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신분상승의 유혹
에나멜 안에 덴틴이라는 층이 있는데
이 역시 혈관이 없다.
덴틴층은 연령즉가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치아 안쪽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반대로
그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는다.
에나멜과 마찬가지로
혹시나
우리몸이 칼슘을 필요로해
덴틴이 녹았을 지라도
그것을 운반할 혈관이 없다.
칼슘우유를 먹는다고 해서
다 자란 치아가 더이상 튼튼해 지는 것도 아니고
몸에 칼슘이 부족하다고 해서
치아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설탕과 관련된 무기질 대사에 대해선 모르겠으나
설탕을 섭취한다고
치아가 약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설탕에 대한 오해가 안타깝다.
설탕은 지난 역사 속에서 영양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했다.
먹지 못해 머리가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없을때
그냥 찬물 한 대접에
설탕을 부어 휘휘 젓고
마시면,
어지러움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생긴다.
지독한 스트레스로
소화가 안 되고
짜증이 밀려올때
대접에 찬물을 붓고
설탕을 쏟아 넣어
설탕 포화 용액으로 만든 다음
그 설탕 용액을 마셔보자
지독한 스트레스가 녹고
마음이 안정된다.
음료수 안에 담긴 설탕이
아이스크림에 담긴 설탕이
원기 회복제에 담긴 설탕이
백종원의 설탕담긴 음식들이
우리의 기분을 급격하게
좋게 만든다.
설탕을 먹으면서
건강을 해친다는
비과학적인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혈관에 당수치가 높을때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머리를 쓰고
열심히 감정을 소모하고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췌장의 베타세포가
인슐린을 과다 분비하게 되므로
일을 많이 해서
망가진다는 이론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유전적으로 췌장이 망가질 때가 되어
망가지는 것이고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문제
혹은
몸을 혹사하는 생활 습관에 의해
췌장의 기능이 안 좋아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직도 당뇨에 대한 좀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단맛을 느끼면서 반사적으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대안으로 사용하는 인공감미료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이 자본은
휴머니즘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병에 걸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스스로 조심하고
과학적인 사고를 해서
쓸데없이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늘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는 나도
사실 많이 휘둘린다.
논문을 일일이 찾아 볼 수 도 없는 노릇이니
믿을만해 보이는 전문가가 하는 말은 믿는다.
나는
방송에서 의사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는다.
방송국은 자본주의 논리로 운영된다.
병원마저 자본주의 논리로 운영되는 마당에
방송국이 내 건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질리 없다.
이런 저런 쓸데 없는 생각을 나는 사이에
새 원장의 벤츠가
평상 앞에 섰다.
나는 바나나맛 우유가 담긴 봉지를 들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봉지를 새 원장에게 내밀었다.
"우리 형님 자상하기도 하시지....그렇지 않아도 이거 먹고 싶었는데."
새 원장은 바로 빨대를 꼽아
바나나맛 우유를 단숨에 빨아들였다.
"늦게까지 못 자고 고생이 많아."
"매니저 일을 하려면 그정도는 감수해야죠. 공으로 돈 받을 수 있나요?"
"응. 고마워. 이번 사모님이 스폰 제안을 하셔서...수락했어...그렇게 되면 특별히 내가 조심해야 할 게 있나?"
"아이구, 잘 하셨어요 형님. 그 사모님이 무척 까탈스러운 분인데...형님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스폰 계약을 한다고 별로 다른건 없어요.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개념일 뿐이에요. 제가 스폰 계약에 맞게 스케쥴 조정 해 드릴게요."
"알았어. 그런데 자기도 그 사모님하고 했어?"
"형님 그걸 왜 물으세요?"
"아니 사모님 성격이 까탈스럽다고 해서...내가 무던한가...그런건 잘 모르겠는데..."
"했다고도 안 하고, 안했다고도 안 할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안 했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이바닥에선 다 구멍동서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거 신경쓰면 이바닥에서 일 못합니다. 형님. 제가 했건 안 했건 그냥 구멍동서로 여기시라고요."
"그래 알았어."
"형님, 사모님이 페이는 잘 주시던가요?"
"오늘 계약금이라고 오천만원을 받고 또 오늘 비용이라고 오백을 받았어."
"잘 받으셨네요. 그 사모님이 좀 짠 편인데...잘 주신거에요. 형님 7대 3인거 아시죠? 오백에 대해서는 무료로 하고 오천에 대해서만 천오백 떼어주세요."
"알았어...그리고 금목걸이 선물로 받았는데...이것도 7대 3인가?"
"그건 선물이니까 형니꺼죠...뭘 그런데까지 커미션을 얹어요? 마음 상하게."
"땡큐."
"알이 굵은개 순금이면 한 20돈 되어 보이는데요...대충 이천만원쯤 되겠네요. 형님 감축드리옵니다."
"형님 두번 일 해보시니까 어떠세요? 할 만 하세요?"
"크게 어려운건 없고, 금전적 보상은 기대 이상이네..."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신분 상승하는 길이라고."
창 밖에 보이는 차들이 비루해 보였다.
그 차들을 운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 하나가 부족하고 열등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벤츠가 지나가니 차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접촉사고라도 날라치면
평민들이 그 수리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특별한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형님 내일 개원식에 오실거죠?"
"그래 내일 진료 끝나는대로 갈게...그런데 나 일찍 일어나야 돼. 약속이 또 있거든."
"어디 가시는데요?"
"내가 아는 화가분이 전시회를 연다고 전시회 축하파티에 가봐야 돼."
"아..화가분들하고 교류하시는구나..."
"왜 소개해줘?"
"네. 저도 예술쪽에 관심이 많아요. 기회되면 소개해 주세요."
"알았어."
"내일 오실때 이쁜이 간호사들도 데리고 오세요."
"알았어 물어보고. 간다고 해야 가는거지."
"아마 올 거에요. 그나저나 개업식하고 저번처럼 파티를 해 볼까 했는데 나중에 해야되겠네요."
새 원장은 내일 그대로 파티를 할 것이다.
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옆에 있으니 립서비스 하는 것일뿐.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쁜이 둘과 반드시 떡 잔치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냥 나 없이 파티 하지. 내가 빠지면 평균나이가 확 내려가잖아."
"에이...형님은 나이 그런거 신경쓰지 마세요. 형님의 그 부러운 남성의 심볼...그 앞에선 나이 그런거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스타일이 젊어서 실제 나이에 연연할 필요 없으세요."
그는 어떤 부정적인 말을 듣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긍적의 말로 되돌려 놓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말 해주니 고마워."
"고맙긴요. 형님 자체가 보물이에요. 광산에 숨겨진 다이아몬드 원석."
"하하하. 너무 날 띄워주네...비행하다가 훅 떨어지긴 싫은데"
어느새 차가 병원 앞에 도착했다.
"운전 해서 들어가실 거죠?"
"응 그러려고."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뵐게요."
"그래."
나는 벤츠에서 내렸다.
벤츠는 도로쪽으로 부드럽게 움직여
금세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중국요리집 사장님이 나와
가게의 입간판을 들여 놓고 있었다.
돈 벌고 살기위해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저 중국집 사장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와 같은 신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헛된 꿈을 안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게 아닐까
내가 저 사장님의 신분이라면
그 신분에 알맞게
적당히 돈 벌고
아껴 쓰면서
부인과 떡치는 재미정도를
낙으로 여기고
소박하게 살텐데.
뭐하러 저리 아둥바둥 사는지
그런다고 바뀌는 것도 없을텐데.
우리는 어릴때부터
위험한 세뇌를 받으며 자란다.
틀린 답을 정답인양 강요받으며 자란다.
우리나라가 자유와 평등을 근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국가라고.
그리고 무슨 꿈이든지 노력만 하면
이룰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한발 더 나아
희망과 꿈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모르게 된다.
자신들의 자녀가
스티브 잡스가 될 것 마냥
저커버그가 될 것 마냥
일론 머스크가 될 것 마냥
헛된 꿈을 안고
자신들의 영혼을 갈아 넣고
헛돈을 쓴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또 행운의 여신이 열두번 강림해도
그저그런 부모 아래에서는
그저그런 자식이 나올 뿐이다.
꿈을 깨고
헛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실망하며
스트레스 받을 시간에
자녀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녀와 즐거운 이벤트를 만들어
소소한 인생의 행복을 즐기는 것이
더 나은 투자이다.
그들에게 쏟아부을 학원비와 과외비는
저축을 하든
연금을 가입하든
안전한 주식을 사든
그 자금들을 모아
나중에 자녀에게 주는 것이
백번 나은 투자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에 진학한다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보장이 없다.
차라리 자녀가 강단있고 성실해서
장사를 잘 할 소질이 있으면
일찍부터 장사를 하는게
더 좋은 투자일 수 도 있다.
흔히들 오해한다.
스티브 잡스가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라고
아니다.
스티브는 원래 용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