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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아기가 생긴다면...아기 아빠는 한사람 (54/189)



〈 54화 〉아기가 생긴다면...아기 아빠는 한사람

"그래요 선생님... 그건 제가 사도록 할게요."

"네 고마워요 원장님."

나는 선생님을 따라 인사동 길을 걸었다.

밤이 되어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었다.



길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하나 둘 짐을 싸고 있었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간판에 해장국이라고 써 있었다.

출입문은 오래된 미닫이 문이었다.



나는 뻑뻑한 미닫이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사장님 우리 감자탕 두명꺼 주세요."


"어..우리 선생님 오셨네요...요즘은 어떠세요? 그림 보러 간다간다 하는데 못가네요."


"팔진 못하고 열심히 그리고만 있어요...호호."

"제가 여유되면 더 사드릴게요...좋은 작품 많이 그리세요."

"네 오늘도 대작이 몇개 나왔어요. 기대하세요 사장님~ 꼭 오셔서 확인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해장국집 사장님은 인상이 좋아 보였다.

뭐랄까 갖은 인생의 풍파를 이겨내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얼굴이라고 할까.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신나는 리듬의 도마질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사장님이 제 작품을 세개나 사 주셨어요. 저기 보세요 저거랑 저거랑 그리고 아마 나머지 하나는 댁에 갖고 계실 거에요."

가게에 걸린 그림 하나는 연인이 웃고 있는 인물화였다.


"누드가 아니네요?"

"네 저도 어떨땐 누드 아닌걸 그리기도 해요. 라면이 맛있다고 항상 라면만 먹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화랑 앞에서 멍하게 앉아 있는데...커플 둘이 웃으면서 지나가더라구요...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화랑으로 들어와 기억나는 대로 그린게 저거에요. 둘이 웃고 있죠...아주 자연스럽게 평화롭게...여기 사장님이 저게 마음에 드신다고 해서 싼값에 드렸어요."

" 그렇구나...선생님 저 그림은 너무 귀여워요."


다른 그림은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그림이었다.

울고 있긴 하지만...진짜 운다기 보다

떼쓰기용 울음이나, 마른 울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과 입의 부조화가 진짜 슬퍼서 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줫다.

아이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마도 엄마의  같았다.




"아...저 그림은 여기 사장님 손녀에요. 하루는 제게 사진을 들고 오셔서 그려달라길래 그려 드렸어요. 표정이 재밌죠? 유화의 강점을 살려서 섬세하게 표정을 표현 했어요. 나도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이 가게 올 때마다  그림이 잘 있나 확인해요."


"아 그렇구나...선생니은 크로키만 잘 하시는게 아니구나."

"에잇...나보다 더 잘 하는 고수들 많아요. 나야  그냥 내 만족으로 그리는거고, 누가 그림을 사주시면 좋고 안 사줘도 그만이고 그래요."


선생님이 말 하는 동안,

사장님이 감자탕 냄비를 들고 나왔다.


뼈다귀들이 살아 있었다.


중간 중간 감자와 당근이 듬뿍 들어갔다.




"맛있게들 드세요."

사장님이 인사를 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원장님 감자탕 좋아 하세요?"

"네 자주 먹지는 않지만, 좋아 합니다."


"여기에 젊은 애들이랑 자주 왔는데요...글쎄 감자탕이 왜 감자탕인지 애들은 모르더라구요?"

"감자탕의 유래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네...원장님은 아세요?"

"그게...아마...돼지를 사육한 역사가 오래 되니까...돼지의 고기와 내장 등을 다 먹고, 마지막으로 뼈에 있는 고기를 알뜰히 먹기 위해 탕을 끌여 먹은 게 유래가 돼지 않았을까요. 도축하고 남은 부산물로 요리한 결과물. 마치 소 꼬리곰탕처럼요..."

"역시 원장님은 모르는게 없어요...맞아요 그렇긴 한데...나는 그 감자라는 이름을 물어보는거에요..."


"아아...감자...그게 감자뼈라고 해서 돼지고기의 목뼈 등뼈 어디쯤 된다는 설이 있는데...그냥 설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감자가 많이 들어가서 감자탕도 아니고요. 사실 시래기나 우거지가 더 많이 들어가니까요."


"어머나...나는  감자뼈 얘길 하려고 했는데, 젊은 애들이 감자가 들어가서 감자탕이라고 알고 있길래...내가 감자뼈 얘길 해줬거든요...사실이 아니었어요?"


"저도 처음엔 그 감자뼈 설을 믿었느데, 뭔가 석연치 않아서 찾아봤습니다. 사실 해부학에서는 사람뼈나 돼지뼈나 소뼈나 그 이름이 똑같습니다. 동물들 마다 비슷한 위치 비슷한 기능을 하면 똑같은 이름을 부여하죠. 전 의사로서 뼈이름에 대해선 아주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제 지식 안에서는 그런 뼈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이름이라면 내가 기억 했을텐데. 그래서 제가 깊게 찾아본 결과 감자뼈에 관련된 증거는 없다는 게 정설이네요. 다른 음식이름도 설로 존재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설렁탕도 조선시대 임금이 제사진내던 선농단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몽고의 요리 슐루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스토리 텔링을 하는 거에요.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고, 외국 관광지에 가면 없는 얘기 만들어서 관광 상품으로 둔갑시키고 그걸 또 관광객들이 열광하고 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려니 해야지 누가 그런 엉터리 얘길 모른다고 해서 핀잔 주거나 하면 안될거 같아요. 나도 언제든지 잘 모르고 어떤 사실을 믿을 수 있잖아요. 매번 논문을 살피고 증거를 확인 할 수도 없고, 그냥 그러려니 해야죠.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하는 정도로."

"어머 원장님은 너무 아는게 많아서 깍쟁이 같아요."

"괜히 똘똘이 스머프 같은 짓을 했네요."

"아니에요. 난 원장님의 지적인 모습이 좋아요."

"고맙습니다."



나는 그릇에 푸짐하게 시래기와 감자 그리고 뼈를 채워

선생님 앞에 내려 놓았다.




"저도  드릴게요."



나는  와중에도


윤간호사와 선생님이

섹스중에

기절을 하고,

기억상실까지 일으킨 원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있엇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뼈다귀,시래기, 감자를


정성스럽게 그릇에 담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맛 봤다.



사실 어느 감자탕집에서도 맛 없는 국물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감자탕 국물 맛이 조미료 맛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계속 숟가락을 들게 되었다.

밥 한공기를 쉽게 비웠다.




"원장님 여기 국물맛 끝내주죠?"

"네 맛있네요."

"나중에 여기다 참기름 넣고 비벼주는데 그거 정말 맛있어요. 그거 정말 드셔보셔야되요."


"네, 오늘  많이 먹네요."

"어디서 또 드셧어요?"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는데, 우리 그 제자분 하시는 밥집에서 꽤 많이 먹었어요."

"저도요?"

"네..."


"근데 왜 배가 고프지? 임신했나?"




갑자기 머릿속에 혹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임신한 여자의 경우도 쉽게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설마...




"하하하, 선생님 임신하시면...엄마 되시는 거에요?"


"으이구...무슨 엄마에요...전 엄마될 준비가  되었어요. 엄마 준비 철저히  사람도 아기 키우는데 애를 먹는데...저한테 그런 일 생기면 안되요."

"아 네..."


"만약에 아기가 생긴다면...아기 아빠는 한사람 이미 정해져 있어요."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눈을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내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나 역시 아빠가 될 준비가  되었다.


부주의 하게 콘돔을 안 썼던 일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설마...

만약 내가 아빠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꼭 유전자 검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장님 우리 둘이 딱 소주 한 병만 마실까요?"


"네 그러시죠."

"사장님 우리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사장님은 금방 소주를 가져다 주었다.

남은 감자탕 국물이  소주 한병 마시기에 적당했다.

선생님과 나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주 세잔 반을 금방 마셨다.




소주 한병을 비웠을때

사장님이 볶음 밥을 만들어 주었다.


참기름 냄새가 구수한 볶음밥이 노릇노릇 냄비에 붙었다.


선생님과 내 숟가락은 땅따먹기 하듯 볶음밥을 조금씩 조금씩 파먹었다.

결국 경계선에 이르러 우리의 숟가락은 만났다.

선생님이 숟가락으로 내 숟가락을 쳤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남자답게 주먹을  내가 이겨

나머지 밥을 모두 먹었다.

나는 일어나 사장님께 음식값을 내고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왔다.

선생님은 사장님과 한참 이야기를 했다.



골목엔 고요함이 흘렀다.


멀리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선생님이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왔다.


"사장님이 저보고 남자친구 생겼냐고 그러시는데요?"

"하하하."

"그래서 뭐라고 했게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저 곧 애기 엄마  지도 몰라요~"

"하하하"


나는 웃었지만, 사실 헛웃음이었다.


나는 무서웠다.

그 와중에 선생님은 내 팔짱을 꼈다.

나는 거부할  없었다.

우리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팔짱 낀채 걷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화랑  앞에 도착 했다.

"원장님 차 한잔 하고 가세요."

"제가 지금 많이 피곤하네요.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많이 피곤 하시면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너있게 거절하는 대사가 무얼까.

"제가 혼자 자는 버릇이 들어서, 죄송합니다. 또 연락 드릴게요."

하고 바로 돌아섰다.

말이 이어지면, 내가 혹시  실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거절을 솜씨있게 하지 못한다.


뒤통수에서 선생님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님 그럼 조심히 가세요...들어가시면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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