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간호조무사가 들려주는 개변태 의사 썰
"원장님 차 좋네요...이거 얼마에요? 일억 넘어요?"
"아니요 안 넘어요."
"원장님 병원하면서 돈 많이 벌었어요? 우리 여자 원장님은 별로 못 버는 거 같던데..."
"네 의사라고 꼭 돈 잘 버는 건 아닌거 같아요."
"오늘 만난다고 한 그 분은 잘 만나셨어요?"
"네 잘 만났습니다."
"나 아니었으면 일찍 여유있게 만나도 되고, 짜장면을 그렇게 허겁지겁 먹지 않아도 되었을텐데...미안 해요 원장님."
"저 짜장면 먹는 거 보셨어요?"
"네 다 보였어요. 귀여웠어요. 한 젓가락에 떡처럼 푹 떠서 먹는게."
"아 네...미안해 하실거 없어요. 다시 이렇게 보게 되었잖아요."
"원장님.."
"네?"
"원장님 나 좋아해요?'
"......"
나는 대답대신 헛기침을 했다.
"왜 이렇게 잘 해줘요?"
"잘해주긴요."
"아니에요. 나한테 이상하게 잘해 주고 있어...혹시 나 이상한데다 팔아넘기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켁."
헛기침마저 목에 걸렸다.
"원장님 농담이에요. 괜챃으세요?"
"네 괜찮아요."
나는 한참동안 기침을 햇다.
"그런데, 회 많이 좋아하세요?"
"많이 좋아하진 않는데요. 가끔 강릉에 가야 할 때가 있어요."
"가고싶은 때도 아니고 가야할 때요?'
"네."
나는 그 말에 깊은 속 뜻이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캐 묻지 않았다.
열심히 엑셀을 밟은 덕분에
차는 이미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병원 일은 얼마나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년동안 학원에 다녔어요. 그리고 바로 취업했어요."
"여기가 첫 직장이에요?"
"아니요. 처음엔 치과에 취직했는데...너무 일이 힘들어서 그만 두었어요."
"치과는 하는 일이 좀 다른가 보네요?"
"네. 손으로 만드는 것도 많고, 수술이 많아서 외워야 할 것도 많고..그리고 위생사가 있는데 조무사들은 인간 취급도 안해요. 지들이 무슨 귀족인줄 알아요. 말끝마다 넌 위생사가 아니어서 넌 자격증 없으니까...그러면서 지들은 탱자탱자 놀면서 일은 다 시켜먹고 그래요...참 같잖아서."
"직원들끼리 스트레스가 많았군요."
"직원들끼리도 그런데, 원장이 아주 개만도 못한 들짐승이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원장이 회식을 매주 했는데요. 회식때마다 돌아가면서 열명 넘는 여자 직원들 다 따먹었어요."
"네?"
"원장이 좀 잘생기면서 여잘 밝혔거든요. 그럼 회식할 때 직원들이 싸워요. 오늘은 서로 자기 차례다 하면서. 생각해보면 좆나 웃겼어요."
"차례라뇨?"
"1차끝나면 원장이 취한 척 하면서 여자애 한명 데리고 택시를 타요. 그러면 그 애랑 호텔에 가는 거에요."
"직원들이 서로 알면서 차례를 기다렸어요?"
"네. 원장이랑 자고 나면 원장이 보너스를 100만원 줬대요. 난 안 받아봐서 모르겠지만. 그리고 한번 자고나면 그 직원은 일주일동안 공주처럼 지내요. 지가 뭐 세컨이라도 된 거처럼...다른 직원들도 그 공주마님 짜증 다 받아주고. 진짜 웃기지 않아요? 그래서 그 치과 분위기가 참 이상했어요. 근데 원장이 능력이 좋은 건지 환자들이 많았고 수술이 하루에 세건 이상 있어서 일주일 내내 치과가 엄청 바빴어요. 당연히 원장은 돈을 퍼 담았어요. 그래서 직원복지가 좋았죠. 점심식사 가격 무한대 지원. 직원 간식 제한없이 무한대. 회식도 일주일에 한번씩 호텔 부페 같은 데서만 하고. 그런건 좋았는데...뭐 내가 원장하고 할 차례를 기다릴 수 도 없고, 좀 더러운거 같기도 하고 해서 그만 뒀어요."
"그런 치과가 있구나. 대단하네요. 그 원장은 일부다처제처럼 여직원들을 다 부인으로 두는 거네요. 하하하."
"전 그 틈에 끼지도 못했다니까요."
"하하. 끼고 싶었어요?"
"백만원이래잖아요. 게다가 일주일동안 짜증부려도 다 받아주고."
"세상에 이런일이 방송에 나와야 할 거 같아요."
"그러게요."
"그리고 바로 여기로 오신 거에요?"
"아니요. 다음엔 안과에 갔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안약을 꺼내 눈에 떨어뜨렸다.
"할아버지 안과의사였는데."
"편했겠네요..환자도 없고."
"네 환자가 없어서 좋긴 했는데...너무 심심한게 문제였어요."
"그게 무슨 문제에요?"
"그 할아버지 의사가 계속 틈만나면 말 시키고, 잔소리하고, 무엇보다 고역은 매일매일 그 할아버지랑 점심을 먹는 거였어요."
"아 그럴만 하네요."
"그럴만 한 정도가 아니에요. 얼마나 잔소리가 많은지 밥먹으면서 자기 딸 가르치듯 하는 거 있죠...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냥 출근 안해 버렸어요. 얼마나 심했으면 받을 월급을 포기했겠어요. 도망가지 않고는 정신병 걸릴 거 같더라고요."
"이해 해요...혹시 저도 잔소리 많은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원장님은 그게 크잖아요. 다 용서되요."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럼 안과 그만두고 여기 오신 거에요?"
"아뇨 한 군데 더 있었는데 거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이었어요?"
"무슨 뜻이에요?"
"개변태 의사였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냥 변태도 아니고 개변태까지 갔을까요?"
"딸딸이치다 저한테 걸린 것만 열번이 넘고요."
"와 그정도면 일부러 보라고 그런거 아닐까요? 노출증 환자?"
"정말 나중엔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은게 정상이 아닌거에요."
"직원이 많이 없었어요?"
"저 혼자였어요."
"무슨과였는데요?"
"피부과였어요."
"피부과면 기본적으로 간호사도 많고 그러지 않나요."
"맞아요. 원래는 많이 있엇던거 같은데 직원들이 모두 그만 뒀데요."
"왜요?"
"아마 그 변태원장 때문일거에요. 아니 개변태원장. 생각만 해도 더러워."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자기가 피부에 좋은 연고를 만들었다고 제게 테스트 해 보라는 거에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 사람이 준대로 팔에도 바르고 얼굴에도 바르고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거에요."
"뭐가 이상했어요?"
"냄새가..밤꽃 냄새가 나는 거에요...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허연게 있고 딱 그건 거에요."
"그래서요."
"그래서 원장한테 따지려고 원장실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새끼가 씨씨티비로 날 보면서 딸딸이를 치고 있던 거에요. 내가들어가려던 찰라에 사정하느라고 숨기지도 못하고.."
"맙소사."
"그래서 그 크림은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긴요 버렸죠."
"그 성분이 정액이라는 건 정황상 그런거지 확인은 안 된 거네요?"
"백퍼 확실해요. 그 새끼가 나 엿먹으라고 주고 지는 나 보면서 딸딸이 친거에요. 그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나 확신 할 거에요."
"네 이해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여기 가정의학과에 온거에요?"
"네 그나마 여긴 제정신인 의사가 있더라고요."
"왜 의사들은 개싸이코들이 그렇게 많은 거죠?"
"글쎄요. 싸이코 기준이 뭔지 모르겠는데 일반인들도 그정도 성향은 있지 않을까요? 단지 표출하지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 의사들은 아무래도 갇힌 공간에서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잖아요. 직원들은 고용인인거고. 아무래도 비밀스런 공간에서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봐요."
"하긴 원장님도 남자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네요. 피해자가 되 봐야지 그게 얼마나 개같은지 알 수 있어요."
"네 알아요. 미안한 얘기지만 세상은 반드시 공정하고 공평한건 아니에요. 어는 집단에서든지 겉은 평등한 거 같지만, 실제로는 어떤 식으로든지 기울어 있어요.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지배하고 제멋대로 할려고 하는거죠. 간호사님이 사회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거에요."
"그게 진짜 사회라면, 살아가기 싫어지네요."
"그렇게 말 하고 나니까 내가 다 미안하네요."
"원장님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어느새 우리는 강릉에 들어섰다.
"원장님 이쪽 길로 가 주세요."
"네 저기서 오른 쪽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네. 그다음에 첫번째 골목에 들어가 주세요."
나는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들어갔다.
차가 멈춘 곳은 아주 허름한 집 앞이었다.
동네에 있는 다른 집들은 지붕이 새것이었는데
그 집만 허물어져 가는 듯 했다.
"원장님 같이 들어 가실래요?"
"네?"
"불편하시면 안 들어가셔도 되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호기심도 생겼다.
그녀의 말소리를 듣고
개가 한마리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그 개를 쓰다듬었다.
"밖에 누구 왔소?"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나에요."
방문이 열렸다.
병들어 보이는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딸?"
어머니인듯 한 아주머니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이 밤에 어떻게 왔어?"
"여기 원장님이 차를 태워 주셨어."
아주머니는 벌써 눈에 벌써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 밥먹자."
"아니야 나 밥먹었어. 바로 올라가야 돼.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왓다가 들른거야."
"그래도 들어갔다가 가."
"미안해 나 시간이 없어서 얼굴만 보고 갈게."
그녀는 열린 방문 앞에 가서
병든 노인을 안았다.
병든 노인은 정신이 희미해 보였다.
"아빠 나 갈게."
병든 노인은 대답하는 대신 허공을 바라봤다.
"정신이 오락 가락한다 요새. 무슨 병이라고 그러더라 파킹 뭐라 하더라."
"알았어. 엄마 고생이 많다. 여기 병원비랑 생활비 써."
그녀는 품 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뭐하러 이걸 줘. 너도 힘들텐데...내가 받아도 되나 모르겠다. 참말로...미안하다."
엄마는 눈물을 계속 훔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