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변호사가 알려준 요령
"도주 우려가 있어서 안됩니다."
그 남자는 딴 곳을 보며 예의 없는 대답을 했다.
"변호사 한테 전화 해보신다면서요...전화 해 보세요."
그는 줄곳 공격적인 표정으로 내 신경을 긁었다.
그의 어투는 나를 파렴치범으로 확정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네 원장님."
"죄송합니다. 방금 ㅇㅇ경찰서 강력계로 연행 되었습니다."
"제가 내일 아침에 일찍 가보겠습니다.혹시 경찰들이 부당한 일을 하면 꼼꼼히 기록해 놓으시고 일단은 묵비권을 행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 변호사가 뭐래요?"
심리적 전술인지 그는 계속 내 신경을 긁고 있었다.
"별 말씀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오시기로 했습니다."
"훌륭한 변호사구만...야밤에 전화하는 의뢰인도 훌륭하고."
비꼬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형사님 저...수사와 관련 없는 말은 좀..."
"아저씨 좀...뭐요...말 해봐요..."
내가 형사를 너무 높게 평가해왔던가.
느낌이 동네 양아치 같았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묻는 말에 똑바로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명확히 말 해 주세요. 알겠습니까?"
그는 마치 신병 훈련소 조교처럼 나를 훈령병 대하듯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름 윤석영 맞습니까?"
"최석영입니다."
"성ㅇ르 바꿨네. 그건 진심을 담아 쏘리~. 자 이젠 주소 불러봐요."
"ㅇㅇ구 ㅇㅇ동 ㅇㅇ아파트 104동 1302호입니다."
"직업?"
"이비인후과 의사입니다."
"의사라 간호사를 강간하셨구만..."
"그런 일 없습니다."
"윤선영씨 알죠?"
"모르겠습니다."
"이런건 안다고 해도 되어요 의사선생님. 그 강간당한 간호사님 이름이 윤선영이에요."
"제가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아...그럼 이름도 모르고...하긴 강간하면서 이름 알 필요가 있나..."
"그럼...윤석영씨 아니 최석영씨는 ㅇㅇ월 ㅇㅇ일 ㅇㅇ병원 병실 ㅇㅇ호에서 여자 간호사 윤선영씨를 강간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럼 ㅇㅇ병원 여자 간호사 윤선영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아 증말...이러다 밤새요...후딱하고 주무실 수 있게 배려해 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안되겠구만...시작부터 날 힘들게 하시네..."
나는 변호사가 알려준대로
모르는 사실이나 불리할 것 같은 사실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했다.
진술 조서를 작성하는 동안 형사의 고성이 계속 되었다.
나는 담담히 있었다.
나를 지켜줄 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침이 밝은 후에
나는 유치장에 들어갔다.
유치장 안에선 수갑을 풀 수 있었다.
유치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잠들었다.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서,
앉을 만한 공간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겨우 벽에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얼마간 졸았을까.
변호사가 나를 찾아 왔다.
"원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특별히 아픈데는 없는데...잠을 못자는게 괴롭네요...혹시 병원으로 다시 갈 수 없을까요? 내가 팔도 완전치 않은데..."
"네 제가 알아 볼게요...그런데 원장님...제가 진술서 훑어 봤는데 모든 정황이 원장님에게 불리합니다. 새벽에 근무하던 간호사님께 인터뷰를 따내려 했는데...한마디도 안하겠다고 하네요. 방범 카메라 관련해서는 병원측에서 제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마 수사기관에서 법원 영장을 받아서 영상을 얻으면, 그걸 같이 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원실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서 지내기가 영 힘이 드네요."
"방법이 있긴 한데...일단 여기 유치장에서 지내시는 걸 기본으로 생각하세요"
변호사는 옆에 참관하고 있는 경찰을 의식하며,
핸드폰 액정에 글씨를 썼다.
"가만 있자...제가 연락처를 갖고 있었는데...원장님 나중에 이쪽에서 연락이 올겁니다...."
라는 말은 페이크였고,
변호사는 내게 액정을 보여주었다.
[꾀병부리세요. 지금]
"원장님 전에 제게 말 하셨던 합의금 건 있지 않습니까?"
"네...허허억...허걱."
나는 의자에서 떨어졌다.
호흡곤란을 연기했다.
또, 온 몸에 경련이 온 척 했다.
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참관인 경찰이 급히 전화를 했다.
"여기 접견실에 피의자 실신했습니다."
경찰들이 뛰어 들어왔다.
나를 업고
복도을 뛰어
경찰차를 태웠다.
그렇게 나는 원래 병실로
돌아왔다.
사실 유치장에서 할 일도 없었다.
진술서는 이미 완성되어 싸인까지 했다.
더 조사할 것 도 없었다.
48시간을 꽉 채우는 관행에 따라
나는 그저 할 일 없이 그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껴야 했다.
병실은 상대적으로 아늑하고 좋았다.
바뀐것은
경찰 두명이 병실 밖을 지키는 것
그것 말곤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곧 깨달았다.
담당 교수가 들어왔다.
아무 말이 없었다.
싸늘 했다.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같은 의사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별 이상 없으시죠?"
"네."
그게 끝이었다.
수련의들은 수근 거리며 나갔다.
바이탈 체크하러 온 간호사도
내게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체온을 적외선 측정기로 대신했다.
체크가 끝난 후에도 아무말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나도 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되었다.
자기들 동료인 간호사가 강간당했고,
그 강간범이 바로 나였다.
나라도 그 강간범을 저주하고싶을 것이다.
변호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잘 하셨어요 원장님. 우린 아무래도 손발이 척척 맡는 팀인거 같아요. 여기 원장님 소지품입니다. 폰하고 옷하고"
"그런데 변호사님...제가 이 병원에 있는 걸 여기 병원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잠깐 있었는데 피부로 느끼는 게 크네요. 혹시 저 옆 병원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아마 안 좋아 하겠죠. 하지만, 오해를 벗기 위해 노력해야죠. 제가 인터뷰 하려고 하는데도 압박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옮길 수 있을지 한번 알아는 보겠습니다만, 괜히 재수가 없으면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꼼수부리는 인상을 주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거든요. 일단, 경찰서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니 곧 검찰에서 어떤 조치를 할겁니다."
"영장실질심사는 언제 있나요?"
"아마 내일쯤 있을텐데, 원장님은 여기 계세요. 제가 대리로 가서 결과 잘 받아오겠습니다."
"잘 되겠죠?"
"잘 되야죠...혹시라도 영장이 떨어져도...구속적부심 가서 보석이라도 받아오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원장님 몸조리 잘 하시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특별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변호사가 나간 후 정적이 찾아왔다.
경찰이 밖에 떡 하고 버티고 있으니
병실로 들어올 사람도 없었다.
나 홀로 긴 시간을 멍하게 있어야 했다.
밥 시간이 반가웠다.
식판이 들어왔을 때
나는 반찬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며
식판을 천천히 비웠다.
시간을 오래 끌었다.
하지만 그런 짓도 한계가 있었다.
하는 것 없는 병실 안이 답답했다.
편의점 구경을 하기로 했다.
병실 문을 열었다.
"어디가십니까?"
"편의점 갈까 하는데요."
두 경찰은 서로 눈치를 주고 받았다.
고참인듯한 경찰이 남고
후배인듯한 경찰이 나를 따라왔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쵸콜렛 박스, 바나나맛 우유, 음료수, 천하장사 쏘세지, 다이제스티브 과자...등등 가격도 안보고 바구니에 담았다.
분노의 쇼핑이었다.
"형사님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괜찮습니다."
나는 형사들을 위해
피로회복제를 사기로 했다.
자황이라는 병이 제일 비싸보여
한박스 담았다.
의사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피로회복제는 설탕물 더하기 카페인 더하기 물이다.
제품간에 큰 차이도 없다.
비싸보이는 걸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포장이 고급스러운 걸 선택한 것 뿐이다.
그렇게 형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왔다.
형사들에게 피로회복제 두개를 주었다.
"형사님들 저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많이 죄송합니다. 냉장고에 나머지 병들 넣어 놓을 테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꺼내드세요. 언제든지."
경찰 두명은 내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하고
자양강장제를 받아 마셨다.
나는 빈병을 받아 쓰레기 통에 넣었다.
다시 병실은 무료함으로 채워졌다.
나는 사온 과자들을 뜯어
하나씩 비워갔다.
그때 병실 밖에서 따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왜 여기 있어요?"
"자세한 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안에 원장님은 계세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들어가면 안돼요?"
"안 됩니다."
목소리가 지아였다.
지아는 포기한 듯 더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자가 왔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네. 살아있어요.]
[병실에 경찰이 있어요. 걱정돼요.]
[별일 아닙니다. 모레쯤 경찰이 없을 거에요.]
[정말요?]
[네 아마도 그럴 거에요,80퍼센트 정도. 모레 오세요.]
[네 알았어요. 전화는 되는 거죠?]
[네...근데 통화는 모레 이후에 하는게 좋겠어요.]
나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변호사가 능력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네 알았어요. 몸조리 잘 하세요. 사랑해요 원장님]
[저도 사랑해요 지아씨]
지아와의 문자로 시간을 때웠다.
문자놀이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하는 동안
시간이 확확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