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사필귀정
"네? 진짜에요?"
"네가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았을떼 네 전화번호로 네가 어디에 사는지 네 직업이 무엇인지 네가 어느학교를 나왔는지 모든 정보를 얻었어. 그리고 너를 기다렸다."
"네? 그게 말이 되요?"
"전화번호만 알면 네 정보를 빼내는건 식은죽 먹기야. 이미 수 많은 개인정보들이 주민등록 번호, 전화번호 같이 개인식별이 가능한 정보들과 함께 암시장에 돌아다니고 있다. 네 신상정보를 알아나는데는 중국 암시장에서 만원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계속 따라 왔다고요?"
"네가 주차장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네 뒤를 졸졸 따라갔어. 병원주차장 영상이나 중간중간 교통정보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럼 그 여자 혼자 한 일이 아니겠네요. 뒤에 조직이 있는거 아니에요?"
"그 여자 혼자 하는 일이야."
"어떻게 여자 혼자 그런 대담한 일을 할 수 있어요?"
"그 여자의 취미자 부업이다."
"네? 맙소사..."
"그래도 운 좋게 생각해라...내가 널 깨우지 않고, 경찰들이 널 깨웠으면 넌 급성 심근 경색으로 죽었을 거야."
"고마워요 할아버지."
"이제야 할애비 대우를 해주는 구나. 고맙다는 말도 하고."
"그럼 그 여잔 나를 만나고 계속 연기를 한거네요."
"맞다. 그 여자는 너 말고도 20건이 넘게 남자들에게 돈을 뜯어 냈다."
"한번도 안 걸렸어요?"
"한번도 안 걸렸다. 모든 남자들이 돈을 주면서 빨리 사건에서 벗어나길 바랐지."
"저는 어떻게 하죠?"
"너도 돈을 주고 끝내라. 그게 너를 위한 길이다."
"네? 꽃뱀인데 돈을 주고 끝내라고요?"
"그 여자는 벌써 이런 방법으로 번 돈맛을 알았기 때문에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벌써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스스로 질에 상처를 내고 진단서를 받았다. 네 정액을 채취한 건 물론이고 몸에 스스로 타박상을 만들어 진단서를 받고 경찰에 그 사진을 제출했다.거기다 정신과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냈다. 그 여자는 돈에 대한 집념이 강한 여자야. 이런 일에 워낙 경험이 많아서 네가 상대되지 않는다. 네 건강을 위해 그 여자에게 지는게 이기는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그 많은 돈을 두었다 어디다 쓰겠니? 네 목숨 걸린 일에는 써야 되지 않겠니? 억울해도 인생사 다 그런거니 똥밟았다고 생각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
"알겠어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래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나는 눈을 떴다.
할아버지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안전한 곳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내 목숨을 노리고
내 재산을 노리고
나를 공격할 지 모르는
그런 대한민국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 여자가 더더욱 괘씸해졌다.
나를 노리고 뒤를 밟았다고?
너를 위한 나의 관용은 정확히 제로다.
그래 한번 해 보자.
내가 목숨이 끊어져도 너같은 년은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본때를 보여주리라.
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유치장 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어나 멍하게 앞만 바라봤다.
그들 모습에는 생기가 없었다.
나도 생기 없는 인간중 하나였다.
몸이 축 느러지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유치장 안으로 식사가 들어왔다.
식판에 제육볶음과 김치 계란말이가 놓였다.
밥과 국 냄새도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보니 삶의 의욕이 생겼다.
나는 식사를 받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년에게 복수를 해 주려면
건강해야 한다.
속으로 다짐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잠이 왔다.
바닥에 누울 수 없어
벽에 기대어 졸았다.
졸다보니 또 점심시간이 되었다.
받아든 식판에 새로운 반찬이 올라왔다.
생선 김치 김 된장국 밥
나는 하나도 남김 없이
깨끗이 식판을 비웠다.
점심을 먹고 나니 머리도 맑아지고
몸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유치장 안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데
김호중 변호사가 유치장 안으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잠시후
경찰관이 나를 호출했다.
"변호사 접견이요."
나는 접견실로 이동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변호사님."
"지내시기 불편하시죠 원장님. 제가 가능한 빨리 나오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사해 보니까 비교적 유리한 증거들이 많았습니다. 식당에서는 특별한 것은 없었고 원장님이 25만원을 결제 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종업원이 당일 그 여자가 많이 취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법원까지 가면 증언을 부탁하려고 생각중입니다. 녹취는 해 놨으니까 필요하면 구속적부심에서도 쓸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원장님하고 그 여자하고 잠깐 편의점에 들르셨습니다. 제가 영상을 확보했는데 거기서도 원장님이 이만원정도 계산을 하셨습니다. 숙취음료를 사셨고 특이하게 스타킹을 구입하셨습니다. 스타킹은 그 여자가 직접 선택해서 계산대에 올렸네요. 이건 유리한 증거로 쓰일것 같습니다. 원장님이 스타킹 페티쉬가 있는 걸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페티쉬라는게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니까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증명하기도 쉽습니다. 원장님이 있다고 하면 그걸 반박할 수 도 없습니다. 원장님이 스타킹 페티쉬가 있으셔서 그 여자가 그걸 듣고 스타킹을 구입한 것이죠? 그렇지 않고 두개씩이나 스타킹을 살 이유가 없죠. 맞나요?"
"사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제가 스타킹 신은채 하고 싶다고 말 한 것 같습니다."
"네 바로 그겁니다. 그걸 여자가 받아들인거고 스타킹은 여자가 직접 찢었고요. 당연히 강간은 성립이 안 되죠."
"아 그런가요?"
"네 아주 결정적입니다. 그리고 모텔 카운터앞 하고 복도에 찍힌 영상을 확보 했습니다.
"어떤 사진이 찍혔나요?"
"카운터에서 여자의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취한 모습이 전혀 안 보입니다. 오히려 원장님이 취하셔서 여자가 원장님 카드를 대신 카운터에 내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바닥에 앉으셨고 여자가 원장님을 일으켜 부축하고 있습니다. 엘이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고 복도에서도 여자가 원장님을 부축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으로 보면 여자는 절대로 술에 취해 항거불능상태라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면 구속적부심에서도 제가 풀려날 가능성이 있나요?"
"매우 높습니다."
"잘 되었네요."
"그리고 그 여자가 다닌다는 출판사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 봤는데, 출판사 이름이 생소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웹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였습니다. 종이책을 출판한 적은 없고 아마 웹소설 작가들에게 커미션을 받아 웹소설 포탈 사이트에 중계해주면서 돈을 버는 업체 같았습니다."
"그런 출판사가 있나요?"
"네. 지금은 종이책 시장보다 웹툰이나 웹소설 시장이 훨씬 커졌기 때문에 출판사라고 이름을 단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을 합니다. 재능있는 웹소설 작가들을 발굴해서 이북을 출판하거나 플랫폼업체에 중계해서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하는 일이야 뭐 어찌되었든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닌데..."
"그런데 그것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그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 실적이 안 좋아서 최근에는 직원들 월급이 많이 밀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진과장도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태였고요.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됩니다."
"그렇군요. 혹시 이미진 그여자 뒷조사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조사비용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가 저를 계속 따라온 것 같아서요?"
"차로 미행을 했다는 말씀인가요?"
"예. 제가 순천향대병원 주차장에서 출발해서부터 그 여자가 저를 따라 붙었거든요.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 경로에 있는 씨씨티비 영상을 확보해 보면 진짜로 날 미행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바로 알아 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오늘 구치소로 넘어 가실 것 같은데..열심히 해서 바로 나오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호중 변호사는 접견장을 떠났다.
나는 그가 떠나고 또 다시 생기없는 인간이 되었다.
다른 생기없는 인간들중엔
구치소로 이동해 가는 부류도 있고
석방되는 부류도 있고
다섯명이 유치장을 떠났다.
유치장 안이 넓어졌다.
멍하게 벽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시간이 더디게 갔지만
밥때는
또 찾아 왔다.
식판 위에 김치 소고기장조림 감자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국은 여전히 된장찌개였다.
나는 남김없이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 졌다.
기분은 좋아 졌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유치장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출수도 없고
대화할 상대도 없었다.
그때 막내 형사가
유치장 안에 들어왔다.
"나오세요 선생님. 석방입니다."
"네?"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제가 더 조심 했어야 하는데, 심려끼쳐서 죄송합니다."
막내 형사는 내 소지품을 다 챙겨 주었다.
나는 형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나는 바로 김호중 변호사에게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