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1화 〉첫 아르바이트후 환자를 대하는 마음 (91/189)



〈 91화 〉첫 아르바이트후 환자를 대하는 마음

"글쎄. 뭐 별거 있겠어....그냥... 진실된 마음?"


"하하하. 형님의 그런 농담이 통했나보네요."



나는 사모님과의 관계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서 그런지


졸음이 몰려왔다.


어느새 나는 졸고 있었다.

차안의 음악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형님 병원 앞이에요."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어..고마워"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글쎄..."

"저녁 드셔야죠..."


"아니 내가 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좀 잘게 미안해."


"아니에요. 그럼 들어가세요."



나는 새 원장의 목소리에서 실망감을 감지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우리 그러면 여기 가까운데서 간단하게 먹을까?"

"괜찮으시겠어요?"

"응. 대신  앞에 가자고."


"전 아무대나 좋아요."

"요 앞에 중국요리 어때?"

"그러시죠."

나는 새 원장과 함께

중국요리집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우리 저녁 요리 될 만한게 뭐가 좋을까요?"


"저희집  맛있습니다. 메뉴판 보고 말씀만 해 주세요.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뭐 먹을까? 우리 요리 하나씩 고르자고."

"전 깐풍기 하겠습니다."


"그럼 난 고추잡채"


"짜장면 아니면 짬뽕?"

"전 먹어보고 나중에 하겠습니다."

"괜히 내가 먹는거 달라고 하지 말고 그냥 짜장 두개 할게"

"네 그렇게 하시죠."




"저 여기 주문 할게요...여기 깐풍기 고추잡채 짜장 둘 그리고 연태고량주 하나 주세요. 만두는 서비스로 주시려면 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만두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까는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아득했어."


"이해됩니다 형님. 처음이신대 어련 하시겠어요"

"처음에 다 그래?"

"그럼요. 저도 처음엔 너무 긴장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온 몸이 얼마나 피곤하던지. 근데 형님이 위너입니다.  처음에 오백 받았습니다. 그거 받고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한시간도 안되었는데 오백만원을 번다니...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근데 형님은  이천이라니....사모님이 정말 마음에 드셨나봐요...뭐 이세계가 서로 서로 비밀을 덕목으로 하니   는 없지만, 아마 형님이 탑리그에 속하지 않을까요?"

"왠걸..젊은 애들, 연예인들, 모델들, 운동하는 애들 천지일 텐데."


"그렇지도 않아요...탑 연예인들은 사고 날까봐 그런거 안하고...어린애들은 몸은 좋은데...뭐랄까 그 사모님들의 교양을 따라가지 못하니까요. 운동선수들도 모델들도 그렇죠.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바닥 사모님들 학력도 높고 아는 것도 많고 수준들이 높으세요. 몸도 몸이지만, 대화가 통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왜 우리나라 옛 기생들은 난도치고 시도 짓고 거문고며 가야금이며...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양반들이 좋아할 모든걸  습득했다고 하잖아요. 그런거랑 비슷한 거죠."


"내가 기생이라는 이야기군."


"그런게 아니라요...형님은 엄연한 프리랜서죠...근데 형님같은 스펙이 이 바닥에는 없으니 몸값이 더 높아질 거라는 겁니다. 앞으로 몸관리  하시고...충분히 휴식하시고 그 일에 집중하세요. 그게 빨리 부자 되는 길이에요."

"그럼 인제 항상 대기하다가 연락 오면 가는거야?"


"제가 제 리스트에 있는 사모님들한테 항상 연락을 하거든요... 그 사모님들 스케줄이 빌때 그때가 일하는 때 입니다."


"나 말고 다른 선수들도 관리해?"


"그건 업무상 비밀입니다."


"별게 다 비밀이네...나한테는 한배 탔다면서."


"그게 다 형님의 마인트 세팅을 위해서에요. 다른 선수 이야기 하면, 형님이 쓸데 없는 걸 알고 싶어 하게 되고, 그런게 언젠간 실수를 하게 만들거든요. 이 바닥에선 보안이 생명이에요. 사모님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입 단속이에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럴거 같네.  이상 안 물어볼게."



금세

군만두가 나왔다.

우리는 앞에 놓인 연태고량주를

한잔씩 부었다.

향이 부드럽고 좋았다.


군만두를 하나 입에 물고씹었다.



다시 연태 고량주을 들이켰다.

목에 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향이 입안 가득히 피어났다.



"그래서 언제 이비인후과는 오픈 할건데?"


"아마 모레쯤 할까 생각중이에요. 근데 말씀 드린대로...그게 제 메인은 아니니까. 진료시간을 줄이든...서브 원장을 하나 두든 해야할거 같아요."

"서브원장으로 나를 써."

"정말요? 나야 좋죠."

테이블에 깐풍기가 올라왔다.


바삭해 보이는 깐풍기 하나를 들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다시 연태 고량주를 한잔 들이켰다.

 어우러짐이 대단했다.



나는 다시 또 깐풍기를 들어 입안에 넣었다.


아자작 씹는 맛이 좋았다.

연태 고량주를 다시 마셨다.


입안에 퍼지는 향이 뿌듯했다.


 원장도 깐풍기를 부지런히


입에 집어 넣었다.


수북하던 깐풍기가


없어지고


어느새 빈접시가 되어

아쉬움마저 생겼다.



대신 남은 군만두를 씹으며


연태 고량주를 넘겼다.


"그런데 진료시작하는 날이 계속 미루어 지는 것 같아. 전에도 내일 내일 하더니 다시 모레로 바뀌고...월세 나가고 월급 나가는  아깝지 않아?"


"형님 내가 솔직히  할게요."


"솔직히?"

"네. 제가 사실 형님보다 더 벌었어요."


"엥?"

"제가 오늘 이천 넘게 벌었다고요...그런데 병원에서 쪼그리고 앉아 환자 보고 싶겠어요?"

"그렇긴 그러네...그럼 이비인후과는 왜 샀어."


"그러지 않아도, 저 지금 후회중이에요. 그거 물릴 수 없을까요?"


"에이 그럭 어드렇게 물려~"


"농담이에요 형님. 뭐 그 돈이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문제는 막상 환자 볼라니까 왜 이리 스트레스가 오는 지 모르겠어요."

"환자하고 커뮤니케이션은 잘 될  같은데..."

"저야 일단 시작하면 잘 하기야 잘 하죠. 문제는 시작하기까지 귀찮아서 죽겠다는 거죠."


"살짝  마음이 이해는 간다. 실은 나도 요새 환자 보기가 싫어. 그거 몇푼 벌겠다고 환자들 하는 이야기 다 들어줘야 돼고, 삐치지 않게 환자들 비유 맞춰 줘야 하고...내 생각인데 나는 원래 의사를 하면 안되는 그런 성격인가봐 아니면 영상의학과 같은 거 할 걸 그랬어...사람 상대하는 게 왜 이리 싫은지 모르겠어."

"그러니까요. 저도 사실 이 적성이 맞나 싶어요. 그냥 의대 가라고 해서 갔는데...뭐 그냥 그래요...차라리  한몸 불살라서 외과같은  했으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이비인후과는 좀....앞날이 갑갑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재주가 있었어? 오늘 내꺼 커미션 챙기면서 자기는 다른 자리를 한거야?"

"자세한 건 묻지 마시고, 일종의 코치겸 선수죠."

"하하하...우리 코치님 한 잔 하시죠?"


"저 원래 술 잘  마시는거 아시잖아요.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요. 그리고 테이블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요."


그때 사장님이 고추 잡채와 짜장면 두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오늘 주방이 좀 손이 느리네요...천천히 나온 음식이 원래 맛있는 법입니다. 여기 맛있게 드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짜장면은 바로 비벼 세 입에 끝냈다.




 젓가락도 뜨지 못한  원장이 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은 어떻게...어휴...세상엔 이런일이 나가셔도 되겠어요.  드실래요. 이거  못 먹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먹을 만큼 남기고 줘."



나는 새 원장이 건넨 짜장면도  입에 해치웠다.


고추잡채에 나온 빵도 하나 집어 한 입에 넣었다.

연태 고량주를 잔에 따라 한번에 들이켰다.

가슴이 따뜻해 졌다.



"아까 한말 진지하게 생각해봐...나 여기 대진 끝나면 갈  없어."

"네 저도 진지해요. 이비인후과 오셔서 대진 하세요."


나는 육덕진 간호사와 이휘향 닮은 간호사를 떠올리며


순간 행복감이 생겼다.


그들과는 아직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 그럼...할게...잘 해 보자고. 근데 정말 모레에는 진료 시작하는 거지?"


"네 하긴 해야죠. 어떡하면 환자들이 적게 올까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해...그래서 환자가 적게 오면 그렇게 계속하고, 환자가 오히려 늘면 그 반대로 하면 되잖아."


"형님 그게 말이에요 방구에요..."


"가만보면 자기는 옛날 말들 많이 아는 거 같아...푸근 하네 말이야 방구야...오랜만에 들어 나도 잘  쓰는 말인데."

새 원장도 꽃빵을 몇개 먹기는 했지만,


고추 잡채의 대부분은 내가 먹었다.

나는 연태 고량주도 깨끗하게 비웠다.



"어떻게 집에 모셔다 드려요?"

"자기 술 마셨잖아."

"아니에요 거의 안 마셨어요."

"엥? 밑으로 버렸어?"

"그건 아니고요. 하여튼 운전 해도 되요."


"그래 그럼 데려다  땡큐."




식사가 끝났을 땐 내게 취기가 올라왔다.




나는 새 원장의 벤츠를 얻어 타고


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양치만 간단히 하고


침대에 잠깐 누웠다

샤워를 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그대로 아침을 맞이 했다.




7시 30분.

뱃속이 더부룩 했다.


아침은 생략하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입고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주차된 차는 밤새 별일 없이 그대로 있었다.




원장실에 들어가


의자에 깊숙히 앉았다.



새 원장이 어제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시간대비

노력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긋지긋한 진료를


정말 하기 싫어졌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겉멋든 인간들의 폼 내기 일 뿐이었다.

내가 시간을 들여


공을 들여


환자들을 돌봐도




돌아오는 것은

의심의 눈초리와


도전적인 태도뿐이었다.




환자들은 의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