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모든 간호사는 새원장에게 빠져든다.
"네 그렇게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자세한건 진단을 더 해 보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진료의자에서 힘없이 일어났다.
나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럼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그를 대기실로 안내하고
원장실에서 진료 의뢰서을 썼다.
의사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피해 이비인후과에 왔건만,
이런 작은 병원에서도 어차피 죽게 되는 환자를 만난다.
차라리 흉부외과에서 장렬히 한 몸 불태울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중년의 사내는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 힘없이 병원문을 나갔다.
그 중년의 사내가 나가자 마자
새 원장이 병원에 들어섰다.
그는 가방을 메고
두손에 무언가 잔뜩 사들고 왔다.
"간호사님들 안녕하세요...여기 귀염둥이가 왔습니다. 얼른 들 나와보세요..."
간호사들이 휴게실에서 나왔다.
"안녕하세요~~"
새 원장이 두 손에 들었던 봉지를 데스크에 올려 놓았다.
"원장님 이게 뭐에요?"
"제 정성입니다. 한번 뱉은 말은 그대로 지킵니다. 맛잇게 드세요~~~"
한달은 먹을 것 같은 커다란 봉지 두개에
간호사 둘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럼 간호사님 주스 한잔만 부탁드려요~~~"
새 원장은 나를 밀면서 원장실로 들어왔다.
새 원장은 가방을 내리고
그 안에서
석고 컷터를 꺼냈다.
"자 바로 시작 하시죠 형님."
"아니 예비동작도 없이 바로..."
"하하하 무슨 예비동작이요...시간 날때 바로바로 해야지 또 환자 오면 기다려야 돼요...빨리 손 내미세요..."
"석고 먼지 많이 날릴 텐데..."
"거참 형님 말 많으시네."
새 원장은 내 손을 잡고
바로 컷터를 켰다.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새 원장은 컷터가 잘 동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전원을 내렸다.
"형님 씨이저좀 가져올게요."
그는 밖으로 나가
한참 간호사와 웃음꽃을 피우며 대화했다.
다시 씨저를 들고
원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씨이저를 들고 붕대를 잘라 냈다.
그리고 다시 컷터를 켰다.
컷터의 휠이 석고 사이로 파고들었다.
원장실에 석고 먼지가 튀어 올랐다.
위이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석고가 갈라졌다.
그는 바로 석고 캐스트를 쪼갰다.
"전엔 더 빨랐는데 오늘은 좀 시간 걸렸네요..."
"그정도면 상당히 잘하는 거 같은데."
잠깐 그의 손놀림을 보건데
외과의사를 했어도 잘 했을 것 같았다.
석고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피부가
허연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형님 시원 하시죠?"
"응 고마워.."
나는 천천히 팔을 굽혀보았다.
신기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 팔을 펴 보았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약간 어색함이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이 요골과 척골에 영향을 주기때문인지
움직일때 마다 어색했다.
새 원장은 내 팔을 만졌다.
"와~~ 신기하네...형님 머슬 어트로피가 별로 안 왔어요...여전히 굵은데요."
"그러네..생각보다 별로 위축이 안되었네.."
"팔 한번 다시 움직여보세요."
나는 팔을 굽혔다 폈다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약간 어색한 감은 들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잘 됐네요 형님. 당장 내일이라도 일하러 가시죠..."
"설마..."
"농담 아니고요...지금 저한테 독촉하는 고객들이 너무 많아요...제가 잘 선별해서 형님한테 잘 어울리는 누나 먼저 소개 해드릴게요..."
"아직은 좀 쑥스러운데..."
"그런거 없어요 형님...가만 생각해 보세요. 형님은 물리적으로 고객앞에 공간이동을 하는 거에요...그리고 고객의 요구대로 형님 몸을 움직이는 거에요...그게 끝이에요..형님은 마치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고 그 대가를 받고 나는 커미션을 받고...형님 당분간 7대 3입니다. 다른 커미션너들은 5대 5 하는 데 저는 형님의 상품성에 투자하는 의미에서 유리한 비율로 가는 겁니다. 형님의 상품성에 맞게 단가를 높이면 반반 하는 거 보다 나을 거 같아서요."
새 원장은 그 어떤 상품의 브로커를 해도 될 만큼 말을 잘 했다.
나는 내가 그 누나들을 만나는 때가 궁금했다.
"그래서 언제쯤..."
그때 원장실 문에 노크 소리가 났다.
동생 간호사가 주스를 들고 들어왔다.
"어이구 간호사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간식은 드실만 하세요?"
"어쩜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서 사오셨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있어요."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빅뱅~~!!!...다음을 더 기대하세요...아참 근데 원장님...우리 합동으로다가 회식 한번 하시죠...나 여기 간호사님 너무 마음에 드는데 얼굴 볼 핑게가 없네요."
나는 회식이란 단어가
두 간호사를 기어코 먹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네 시간 봐서 추진하시죠."
"원장님 그렇게 해서는 되는 일이 없어요...오늘 어떠세요?"
동생 간호사가 웃었다.
"아니 웃지만 말고, 언니한테 한 번 물어보고 오세요...간호사님은 콜 맞죠?"
동생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고
원장실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새 원장이 너무 푸시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형님 아마 금방 오케이 사인 갖고 올 겁니다."
"설마..."
나는 차마 두 간호사가 조건만남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들은 하룻밤에 적어도 40만원씩을 버는데
그걸 포기하며 회식을 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역시 사람 볼 줄을 몰랐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동생 간호사가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원장님 뭐 사주실건데요?"
"아무거나 간호사님 원하는 거 아무거나... 무조건 무조건이야~~"
새 원장은 락커의 목소리로 노래까지 불렀다.
"와~~원장님 노래 잘한다. 오늘 노래방도 가요?"
동생 간호사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님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상상하는 그 이상~~"
"꺄악~~"
동생 간호사는 새 원장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나는 질투가 났다.
내게는 동생 간호사가 그런 반응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나는 간호사에게 이미 아재 반열에 오른 퇴물이었다.
남의 땅에 와서 젊은 놈이 간호사들을 다 후리겠구나 생각했다.
뭐 그런게 인생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젊고 힘있고 멋있는 남자가 여자를 차지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
나는 순순히 자연의 법칙을 인정하고
회식을 수락했다.
간호사는 언니를 큰소리로 부르며
원장실을 나갔다.
동생간호사는 금방 원장실로 다시 돌아왔다.
"원장님 우리 빕스 가요."
"빕스 아니죠 브아피 에스 맞습니다."
"뭐에요...원장님. 그게 무슨 아재 개그에요..."
간호사는 새 원장에게 눈을 흘겼다.
"아 의문의 1패 어쩔..."
"괜찮아요 원장님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다음부터 그런거 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당."
나는 새 원장이 무안을 당하는 게 고소했다.
하지만, 잠시 뒤에 생각이 바뀌었다.
새 원장은 간호사와 이미 라뽀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 회식중에 스킨십을 할 것이고
이차쯤에선 이미 키스 내지는 삽입을 할 것으로 보였다.
새 원장은 뛰어난 사람이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석고도 잘라주고 고생했는데 내가 점심 살게 뭐 먹고싶은거 있나?"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이따 저녁에 회식도 하는데 간단하게 먹죠 형님..."
"그럼 짜장면 먹을까?"
"좋습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새 원장과 함께
원장실을 나왔다.
"간호사님 그럼 이따가 빕스에서 뵐게요....빕스 빕스 오예~~"
"내가 못살아. 원장님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점심 맛나게 드세요...난 짜장면 먹으러 가지롱."
"네 맛있게 드세요."
유쾌한 새 원장의 행동에
나는 왜 그만큼 못할까 하는
자책을 했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같이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
그가 부러웠다.
우리는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중국요리집에 들어가
짜장면 두개와 탕수육을 시켰다.
"형님 이따가 회식도 하는데...이걸 다 드시려고요?"
"난 배고프면 화가 나더라고 당 떨어지면 안돼.."
"아 네..."
나는 짜장면이 나오자 세 젓가락에 다 먹었다.
탕수육을 남은 짜장면 소스에 찍어 먹었다.
새 원장은 내가 먹는 모습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전 형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아요...참 잘 드시네요."
그렇게 새 원장과 헤어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도 환자가 많지 않았다.
간호사 둘은 회식을 기다리며
오후 내내 들떠 있었다.
조건만남은 어떻게 하고 회식을 한다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녀들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오후 진료가 끝난후
나는 그녀들을 태우고
빕스로 향했다.
빕스 안에 입장했을때
이미 새 원장과 새로 뽑은 간호사들이
샐러드바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새 원장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짓으로 테이블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 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샐러드 바로 갔다.
"형님 이런데 잘 안 오시죠?"
"잘 안오지."
간호사들은 서로 인사했다.
금세 친한 친구마냥
네명이 어울려 다녔다.
나는 간단히 치킨과 연어를 접시에 담아 자리로 왔다.
새 원장도 간단히 몇가지 담아 자리에 앉았다.
"술은 안 먹지?"
"저는 오늘 안 마시려고요...형님은 직원들하고 생맥주 드세요."
"그럼 난 한잔만 마실게."
나는 생맥주를 시켜 혼자 마셨다.
간호사들이 자리에 앉자
새 원장은 놀라운 입담을 과시했다.
네명 간호사 모두 웃느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