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스튜어디스의 뿌잉뿌잉 (44/189)



〈 44화 〉스튜어디스의 뿌잉뿌잉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눈들이

내 몸에 꽂혀

나를 따라왔다.


지아가 따라 나왔다.


"원장님 잘 먹을 게요...퇴원하고도 연락해요...나 원장님 없으면 안돼요...알았죠?"

"알았어요. 그럼 몸조리 잘 하셔요."

지아와 인사하고,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서랍장을  열어봤다.

서랍장들이 깨끗했다.



마지막 서랍을 열었을때

나는 해삼모양의 돌기형 콘돔을 발견했다.




뜯은 박스와 안 뜯은 박스가 있었다.

나는 둘 다 챙겨 옷장속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서랍장과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


환자복을 침대 위에 올려놨다.

간호사 데스크로 갔다.

수납증과 처방전을 보여 주었다.

"네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수고 하세요."



엘리베이터로 걸어 갔다.

흔들리는 수액통이 없어서


훨씬 빨리 엘리베이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어

종종걸음으로 로비를 지나

병원을 나왔다.



바깥 공기가 신선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다.


집안 공기가 싸늘했다.



난방을 켰다.



금세 방바닥이 훈훈해졌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음에도

비교적 먼지가 쌓이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 앉아

지은에게 전화했다.




"자기...어디야?"


"나 지금  스튜어디스 애 만나서 저녁 먹으려고."


"난 지금 퇴원했어."

"어...퇴원해도 괜찮은 거야?"

"응. 자기 보고 싶어서 일찍 퇴원했어."


"에이...거짓말. 뉴페이스 볼려고 퇴원한 거잖아요..음흉한 아저씨."




"안녕하세요...원장님...전 원장님꺼에요~~~호호호."

스튜어디스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온 몸이 흥분되었다.




"미친년. 자기야 얘가 몸이 후끈 달아 오른데...내가 미쳐"

"지금 위치가 어딘데?"


"이제 일찍 저녁 먹을까 하고 있어."

지은이 위치는 말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어디서 먹는데?"

"비밀."


"남자도 같이 있어?"

"어머 어떻게 알았어?"


난 사실 그냥 던져본 농담이었다.


흥분되었던  몸이 싸늘해졌다.


"알겠어 맛있게 먹어...."

나는 전화를 끄려고 했다.

그때 다행히,


수화기 너머로 지은이 소리쳤다.

"자기야...장난이야...장난....지금 코엑스에 있어...자기도 올래?"



지은은 연기를 너무 천연덕스럽게 한다.

내 컨디션이 좋을  재미있지만,

몸 상태가  좋으면 분노가 생긴다.

병원에서 금방 나온 내 컨디션은 당연히 안 좋았다.

침을 삼키고 화를 다스렸다.

그래도 스튜어디스는 보고 싶었다.



"그래 알았어...어디 들어가 있어...지금 출발 할게."

"그래 자기야. 천천히 와~"



나는 집 밖으로 빨리 나갔다.

퇴근시간이라 택시를 탈지

지하철을 탈 지 망설였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난 아직 환자였다.

길가에 서 있는 택시의 뒷자석에 들어가 앉았다.



"어서오세요~"

"코엑스몰 부탁합니다."


"네....어이구 손님 팔이 어떻게 부러지셨어요?"

나는 말 많은 택시기사가 싫었다.


대답을 잘  하면,

코엑스까지 가는 내내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에 시달릴 것 같았다.

"코엑스 몰 있는 대로 가 주세요."



나는 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승객으로서 할 만한 말이었다.

택시기사는 바로 수긍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에서


조용히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교통방송을 들었다.


"이럴 수 있을까요...이럴 수 있을까요...서울 시내 모든 고이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 동부간선 도로, 서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모두 꽉 들어찬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오늘 도대체 왜 그런거죠?"

"네 오늘 오후부터 서울 곳곳에서 시위가 시작 되었습니다. 게다가 오후 세시부터 내린 비로 노면이 미끄러워서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몰려들고 있는데...농민들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오늘 농촌문제를 연구하시는 김장겸 박사님 아주 급하게 모셨습니다."


"우선 지금 농가들이 아주 힘든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농산물 시장은 개방되어 사실 우리나라 신토불이 농산물은 경쟁력을 잃은 상태고, 농민들은 계속 빚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농민들이 빚 탕감 문제를 계속 제기 했지만,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습니다. 지역구가 농촌인 의원들 조차 특별한 움직임이 없자, 농민들이 실력행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현재 경찰들이 서울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차단 했습니까? 경찰청에 나가있는 김소연 리포터~"

"네 현재 고속도로와 국도를 모두 통제하고 있기는 한데, 통제가 이루어 지기 전에 이미 많은 수의 트랙터와 트럭, 버스들이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농민들은 여의도에 집결해서 집회를 끝내고, 지금은 서울 각지로 흩어져서 도로를 막은채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금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시위대를 체포하고 교통 통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 새끼들은 왜 지랄들이야....농협에서 돈 빌려주면 그걸로 주식하고 집사고 차사고 딴데다 다 써놓고...빚 갚으라니까 못갚겠다? 저런 날강도 같은 새끼들...세상  좋아졌어...저런 놈들은  때려잡아야 되는데...옛날이 좋았지...어디서 생각도 없이 데모질을 하고 지랄이야...아이구 길 막히는거 봐."




택시기사는 룸미러로  눈치를 보며 혼자 사설을 늘어 놓았다.

내 맞장구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실 나도 짜증이 났다.

농민들의 빚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다만 왜 엄한 서울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하필 오늘 날 괴롭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세계화가  것이고


농업이란 것도 대규모 회사가 경영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선거때 마다 농촌에 있는 노인들의 표를 얻기 위해

이상한 보조금, 보상금, 초저금리 특별대출, 농산물 정부 수매 제도를 만들어서

겨우 연명하는 농민들을 계속 빚더미에 안게 해 놓고,

일이 터지면 정치인들은 딴청을 부렸다.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하필 내가 스튜어디스를 만나러 가는 날

지은에게 전화가 왔다.

분명 독촉 전화일 것이다.

"자기야 어디야?"

"혹시 뉴스 봤나 모르겠는데...지금 길이 엄청 막혀...언제 도착할  모르겠네..."


"배고파서 기다리기 힘든데..."


"그럼 먼저 들어가서 먹어..."


"그래 그럼 우리 마르셰라고 코엑스 들어가는 일층에 있거든...거기 들어가서 먼저 먹을게."


"그렇게 해."

"자기야 그럼 조심히 와..."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다.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려서 지하철을 타기도 귀찮았다.




이정표엔 청담대교가 보였다.


청담대교만 넘으면 삼성역은 금방이었다.

"약속에 늦어서 어떡하죠. 손님...저도 많이 답답하네요?"

택시기사가 기어코 말을 걸어왔다. 따돌릴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자분이 많이 기다리셨나봐요...마르셰 거기 저도 한번 가본적 있는데...어휴 정신없어요...애들이나 가는데지 정신사나워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니까요."

오지랖이 넓은 기사였다. 수화기 너머 지은의 말까지 들은 것 같았다.


"아무리 밀려도 요기 청담대교만 넘으면 바로 도착 하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네."


나는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나시는 분이 사모님이세요?"


택시기사가 은근한 미소를 띠면 또 오지랖을 부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애도 할  있을 때 열심히 해야지 저처럼 늙으면 잘 되지도 않아요."

거울로  그는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나이가 궁금했지만, 긴 이야기의 빌미를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제가 손님만큼 젊었을 때는 거짓말 안하고 열명씩 만났어요. 하루에 못해도 세번씩 떡을 쳤습니다. 그때가 좋았는데...지금은 하고 싶어도 이게 안 서요...의사 말로는 제가 당뇨라는데...아 당뇨하고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요...거참...아 그래서 그 뭐야 좋다는 알약 처방 받아서 먹어봤는데....아 남들은 그렇게  된다는데 왜 저는 안되는지 모르겠어요...거참...혹시 좋은 약 아는  없으세요? 여자들이 지금 다 떨어진다니까요...세상 무슨 낙으로 살라고...."




택시기사의 푸념을 듣는사이

청담대교를 건너 코엑스 앞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 요금을 내고

재빨리 택시에서 내렸다.




마르셰를 찾아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정신이 없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사람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돌아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아와 스튜어디스가 안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서로 박수치면서 웃는 모습이 유쾌해 보였다.


지아가 날 발견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스튜어디스도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의자를 가져다 앉았다.



식사한지 한참 된 모습이었다.


접시에 뼈다귀와 소스만 남아있었다.


"식사들은 하셨어요?"

"네 저희는 배불러요."



"원장님 팔이 불편해서...제가 먹을 거 가져다 드릴게요...오늘 스테이크 맛있어요...추가 비용이 들긴 하는데...그거 드셔보세요...오늘의 추천 뿌잉뿌잉."

스튜어디스가 얼굴에 브이자를 대고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귀여웠다.

지아와 스튜어디스가 내게 음식을 가져오러 일어섰다.

나는 테이블에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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