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천안 터미널에 도착하다
지루한 펌프질 끝에
뿌리끝 신호가 왔다.
나는 속도를 조금 높여
결국 사정을 했다.
첫번째 보다는 약하지만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흘렀다.
나는 천천히 펌프질 속도를 줄이다가
그녀의 몸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나를 안아줬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매트 위에
가까스로
누워있었다.
밤 내내 서로를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미니멀 생활 습관을 가진 그녀는
방바닥에 난방을 하지 않았다.
난방을 하지 않았어도
서로 끌어안고
버틸만 했다.
자다 깨다하면서
날이 밝았다.
사장님이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금세 구수한 냄새가 났다.
"원장님 아침 드세요."
사장님의 한마디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은 테이블에
된장찌개를 올려 놓았다.
나는 밥솥에서 밥을 퍼 담았다.
김치에 된장국
내가 평소에 먹던 아침 메뉴였다.
다른 것은
그 퀄리티가 비교할 수 없이
높다는 것
나는 밥솥에 있는 밥을 박박 긁어
세 공기를 먹었다.
아침을 잘 먹고 기분이 뿌듯해졌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좋겠어요."
"매일 아침 이리 오세요."
"하하하. 같이 살자는 얘긴 안 하시네요."
"농담도 참..."
나는 지은과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테이블에 오만원짜리 다섯장을 꺼내 내려놓았다.
사장님은 그 돈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 볼에 뽀뽀하고
식당을 나왔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가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요일 아침 도로위에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집에 들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다시 차를 몰아
지은의 교회로 향했다.
시간에 늦지 않고 도착했다.
열한시 십오분전
교회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
나도 그틈에 끼어
주차장 제일 바닥층으로 내려갔다.
지은에게 전화를 했다.
"나 도착했어."
"어 2층 오던 자리로 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배당 2츠에 올라갔다.
지은과 눈 인사를 하고
서너칸 떨어져 앉았다.
오랜만에 찬송가를 부르니
기분이 좋아졌다.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을때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할때
찬송은 좋은 치료제였다.
교회에서 찬송 부르는 시간에
성도들에 묻혀
소리를 세게 지르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
목사의 지루한 설교엔
졸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깨어났을 땐
목사가 근거도 대지 않고
누가 옳다 그르다
하나님의 뜻은
어느 정치인에게 있다는 둥
목사같지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성도들은 진심으로 그러는지
아니면 오랜 예배습관으로 그러는지
목사의 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려니 생각한다.
목사도 다 생각이 있어서
정치적 발언을 하리라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자기가 소유한 교회 안에서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목사의 설교가 싫을땐
그 교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된다.
목사가 하는 말에
장로쯤 되면 모르겠으나
일반 성도들은
감놔라 배놔라 참견할
자격이 없다.
이천년전 개척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나 베드로등 초기 교회 사도들은
개척교회를 순시하며
왕노릇을 했다.
성도들의 재산을 헌납받아
자기들이 의지대로
사용처를 배분했다.
재산을 헌납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꾸짖었다.
그들의 말은 예수의 말이었고
하나님의 말이었다.
우리나라 교회의 목사들이
왕노릇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관습이 아니다.
수천년 동안 교회는
사람들을 꾸짖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가르쳤다.
그게 싫은 사람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된다.
그 오래전 사도들도
정치질을 했다.
어떤 사람은 믿을 만 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믿을 만 하다
어떤 사람은 게으르다는 둥
사도들끼리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니과 하나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비중으로
탐욕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있다.
교회 안에도 패거리가 생기고
교회 안에 정치가 있을수 밖에 없다.
그런 교회에서 국가의 정치를 논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족보도 없는
제정분리의 원칙을
교회에 들이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찬송가 부르는 거 말고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예배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지은에게 눈짓을 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에 앉아
오늘 내가 따먹을
교사가 어떤 여자일까 상상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할때 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범생이었지만
내 몸안에서는 욕구가 항상 끓어 올랐다.
그 와중에 한번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난적이 있었다.
본과 사학년
의사 국가시험을 준비해야 할때
에너지를 지나치게 써버린 나머지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나는 그당시 유행하던 ㅇㅇ클럽이라는 채팅싸이트에 들어가
멍을 때리고 있었다.
기왕 멍때리는 거 영어 연습이나 하자는 심산으로
외국어방에 들어가서,
독수리 타법이지만, 철자와 문법에 신경 써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열명이 넘는 참여자들 중
나는 점점 왕따가 되어갔다.
줄임말과 빠른 타이핑으로 무장한 참여자들은
나를 갑갑하게 생각했다.
나는 뒷북 대화를 하기 일쑤였다.
시험영어와 현실영어의 벽을 실감했다.
그때, 내게 한글로 쪽지가 왔다.
[우리 밖에서 대화해요.]
여자 이모티콘이니 여자일 수도 있지만,
워낙 사기 캐릭터가 많아 남자라고 생각했다.
쪽지를 따라 새 대화창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그 여자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내가 영어타이핑으로 고전하는 모습에 동병상련을 느꼈고,
약어 속어가 난무하는데도
꾸역꾸역 스펠링을 지키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고 했다.
서로 대강의 호구 조사를 하고,
시사토론도 하고 농담도 하다보니
한 시간정도가 흘렀다.
선생님은 허리와 손목이 아프다며,
더 이야기 하고 싶은데 전화로 대화 하자고 제안했다.
당연 콜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했고,
맑고 지적인 목소리를 듣고 잠깐의 불신을 반성했다.
대화를 하다보니 그 선생님은 나쁘지 않은 사람같았다.
농담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했다.
나도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금세 연인모드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죽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얼굴 볼 일 없으니 부담이 없었고,
내 입에서는 과감한 말 들이 잘 나왔다.
그때, 선생님이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보고싶다고 했다.
나는 겁쟁이기 때문에 절대로 웹 상에서 사진을 주고 받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에게 사진에 대한 내 원칙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아쉬워하며, 흐릿한 자기 사진을 내게 보냈다.
전신 사진이었는데, 실루엣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이 예쁘다고 칭찬했다.
선생님은 나를 꼭 보고싶다고 다시 떼를 썼다.
나는 직접 얼굴을 보면 모를까 사진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대전에 있었고, 나는 서울에 있었다.
나는 서로 만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선생님에게 좋은 말로 단념하시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궁금증을 못참는 병이 있는지,
내게 중간 지점인 천안에서 당장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망설였다. 집에 놀고 있는 아반떼가 있어 운전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바람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또한 벌써 저녁이 되어가는데, 운전이 미숙한 내게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혹시 모를 행운을 상상했다.
겁 많은 내게 늘 욕망의 씨앗들이 문제였다.
선생님이 보낸 사진의 실루엣을 보며, 나는 이성적으로 내린 결론을 뒤집었다.
위험을 무릅썼다. 우리는 서로 삼십분 마다 전화하기로 했다.
선생님도 바람맞을 위험을 피하고 싶어했다.
벌써 라디오에서 퇴근길 교통정보가 흘러나왔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쉬울 길을,
서울 동쪽에 살던 나는 퇴근길 정체를 피해 중부를 탔다.
내려가다가 어찌어찌 국도를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네비도 없고 길도 모르던 그 때,
내가 무슨 용기로 그 과감한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시간 조금 넘자 그 선생님은 천안 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중부에서 빠져나와 지도책에 있는 국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삼십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사방은 어두웠고, 위험한 운전을 하면서
상대방을 초조하게 기다리 하는 그 상황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내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무리였나봐요. 제가 운전이 미숙해서 솔직히 언제 도착할 지 모르겠어요. 기다리기 힘드실텐데 힘드시면 집으로 돌아가셔도 돼요."
선생님은 차분하게 나를 달랬다.
"아니에요. 여기서 계속 기다릴테니 천천히 와요."
"네 알았어요. 고마워요."
"대신 조심운전 하세요. 만약 사고나서 그쪽이 죽으면 최근 통화목록에 내 번호가 있을텐데..."
"하하하..."
나는 선생님의 말에 헛웃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경찰 만나고 싶지 않아요. 원래 내가 참고 기다리는 거 잘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와요. 절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요."
"네 알았어요."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우여곡절 끝에 밤 아홉시가 넘어 천안 터미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