만약 입장을 바꿔서 나였다면 혼자 교실로 들어가는 석현이를 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같이 있어 줬으면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은 아직 10 여분이나 남아 있었다. 앞으로 10분 동안이나 석현이는 혼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아.. 그래 며칠만에 보는건데 점심시간 만큼은 같이 있어주자.
건물 내부로 들어가던 나는 건물 밖으로 도로 나왔다. 빈 캔을 들고 한적한 곳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 쪽으로 털레털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석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번 등 뒤로 가서 놀래켜 줄까?
내가 그런 어린애들이나 할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을때 어떤 여자애들이 석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내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비록 거리가 멀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두명의 여자애중 한명이 석현이에게 무엇인가를 건내 주고 있었다.
혹시. 저 여자애가 석현이한테 반해서 뭔가를 건내주며 고백이라도 하는 건가? 오호. 아무래도 그런것 같군.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는걸? 난 또 석현이가 학교에서 혼자 지내며 쓸쓸해 할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구나. 여자애들에게 고백을 받을 줄이야. 하긴 석현이가 꽃미남이라거나 엄청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남자답게 생기기는 했지. 거기다 키도 요즘엔 부쩍 커져서 남자 다운게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상태고. 그리고 얼마전에 선희한테 들은 말에 의하면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괴로움에 과묵해진 석현이가 여자애들한테 은근히 인기도 좋다고 했지 아마?
그런데 과연 석현이는 어떻게 할까? 저 여자애가 주는 선물을 받아 들일까? 만약 받아 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지? 석현이의 애인이 되는건가? 그래 받아 들여라 석현아. 너도 애인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 고등학교에 들어가거든 여자친구 만드는게 우리들 소원이였잖아. 그러니 받아 들여라.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다르게 석현이는 그 여자애가 주는 무엇인가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매우 곤란한 얼굴을 하며 여자애가 내민것을 받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 버린 것이다. 저런 매몰찬 녀석. 그러니까 니가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는거야 임마. 지금이라도 가서 뭐라고 한마디 해줄까? 에이. 관두자 관둬. 지가 알아서 하겠지 뭐. 그리고 정 여자친구가 안생기면 내가 어떻게든 도와주면 되겠지.
그런데. 뭐가 좋아서 난 지금 웃음을 짓고 있는거지?
=--------------------
이젠.. 주말에 시간이 나고 평일이 바빠졌습니다. ㅜㅜ. 게다기 이번주에는 특히 이것저것 할일이 많아서 글 쓸 시간도 별로 없었죠.
정말 죄송합니다.
아참. 그리고 혹시라도 석현이의 시점에서 본 외전편을 기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아마 다음 외전편들은 다.인.순 이 막을 내린 다음에나 나오지 않을까 싶군요. ^^. 어쩌면. 글을 쓰다가 막히게 되면 쓰게 될지도 모르고요. ㅎㅎ.
잘 하면 오늘중으로 한편 더 업 할지도 모르겠네요. 최선을 다해서 한편 더 업을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