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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붕괴 (8)- (97/110)

 96화. -붕괴 (8)-

친구라는 단어는 대체 무엇일까? 남자친구라는 단어와는 뭐가 어떻게 다른 거지?  

김민혁이 석현이를 가리켜 내 남자 친구라고 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어느 한편으로는 석현이가 김민혁에게 인정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학교에서 내게 접근해 오는 남자애들을 견제하기 위해 내 스스로 석현이를 생각하며 남자 친구가 있다고 말 할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내가 말 할때는 석현이를 총알받이로 쓸려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렇고, 김민혁은 진지하게 말해서 그러는 걸까? 

겨우 '남자' 라는 단어 하나 붙었다고 친구라는 느낌이 왜 이렇게 틀려지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자란 석현이는 김혜린이 여자인것 만큼이나 '남자'인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니까 '친구'인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내가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석현이는 나에게 있어서 '남자 친구'인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냥 친구와 남자친구 라는 단어는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혹시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민감한것 만은 아닌것 같다. 내가 만일 몸이 바뀌는 일이 없이 지금도 남자인 상태로 있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석현이를 소개할때 "제 친구예요" 라고 소개시켜주지 "제 남자 친구예요" 라고 소개시켜주는 일은 없지 않은가. '남자'가 '남자'를 가리켜 '남자친구'라고 소개시켜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또 소름이 돋는군. 

결국 남자 친구라는 단어는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단어인것 같다. 그와 반대로 여자 친구라는 단어는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단어일 테고. 만약 그것들을 이성(異性)이 아닌 동성(同性)인 남자나 여자가 사용한다면 호모나 레즈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김민혁이 석현이를 가리켜 내 남자친구라고 말 할때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어쩌면 이 때문인것 같았다.  

그렇지만, 김민혁도 그렇지. 그냥 친구라고 해도 될 일을 가지고 꼭 남자 라는것을 강조해서 그렇게 불러야 하나? 듣는사람 기분도 생각해줘야지. 으~ 역시 그때 김민혁에게 석현이는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한 마디 톡 쏴줬어야 했어. 그냥 김민혁이 석현이를 좋게 보는게 좋을것 같아서 아무 말 없이 참고 있었는데 그게 이제와서 후회가 되네.  

자기 위해서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오만 잡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져 간다. 난 그 잡생각의 대부분을 석현이를 내 남자친구로 취급한 김민혁에게 투덜거리는 것으로 소비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는 마음의 평정이 무너질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꼭 금방이라도 내 핸드폰 벨이 울리면서 인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안 좋은 소식이기 때문에 날 걱정하는 가족들이 전화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아빠에게 안 좋은일이 생겨서 그 소식을 나에게 전해준다면, 난 시간이 몇 시가 됐건 분명히 가족들에게 간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전화 하고픈 마음을 간신히 붙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자꾸만 불길한 쪽으로만 떠오를까? 아빠에겐 아무일도 없을텐데.. 왜 이렇게 불안한거지? 뭐가 자꾸만 불안한 거지? 

그러나 만일.. 만일 아빠한테 무슨일이 생긴다면 어쩌지? 내가 운명을 거부한 것 때문에 아빠에게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지? 내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다 내 탓이다. 다 나 때문이라고. 

어느샌가 모르게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눈 꼬리를 타고 귓가로 흘러가는게 느껴진다. 

누구든지 지금 나의 불안감을 덜어줬으면 좋겠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의 불안한 감정을 잊게끔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석현이에게 전화를 걸까? 김민혁의 방에 가서 오늘 하루만 더 재워달라고 할까? 

... 

제기랄. 그러고보니 나도 모르게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이 치우치고 말았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아빠의 일이 떠오르자 자동적으로 안 좋은쪽으로 상황을 몰고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은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서 아빠는 괜찮아 질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렸다. 아빠한테는 아무일도 없을거라며 날 안심시켜주려는 듯이 웃던 인혜의 얼굴도 떠올렸다. 그러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맞아. 아빠한테는 아무일도 없을거야. 엄마나 인혜의 말처럼 아빠는 건강하게 회복하실거야. 불안해 할필요 없어. 불길한 생각을 떠올릴 필요없어. 아빠는 틀림없이 괜찮으실테니까 지금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은 아빠한테 실례야. 다른 생각하자. 다른 생각. 그런데 뭐가 좋지?  

아! 맞다.  

김민혁이 한 말을 석현이가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석현이 자신도 모르는사이 김민혁에게 석현이는 내 남자친구로 둔갑해 있는 상태인데 이것을 알게 되면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기분나빠 할려나? 소름이 돋아서 몸을 부르르떤다거나 그러지는 않을까? 아니면 혹시..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좋아하지는 않을까?  

하긴, 그럴수도있지. 김혜린의 미모가 어디 보통 미몬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씩 돌아볼 정도로 예쁘잖아? 순수 자연미인에 화장을 하지않은 상태에서도 화장을 떡칠하고 나온 TV의 연예인들 보다도 한 수 위라고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러니 이제껏 애인은 커녕 여자친구조차 없었던 석현이는 김혜린의 여자친구로 인정 받은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거야. 뭐 비록 석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가슴 크고 쎅시한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정도면.. 이정도면.. 

..나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냐. 그냥 김민혁이 석현이를 좋게 봐줬다는 것만 생각하면 됐지. 석현이가 내 남자친구로 되어 있건 말건, 또 석현이가 그걸 알건 알지 못하건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좋아할리가 없잖아? 겉 모습이 아무리 눈 돌아갈 정도의 미인이면 뭐하나. 내용물은 어렷을때부터 함께 자란 최정환인데. 오히려 기분나빠하지 않으면 다행이게? 맞아 좋아할리는 없어. 아마 그냥 그려려니 하면서 이해해 줄거야. 석현이는 나보다 이해심이 넓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해해주고 말거야. 

"하아~"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거지? 가슴 한 구석이 왜 이리도 지끈거리는 걸까? 뭔가가 짓누르는 듯한.. 그러면서도 허전한듯한 느낌.. 꼭 중요한 뭔가를 잃은것 같은 상실감같은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그런가? 애써서 잊을려고 하고 있지만 아빠의 상태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혼수상태라서 그러는 것인가? 그렇게 된 이유가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 때문이라 죄책감을 느껴서 그러는 걸까?  

모르겠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의 원인도. 김민혁의 태도에 대한 석현이의 반응도. 그리고 불안하기만한 아빠의 상태와 내 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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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주시옵소서... 너무 오랜만인데다가 또한 엄청나게 짧습니다. m(ㅜ_ㅜ)m (넙죽) 

거의 열흘간 죽자사자 매달려 쓴게 겨우 요거('' );; 라고 하면 믿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 의문스럽습니다만은.. 그래도 한번 말은 해보겠습니다.  

에흠.. 흠흠.. 음.. 왜 자꾸 코가 길어지지?   

... 

그래도 진짜로 노력은 많이 했답니다.. (이번 챕터는 다른 챕터에 비해 너무 어려운거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어렵게 잡았지? 라며 후회도 자주 하곤 하지요. ㅜㅜ) 

아무튼.. 제 잘못은 제 잘못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을 했더라면 조금더 일찍 올려 드릴 수 있었을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런 제 글을 추천해 주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묘선님. 큐티엘님. 풍류선비님. 부족하기만한 제 글을 추천해 주신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__) 

그리고 제 글의 제목을 연재한담란에 올림으로서 간접적으로나마 홍보해주신 daegom님. 광인님. 황창님. 단그리님 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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