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아나운서와 호텔에 가다
"원장님 오늘 도와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제서야 나는 그 아나운서 코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쌍커플도 눈 감을때마다 부자연스러웠다.
표정 전체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얼굴 근육과 표정이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할까.
"야...너 그걸 그 짧은 인삿말로 때울려고 그래...안돼! 다른 걸로라도 갚어. 녹화 펑크 난다고 해서 힘들게 원장님 섭외해 왔는데. 너...나 죄송해서 원장님 얼굴 다시는 못봐."
"아니 괜찮아요..."
나는 분위기가 불편해서
그렇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럼 원장님 우리 이차가요...내가 재미있게 놀아드릴게요. 이차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셔야 돼요. 호호호"
"재미 없긴만 해봐라...내가 너 다시는 안 본다."
우리는 그렇게 고기를 먹고
냉면을 한 그릇씩 먹었다.
"이차는 어디로 가죠?"
"바로 앞에 잘 가는 노래방 있어요."
"네..."
나는 고깃집 계산을 하고
앞장서는 아나운서를 따라갔다.
아나운서의 뒷태는 그럴 듯 했다.
커리어 우먼의 티가 진하게 났다.
내게 스폰서를 구해 달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노래방은 크고 쾌적했다.
화면에 멋진 바닷가가 펼쳐졌다.
"원장님 진짜 노래 잘해..."
"원장님 먼저 하세요..."
나는 노래하라는 말에 절대로 빼지않는다.
임재범의 비상 7153
나는 내가 하는 노래의 번호를 외우고 있다.
바로 반주가 나왔다.
섬과 바다의 멋진 풍경이 펼쳐 졌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도입부만 했는데도
아나운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봤다.
하트가 눈에서 반짝반짝 하는 것을.
나는 노래에 푹 빠져 열창을 했다.
임재범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로.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아나운서와 지은이 두손을 들어 물결을 치며 노래를 따라했다.
가수가 된 기분이었다.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정성스럽게 노래 했다.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나와
같이 노래 하기 시작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아나운서가
두소절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 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여기까지 부르곤
폭풍오열을 했다.
나는 여자가 울 때
어찌 할 바를 모른다.
나는 그저 아나운서를 안아 줬다.
아나운서가 내게 덥썩 안기며
더 울었다.
어깨를 들썩 거렸다.
"원장님 제게 힘이 되 주세요...저 너무 힘들어요..."
이건 무슨 상황인지....
그래도 남자로서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힘내세요."
빵빠레 소리가 들렸다.
점수는 얼마 안나왔다.
바로 아나운서가 예약한 곡이 나왔다.
<이은미의 애인있어요>
나는 소파로 들어가 앉았다.
맥주 캔을 따서 들이켰다.
아나운서의 노래는 수준급이었다.
여유가 넘쳤다.
방금전까지 울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그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눈에만 보여요~"
를 멋지게 부르면서
손으로 눈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안경을 만들고
나를 바라봤다.
퍼포먼스가 마음에 들었다.
"내입술에 담아둘거야"에서는 내게 키스를 날리더니
"그사람 그대라는 걸~"에서는 대놓고 나를 가리켰다.
행사장에서 뛰는 프로가수같은 퍼포먼스
마음에 들었다.
빵빠레 소리와 함께
99점이 나왔다.
아나운서는 팔짝 팔짝 뛰며 좋아했다.
다음 노래는 지은이가 신청했다.
<동지를 위하여>
"원장님 같이 불러요..."
지은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다.
전주가 웅장한 코러스로 시작되었다.
"그대가는 산 너머로...빛나던 새벽별도...어두운 뒷골목에 숨직이던 흐느낌도..."
나는 성악발성으로 호흡을 모아 노래 했다.
"피투성이 비구름 되어...진달래 타는 언덕되어..머물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지은 뒷부분을 받아 불렀다.
지은의 노래는 광장의 확성기에서 들리던
여대생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지은이가 스스로 취소를 눌렀다.
나는 다시 외우고 있는 임재범 노래를 눌렀다.
< 7033 고해>
잔잔하고 꽉찬 전주가 시작되었다.
"어찌합니까...어떻게 할까요...감히 제가 감히 그녀르을 사랑합니다아~ 오오"
여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원장님 너무 좋아요~~"
나는 왜 여자들이 노래 잘 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 지
이론적으론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적으론 알고 있다.
아나운서가 몸을 움직여 내 경험 데이터를 보강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팔장을 끼고
내 얼굴에 입맞춤을 했다.
나는 그녀에세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입술을 핥았다.
"제게 그녀 하나마아아안~~~ 허락해 주소서~~~"
나는 감정을 실어 노래를 마무리 했다.
아나운서가 내 얼굴을 감싸고 키스했다.
나는 그녀의 혀를 받아 주었다.
"허락해드릴게요. 원장님 오늘 절 가지셔도 돼요..."
아나운서가 내 귀에 바람을 불었다.
내 등어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를 눕히고 싶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맥주 한캔을 또 들이켰다.
아나운서 노래가 나왔다.
옛날 감성의 반주였다.
강수지...보라빛 향기
"그대모습은~ 보라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그녀는 내 앞으로 걸어와 내 손을 잡아 무대로 데려갔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따라갔다.
"외로움이 다가와도~ 그대 슬퍼 하지마~~"
나는 아나운서와 눈을 맞추며 3도 화음을 넣었다.
아나운서는 신이 나서 열창을 이어갔다.
그녀는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대 나에게 사랑을 건네주운 사아라암~~"
이후로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귀여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춤을 따라 하기도 했지만 어색했다.
나는 춤을 잘 못 춘다.
그녀는 마지막 가사
"사랑을 건네준 사람"
을 애간장 끊어지는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입술에 립스틱을 잔뜩 묻히고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나는 스크린 앞에 마이크를 들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지은이 예약한 곡이 흘러나왔다.
김삼연씨가 피를 토하는 듯한 비장하고도 호소력 있는 창법으로 불렀던
<이 산하에>
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동학농민운동과 삼일운동, 독립운동 열사들을 생각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아무런 기교 없이 담담히 불렀다.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마누에 흐르던 소리없는 통곡이어든~ "
아나운서의 눈이 반짝였다.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갑자기 음이 점프하는 구간이 많아 주의 하며 불렀다.
다행히 실수 없이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살아 이 한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의 햇불 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감동적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는 김삼연씨처럼 피토하는 발성은 감히 따라할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성악의 빠사지오 발성을 활용해 고음을 부드럽게 넘겼다.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을 처절하게 연기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들의 박수가 쏟졌다.
아나운서가 달려나와 나를 안아줬다.
우리는 일찍 노래방을 나갔다.
노래방을 나오니 맞은 편 건물에 호텔이 보였다.
지은과 내가 먼저 객실로 들어가고,
아나운서에게 문자로 객실 번호를 알려줬다.
아나운서는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객실로 들어왔다.
"나 여기 들어오는데 가슴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스포츠 신문 1면에 날뻔 했네...어이구 어련하시겠어...파파라치는 안 붙었어?"
"언니 지금 나 무명 아나운서라고 놀리는거지..."
"아니야...무명은 무슨 무명...내 주위에 네 이름 아는 사람 엄청 많아. 그럼...이지영 아나운서...엠비씬가 케비에슨가..."
"언니~~~증말 걘 동명 이인이잖아~~~"
"너 엠비씨 아니었어?"
여자들이 한 편의 씨트콤을 찍고 있었다.,
호텔방은 침대가 두개 있고
꽤 넓었다.
야경도 괜찮았다.
"원장님 우리 와인 마셔요..."
아나운서는 내게 부탁을 하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몸을 배배 꼬았다.
"네.."
나는 인터폰을 들고
와인과 안주거리를
룸서비스로 주문했다.
금세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나운서는
번개보다 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나는 만원짜리 한장을
직원에게 팁으로 드렸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는 인삿말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지은이 화장실 문에 대고 장난쳤다.
"이지영 아나운서...이지영 아나운서...안에 계신거 다 압니다. 저희는 폭로 전문 잡지 프라이데이 입니다."
"언니 증말 너무해~"
지은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나운서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새로 한 모양이었다.
얼굴이 더 화사해졌다.
번개보다 빨리 뛰었는데
언제 가방까지 들고 들어갔는지.
왠지 평소에 몸을 자주 숨겨본 솜씨 같았다.
아나운서가 와인이 놓인 자리로 왔다.
"야~ 요샌 그 국장인가 그 개새끼가 안 찝쩍거려?"
"아 몰라 언니. 걘 이번에 들어온 신입하고 벌써 갈 때까지 갔대...내가 그냥 못이기는 척 하고 해줄 껄 그랬나?"
"어휴...이 화상아...너도 이제 나이들어간다...이거봐 여기 주름지는거..."
"뭐...주름? 진짜? 어디...."
아나운서는 거울을 들어 요리조리 주름이 있는지 들여다 봤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