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사모님의 만찬
"어이구 선생님은 어쩜 똘똘이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옛날 생각에 취해서 못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에요. 좋은 의미로 말 한 거에요. 단어를 정정할게요. 똑똑한 이야기를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올랭피아 여자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글쎄요...서양인인데 얼굴이 넓적한게 동양인의 느낌도 나고 그러네요."
"네 좀 그렇죠. 아까 풀밭의 식사 여자 한 번 보세요."
나는 처음 보았던 그림을 다시 쳐다 봤다.
"아아...같은 사람이구나..."
"네 같은 사람이에요...빅토린 뫼랑이라고...그 여자도 화가였데요."
"아...그럼 저 모델은 흔히 사람들이 아는대로 성매매하는 여자가 아니었군요. 사모님 덕에 새로운걸 알았네요...재밌습니다."
"뭐 그 여자가 돈을 받고 몸을 팔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직업은 화가였대요. 눈빛 보세요. 당당하지 않나요? 전 저런 당당한 눈빛이 좋아요."
그 말을 하면서
선한 사모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네 저도 저 그림을 오랫동안 볼 수 가 없네요. 여자의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어디에 눈을 둬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네."
자기의 의견에 공감하는 말을 하자
사모님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이건 워낙 유명해서, 이거 좋아 하세요?"
사모님은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였다.
금빛 찬란한 노란 물감이
눈을 부시게 했다.
눈을 감은 여자의 홍조 띈 얼굴이
야들 야들한데 비해
남자의 옆 얼굴은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다소 거칠어 보였다.
왜 조폭의 여자들은 미인이 많은가.
여자들이 강하고 나쁜 남자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는데...
크림트의 남자 주인공은
조폭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나는 세상이 두쪽나도
나쁜 남자의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
조폭이 가진
미인을 가질 수 없다.
"선생님 이쪽으로 내려 오세요."
입구에서 볼때는 1층 건물이었는데
아랫쪽으로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사모님의 안내를 받아
한층 아랫쪽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엔
그릇과 식기들이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한쪽엔 은색 뚜껑으로 덮힌 요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꽤나 높은 쉐프 모자를 쓰고
하얀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자 한 명이 부지런히
요리를 준비 하고 있었다.
이리 저리 움직일때 마다
셰프의 엉덩이가 도드라지게 흔들렸다.
오똑한 콧날 밑으로
그녀의 빨간 입술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그 입술에
클림트의 키스 처럼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
키스를 하며
출렁거리는 엉덩이를 움켜잡는 상상을 했다.
쉐프가 신음소리를 내면
하얀 유니폼을 좌우로 찢어 내리라.
단추가 바닥으로 파편처럼 떨어지리라.
웃옷이 벗겨져
쉐프의 젖가슴이 춤을 출때
그녀를 번쩍들어
테이블에 올리면
그녀는 부끄러운듯
가슴을 가리겠지.
어림도 없는 일
나는 그 손을 매운 회초리로 치워 내고
그 젖가슴을 한 잎에 물 것이다.
쉐프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쏟아내겠지.
다리 사이에선
퀄퀄퀄
애액이 쏟아 나올 거야.
내가 그 다리 사이에 혀를 놀리면
너는 사지를 떨며
네 몸의 변화를 주체할 수 없을거야
나는 바지를 벗겨
번들 번들한
그 사랑스런 곳에
내 자지를 끼워 넣고
목놓아 노래 하리라.
네가 만드는 어떤 음식보다
날 것 그대로
네 보지의 맛이
내게 최고의 요리라고
리듬감 있는
내 폭풍 씹질에
너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그저
비명과
신음을
쏟아 내겠지...
나는 쉐프의 바지를 쳐다보며
그녀의 보지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고 있었다.
"쉐프님 우리 지금 앉어도 되겠죠?"
나는 사모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네 착석하시면 됩니다."
"선생님 우리 앉어요."
사모님은 건너편 테이블앞에 앉았다
나도 반대펴네 사모님과 마주 보며 테이블 앞에 앉았다.
테이블엔 손 씻는 물이 은 그릇에 담겨 있었다.
사모님이 손을 씻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서 손을 씻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서양식 만찬 같았다.
요리사는 큰 접시를 사모님과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접시는 큰데
그 위에는 두개의 연어요리가 있었다.
훈제 연어를 사워크림 위에 얹고 그 아래에는 비스켓이 있었다.
연어 위에는 작은 입사귀가 놓여 있었다.
사모님이 손으로 하나를 들어 입 속으로 넣었다.
나도 손으로 하나를 들어 입속에 넣었다.
연어의 풍미와 사워크림이 잘 어울렸다.
비스켓의 아삭한 소리와 달콤함이 뒷맛으로 따라왔다.
나는 금세 하나를 더 입 안에 밀어 넣었다.
한개 더 먹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생겼다.
요리사가 바로 빈 접시를 가져가고 새 접시를 가져왔다.
생굴이었다.
껍질째 접시에 올린 생굴에는 빨간 향신료와 간장이 뿌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민트로 보이는 풀이 올려져 있었다.
접시 위에 굴은 모두 세개였는데
그 가운데 얇게 저민 레몬이 데코레이션처럼 놓여 있었다.
사모님이 레몬을 굴 위에 뿌려 먹는 것을 보고
나 역시 레몬을 뿌렸다.
별다른 도구 없이
흡입만으로
굴은 입 안에 쏙 들어왔다.
입안에 향신료와 굴의 풍미가 어울어졌다.
바다의 신선한 느낌이 혀에도 코에도 전해졌다.
세개를 후르륵 마시듯 먹고나니
마음 같아서는 열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요리사가 다시 접시를 가져갔다.
바로 요리사가 가져온 것은
크림 스프였다.
하얀 스프 안에는 작은 새우와 조개가 들어있었다.
스프에도 역시 파란 풀이 놓여 있었는데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사모님이 스푼으로 스프를 뜨기 시작할 때
나도 스프를 떠 먹었다.
따뜻함과 고소함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다진 작은 새우를 씹는 맛이 재미졌다.
조개의 살은 진짜 조개살이든
여자의 조개살이든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게
단연
최고의 스프였다.
이것 역시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긁어 먹었다.
아마 사모님이 없었으면
혓바닥으로 조갯살을 핥듯
그릇의 바닥을 핥았을 것이다.
좋은 음식을 연이어 먹으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요리사가 스프 그릇을 가지고 갔다.
이번엔 갖구워 따뜻한 빵을
두조각 내 앞에 두었다.
요리사가 아무말도 없어
나는 가만히 있었다.
사모님도 빵을 먹진 않고
코에 대고
냄새만 맡았다.
"쉐프님 빵의 향이 아주 끝내 주네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쉐프는 절제된 언어만 사용했다.
걷는 동작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시선도 자연스럽게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훈련을 받은 티가 났다.
"사모님 생선류 요리로 랍스터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네 고마워요..."
요리사는 큰 접시를 들고 왔다.
접시 위에는 빨간 랍스터가 한마리가 놓여 있었다.
접시에서 버터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사모님이 포크를 이용해 속살을 발라 먹었다.
나도 사모님은 따라 랍스터의 살을 입에 넣었다.
살이 탱탱하면서 혀끝에 녹았다.
미리 잘라져 나온 랍스터의 집게는 껍질을 벗기기 쉬웠다.
집게 모양 그대로 랍스터의 살을 먹을 수 있었다.
랍스터의 쫀득함이 입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흐뭇하게 만들었다.
랍스터를 다 드시고,
사모님은 빵조각을 뜯어 입에 넣었다.
나도 따라서 빵조각을 씹었다.
빵 자체로도 맛이 좋아 더 먹고 싶었지만,
눈치를 보니
이 뒤로도 남은 요리들이 많아 보였다.
더 먹고 싶지만 자제했다.
요리사는 랍스터 접시를 가져가고
아이스크림을 접시를 가져왔다.
사모님은 작은 스푼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떠 먹었다.
다 먹지는 않았다.
음식을 남기면
죄가 되고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어릴적부터
나를 지배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남기지 않았다.
요리사가 아이스크림 접시를 회수하러 오면서
내게 스테이크를 어떻게 구울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레어로 주문해 보기로 했다.
미식가들은 피가 떨어지는 고기의 참맛을
느낄 줄 안다는데
오늘 같은 날은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쉐프가 설마 질 낮은 고기를 준비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사모님이
테이블에 놓인
와인잔을 들었다.
나도 와인잔을 들었다.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건배합시다..."
사모님의 건배사에
나는
위하여라고
외쳤다.
사모님이 반쯤 마시고 남기는 것을 보고
나도 반만 마셨다.
쌉싸름 한 맛이
고급 와인 같았다.
쉐프가 스테이크를 가져왔다.
레어라고 했는데
겉에는 까만 자국들이 있었다.
내가 레어를 선택한 이유는
미식가의 입맛 따라하기도 있었지만
단백질이 타며 생기는 니트로스 아민을 먹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학생때 공포의 병리학 시험에서
발암 물질들을
종류에 따라 외웠다.
나는 답안지에 니트로스 아민 쓰는 것을 깜빡 했다.
생각이 났을땐
이미 시험시간이 끝났을 때였다.
병리학 교수님은 괴팍한 분이었다.
시험점수에 대한 배분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문제에는 배점이 높고
관심이 없는 부분엔 아주 적은 점수를 달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