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7화 〉내 방에서 뒹구는 여자원장 (137/189)



〈 137화 〉내 방에서 뒹구는 여자원장



"자기야 나 오늘 보고 싶은데..."

"언제가 좋으세요?"


"오후 네 다섯시쯤?"

"네 알겠습니다. 병원 일이 있어서...진료 끝나고 출발 전에 바로 연락 드릴게요."


"그래...나 오늘 자기 위해서 속옷 새로 샀어...기대해..."


"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전화기가 울렸다.

새 원장이었다.

"형님   없으시죠?"

"응 이전하고 같지...어제부터 환자 봤나? 환자 보는거 괜찮아?"

"어이구 죽을 맛입니다. 계속 원장실에 앉아 있으려니까 좀이 쑤셔서 못 살겠어요."


"환자는 많아?"

"드문 드문 쉴만 하면 오고  쉴만 하면 오고...거참"

"거기 자리가 나쁘지 않아서...꾸준히 올거야..."


"형님 얼른 여기 와서  짐좀 덜어주세요..."

"삼일을  해야돼..."


"그 삼일 빨리 지나가면 좋겠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형님 오늘 밤에 시간 되세요?"

"왜?"


"형님을 찾는 사모님이 또 나타났는데..."

"오늘 약속이 있는데...오늘 아주 밤 늦게나 내일 보면 안 될까?"

"그럼 내가 조율해 볼게요...형님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꼭 형님을 보고 싶다네요...형님 어디다 광고하고 다니시는 건 아니죠?"

"설마.."


"형님 조심하셔야 되요...이 바닥에선 보안이 생명이에요...아셨죠?"

"알았어."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전화를 끊었을때


간호사들이 원장실 문을 열고


아침 인사를 했다.


그녀들이 인사한 후

병원출입문의 땡그렁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렸다.

대기실은


금세 환자들로 가득찼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진료실로 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나고 기침하는

감기 환자들이었다.



나는  하던 처방을 하고

설명은 간호사에게 넘겼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환자를 보는데도


총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는 원장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문자알림이 들렸다.



[아침에 된장국 냄새 났는데 어디에 있어요?]




여자 원장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안드신다고 해서 제가 전부 먹어버렸습니다.]

이렇게만 보내면 실망 할까봐

[냉장실에 보면 된장국 파우치 있습니다. 냄비에 데워 드시면 돼요.]



여자 원장에게 밥과 김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냉장실에 종갓집 김치 팩 있어요. 햇반은 싱크대 바로 위에 문 열면 보일 거에요]

오분 정도 지나자 문자가 왔다.

[다 찾았어요. 된장국 맛있네요. 고마워요.]

나는 여자 원장에게


밥 먹었으면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녀가 내 물건에 손대지 말기를

기도할 뿐이다.

만약 오늘도 청소한답시고


내 물건에 손을 댄다면

나는 분명 폭발할 것이다.

그 끝은 나도 어떻게 될 지


보장할 수 없었다.




환자들이 드문 드문 왔다.


특이한 환자는 없었다.


모두 감기 환자였다.


나는 혹시나 여자 원장이

 집안을 뒤집어 놓을까봐


안심이  되었다


결국

나는 전화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아직 집에 계세요?"

"지금 창문 열어 놓고 청소할까 생각중이에요."


"청소 안 하셔도 돼요..아니 하지 마세요...제가 할 게요."


"운동 삼아 하면 되는데..."

"그 운동 하지 마세요..."

"혹시 오늘 오후시간 진료  주실 수 있어요?"

"왜요?"

"제가 따로 과외를 하는 애가 있는데... 정말 바쁜 애라...어렵게 오후에 시간이 났거든요."


"과외때문에 진료를  한다고요?"


"상당히 고액 과외에요...제가 한 턱 쏠게요... 오늘 점심 어때요..제가 식사 배달해 드릴까요?"

"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론 어디 못가요...내 치마 어디다 버렸어요?"


"그거 너무 지저분해 져서...세탁소에 맡겼어요...오늘 점심시간 이후에 찾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점심 먹고 제가 찾아 올게요."


"제 치마로 방바닥 닦았어요? 지저분해지다니..."

"자세한 이야기 하면 원장님이 챙피해 지세요...그냥 그런줄 아세요."

"설마 제가 치마에다 똥이라도?"

"비슷해요."

"크흠...크흠...설마. 이따 점심때 탕수육하고 짬뽕좀 부탁해요."


"아 네...그렇게 할게요...그럼 오후에 진료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알았어요."

나는 그녀와의 전화를 끊고

 원장에게 바로 연락했다,



"형님...금방 전화를 또.... 무슨 일이세요?"

"병원 원장이 오후 진료 대진을 대진해 주기로 했어."


"대진을 대진요? 하하하"


"알았어요...그럼 사모님하고 연락해 볼게요...그럼 정확히 오후 몇시부터 몇시까지 되는 거죠?"

"대략 한시 반부터 네시 반 정도?"

"네 알겠습니다."


 원장과의 전화를 끊고

'24시 손짜장'에 전화를 했다.



"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24시 손짜장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안녕하세요..오징어에요."


"오징어요?"

"이틀전 오징어.."

"아하...아저씨...어디서 장난질이야...왜요...지금 졸라게 바빠. 빨리 말해..."


"탕수육 하나하고 짬뽕하나 간짜장 곱배기 하나요."

"전에 결제 했던 카드로 결제 한다 아저씨."

"네 그렇게 해 주세요...아 그리고 열두시에 찾을 게요. 시간 맞춰 만들어 주세요. 미리 만들지 마세요."

"알았어. 늦지나 마. 아저씨"


"네 시간 맞춰 갈게요."


점심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환자 두 명을 보았다.



역시 감기 환자였다.

처방전을 입력하고


원장실로 들어 왔다.



바로 새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1시반 남산에 있는 ㅇㅇ호텔 스위트룸 2호로 가시면 돼요."


"알았어..."

"근데 형인 이번엔 좀 힘든 사모님일 수 있어요. 전 형님을 믿지만...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서... 힘든 만큼 보상도 커요..."


"알았어.."


"화이팅. 그럼  연락 드릴게요."



새 원장은 전화를 끊었다.

오후부터 바쁜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반 뉴 페이스 사모님

네시반 과외

일곱시 스폰 사모님




쉬고 싶었지만


환자들이 꾸준하게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11시 40분쯤 되었을때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11시 50분이 되어 들어오는 환자에게


간호사들이 워낙 눈치를 줘서

그 시간 대에 환자가 없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11시 5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환자가 오지 않았다.



나는 11시 49분에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오는 찰라

막내 간호사가 간호사실에서 나오는걸


  같았다.




나는 다시 돌아와

출입문을 열고 소리쳤다.



"오후에는 여자 원장님이 오실 거에요...내일 봐요...점심 맛있게 먹고..."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틀째 그자리에 서 있는

여자 원장의 차가 보였다.




나는 차를 움직여


'24시 손짜장'


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신호를 계속 잘못 만났다.

한번 잘못 만난 신호는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나는 겨우 12시에 맞춰


손짜장에 도착했다.

카운터에 나를 위한


비닐 봉지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안 보였다.




"주문한 거 가져갑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비닐 봉지를 들었다.



"아저씨 잘가."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차로 돌아와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댔다.



현관문을 열었을때


여자 원장은

한창 청소중이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거 드세요..."



여자 원장은


청소기를 끄고

테이블에 앉았다.

"오전에 환자 많았어요?"


궁금하다기 보다는


진료하는 의사들끼리 하는


의례적인 인사였다.



잘 잤냐

아침 잘 먹었냐

라는  대신 하는 인사


"네 그럭저럭 있었어요."



나는 그녀를 위해

짭뽕 그릇의 비닐을 벗기고


탕수육 그릇의 비닐을 벗겼다.

오늘도 봉지 안엔 포스트잇이 붙은


군만두가 써비스가 있었다.




[맛나게 드셔용. 하트 하트]


나는 포스트잇을 뜯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하얀 스티로폼 뚜껑을 찢어 냈다.



군만두에서 열기가 솟아 올랐다.



식탁에 앉은 여자 원장은


봉지에 손을 뻗어 작은 컵에 담긴 것들을

테이블 가운데 내려 놓고


뚜껑을 열었다.



먹을 준비가 되자

여자 원장이 짬뽕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캬~~ 시원하다."


여자 원장의 입술 구석에 고추기름의 빨간색이 묻어났다.

귀여운 삐에로 갔았다.



그녀는 또 다시 짬뽕국물을 들이켰다.




빨간색 기름 자국이 더 커졌다.


"아직 속이 않 좋으세요?"


"아침에 된장국 먹고  좋아졌는데...역시 짬뽕국물 만 한게 없네요."

그녀는

연방


캬~~ 하는


그녀의 속풀이 소리를 냈다.



나는 수타면 위에

간짜장 소스를 붓고

잘 비벼

한 젓가락 크게 떴다.



입속에 우겨 넣고

우물 우물

면을 씹었다.




여전히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항간에 쫄깃한 면은

양잿물을 쓰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양잿물


다른 말로

수산화 나트륨을 사용하면

면이 쫄깃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그러나 식당에서


굳이


독극물인

수산화 나트륨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대신 베이킹소다로 알려진

탄산수소나트륨을 사용한다.


반죽이 알카리성이 되면


밀가루 속에 있는 단백질이 녹으며


면이 쫄깃  지는 것이다.




하얀 밀가루로 만든

수타면이 노란 것은

중식당용으로 나온


베이킹소다에


치자가루가 염료로 들어가서 그렇다.

새 하얀 면 보다


누리끼리한 면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나는 쫄깃한 면발을 즐기며


짜장면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여자 원장이 잘 안 먹는

군만두도 차례 차례 먹었다.



여자 원장은 짬뽕 국물만 마시고

면은 손도 대지 않았다.




탕수육만 오물 오물 씹고 있었다.



나는 여자 원장이 먹던


짬뽕을 가져와


비웠다.


이제 테이블엔


탕숭육만 남았다.


"제가 지금 나가서 치마 찾아 올게요...드시고 계세요."

"아니에요...같이 드시고 나가는 길에 찾아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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