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할아버지의 경고
내가 수술한 날짜를 따져보니
아직 한달이 안 되었다.
이르다.
방법이 없을까.
피부재생에 2주에서 4주가 걸리므로
수술한 부위의 피부는 완전히 새 것으로 바뀌었다.
석고를 깨고
스플린트를 하면 어떨까.
어차피 내부에서 플레이트가
뼈를 단단히 잡아주고 있으므로
잘만하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내 몸이 무척 건강하다고 최면을 건다.
어릴때부터 통뼈였다.
라고
주문을 왼다.
상황이 정말 안 좋으면
내가 직접 석고를 사서 캐스트를 하면 된다.
인턴으로 정형외과를 돌때
석고캐스트를 해 본적이 있다.
석고붕대를 풀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먹고
나는 잠이 들었다.
"이놈아~~"
"누구세요?"
"넌 왜 니 목숨이 아깝지도 않냐?"
"할아버지세요?"
"이놈아 저번에 내가 널 깨우지 않았으면 넌 죽었어..."
"그게 무슨 소리세요?"
"자세한건 알 거 없다. 넌 그 사업이란걸 하다 죽을 수도 있어. 당장 그만 두거라..."
"그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세요?"
"그 늙은이들한테 몸파는게 의사가 되어서 할 짓이냐?"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걸 알 고 계세요?"
"난 자랑스럽고 떳떳한 손자가 보고싶다. 당장 그만 두거라."
"......"
"썩 그만 두라니까. 못 알아들어?"
"......"
"왜 대답이 없어?"
나는 눈을 떴다.
시커먼 물체가 어른거렸다.
그게 할아버지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시커먼 물체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시커먼 물체가 기어이 내게 다가와
내 목을 졸랐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식은 땀이 흘렀다.
숨이 막혔다.
소리를 지르려 노력했다.
턱이 벌어지지 않았다.
바람 세는 소리만 나왔다.
만약 여기서 물러서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다시 힘을 내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악...할아버지 살려주세요..."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시커먼 물체가 사라졌다.
침대가 젖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새벽 4시
나는 다시 잠들기 두려웠다.
왜 할아버지가 두번씩이나 꿈에 나타났을까
내게 잠재되었던 무의식인가
진짜 할아버지의 영혼인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옆에 누군가 나를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하고 외로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홀로 힘없고 나약한 존재구나...
약한 마음이 나를 슬프게 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지난 날들을 돌아보다가
선 잠이 들었다.
7시 30분
잠에서 깨어났지만,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천천히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 입었다.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재첩국 봉지를 냄비에 털어넣고
불을 올렸다.
금세 재첩국 냄새가 피어올랐다.
땡~
전자레인지의 벨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햇 반을 꺼내
재첩국에 부었다.
종가집 김치를 꺼내
그 위에 얹었다.
간단하고 느낌 있는 아침이었다.
뱃속이 따뜻했다.
양치질을 하고
여유있게 문을 나섰다.
병원에는 8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다.
병원은 고요했다.
나는 원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깊숙히 앉아
눈을 감았다.
잠시 뒤 간호사들 출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 간호사가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나는 인사를 받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졸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원장님 환자 있습니다."
원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나는 뺨을 두드렸다.
정신을 차렸다.
진료실로 나갔다.
진료실에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요즘 가슴이 두근 거리고, 몸에 열이 나고, 땀도나고 갑자기 이상하네요."
"혹시 생리는 규칙적인가요?"
"그게 그것도 요새 갑자기 이상해요. 제가 평생 28일 정확했거든요."
"네 더 정확히 알아봐야 되겠습니다만, 아마도 이제 폐경이 되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갱년기 증상입니다."
"선생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연스런 현상이니까 그냥 받아들이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같은거는 안 먹어도 되나요?"
"특별히 약이 필요하진 않는데...이전에 없던 몸의 큰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어떤 분들은 수염이 나는 분도 있고...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쉽게 말해 남성적으로 바뀌는 겁니다.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많은 경우 골밀도가 감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요없이 골다공증 약을 먹는것은 좋지 않습니다만, 골밀도가 너무 낮으면 약 드시는 것도 고려해 보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별일이네요...그러니까 당장 약이 필요하지 않다고요?"
"네..몸이 이상하다고 느끼시면 그때 그때 치료 받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미심쩍은 눈으로 일어났다.
분명 약처방을 기대하고 병원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줄 약이 없다.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거슬리겠는가
호르몬 치료를 무리하게 할 수 도 없다.
자칫하면 암을 유발할 수 있기때문이다.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걸음으로
진료실을 나갔다.
나는 그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품은채
원장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깊숙히 앉았다.
전화가 울렸다.
새 원장이었다.
"형님, 환자는 많아요?"
"아니 별로 없어...오늘부터 환자 보나?"
"오늘은 안되겠어요. 필요한게 있어서 아는 의료기 중고상한테 왔는데요...여기 캐스 절단기가 있네요...이거 잠깐 빌려서 형님 캐스트 깨드릴까요?"
"글쎄... 괜찮을까?"
"저 정형외과에도 파견 나가 있었어요...저만 믿으세요. 제가요 아마 한 천개는 깼을 거에요...진짜 저만 믿으세요..."
"그래요 그럼..."
"그럼 저 바로 갈게요."
새 원장이 서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가...
원장실 문에 노크 소리가 났다.
"진료실에 환자 있습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진료실로 걸어 나갔다.
중년의 남자가 눈을 또렷이 뜨고 앉아있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제가 찾아보니까 이건 감기는 아닌거 같고, 독감도 아닌거 같고, 혹시 폐섬유증이 아닌가 해서 왔습니다."
요즘엔 환자들이 워낙 똑똑하다보니
인터넷 검색을 마치고 병원에 온다.
나는 그것을 의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병원과 의사가 있는 이유는
환자의 불편함을 개선시키기 위함이다.
그 중간 과정에 꼭 의사가 존경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존중만 받아도 충분하다.
존경은 환자의 불편함이 없어지고 받아도 늦지 않다.
그건 마치 이젠 학교의 교사가 존경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과 같다.
지금 학교의 교사란 가르치는 기능을 가진 직업인일 뿐.
아무도 그들을 예전처럼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 역시 그에 걸맞는 처신을 하지 않는다.
뉴스에 흘러나오는 그들의 사건 사고를 보면
교사들은 일반인과 동일한 혹은 그보다 못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것 같다.
그들은 탐욕스럽다.
그들은 스승의 날 선물을 받기에
부끄러운 존재들이 되었다.
개차반의 제자를 사랑으로 가르쳐
새 삶을 살게 만들었다는 전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제자는 교사들도 부담스러워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존경받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세상이 변하면 직업의 역할과 위상도 바뀌는 것이다.
환자나 학생을 우매한 개 돼지로 인식하면
개 돼지 같은 존재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경같은 건 필요 없다.
그래도 나는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와 주고 싶었다.
그 중년남성이 주는 정보를 차분하게 분석했다.
"왜 폐섬유종이라고 생각하시죠?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까? 혹시 다른 의료기관에서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셨습니까? 오랜 기간 흡연하셨나요?"
나는 그에게 질문을 늘어 놓았다.
그는 내 질문을 기억하고 하나 하나 대답했다.
"요즘 숨이 가쁜데 열도 없고, 근육통도 없고 그러네요.. 광산에서 일했다던가 그런 이력은 없고요. 담배는 오래 피었습니다. 지금은 끊었습니다만....그리고 병원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기침은 있나요?"
"네 마른기침이 간헐적으로 있어요."
"제가 잠깐 폐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봐도 될까요?"
"네"
"옷 들어올리시고요..."
나는 청진기를 그의 가슴에 가져갔다.
"숨 들이마시세요.... 숨 내쉬세요"
그가 숨을 들이쉴 때 내쉴때 의심가는 수포음 및 다양한 잡음이 들렸다.
폐섬유증으로 충분히 의심가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손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네 여기..."
그의 손톱이 부풀어 있었다.
전형적인 곤봉지였다.
나는 그 중년의 사내가 불쌍해 보였다.
보통 폐섬유증은
발병후 2년에서 3년의 말미를 준다.
치료제는 아니고 증상의 악화를 막아주는 약이 있기는 하지만
겨우 10퍼센트정도 더 살게 해 준다.
이 모든 사실을 그에게 말 하려 하니
부담스러웠다.
상급의료기관에
그 부담스러움을 패스 하기로 했다.
"환자분 생각이 맞을 수 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큰 병원 가서 다시 자세히 검사 받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진료의뢰서 써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혹시 섬유증이라면 제가 몇년이나 살까요? 인터넷에서는 한 2년내지 3년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