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남자친구
" 어릴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가면 인생이 다 해결되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인생도 부질없게 느껴지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으니 요샌 순간 순간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좋을까...그걸 알아내는게 제 연구과제에요."
"하하...선생님은 좀 배가 부르신거 같아요..."
"욕심을 줄이면 금방 배가 불러요."
"기분이 좋아지는 거라면 섹스만한게 없죠. 하늘이 허락한 마약."
"미아씨는 섹스 좋아하세요?"
"저야 매니아죠."
"하하 매니아까지 되세요?"
"선생님은 섹스 싫어하세요?"
"싫어하는 건 아닌데...뭐 매니아정도는 아닌거 같아요."
사실 나는 매니아를 넘어 오타쿠의 경지에 이른 섹광이지만
그걸 후보 3 앞에서 밝힐 수는 없었다.
오늘 세번째 여자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굳히기에 들어갔다.
"나는 온 인류가 섹스 매니아라고 생각하는데요.... 왠만하면 다 하잖아요. 한번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또 하고 그러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선생님은 요새 안 하세요?"
"저요...허엄...콜록 콜록..."
나는 대답대신 기침을 했다.
"괜찮으세요? 불편하시면 대답 안 하셔도 돼요."
"아니 불편한 건 아니고 갑자기 사래가 들어서..."
나는 물잔에 물을 부어 들이켰다.
"선생님 귀까지 빨게지셨어요. 귀여워요."
"...네?...제가요?"
나는 내가 귀까지 빨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다시 물을 들이켰다.
"이제 그만 나가실래요?"
"그래요. 저녁 잘 먹었어요."
"별거 아닙니다. 언제든지 사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 맥주 한잔 하실래요? 이차는 제가 살 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뭐가요?"
"주량이 소주 한병이라고..."
"일곱잔 반에서 아직 반잔 부족하게 마셨잖아요."
"아...네...그렇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도 일어났다.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 계산을 했다.
그녀는 카운터에 놓인 병에서 박하사탕 두개를 꺼냈다.
하나를 입 안에 자기 입 안에 털어넣고,
하나를 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나는 내심 그녀가 내게 사탕을 건넬 줄 알았다.
나는 병뚜껑을 돌려 사탕 두개를 꺼냈다.
그녀처럼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나머지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설렁탕집 바로 앞에
오비광장이라고 쓰여진 깔끔하고 큰 간판이 보였다.
이층이었는데도 밖에서 실내가 훤하게 보였다.
우리는 오비광장으로 들어갔다.
새로 오픈한 듯 깨끗한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 뭐 드실래요?"
"비싼거 먹어도 되나요?"
"안돼요."
"네..."
"농담이에요...호프집 안주 쯤은 쏠 수 있어요. 아무거나 드세요."
"난...쏘세지 야채 볶음."
"그럼 난 골뱅이 무침"
그녀는 테이블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박보검 닮은 알바생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키도 크고 얼굴이 작은게
현실계의 인간인가 싶었다.
그녀는 그런 알바생 앞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쏘야 하고 골뱅이 그리고 오백 둘이요."
간단하게 주문하고 내게
얼굴을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알바생이 돌아가고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선생님 나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진짜 잘생겼네요...연예인이 일일 근무 하는...몰래카메라 아닐까요?"
"좀 있으면 피디가 달려와서 방송에 내보내도 되냐고 물어보겠죠? 제 연기 어땠어요?"
"차가운 도시녀 같았어요...시크...울트라 짱."
"그렇게 시크했어요?"
"네...아주 좋았어요."
그 잘생긴 알바가 다가왔다.
손에는 오백 두잔과
큰 바울이 들려 있었다.
"이건 특별 서비스입니다."
큰 바울은 수박화채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잘생긴 알바생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알바생이 가고
그녀는 오백잔을 들었다.
그녀는 건배도 없이
오백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선생님 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목소리 들으셨어요...와 이건 증말..."
그녀는 맥주잔을 완전히 비웠다.
"전요...잘생긴 남자를 보면 몸에서 이상한 신호들이 와요."
"어떤 신호가 오는데요?"
"섹스하기 전에 오는 신호있잖아요...심장이 뛰고 몽롱하고 아래가 젖고...그런거..."
"그걸 지금 느낀다고요?"
"아까 저 남자 목소리 듣고 오줌 쌀뻔 했다니까요."
그녀의 개방감 쩌는 말에
오늘밤 그녀와 자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생긴 알바생에 눈이 돌아갔는데
나같은 쩌리에게 눈길이 가겠는가.
나는 원대한 목표를 접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다.
"오백 더 드실래요?"
"네."
나는 테이블 버튼을 눌렀다.
알바생이
골뱅이무침과 쏘세지 야채볶음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오백 한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그녀는 알바생의 눈길을 피했다.
이번엔 알바생이 가고나서도
자신의 벅찬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다.
대신
화채 보울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가 어느 시골 농가에서 자라난
얼굴 시커먼 단말머리 소녀가 아닐까 짐작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그녀가 수치심을 느낄수도 있기에
돌려 물어보았다.
"메뚜기 먹어봤어요?"
"어? 어떻게 알아요...저 메뚜기 많이 먹었어요. 어릴때."
백퍼센트 컨트리걸임이 입증되었다.
"갑자기 메뚜기는 왜요?"
"그냥 생각이 나서요. 저도 어릴때 메뚜기 잡고 놀았거든요."
"아...그렇구나...저도 맨날 개구리 메뚜기 붕어 잡으러 다녔어요."
"어린 시절이 즐거우셨겠어요.."
"네 돌아보면 그때가 좋았죠. 전 나중에 나이 먹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거에요."
"고향이 어디신데요?"
"선생님은 말해도 잘 모를거에요...아주 아주 산골이에요."
"네.."
나는 더이상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
잘생긴 알바생은 바쁜지
키 작은 알바생이 오백잔을 들고 왔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키 작은 알바생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얼굴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백잔을 들고
쨍 하는 소리를 만들었다.
나는 홀짝 홀짝 맥주를 들이켰고
그녀는 벌컥 벌컥 들이켰다.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소면을
골뱅이 무침에 섞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제법 솜씨가 있었다.
나는 포크를 들어 쏘세지 하나를
들어 입 안에 넣었다.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갈 지 막막했다.
설렁탕집까지만 해도
이 못난 여자아이와 섹스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이미 수백번 섹스를 해서
그녀의 몸 구석 구석을 훤히 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만난지 두시간도 안되어
나는 권태기에 빠져들었다.
"선생님하고 맥주 마셔서 그런가 오늘 술술 넘어가네요."
"네 저도 맛있습니다."
"선생님은 혼술은 안 하시죠?"
"별로 그런 기억이 없네요."
"전 자주 해요...혼술..."
"아..그렇구나..."
"회식할때 하고 또 달라요. 혼자 술잔을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면..."
"술도 많이 못 드신다면서..."
"혼술해도 많이 안 마셔요...그냥 알딸딸한 상태에서...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기원 그런거 생각해보고...내가 그런 시간의 흐름속에 어느 좌표 어디쯤 있는지 그런 거도 생각해보고...나는 그렇게 멍하게 있는 시간이 좋아요."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라...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라는게... 정의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가까이 지낸 남자들이 있긴 했는데 다들 이기적이고 내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은 누꼽만큼도 없었던거 같아요. 지금은 영화같은 연애는 다 포기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 이기적인 남자들이랑은..."
"회사 선배 소개로 만난 남자도 있었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저보고 월급 많아서 좋겠습니다. 딱 그말 하더니 만날 때 마다 모든 비용을 내라는 거에요. 남자가 되서 째째하게.. 나는 그런거 가지고 추접스럽게 따지기 싫었죠. 모텔비까지 제가 다 냈으니까요. 근데 하루는 그 남자가 모텔 욕실에 먼저 들어가 씻고 있는데 그 남자 폰에 까톡 메시지가 뜨더라고요. 제가 볼려고 해서 본게 아니고 미리보기가 설정되어 있어서 본거에요. 허참 거기에 뭐라고 문자가 왔는 줄 아세요. [오빠 오늘 구찌 가방 선물 잊지 못할거야...] 만정이 떨어져서 바로 모텔을 나와 버렸어요."
"이해 되네요. 딴 여자에겐 비싼 선물하면서 돈 한푼 안쓰는 남자. 그 남자가 좀 못됐네요."
"더 나쁜 놈도 있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한번은 채팅을 하다가 남자를 알게 되었어요. 채팅하다가 남잘 만난다는게 좀 개운치는 않았는데 그 남자는 착하고 순수해 보였어요. 무엇보다 채팅중에 맞춤법도 한번 틀리지 않고 성격이 신중한 것 같아서 믿음이 갔죠. 늦게 의전원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만나면 돈도 자기가 쓰고 내가 테이블에 앉기 전에 의자도 당겨주고 매너가 좋았어요. 인물은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정도 사람이면 내가 믿고 의지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계속 만났죠. 모텔비도 그 남자가 계산했어요.. 잠자리를 아주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건 뭐 차츰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제법 괜찮은 연애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둘이 섹스를 하는데 뭐가 화장대 테이블에서 반짝이는 거에요. 나는 뭘 잘 못 봤나 하고 넘어갔죠. 근데 뭔가 찜찜한거에요. 불끄고 하자고 그러면 그 남잔 꼭 이런 저런 핑게를 들어서 불을 켜곤 했어요. 섹스를 끝내고 그 남자가 욕실에 들어간 사이에 화장대 테이블에 갔죠. 반짝이던 것은 카레라 렌즈였어요. 저장된걸 돌려보니 나 말고도 여러 여자들이 촬영되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