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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화 〉열두번째 이야기. 거미줄에 걸린 나비 (7) (197/335)



〈 197화 〉열두번째 이야기. 거미줄에 걸린 나비 (7)

- 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린다고 해도...

점점 조여오는 거미줄은

더욱 엉키며 달라붙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엔...

이미 승자의 잔인함이 듬뿍 감겨 있었다.

앞으로 올 미래는....

이미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눈을 감고 처분 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197.

입가에 라테의 흰 거품을 묻히며 잔을 내려 놓는 정훈은 말 그대로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능글거리는 미소.
살짝 위로 올라간 입꼬리.
나는 부르르 떨리는 뒷덜미와 소름을 느끼며 손을 꽉 쥐었다.

" 몰라서 그래요? 그...그런 사진도 보내놓고.... 날 강제로 여기까지.... 끌고 왔으면서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에요? "

" 아항?  하하하.... 그 사진? "

사진.
회사 앞에서 내 휴대폰으로 보낸 메세지.

그 문자엔 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헐벗은....
쾌락의 순간....
붉은 혈색이 볼과 가슴에 번져 있는....
내 상반신 모습.

어제....
처음 정사를 나눈 시간은 그나마 꽤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단편적으로 뚝뚝 끊어져 있진 했지만.

그러나 그 뒤....
밤새 있었던 시간에 대해선 마구 잘려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그렇기에 그가 보낸 사진에 심장이 뚝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그냥...
실수로만 생각하고 피하려고 했던.....
간밤의 시간이 내 생각대로 되지는 못할 것이란 의미도 되었지만....
이젠 확실히 정훈의 악의에 대해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협박...

이전에...
머리에서 지웠던 <>라는 것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되돌려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정훈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거리며 입을 뗐다.

" 그건 한나 니가 길거리에서 귀찮게 실랑이 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그러게 왜 순순히 차를 안타고 팅기고 그래? 흐흐.... "

" 하.... 오...빠는 그런 식으로 여자를 차에 태우나 보네요? "

<>라는 호칭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간 입에 붙었던 습관이 결국 자연스럽게 소환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너... 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정훈씨라고 하는 것 또한 이상해서 다른 호칭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심....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강하게 반발하고 싶어도....
문제의 사진을 본 뒤 움츠러드는
내 자신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뭐.... 경우에 따라서 다른 거지. 여자에 맞는 대응이랄까? 후훗... 한나 너에겐 너에 맞춰서 말이야. 후후..... "

이....
남자.....
정말.....

계속 능글맞게 웃는 그의 얼굴에
앞에 있는 뜨거운 자몽유자차를 확 끼얹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꾹 애써 마음을 누르며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말을 받았다.

" 하... 그래서... 여기까지 데려와서 하고 싶은 말이 먼데요?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거에요? "

나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훈은 킥킥 웃으며 다시 잔을 들었다.

천천히 마시며 목의 아담스 애플이
움찔움찔 거리는 것을 보니 다시 부글부글 욕망이 피어올랐다.
저 얄미운 목젖을 탁 손날로 쳐버리고 싶은.

그렇게 내적 갈등에 빠져 있는 나를 두고
입가에 하얀 라떼 거품을 다시 묻힌 채 잔을 내려놓은
정훈이 내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 훗... 남자가 여자에게 할 얘기가 뭐겠냐? 큭큭.... 만나고 싶다 이거지. "

" 마....만나요? 나를...요? "

" 하하.. 당연하지. 여기 누구 다른 여자가 있나? 정확히는.... "

그의 눈이 먹이를 보고 있는 뱀처럼 번들거리며 빛났다.
순간 온몸에 싸늘한 소름이 쫙 번졌다.
그리고 들리는 정훈의 목소리.

" 다시 너를 따먹고 싶다 이거지. "

쿵...

어째서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걸까.
하지만 순순히 이 남자를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 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에요? 저질..... 같으니. "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서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매듭도 짓지 않고 뛰쳐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협박 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 푸하.... 저질이라.... 그 저질한테 박아달라고 애원하던 누군가에게 들을 말은 아닌거 같은데... 후훗.... 지금도 보X가 벌렁거리면서 젖어있는 건 아니겠지? 쿡쿡..... "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쳐나가려는데 다시 울리는 알림음.
정훈에게서 온 문자였다.
뒤를 돌아보며 노려보는데 그는 킥킥 웃으며 입을 열었다.

" 한번 보는 게 좋을 걸? 그리고 어차피 나가봐야 차도 없어. 콜택시라도 불러야 할텐데 부르기 전에 먼저 보는 게 어때? 후훗..... "

어차피 어떤 것을 보냈을지 뻔히 짐작은 되었다.
저번에 보냈던 그런....
추잡한 사진일테지만.....
그의 말 그대로 나가봐야 마음대로 바로 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더이상 나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순간 터져나오는 소리.

" 아악... 아아.. 좋아! 미쳐... 아아!! 보지가 찢어질 것 같아~! "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 화면을 꺼버리고 주저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혹시나 누군가 그 소리를 들었을까봐 서있을 수가 없었다.

눈이 한껏 커진 것을 느끼며 정훈을 보는데
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어깨까지 들썩이며 낄낄낄 웃어댔다.

바로 꺼버리는 바람에 확실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소리를 질러대는 건 내가 확실했다.

흔들리는 화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헐떡거리는 모습.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동영상....

정사를 나누는 중 찍은 모양인지
저번에 보낸 사진처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나만 나오고 있었다.

" 지금 머...뭐하는 거에여! 이..... "

차마 말을 더이상 잇지 못했다.
수치심과 분노로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무엇을 따지고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정훈은 밉살스러운 얼굴로 여전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 말했잖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흐흐... 자꾸 도망치려고 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

" 이런 걸로 지금 날 협박하는 거에요? 혀..협박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

" 큭큭.... 협박이 되는 거 같은데? 지금도 그래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거 아닌가? "

" 하.... 좋아요. 어디 맘대로 해보세여. 난 바로 신고하고 말테니까! "

핸드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기 위해 어플을 실행하려는데 정훈은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커다란 화면.
그리고 거기엔 톡 화면이 열려 있었다.
그런데?

" 아...아니... 이건? "

난 믿을 수 없어서 그의 핸드폰을 무의식적으로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정훈은 살짝 뒤로 빼며 내 손길을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화면은 열려 있어서 그 안의 내용은 볼 수 있었다.

그건....
나와 그와의 톡 화면이었다.

이전에 주고 받았던 톡.
간간히 안부를 묻는 그의 톡을 건성으로 답했던 시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태섭의 선배로서 대했던 메세지와 달리 최근에 있던 톡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 오빠 ㅎㅎ 머해요? 저 이제 집에 도착했어여 ]

정훈 오빠 : [ 흐흐 그냥 침대에 누워있지. 너하고 있었던. ]

[ ㅎㅎㅎ 아 나도 오빠하고 있으면 좋을텐데.... 출근해야되서 ㅠ_ㅠ ]

정훈 오빠 : [ ㅋㅋㅋㅋ 밤새 같이 있었는데 모잘라? ]

[ 치이... 오빠는 충분했나봐? ]

정훈 오빠 : [ 흐흐흐... 그럴리가! 농담이쥐. 먹어도 먹어도 맛있더라. ㅋㅋㅋㅋ ]

[ 피이 내 몸만 좋구나? ]

정훈 오빠 : [ 그럼 넌 어떤데? ㅎㅎㅎ 나랑 또 안하고 싶냐? 난 한나 너랑 하니까 좋던데 ㅋㅋㅋ ]

[ 나도 좋긴 한데..... 정말..... 죽을 뻔 했잖아.... 오빠 체력.... 너무 좋아서 감당할 수 없어.... ]

정훈 오빠 : [ ㅎㅎㅎㅎ 아직 전력으로 하지도 않았는데....? ]

[ 하.... 난 일년치 하루에 몰아서 한 거 같아... 아직도 거기가 찌릿거려..... ]

정훈 오빠 : [ ㅋㅋㅋㅋㅋ ]

[ 아... 오빠하고 얘기하니까 또 하고 싶어졌어... ㅎㅎㅎ ]

정훈 오빠 : [ 그럼 출근하지 말고 다시 와 ㅋㅋㅋ ]

[ 흥.... 나 회사 짤리면 먹여살려줄 것도 아니면서. ]

정훈 오빠 : [ 푸하 먹여살리는게 뭐 어렵다고? ㅋㅋㅋㅋ ]

하아....
대체...
이게 뭐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정훈은 내가 볼 수 있게 글씨 폰트도 크게 키운 상태였다.
거리만 유지하고 있었던 터에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말도 안되는 내용.
유치찬란한 내용에 심장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알 수 없는 건 이런 메세지를 주고 받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정신을 잃고 잠이 든 사이에
내 핸드폰을 열고 한 것인가 했는데 주고 받은 시간이 오늘 아침이었다.
한참 자취방으로 가던 시간이나....
방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구....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것으로 만들어 낸 걸까?
대체 이게 머야....?

당혹감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등 뒤로 써늘한 느낌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정훈이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 신고라... 뭐 어떤 것으로 신고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강간? 이렇게 문자도 주고 받았는데 과연 될까? 아 사진.... 동영상.... 보낸 것으로 협박? 이것도 좀더 보내줄까? "

" 됐어여! 보고 싶지 않아요!!!! "

나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아니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작게 외쳤다.
정훈은 빙그레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 하하... 그럼 내 꺼에서 보여주지. 흐흐.... "

그리고 바로 화면을 만지더니 실행된 동영상.
볼륨은 조절된 상태에서 재생되고 있어서 아까 내 휴대폰에서 터져나왔던 것처럼 짱짱한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고 있는 내게는 충분히 들리고도 남았다.

아까처럼 나를 내려다보며 찍고 있는 앵글.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내 얼굴이 간간히 선명히 드러났다.

" 아아... 더 박아줘요... 아아... 자기.... 자기 사랑해요.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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