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센스 있는 여자 같으면
저녁을 산다고 할 것이다.
그냥 먹튀하려는 여자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전략을 세우면 된다.
"저도 저녁 먹을 생각이었는데...제가 저녁 사드릴게요..."
"어이구...초면에 그래도 되나 모르겠네요... 저야 영광이죠.."
나는 내 멘트가 너무 올드하다고 생각했다.
"네 잘 됐네요. 저녁정도는 사야 제 마음도 편할 거 같아요. 오늘 좋은 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뭐 그렇게 좋은 놈을 아닌데...사람따라 천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 말을 하고
나는 아슬 아슬한 그녀의 눈빛을 살폈다.
출판사에 다닐 정도면
단어의 의미파악이나
문맥파악은
식은 죽 먹기 아닐까.
"지금은 천사시라는 거죠?"
"뭐 천사까진 아니더라도...마음이 예뻐지게 하는 힘이 있으셔서.."
"푸핫...뭐에요...저 놀리시는 거죠."
그녀가 웃었다.
여자가 웃었다는 것은
2차 진지가 구축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5부 능선을 넘었다.
"차도 쌩쌩 달리는데,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디든 들어가시죠.."
나는 모텔에 들어가자는
마음속 바람을 얹어
한 말이지만
그녀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일단 그녀와 마주 앉는게 급선무였다.
전투를 위한 탐색이 필요했다.
"저기 일식집 있네요. 스시 좋아하세요?"
"네 저기 들어가요."
그녀의 눈썹이 올라가는 걸 봐서
일식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혐오하지만 않는다면 문제 없었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술을 하게 될 것이고
술을 마시면, 음식은 다 맛있게 느껴진다.
만약 그녀가 생선 알러지나 생선 혐오가 있었다면
명확히 싫어한다는 의사 표시를 했을 것이다.
허접한 출판사이지만 과장 아닌가.
우리는 각자의 차를 일식집 주차장으로 옮겼다.
나는 앞장서서 일식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식집은 한창 저녁장사 준비중이었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 종업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 종업원은 눈치가 빨라 좋았다.
"룸으로 모실까요?"
"아...네..."
나는 일부러 말을 더듬었다.
내 흑심을 들키지 않도록
위장과 엄폐를 해야 한다.
그녀가 안내 한 방은
고급스러웠다.
방 한켠엔
정원모양의 분수가 흘렀다.
그 분수 아랫쪽엔
꼬마아이 도자기가
고추에서 물을 흘리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엔
적당한 크기의 까만 강돌이 쌓여 있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매끈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테이블 아랫쪽으로
돌을 살펴보는 척 하면서
그녀의 커피스타킹을 내려다 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스타킹을 찢고
그 사이에 내 자지를 밀어 넣고 싶었다.
그녀의 발은
얌전하게 돌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실수를 가장해
그녀의 발을 내 발로 비빌 생각을 했다.
그정도 되면
그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그녀가 내 선전포고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녀를 함락시키면 된다.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찾잔 두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쟁반을 옆구리에 끼고
주문을 기다렸다.
"과장님 오늘 이자리는 제가 모셔도 될까요. 제가 오늘 여기서 제일 좋은 요리를 먹고 싶습니다."
생각없이 나간 내 말에
나는 커피스타킹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럴줄 알았다는 듯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정도 미모에 몸매면
그동안 주변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남자들 중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이
그녀에게 영혼까지 판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그런 머저리 같은 놈들 중
그나마 괜찮은 놈을 골라
공짜 저녁을 얻어 먹어 봤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도도한 표정이 싫지 않았다.
여자가 도도한 맛이 있어야
정복하는 맛도 있다.
"오늘 주방장님 추천하시는 메뉴가 있나요?'
"네 오늘 운이 좋으세요. 오늘 점심때 혼마구로가 들어 왔습니다. 주방장님 특선으로 그걸 선택하시면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네 그걸로 해 주세요."
"네 그러면 술은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기모노 종업원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내가 다짜고짜 커피스타킹에게 술울 권하면
내가 음흉한 놈처럼 보여 모양새가 안 좋았다.
그 덜컹거리는 과정을
기모노 종업원이
부드럽게 연결해 주었다.
"뭐가 있나요?"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사케가 있는데...가격이 좀 나갑니다."
"가격은 걱정 마시고 그거 주세요."
나는 커피스타킹을 쳐다보지도 않고
터프하게 사케를 시켰다.
그리고 커피스타킹의 눈치를 봤다.
약간 불쾌한 빛이 보였지만 어쩔수 없었다.
달작 지근한 사케를 마시면
언제 취하는 지 모른다.
술을 좀 마셨구나 느낌이 들때 쯤이면
여자들은 걸음을 못 걷게 된다.
이처럼 꼭 필요한 선택에 있어서는
절대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럼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두장을 꺼내
기모노 종업원에게 주었다.
"차 향이 특이하네요..."
"우리들 차사고 나지 말라고 차를 가져다 주셨나봐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무어라?
그녀가 조크를 던졌다.
그것도 아재스타일로.
그녀는 내게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린라이트...
나는 벌써 3차 진지를 구축하고
정상정복을 위하 7부 능선을 넘었다.
이젠 시간의 문제이지
먹고 못 먹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하하...네...어떻게들 우리 사정을 아시고..."
나는 차를 한 잔 홀짝 거리며
그녀를 훔쳐 봤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쪽은 일식집에 자주 오시나 봐요."
"아 네...바다 냄새가 그리워지면 가끔 옵니다."
내가 생각한 최고의 문학적 표현
바다 냄새가 그리워지면.
냄새 대신 향기란 말을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바로 수정 들어갔다.
"바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그리움같은거. 엄마 품 같기도 하고..."
수정은 괜찮았는데,
엄마란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커피 스타킹이 나를 마마보이로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수정에 들어갔다.
"저희 어머니는 절 바닷가에 데려가셔서, 남자란 모름지기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도 내가 말 해놓고 놀랐다.
나는 어디서 이 족보도 없는 느끼한 멘트를 떠올렸을까.
"그래서 그쪽은 넓은 마음을 갖고 무슨 일을 하세요?"
"네 이비인후과 의사입니다."
"아...그러시구나...병원이 어디에 있어요?"
"네. ㅇㅇ동에 있습니다."
나는 급한대로 새 원장이 인수한 내 병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큰 사고가 났어도 의사선생님이 절 치료해 주실 수도 있엇네요..."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발언인가.
교통사고가 났을때
이비인후과 의사가
할 수 있는건 별로 없다.
부목이나 만들고
심폐소생술이나 하면 다행이다.
"아 네...그렇게 되지 않아서 천만 다행입니다."
"요즘에 감기 환자들 많죠? 우리 출판사에서도 직원들이 하도 코를 훌쩍거려서 신경쓰이고 그래요."
"네 이맘때 감기 환자가 많죠. 얼마전에 방송에 나가서도 감기예방법을 안내해 준적이 있습니다."
"방송에도 나오셨어요?"
"어쩌다 보니, 아는 피디가 급하게 부탁해서..."
나는 내 편의 대로 사실을 조작했다.
내 예상대로 의사, 방송 이런 단어는
커피스타킹에게 제대로 먹혔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정도 되면 새로운 진지 구축까진 아니더라도
거의 8부능선까지 점령한 것과 마찬 가지다.
이제 스타킹 찢어버릴 일만 남았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은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 무슨 방송인데요?"
"아아 공중파는 아니고 케이블 방송입니다. 담당 피디가 계속 출연해 달라고는 하는데, 제가 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한번 방송으로도 진땀을 뺐습니다."
일단 첫만남에 겸손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나쁘진 않다.
사실 겸손이란 덕목은
순전히 자기를 위한 것이다.
사람은 원래 질투가 많은 동물이다.
남자 여자를 떠나 공히 그렇다.
우리네 조상들이나
서양이나
어릴때 부터
겸손이란 덕목을 강조한 이유는
사람이 워낙 시기 질투하는 동물이라
겸손을 통해 상대방이 내게 시기 질투를
덜 느끼게 하여
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것은 마치
사자나 호랑이가 먹이를 앞에두고
슬쩍 슬쩍 딴 곳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먹잇감이 궁지에 몰려 있다가
딴 곳을 응시하는 포식자를 보고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포식자는
눈깜짝할 사이에
먹잇감의
모가지를 물어버린다.
나를 낮추면 낮출수록
상대방은 나를 편안하게 느낀다.
내 능력을 과소 평가 한다.
그렇게 상대방이 가드를 내릴때
퍽 하고
급소에 결정타를 날리는 것
프로 파이터의 기술이다.
"방송에 나오셔서 좋았겠어요. 제 어릴적 꿈이 아나운서였어요."
"워낙 미모가 뛰어나서, 아나운서 하시면 금방 9시뉴스 메인이 되셨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안 늦으신거 같은데...제가 아는 피디들 소개해 드릴까요?"
어느정도 외모가 괜찮은 여자 아이들은
흔히 방송에 대한 꿈을 갖는다.
외모가 안되는 여자 아이들은
얼굴 안 나오는 성우라도 하고 싶어 한다.
괜히 어린이 동요에
낯 간지런 가사가 있는게 아니다.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