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들러붙는 여자를 뒤로 하고 또다른 떡을 찾아서 (49/189)



〈 49화 〉들러붙는 여자를 뒤로 하고 또다른 떡을 찾아서

여자들에게 일일이 소변검사 해보라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성병이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임질이나 매독 정도야...웃으면서 넘어가지만

혹시나 HIV라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아는 계속 탕수육을 젓가락으로 집어

 짜장면 그릇에

내려 놓았다.

내 뜻을 말 했음에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일단 참았다.

"지아씨 내가 탕수육 직접 가져다 먹을게요...고마워요."


지아는 다시 내게 서운한 눈빛을 보냈다.




지아는 남은 탕수육을 다 먹었다.


지아가 빠른 손놀림으로


그릇들을 모아 신문지로 감쌌다.

현관문 앞에 내려 놓고 문을 닫았다.

막상 지아와 조용히 마주보니  게 없었다.

우리는 섹스 말고는 할게 없는 사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아는 운동 전문가였다.


체육관이라면 우리는 할게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팔이 정상이 아니니

결국 할게 섹스 말곤 없었다.


그때 지아가 겨우  일이라고 찾은게


과자 먹기 였다.




지아는 과자봉지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이번엔 과자를 내 입속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몇번 받아먹고

결국 지아에게 말했다.

"지아씨 내가 먹고 싶을 때 가져다 먹을 게요."


지아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원장님 나 이제 갈까요? 나 불편하세요?"


"아니에요 지아씨...내가 지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뭔가에 집중하느라고 그래요. 미안해요."


"그럼 원장님  문제 해결 할 동안 제가 밖에 나가 있을게요. 해결 되면 연락주세요."


나는 그러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차마 명시적으로  하진 않았다.




지아는 바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잡지 않았다.

마음이 휑 했다.


지아에게 전화했다.

지아는 전활 받지 않았다.


이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른다.


나는 도무지 여자의 마음 달래는 법을 모른다.




나는 상황을 포기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하게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미술관 선생님이었다.

"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원장님은 잘 지내셨어요? 전 이때까지 원장님 연락 기다리다가, 자존심 다 버리고 먼저 연락하고 그러네요. 어쩜 그렇게 연락이 없으셧어요...보고 싶었은데..."

"아 이것 저것 바빴습니다. 다친 곳도 있고."


"어머나 어디 다치셨는데요?"

"팔이 부러졌습니다."


"어머 어쩌다가요..?"


"넘어졌습니다."


"무슨 일이래...어휴 조심 하시지..."

"그러게요..."

"그런데 원장님 오늘 저녁에  화랑에 혹시 안 오실래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습니까?"

"특별한 일은 아니고...그냥 음악 듣고...원장님이 모델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아하 그거요?"

"네 전 그림 그릴 마음의 준비 다  놓고 있는데, 원장님이 안 오셔서 서운했어요."



생각해보니, 지아가 나가고 나는 혼자 할 일이 없었다.



"네 제가 운전하긴 힘드니까, 택시 타고 갈게요. 몇시에 가면 되나요?"

"아무때나 오세요..."


"그럼 지금 갈게요..."


"역시 원장님은 화끈하셔.. 그럼 기다릴게요."




나는 새로운 옷을 꺼내 입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돌기형 콘돔 두개를 지갑에 넣었다.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인사동까지 가는 길은 엄청나게 막혔다.

아직도 시위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택시는 삼일교 앞 교통 통제선에 이르러


유턴을 해야 했다.



통제선 너머로 종로를 행진하는 시위대가 보였다.



"기사님 저 여기서 내릴게요. 걸어가는 게 낫겠어요..."

"네. 그게 나을 겁니다. 택시들은 시내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거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시위대에 섞이지 않게 조심 조심해서 가세요...차라리 골목길로 가시는게 나을 거에요"



택시기사는 내 안전을 걱정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잔돈을 받지 않았다.


오랜 만에 걷는 길이었다.



중학생때 친구들과 함께 포르노 잡지와 비디오를 사러 왔던

청계천 상가들이 보이질 않았다.


라디오를 만드는 키트를 살겸 포르노를 살겸


친구들과 몰려 다녔던 길이 어딘지 모르게 변했다.


건물 계단 구석구석에


머리짧은 형들이

"뭐 사러 왔냐? 잘  줄게."


하며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무서워서 도망가는 우리들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냅따 때리던


 빡빡이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나는 같잖은 상념에 젖어 있었다.



어학원 건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갈 때

문자가 왔다.

지아였다.

[원장님 절 사랑하기는 하시나요?]


답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할  몰랐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민했다.

[미안해요. 아까는 몸에  안 좋은 일이 생겨, 제가 지아씨께 죄송했어요.]


[사랑하긴 하냐구요]

[사랑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예상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궁이 이어졌다.


상처주지 않으면서 꼬리를 잘라야 했다.


[제가 지금 피검사를 하러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디가 많이 안 좋으세요?]




다시 꼬리가 이어지려고 했다.

[아직 검사 전이라  모르겠습니다. 좀 컨디션이 안 좋네요]

[전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요 원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이따가 간호하러 갈까요?]




나는 깜짝 놀랐다.

꼬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에요. 여기 검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거 같아요. 제가 아는 친구에게 왔어요.]

[네 알겠어요. 건강 잘 챙기세요.]


드디어  충격 없이 꼬리자르기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걸어서 종로를 건넜다.

시위대의 대열을 뚫고 지났다.



다행히 오래전 시절 같이

돌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지는 않았다.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가 화랑 문을 열었다.

화랑 안에는 쇼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벽에 걸린 누드의 미녀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봤다.

선생님이 화랑으로 나왔다.

"원장님 오셨네요?"


선생님은 나를 세게 안으며 인사했다.



"원장님 보니까 너무 좋은데...팔이 그렇게 되서 마음이 안 좋네요."

"괜찮습니다. 시간 지나면 나을 겁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원장님 우리 차 한잔해요."


"네 고맙습니다."




사무실 구석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선생님은 금방 차를 가져왔다.

"원장님 이거 제가 아는 사람 통해서 진품으로 가져온 차에요."

"진품이라고 할 정도면 비싼 차 같은데...어떤 차 인가요?"


"건강에 관해서는 선생님이 전문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쑥스럽긴 한데, 남들이 하는 말 옮기는 거니까 저를 비난하거나 하진 마세요."

"네 부담 없이 말씀 하세요. 제가 비록 면허는 있지만, 사실 모르는 내용 태반입니다."

"네...그럼 말씀드릴게요..호호. 이게 그 보이차라는 거에요. 중국 운남성에서 직접 가져온 건데요. 뭐라더라...장내 미생물을 균형있게 배양한다나...그래서 면역력도 증가시키고...암도 예방하고 그런다고 했어요."

쇼팽의 녹턴이 흐르는 동안 선생님이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아나운서가 보이차를 소개하는 모습같았다.

"네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요즘 의학 연구 트렌드도 장내 세균에 관심이 많아요...면역에 대한 것이나 암예방에 대한 것이나 논문을 직접 읽어봐야 알겠지만, 말씀하신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내 미생물은 실제로 면역하고 관련이 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이차에 좋은 세균의 영양분이 있다면 실제로 건강에 좋겠죠.  무엇보다 건강에대한 긍정적 믿음이 건강을 가져옵니다. 정신이 육체를 이끄는 것이죠. 또 육체도 정신을 이끌고요."


"어쩜 이렇게 말씀을 멋드러지게 하세요...난 진짜 원장님한테 반했어요."

"무슨 말씀을 부끄럽게..."


"마지막 말 예술적이에요. 육체가 정신을 이끈다. 제가 추구하는 예술정신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에요.  정말 육체를 사랑해요. 남자든 여자든 순수한 육체에 그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아 네 저도 선생님의 예술 정신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왜 옛말에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잖아요. 전 그건 여자를 우습게 보고 한 말 같아요."

"어떤 의미로..."


"여자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네, 워낙 오래전 만들어진 고사성어라 남녀에 대한 시각이 다르겠죠. 사실  고사는 복수를 일삼던 시절 자객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입니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냥 붙인거 같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어쩜 원장님은 모르시는게 없어요...사실  원장님이 제 예술작업을 이해하신다고 하셔서, 그 이야길 한 것이에요. 전 한없이 보잘  없는 예술가이지만 누군가 내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준다면 목숨도 내 줄  있을것 같아요."

"네 선생님의 마음 이해 합니다."

"차는 입맛에 맞으세요?"


"아..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맛이네요."

"양약 고어구~~"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먼 길 힘들게 오셧는데...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나가요..."

"화랑은 어떻게 하시고..."


"오실때 데모하는  못보셨어요? 근처 화랑들 진작에 닫았어요..."

"아..그게 또 그렇게 되는 군요..."


"그럼요..데모하는데 누가 화랑에 그림 보러 오겠어요. 오늘 수업도 있었는데 취소했어요...괜히 학생들 여기 오다가 다치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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