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편의점녀
잘 하면 육개월 내에
백명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여자 2호를 구하기 쉬운 곳이 떠올랐다.
어학원
젊은 여자들이 숨쉬는 곳
강남역에는 어학원이 많다.
그 학원에는 젊은 여자들이 물반 고기반이다 펄떡 펄떡 거린다.
그물로 뜨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일찍 일어난 김에
옷을 챙겨 입고
어학원으로 향했다.
새벽을 깨우며 열심히 사는 여자들의 모습은 섹시했다.
나는 그녀들의 부은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회화 클래스에 바로 등록했다.
때마침 클래스가 시작하는 날이어서
스무명 정도 학생들이 아침부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백인 여자였다.
이름은 "보니"...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온 여자라고 하는데
화려한 바디 볼륨
금발에 오똑한 코
금방이라도 영화의 스크린을 찢고 나온듯 했다.
잘 하면 백마도 타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첫날의 주제는 자기 소개였다.
나는 내가 영어를 꽤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라는게 많이 외운다고 잘 하는게 아니다.
한국말로 하는 대화가 서툰 사람은
영어로도 서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문법적 지식과
보케블러리가 탄탄해도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
영어를 하기 전에
성격을 개조해야 한다.
영어 회화는
말 그대로
효율적으로
재미있게
의사 소통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실상 우리말도 구어체에서는
어순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문법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그 상황에 적절한 단어 하나씩 던지다보면
의사 소통이 쉽게 된다.
그게 쌓여 회화 실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람이 영어를 너무 징그럽게 잘하면
정말 징그럽다.
의사소통만 하는
안 징그러운 목표를 가져야지
교포 3세쯤 되는 영어를 하겠다고 덤비면
공부 과정이 너무 피곤해진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아무말이나 하다보면
말은 결국 는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말을 잘하는 것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다르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공부에 의해 이루어 지는게 아니다.
타고난 성격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너무 원대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그저 꾸준히 회화를 즐기는게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길이다.
내가 앉은 곳 주위로
네명이 한 팀이 되었다.
나 혼자 아저씨
나머지는 이십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의 영어 발음이 부드러웠다.
세명이 하나같이
렛미인트로듀스 마이셀프로 시작했다.
커다란 수고를 하지 않아도
여자들이 자기 정보를 술술 흘린다.
예비 2호 여자들은
자기 정보 보호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말을 하면서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후보 1은
스물셋 여자대학교 4학년 휴학중이다.
어학연수를 갈 계획이라고 했다.
목표물 여자 2호에 최적화된 후보감이다.
회화연습을 핑게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것은 영화보기
지금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연수 자금을 모으고 있다.
아주 아주 좋다.
"두 유 해브 어 보이프렌드?"
"언포튜넛틀리, 노우~"
내가 던진 한마디가 우리팀 전체에 웃을을 주었다.
"Then, don't you have any partner to go abroad with?"
"Not, yet."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외국에 함께 나갈 파트너가 있는지 물었다.
아직이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했다.
나는 장난기 섞인 얼굴로
나를 가리켰다.
"Why not?"
여자들이 모두 웃었다.
우리 팀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고
보니가 우리팀으로 왔다.
"How is it going?"
"Not bad"
"What made you all so happy?"
"She~~"
팀내 여자들이 또 웃었다.
"She is looking for a partner to go abroad with.....I volunteered."
여자들이 또 웃었다.
내가 어디에 가서
젊은 여자들의 상큼한 웃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학원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Good job. Keep going."
보니는 다른 팀으로 이동했다.
보니의 청바지는 엉덩이와 허벅지가 터질 듯 했다.
엄청난 조임이 예상되는 그녀는
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후보 2 여자의 소개가 있었다.
"렛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정말 지겨운 표현이다.
" 아 엠 나우 워킹 앳 삼성 일렉트로닉스. 아이 띵크 아 니드 투 스터디 잉글리쉬 포어 마이 잡. 나이스 투 밋 츄."
"How long have you been working at Samsung?"
"For two years."
"Did you get a free smartphone from Samsung?"
"Yes I got one as a benefit."
여자들은 오~~하고 감탄사를 내 뱉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여자는 애플폰을 쓰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사과그림이 더 세련되게 느껴지는건 나만의 생각인가.
후보3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이네임 이스 미아. 벗, 아임 낫 미스드"
나는 후보 3 여자의 유머코드가 재밌었다.
나 혼자 한참 웃었다.
"아 앰 어 스튜던트 앤드 마이 매이져 이스 이코노미...아이드 라이크 투 와치 무비스..앤드 아이 호프 아이 고 투 언 어메리칸 그래쥬애잇 스쿨.
여자와 나는 박수를 쳤다.
세명중에
외모가 제일 뒤처지는
후보 3은
얼굴에
나는 성실합니다라고 써 있는 것 같았다.
" I am very special one because I can hear other's mind."
남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니
세명 모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게 집중했다.
" Tell me what you are hearing me."
후보 1번이 자기 마음 속에서 무슨 소리를 듣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가슴 가까이 귀를 가져갔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댔다.
나는 눈을 감고 무언가 듣는 척 했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은은한 풀꽃 향기가 났다.
"Ummm. I can hear very weird sound from you."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그녀의 눈이 커졌다.
"What is that?"
불안한 표정으로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뻥뻥뻥뻥 뻥뻥뻥뻥 생 뻥뻥뻥뻥"
후보 1은 웃었다.
후보 2도 웃었다.
후보 3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눈만 깜박였다.
후보 2가 후보 3에게 말해줬다.
"He is a lair. Bullshit."
후보 3은 그제서야 내가 친 뻥을 이해하고 웃었다.
"I am a ENT specialist. You can meet me at ㅇㅇㅇclinic."
"Are you a doctor?"
"Yup. Specialist."
여자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Married?"
"Not yet."
여자들의 눈동자들이 더 초롱초롱 해 졌다.
내가 왜 진작에 어학원에 오지 않았을까.
나와 그녀들 사이에 넘치는 라뽀가 형성되었다.
이젠 몇단계를 밟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첫날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녀들과 기분좋게 헤어졌고
그 다음날도 같은 팀을 하자고 약속했다.
하루가 더디게 갔다.
오후 진료를 거의 마쳤을때
문자가 왔다.
[저 저녁 사주실 수 있어요?]
편의점 그녀였다.
[네 설렁탕 좋아하세요?]
근사한 저녁을 기대 했던지
그녀는 한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
지나친 먹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문자를 보냈다.
[설렁탕 생각 있으시면 같이 하시고...아니면 저 혼자 갈게요.]
그녀는 답장을 안 했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안했다.
아쉽지만 나는 패스하기로 했다.
한번 먹었으니 만족한다.
그녀에게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진료가 끝나고
홀로 설렁탕 집에 가서
공기밥 두개를
설렁탕에 말아 먹었다.
포만감이 밀려 왔다.
나는 어느새
편의점 앞에 와 있었다.
편의점녀가 저녁을 사달라고 한 걸 보면
근무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부담없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편의점 카운터에 있었다.
"어? 왜 답장 안 보내셨어요?"
"폰을 떨어뜨렸는데 액정이 나갔어요."
그녀는 부서진 아이폰을 보여 주었다.
아이폰 쓰는 여자들은 보호필름도 쓰고
짱짱한 케이스도 둘르고 하던데
편의점녀의 아이폰은
헐벗은 고아마냥
불쌍해 보였다.
나는 편의점녀가 김치과나 된장과라고
오해를 했다.
미안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기다리다 저녁을 혼자 먹었네요...배 안고프세요?"
"괜찮아요..."
"아니 근무신데 어떻게 저녁 하자고 했어요?"
"약속이 되면 조퇴 하려고 했어요."
편의점 근무체계상 조퇴가 가능한가?
그렇다고 치고...
"잠시만 계세요. 제가 뭐좀 사 올게요."
"괜찮은데..."
나는 내가 그녀에게 가졌던 편견이 미안했다.
"매운거 잘 드시죠?"
"네."
나는 편의점을 나와
붉닭과 돈까스를 샀다.
달달한 캬라멜 마끼야토도 샀다.
편의점으로 돌아와
카운터에 봉지들을 내려 놓았다.
봉지를 벗기고
포장지를 벗겼다.
그녀의 두눈 앞에
맨몸의 붉닭과
맨몸의 돈까스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