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선생님을 위한 이벤트 (112/189)



〈 112화 〉선생님을 위한 이벤트




나는 원래 쇼핑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날은 쇼핑으로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힘이 넘쳤다.


상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내게 좋은 일이 있냐며

밝은 인사를 건넸다.

 있습니다~~"

쇼핑에서 돌아온 나는 급하게 숙박시설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 중 평이 좋은 시설 몇개를 추려 사진들을 검토했다.


검토하며

전망이 좋을 것,

고급스런 욕조가 있되 화장실과 별도의 공간에 있을 것,


영화 감상이 가능한 큰 스크린이 있을 것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그에 맞는 한 곳을 예약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예약에 어려움이 없었다.

10퍼센트 할인 쿠폰도 출력해서 가위로 오린 후 지갑에 넣어두었다.


준비는 끝났다.




내 인생에 이런 설렘이 있었던가.

나는 예약한 호텔(을 가장한 모텔)의 사진들을 보면서

동선을 계획하고

액팅 위치를 지정하며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영화 한편을 찍으리라.

상상은 즐거웠다.

나는 약속날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전날 꼼꼼히 채워 놓은 준비물 박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아반떼 트렁크에 넣었다.

이중으로 넷트를 덮어 박스가 움직이지 않게 했다.


다시 올라와 샤워를 구석구석 하고 옷을 골랐다.


핑크빛 셔츠가 어려보였다.


가진 바지 중에 아이보리색 면바지가 제일 깨끗해 보였다.


자켓은 몸매가 슬림해 보이도록

굵은 스티치가 장식된 곤색 마이로 했다.



거울로 보니 너무 색이 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깔끔함이 좋았다.


옷이 몇  없어서,

고민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팬티는 어제 새로 사서 빨아 놓았다.

캘빈 클라인.

내 물건을 돋보이게 하는 명품이었다.


내겐 과소비였지만,

이벤트에서 제일 중요한 소품이 아닌가.


결제하는데 두번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대충 말렸다.


시간이 지나 완전히 마르면

 안에서 젤을 바르기로 했다.



출근하는 차들과 엉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침 식사도 생략하고 서둘렀다.

이제 출발이다.



출전하는 장수의 비장함으로 문을 나섰다.


그 전날 광을 한껏 올려 놓았던 구두에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길에는 출근하는 차들이 있었지만,


스트레스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약속은 아홉시 반이었다.


나는 여덟시에,


약속한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처음 선생님을 만나던  밤,

스트레스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는 여유가 좋았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맨손 체조도 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다시 차에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선생님이었다.




아홉시 십오분.


선생님은 오늘 연한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 아래 검은색 스타킹과

석이 박힌 검정 세무 하이힐.


선생님의 날렵한 다리를


더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자세를 바꿀때마다 생기는


스타킹의 반사광이


잠자고 있는 내 물건을 자극했다.


선생님 차는 그대로 주차해 두고,


내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선생님은  옆자리에 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나 보고 싶었어?"

"네"

선생님은 계속 머리를 쓰다듬으며,


똥그란 눈으로 내 눈을 가까이 쳐다봤다.

나는 선생님 입술에 살짝 뽀뽀했다.

선생님은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으이그 못됐어~"



선생님은 조수석에 앉아

립스틱으로 입술을 고쳤다.


나는 혹시 머리가 눌렸는지


머리에 바른 젤은 괜찮은지

룸미러로 확인했다.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은 국립공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선생님 손을 젠틀하게 잡도록 노력했다.



손가락 사이에 땀이 베어 나옴을 느꼈다.


공기가 무척 상쾌했다.

주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작은 농담에도 크게 웃었다.

벤치가 보이면 나는 선생님을 앉게 했다.

편한 신발을 신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이힐이 마음에 걸렸다.



내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선생님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우리는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공원을 둘러보았다.

야~ 좋다.


우리는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숨기려 했지만,


내가 아침을  먹고 온 것을

선생님이 알게 되었다.



"우리 애기 배고프구나.... 밥 먼저 먹자"



선생님은 나를 가까운 식당으로 안내했다.


 속에 테라스가 있는 식당이었다.

경양식이 주 메뉴였다.

우리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선생님은 내가 스테이크를 복스럽게 잘 먹는다며

자기 것을 내게 넘겨 주었다.

솔직히 가격에 비해 맛은 별로였다.


하지만 선생님이 옆에 있어 행복했다.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손을 놓지 않고


한참동안 산 아래 쪽으로 펼쳐진

경관을 감상했다.



"선생님 잘 먹었어요. 행복해요"


나는 어색한 애교를 부렸다.



선생님은  엉덩이 톡톡을 했다.



"우리 이제 내려가자."


"네."

우리는 주차된 차로 걸어 내려 왔다.

이제부터 나의 시간이다.


심호흡을 했다.

그 전날밤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했다.



여러번 수정해 가며 만든 시나리오대로 하면,

선생님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선생님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날 어디로 데려갈 거야?"


"선생님은 나만 믿고 따라오세요...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혹시 새우잡이 어선에 나를....."


"어떻게 알았어요?"


선생님의 농담은 모두 귀엽고 상큼했다.

나는 선생님이 이름만 호텔인


그 모텔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말을 돌렸다.



"우리 오늘 영화 볼거에요"

"슬프지 않은 영화 보고 싶다"

"그럴게요...안 슬픈 영화 봐요 우리."


나는 미리 준비한

포카리 스웨트 1.5리터를 선생님께 드리고,

나도 한병 들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료였다.


나는 아까 먹은 스테이크가 짰다고 하며,

한병 원샷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크게 웃으며 몸을 뒤로 쓰러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1.5리터를 원샸하냐"




선생님은 내 오른쪽 어깨를 기분좋게 때렸다.



맥주 빨리마시기,


콜라 빨리 마시기는 내 개인기이다.


병콜라는 일초가  걸리고,

생맥주 1리터는 이초면 된다.

나는 핸드폰 스톱워치를 들이밀며,


선생님도 해 보시라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먹는 내기는 바보들이나 하는 거야. 흉하게 그런걸."

내가 실망한 눈빛을 보이자,

"시간 잘 쟤....내가 손 흔들면 시작이야..."


재치있는 반전이라니...

선생님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선생님은 꿀꺽꿀꺽 한병을 제법  마셨다.




선생님은 체육인이다.


체육교육 전공에 요가강사.

내가 중간에 스탑워치를 잘못 눌러


정확한 시간은 알  없으나


한 30초 정도 걸린 듯하다.



선생님은 배가 빵빵해졌다고

귀여운 앙탈을 부렸다.


나는 페트병 두개를 공원 쓰레기통에 버리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지도를 외웠지만,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어디가는데...내가 알려줄게."

참다참다 선생님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나는 꿋꿋하게 운전했다.


고집스레 이정표들을 확인해가며


돌고 돈 끝에

이십분이 걸려 모텔에 도착했다.



선생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가 언젠간

정식으로  날이 있으리라 짐작했으리라.


그 시점이 예고 없이 급하게 다가왔고,


 시각이 점심 대낮이라는 사실이

선생님을 놀라게 했으리라.

"여기서 영화를 봐?...."

"네."




그 모텔 입구에는 비디오 대여점처럼


수많은 비디오 씨디가 꼽혀있었고,

금주의 추천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나는 쿠폰할인을 받기위해 대실 비용을 현금으로 냈다.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리는 꼭대기 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았다.

사진에서 본 만큼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깨끗했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 있는 평면도대로 예상한 위치에


넓은 거품 욕조가 있었다.


테이블, 의자, 침대도 예상한 위치에 있었다.



"선생님 잠깐 여기 계세요. 아래가서 영화 씨디 가져올게요...."

"알았어."


"오늘 내가 보고싶은거 봐도 되죠..."

선생님은 선채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문밖으로 나는 뛰었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있는 동안 모든 세팅을 완성해야 한다.


포카리 스웨트 1.5리터는 이벤트 세팅 시간 벌기용이었다.

시뮬레이션대로 물 흐르듯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차에서 박스를 꺼내고,

카운터에 부탁한 타이타닉 씨디를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방으로 뛰어들어 왔을땐

예상대로 선생님이 화장실에 있었다.

나는 우선 욕조에 꽃잎을 던져 뿌리고 물을 틀었다.

향초 묶음중에 네개를 뺀 나머지는 대충 하트 모양을 만들어 두었다.

욕실 문을 닫았다.



방으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케익을 세팅하고

1자 모양의  초에 불을 붙였다.




향초를 화장대에 4개 놓고 불을 붙였다.

샴페인과 샴페인잔, 고깔은 케익 옆에 두고

영양제와 장미는 테이블 아래에 두었다.




씨디를 돌려 윈슬렛과 드카프리오가 펼치는

뱃머리 명장면에 맞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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