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파란 알약의 유혹 - 독이 든 성배
변호사가 놓고 간 명함을 찾았다.
전화했다.
"변호사님 멀리 안 가셨죠? 한번 깨니 잠이 안 오네요."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지금 다시 올라가겠습니다."
변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변호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게 호감을 얻어 내려고 노력했다.
"두번 걸음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아...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거...들고 왔습니다."
변호사는 과일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네 감사합니다."
"원장님...몸은 좀 어떠세요?"
"여기저기 많이 아프죠. 뼈도 부러지고...14주 나옵니다. 상해로...아마 죽도하고 마대자루로 맞았으니까 특수상해겠네요."
"원장님 워낙 잘 아시겠죠...맞습니다. 팔에 기브스 하신거 보니까 골절 이신거 같고...14주 진단서는 떼셨나요?"
"아직 안 뗐어요. 변호사님 만나보고 뗄려고."
"잘 하셨어요. 상해진단서 비용만 해도 15만원에서 20만원하잖아요."
"그렇다고 하네요."
"원장님 그러니까 상완부 뼈가 골절 되시고, 다른 곳은 다치신데 없나요?"
"늑골에 골절 있어요. 다른 타박상이나 염좌는 말 할 것 도 없죠."
"아 네...제가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 의뢰인이 진정어린 사과를 할 겁니다. 그렇지만 말로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현실적으로 원장님 경제활동을 못하고 계시고, 또 병원비에, 정신적 고통까지 그걸 보상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장님 혹시 생각하신 금액이 있으신가요?"
"변호사님 먼저 말씀해 보세요."
"네 그럼 우선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게요. 자동차 보험회사에서는 전치 몇주냐에 곱하기 50에서 70을 보통 씁니다. 원장님 말씀대로..14주라면 700에서 980마원 정도 되겠네요. 보통 조정을 하다보면 통상 이보다 적은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럼 저도 말씀 드려볼게요. 물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겠고요. 경제적인 손실을 고려해 보면, 우선 제가 적게는 한달 길게는 두달 일을 못할 것 같아요...국세청에서 발표하는 이비인후과의사 평균소득이 1억정도 됩니다. 한달에 대충 830만원이네요. 두달이면 1660만원. 여기 병원비가 한 400만원 이상 나올거 같아요. 나중에 이차 수술도 해야 하고 물리치료해야 하니까 못해도 600만원 이상 나오겠죠...그러면 그것만 2300만원 정도 되고 정신적인 충격. 아마 전 몸이 괜찮아지면 신경 정신과도 갈 생각 있습니다. 거기서 소견서나 진단서 떼 드릴게요. 저는 아무리 못해도 3000만원이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정이 좀 괜찮으시면 5000만원 정도 주시고요. 5000만원 주시면 진심어린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네 원장님 잘 들었습니다. 제가 혼자 결정한 사안은 아닌거 같고 일단 이 내용을 의뢰인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잘 말씀 나누시고 연락 주세요. 합의 안되도 민사로 진행 할 겁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럼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변호사는 인사를 꾸벅 하고 병실을 나갔다.
변호사가 나가자 마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나와 열두시를 약속한 간호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간호사가 들어와
내 체온과 혈압 맥박을 측정하고
링거액을 교체 했다.
"간호사님들 교대 했나요?"
"네 교대했어요..찾으시는 분 있으세요?"
"네, 어제 새벽부터 여기 담당하시던..."
"네 그 간호사님 퇴근 하셨어요. 휴가 가셔서 아마 일주일 뒤에나 오실텐데."
"네 알겠습니다."
기대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답답해서 링거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의점에 갔다.
바나나맛 우유를 4개 샀다.
갑자기 달달한게 마시고 싶어졌다.
편의점 봉투를 들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방금전 내 병실에 들어왔던 간호사를 만났다.
바나나맛 우유 두개를 건넸다.
"하나는 간호사님 꼭 드시고 다른 하나는 주고 싶은 사람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간호사는 바쁜지 뒤돌아 종종걸음을 하며 사라졌다.
병실에 돌아왔을땐
식판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식판에 있는 밥과 음식을 깨끗하게 비웠다.
바나나맛 우유를 한번에 들이키고
세면대에서 양치를 했다.
바람맞은 얼굴이 쌤통이었다.
할일이 없어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잠이 든 거 같았다.
덩치 큰 지아의 남자친구가
나를 보며 비웃었다.
"남의 여자 먹으니까 좋냐? 다음엔 살려서 안 보낸다."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든 칼날이 섬뜩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잠을 깼다.
꿈인 줄 알면서도 무서웠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데스크 직원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네, 원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네 괜찮아요. 오늘 별일 없었지요?"
"네 말씀하신 대로 휴진 했어요."
"잘 하셧어요. 내일은 선생님이 한 분 가실거에요. 흉부외과 전공이시긴 한데...기본적인 진료만 하실거에요. 불편하지 않게 잘 도와 드리시고...음.. 점심식사비 드리시고요..또 다른 사항은 지금 생각이 안나는데...천천히 그때 그때 마다 서로 연락하시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원장님 푹 쉬세요."
이제 할 일이 무얼까...
하며 지루해 하고 있을때
지은이 들어왔다.
여자와 같이.
여자는 아마도 스튜어디스 같았다.
둘은 술 한잔씩 한 듯
얼굴이 벌개 있엇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언니가 원장님 꼭 보고 가야된다고 해서 왔어요...방가방가."
"아 네...스튜어디스시라고.."
"네...그런데 지금은 비행기는 안타고 내근 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원장님 데리고 오라며...막상 보니까 왜 그렇게 수줍어 해요..."
나는 냉장고에 남은 바나나맛 우유를 내밀었다.
"이거 드실래요?"
"와...나 이거 좋아해요."
"원장님 나는?"
지은이 입이 나왔다.
"마지막 바나나우윤데...어이구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 내가 편의점에 사러 내려가야 하나 보다."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아픈 온 몸을 가리키며 과장되게 아픈 척 했다.
"농담이에요. 어딜가요 지금."
지아가 나왔던 입을 집어 넣었다.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제 마음이에요."
나는 지아에게 쵸콜렛 박스를 주었다.
"와~~ 바나나 우유보다 이게 더 좋아요..."
지은이 내 뺨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먹을 뺐다.
"원장님 이거 선물."
"뭔데요?"
"손 벌려 보세요. 떨어뜨릴게요."
나는 손을 벌렸다.
지은이 내 손 위에서 주먹을 폈다.
까만 무엇인가 떨어졌다.
지아가 입던 팬티였다.
내 정액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코로 가져 왔다.
변태같은 표정을 지으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지은이 내 어깨를 때렸다.
"뭐야~"
"와~~대박...언니 원장님 싸이코 같아...개 웃겨..."
스튜어디스를 웃겼으니 성공이었다.
"식사들은 하셨어요?"
"네 우리 술도 먹고 밥도 먹고 기분 좋아요. 원장님 보니까 재밌어서 또 기분 좋아요."
"별말씀을. 저 별로 재미 없는데, 아마 이거 석고 붕대 하고 있어서 웃기나봐요."
"헤어스타일도 웃겨요~ 사자머리래~ 사자머리래~"
나는 천진난만한 스튜어디스 앞에서
부끄러운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원장님 농담인데 안받아주니까 어색해요. 죄송해요"
"야 우리 가자. 원장님 쉬셔야 돼. 원장님 잘 쉬시고 다음에 같이 봐요...우린 이만 갈게요."
지아는 스튜어디스를 밀며 병실을 나갔다.
잠시간 마음이 들떠서 좋았다.
내가 지은이 아니면 어디서 스튜어디스를 만나보겠는가.
들떴던 마음도 가라 앉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이 들 듯 말 듯 했다.
평소엔
잠이 부족해서 고생했는데
막상 맘을 먹고 자려니
잠이 안 왔다.
빨리 열두시가 지나
내가 바람을 맞은 건지 아닌지
확정 짓고 싶었다.
뭐 안 와도 그만이었다.
간호사 아니어도 여자는 많았다.
나는 내 마음이 실망하지 않도록
내 자신에게 최면을 했다.
시간이 더디게 갔다.
이제 겨우 아홉시.
창문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가 안 올 확률이 90퍼센트가 넘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들은 비오는 날
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
너무 챙길게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퇴근했는데,
옷을 다시 챙겨입고 온다는 것은
내가 아주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포기 상태로 시계만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열두시가 되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간호사가 아닐 거야
라고 내게 외쳤다.
실망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함이였다.
자동적인 방어기제였다.
과연
실망했다.
간호사가 아니었다.
지아였다.
지아가 링거투혼을 발휘하며
나를 찾았다.
지루했던 세시간 전에 방문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은 50퍼센트만 반가웠다.
오히려 간호사와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나는 간호사가 올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네 어서와요 지아씨."
"그 무서운 간호사 없죠?"
"아 그분 지금 휴가중이래요..."
"원장님,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 간호사한테 관심 있어요?"
여자의 육감은 항상 나를 놀래킨다.
"아니요. 다른 간호사분이 내 체온 재면서 얘기 해 줬어요. 난 지아씨 말고는 관심 없어요."
나는 지아를 보며 바지속 파란 알약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