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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화 〉일곱번째 이야기. 가출한 여자사람 친구가 내 자취방에 쳐들어왔습니다 (14) (131/335)



〈 131화 〉일곱번째 이야기. 가출한 여자사람 친구가 내 자취방에 쳐들어왔습니다 (14)

-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 이상했다.

비슷한 처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세미와 만나게 될 것이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었을까.

더욱 믿기지 않는 건....
지금까지 그녀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세미도 나처럼 누군가와 엮이는 것을 싫어했고
나도 타인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비록 이웃이었다고 해도.....
누군가처럼 계속 옆에 있을 듯 하다가
휙 사라져버리는....
그런 일 없이.....
쭉 함께 한다는 것.....

그래서

세미와의 이별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재수를 하면서 연락이 끊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헤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세미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이 그것을 증명했다.






131.

" 에??? "

철통 같이 닫혔던 문이 열리고 세미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에다가 양손으로 상까지 들고.

상???

이 집에 와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밥상이었다.
이사 올 때부터 방에 있었던 상.

크기도 나 혼자 밥 먹는데 쓰기엔 너무 커서 아예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나중에 이전에 썼던 작은 밥상을 따로 산 것이었는데 지금 그 상을 세미가 들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상을 받아 들었다.
세미 혼자 낑낑 대는 것이 위태스러워 보여서....
왠지 무거워 보여서....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그렇지 않아도 받은 상 위엔 거하게 차려 있었다.

된장찌개.
계란말이.
두부조림.
스팸.
김치.
김.

뭐 비록....
정말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반찬들이지만...
봉지에서 가지런히 그릇에 옮겨 담아 놓은 것들이긴 했지만....
혼자서 먹을 때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특히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찌개의 향기가 제법 그럴싸했다.

" 세미.... 네가 끓인 거야? "

" 쳇... 당연하지 그럼 누가 끓여 주냐? 치..... "

저....
세미야...
이거 먹어도 되는 거겠지?
음식으로 가장한 독극물은 아니지?

-라고 농담을 하기엔 세미의 표정이 너무 비장했다.

음식 만든 사람이 저런 표정이면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흐...

나는 용감히도 숟가락을 들어서 찌개 국물을 한 숟갈 펐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최후의 만찬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마셨다.

후룩.

응?!

천천히 커지는 내 눈동자.

어라...
맛있....는데?

난 한 숟갈 가득 푸어서 밥에 얹었다.
그리곤 쓱쓱 비벼서 한입 가득 넣었다.
세미가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 괜찮아.....? "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한 숟갈 가득 다시 입에 넣었다.

" 마..시져.... 우물우물...."

긴장해서 약간 창백해보이던 세미의 얼굴이 서서히 풀리며 웃었다.

" 헤헤... 다행이다. 처음 끓인 거였거든.... 맛을 봐도 잘 모르겠어서.... 히히... 정...말... 다행이다. 훗..... "

그녀의 말에 나야말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머? 처음... 끓인 거라고? "

" 응...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방송에서 나온 방법이라고.... 쉬운데 맛있다고 해서 그래서.... 해봤거든..... 하하... 다행이다. "

인터넷 만세....
방송 만세....

세미도 같이 숟가락을 들었다.
순간 그녀의 손가락에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 세미... 너 손은 왜 다쳤어? "

서둘러 손을 감추는 그녀.
멋쩍어 하면서 입술을 삐죽 거렸다.

" 두부 짜르는데....실수로 베었어. "

" 하하하.... 머야.... 된장 찌개가 아니라 선지국을 먹을 뻔 했었네? "

" 우씨!!! 많이 베었냐고 물어야지. 인간이.... 나빠... 암튼. "

" 히히.. 미안.... 근데.... 너무 맛있다. 이.... 된장찌개...."

내 말에 세미의 눈동자가 왠지 촉촉이 젖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 바...보.... 밥이나 먹어. 배고파 죽겠어. "

" 그래. "

본격적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반찬도 집어 먹고.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국물에 양껏 밥을 비벼 먹었다.

그 순간 으드득 씹히는 이물감.

응?!!!!!!

방금 먹은 계란말이에서 무언가 딱딱한 것이 부서지며 입 안으로 번지는 느낌.
같이 계란말이를 먹은 세미의 표정도 묘하게 변했다.

억지로 삼키고 다시 집은 계란말이.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악!
이건 소금덩이얏!

이번엔 소금이 한 움큼 들어가 있는 듯 완전 짰다.
덤으로 다시 껍질이 우두둑 씹혔다.

세미도 먹어보고 금세 뱉었다

퉷퉤퉤!

그러나 나는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킨 뒤 말했다.

" 머...먹을 만 한데 왜..... "

그러나 목소리가 이미 낮게 갈라지고 있었다.

" 안 돼! 안 돼! 이건 완전 실패작. 이건 먹지 마. "

세미가 접시 채 들어서는 상 아래로 숨겼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
나는 킬킬 웃으면서 말했다.

" 계란말이도 첫 작품이야? 하하.... "

" 치... 그래! 너 올 시간 다된 거 같아서 서두르다 그랬나 봐. 히잉..... "

" 괜찮아. 맛있어. 계란 껍질이.... 머라더라.. 칼슘이래. 먹어도 몸에 좋데. 히히..... "

" 웃기시네. 그럼 세상 사람들이 그냥 달걀을 먹었겠지. 왜 껍질을 깨고 벗겨서 먹냐? 흥.... "

토라진 그녀가 우물우물 거리며 종알거렸다.
나는 키득거리며 밥상 위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누군가가 준비해준 밥상.
맛이 있던 없던.....
얼마만인지....
기억도 가물거렸다.

나를 위해 만든 음식들을 마주하고 앉아서 웃으며 떠들고 즐겁게 먹었던 적이 언제였지?
엄마가 해준 식사....
마지막으로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은 게 내가 몇 살 때였더라.....?

순간....
갑자기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목이 콱 메이며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난 고개를 숙이고 꾸역꾸역 밥을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안 그러면 세미 앞에서 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남자가 쪽팔리게 그럴 수야 없었다.
애초 이런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세미는 흥흥 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 바보야.... 안 뺏어 먹어. 아직도 밥도 반찬도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 "



**************


어느새 나와 세미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종목은 소맥.
세미가 해놓은 반찬이 꽤 남아서 그것을 안주삼아 마시고 있었다.

" 오늘 나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밤에 한 잔 해도 되겠지? "

" 야... 너... 요새 매일매일이 술이잖아. "

세미가 피이 소리를 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 머 어때? 취하게 마신 건.... 없었잖아~! "

흥....!
없는 건 니 정신머리겠지.

벌써 지난밤 만취해서 골아 떨어진 건 까맣게 잊어먹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도 마시고 싶어졌다.

울컥하는 마음 때문일까....

이렇게 따듯한 저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물론 아까 술자리를 중간에 끊고 나온 것도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누군가 때문에 속상하고...
그 누군가가 나를....
내 마음을 뜨겁게 흔들었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 술이 땡겼다.
브레이크 밟지 않고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마음 편히 술을 마시고 싶었다.

" 그거 알아? "

혀가 꼬부라져서 나오는 세미의 말투가 귀엽게 느껴진다.

" 나도 좋아서 집을 나온 건 아냐.... "

그래....
나도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건 아냐.
집이...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었어.

세미가 고개를 숙이며 술잔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 나도.... 착한 딸이 아니라는 건 알아....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해..... "

" 훗.... "

난 그냥 미소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넌....
착한 딸이야.
난 아버지한테 전혀 미안하지 않거든.
그 사람에게.....
난....
아무것도....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아.

" 그래도.... 엄마는 보기 싫어..... 집에 있으면 숨이 막힐 거 같아...... "

" 그래. 나도 내 아빠가 싫다. 정말로. "

세미가 내 말에 킥킥 웃어댔다.

" 우리는 불효자 불효녀네. 정말.... 못 말린다. "

나는 태평스런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 뭐.... 옛날부터 말썽쟁이였잖아. 우리. "

" 쿡쿡... 그랬지. 그랬어..... "

세미는 쭉 한 번에 잔을 비웠다.
난 그녀의 잔을 채웠다.

" 너..... 여자친구 있어? "

잔을 들어서 술잔을 비춰보던 세미가 갑자기 물어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술잔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무심한 표정의 세미를 보고는 난 쓴 웃음을 지었다.
천천히 방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 풋... 뭐냐...? 갑자기.... 싱겁긴.... "

그때 세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뚱한 표정.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눈동자를 피했다.
헛짓꺼리 하지 말고 대답이나 하라는 듯한 압박이 느껴지는 시선 속에 우물쭈물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 하하.... 내가 무슨 여자친구가 있겠냐....? "

순간.....
한 얼굴이 머리에서 나타났다가 서서히 지워졌다.

툭 나타나서 말을 건네고....
아무렇지 않게 간식거리 나눠주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겠다고 엉덩이 비비면서 내 옆에 앉던 그 아이.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내 곁에는 기댈 수 없다고 말하고....
멀어져버린 그 뒤....
졸업식에서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한 번 눈웃음....
눈인사로 대신하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른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은 들었는데....
겨울에 보내왔던 SNS가 그 아이가 나에게 한 마지막 이야기.
그걸로 프로필 사진이 바뀌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젠 안하는지....
더 이상 바뀌지 않고 있었다.

세미는 고개를 돌렸다.

" 피.... 넌 연애도 안하고 머했냐? 이팔청춘이라고 하잖아..... 대학생이 되었음 소개팅도 하고 그래야지. 여자애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청춘에 연애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도 없데. "

무심한 듯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왠지 멀리 들리는 아지랑이 같다.

" 하.... 그래서 넌 연애 많이 했고? "

난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냈다.
그래야할 것 같았다.

세미는 내 말에 킥킥킥 웃어댔다.

" 나야~ 많이 했지. 나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

" 헤.... 좋겠다. 인기 많아서..... "

시큰둥 말했지만 왠지 마음 속에서 불꽃이 화르르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남자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세미를 상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머지...
이 기분은?

난 생각을 떨쳐내며 말을 이었다.

" 그래서 찐~하게 연애를 해봤고?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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