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천만원짜리 비싼 오입
종가집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
햇반 위에 올렸다.
된장찌개가 데워졌다.
나는 그렇게
늘 똑같은 아침식사를 했다.
양치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셔츠와
새로운 속옷
새로운 바지와
새로운 자켓을
입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병원에
여유있게
도착해
원장실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들이 출근 했다.
원장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언니 간호사와 동생 간호사가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했다.
간호사들은 문을 닫고 간호사 휴게실로 갔다.
나는 잠시 뒤에
데스크 앞에 갔다.
동생 간호사가 옷을 갈아입고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오늘 몇시에 약속이에요?"
"누구요?"
"제 약속이요...어머님하고..."
"아아...아무때나 가셔도 돼요. 엄마는 거의 외출을 안 하세요."
동생간호사는 주소를 적어 주었다.
"여기에 가서 초인종 누르시면 돼요."
"고마워요."
나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원장실로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은
환자로 붐빈다.
나는 정신없이 환자들을 봤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녹초가 되었다.
간호사에게 돈까쓰 배달을 부탁하고
원장실 의자 깊숙히 앉아 눈을 감았다.
"넌 이제 얼마 못 살아."
"또 뭐에요...할아버지...."
"네 몸이 병들었어...쯪쯪....의사라는 놈이 지 모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전 아직 젊고 건강해요..."
"안으로부터 썩어가는걸 네가 어떻게 알겠니...? 내가 누누히 경고 했건만...내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썩은 몸이 되어 가는 구나"
"할아버지 뭘 알고 말씀 하시는 거에요? 할아버지가 의사에요?"
"의사보다 더 잘 볼 수 있다."
"전에는 확률을 운운하더니....이번엔 귀신이...의사보다 더 잘 볼 수 있다고요?"
"귀신이라서가 아니라 애정을 갖고 보면 더 잘 볼 수 있다."
"쓸데 없느 소리 하지 마세요...전 피곤해서 쉬어야 해요."
"네 몸이 썩어 가기 때문에 피곤한 것야."
"그럼 전 세계에서 일 하느라 피곤한 직장인들은 전부 몸이 썩어 가는 거겠네요?"
"넌 일을 열심히 해서 피곤한게 아니야 몸이 썩어가고 있어서 피곤한 거야."
"귀찮아요...이제 할아버지 말 듣고 싶지 않아요."
"할애비가 되서 손주에게 고언을 하는데...마음을 고쳐먹고 지금이라도 귀 귀울이거라."
"알았으니까 이제 가 주세요."
"나는 더이상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거야."
"정말이에요."
"이제는 내가 넘어설수 없는 힘이 나를 방해 하는구나. 어쩔 수 가 없구나...그동안 괴로웠다면 미안하다. 다 너를 위해서였어. 앞으로 명심해 줬으면 좋겠다. 네 몸이 썩어가고 있지만...네가 더 이상 여자와의 관계를 멈춘다면 네 몸이 회복 될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몰라. 십년이 넘게 걸릴 수 도 있어...하지만 네가 여자와의 관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너는 곧 죽게 되어 있어....부디 명심해라..."
"이제 정말 안 나타나시는 거에요."
"나는 너를 보고 싶지만. 더 큰 기운이 나를 방해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너는 말 해 줘도 모른다. 부디 내가 한 말을 명시했으면 한다."
나는 눈을 떴다.
온 몸이 젖어 있었다.
책상 위엔 간호사가 놓고 간 것인지
돈까스가 놓여 있었다.
이미 돈까스는 식어 있었다.
나는 식은 돈까스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밀어 넣었다.
돈까스를 겨우 다 먹었을때
점심시간이 끝나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진료하는 내내
식은 땀이 나왔다.
급하게 허기가 지고
손이 떨렸다.
저혈당 증상의 하나였다.
나는 원장실로 들어와
쵸콜렛을
입에 넣어
우걱우걱 씹었다.
다시 진료실로 나갔다.
대기실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났다.
저 환자를 다 보고 나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원장실에 들어와
초콜렛을
더 많이 집어
입에 밀어 넣었다.
우거우걱 씹으며
진료실로 갔다.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다.
환자의 증상보다
내몸의 변화에 더 집중했다.
환자들 대부분 감기 환자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진료 했다.
환자가 말을 하면
듣고만 있었다.
나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환자들의 불만 어린 얼굴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내일 당장 병원을 그만 두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 몸에 이상을 느낀 이상
환자들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빨리 퇴근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들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마지막 대기 환자를 마져보고
나는 원장실로 들어와
의자 깊숙이 앉았다.
눈을 감았다.
온 몸에서 식은 땀이 났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데스크 앞으로 걸어갔다.
벽시계는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몸이 좀 안 좋네요...병원 문을 좀 일찍 닫으면 어떨까 합니다."
"원장님 몸이 안 좋으신데 어쩔 수 없죠....문은 열어 놓고 환자들이 오면 잘 말씀 드릴게요...5시 30분 되면 그때 문 닫고 퇴근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네 고마워요...그럼 먼저 퇴근 할게요."
"원장님 몸조리 잘 하세요...그럼 오늘 우리 엄마 만나시나요?"
"네 거긴 가보려고요."
"우리 엄마 처음 만나면 무서울 수도 있어요. 너무 겁먹지 마세요. 마음 따뜻한 분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원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바로 차를 몰아
동생 간호사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주소를 찾아가다 보니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엇구나 할 정도로
산밑에 허름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니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 점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차를 점집 앞에 세우고
조심스럽게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후
문이 열리는 전기 신호가 들렸다.
탕~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렸다.
나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안에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나는 대문을 닫고
화분들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현관 문에 가까울 수록
향냄새가 진해졌다.
나는 현관문을 당겨봤다.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짙은 향내가 집안에 가득했다.
집안은 조용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마루 바닥 위로 올라섰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천천히 서성였다.
"이리로 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어 붙었다.
"겁먹지 말고 이리로 와."
소리가 작은 방 안에서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들어 갔다.
화장을 짙게 한 여자가
한복을 입고
낮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 봤다.
"앞에 앉아."
나는 그 여자 앞에
조심히 앉았다.
예법을 몰라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겁먹지마."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니 할아버지라고 말하던 그 귀신은 인제 너한테 안 나타나."
나는 대뜸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소름이 돋았다.
"내 동자신이 찢어발겼어..."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근데 네 몸이 썩고 있어."
할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녀는 묘한 웃음을 웃었다.
"아무리 용한 의사라도 고칠 수 없어."
"어떤 종류의 병인지 말씀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몸안에.... 네 좆에 귀신이 들었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귀신이 들 곳이 없어
거기에 귀신이 든단 말인가.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짜증을 냈다.
"뭘 더 자세히 가르쳐줘. 그정도면 알아들어야지."
그렇지 않아도
그 선생이라는 여자를 만난 이후로
몸이 영 안 좋았다.
평생 안 하던 몽정을 했다.
"치료법은 없을까요?"
그분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 동자신께서 널 싫어해...달래드리려면 비싸."
동자신이 나를 싫어한다.
나를 싫어하는 데 왜 내 할아버지를 찢어 발겨 놓았을까?
그래도 영 기분이 안 좋았다.
그녀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대략 어느정도 준비해야 할까요?"
"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얼마냐는 물음에
바로 천만원을 불렀다.
부자들에게는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위해
수억씩
무당에게 준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유력한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굿판은
이삼첨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비하면
천만원은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애초에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에게
단돈 천원도
과도한 액수였다.
마음 속에 갈등이 생겼다.
비록 헐렁한 신자일지언정
나는 매주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한다.
제일 힘이 센
예수라는 귀신을 모시는데
그깟 잡신에게
내 건강을 부탁한다는게
게다가 의사로서 부탁한다는게
영 마음에 걸렸다.
"얼른 결정해. 동자신을 달랠거야 말거야. 동자신님이 바뻐....바로 시냇가로 놀러가야 돼"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이성적인 생각을 했지만
어이없게도
내 입에선 비 이성적인 대답이 나갔다.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그분이 나를 째려봤다.
"장난치면 동자신님이 화를 낸다. 그러면 나도 그걸 감당 못해. 알았어?"
"네"
"천만원은 내일 내 딸에게 줘."
"네"
내 대답을 듣고 그분은
눈을 감았다.
한참을 조용히
가부좌르 틀고 있엇다.
쥐를 잡아먹은듯
시뻘건 입술이
오물오물 거렸다.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무언가 중얼 거렸다.
갑자기 입을 열어 내게 이야기 했다.
"이쪽으로 와서 내 옆에 서."
나는 그분 옆에 섰다.
그분을 계속 중얼거리더니
내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천만원짜리 비싼 오입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