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보니의 친구
내가 너무 들이댄게 아닌가 했다.
사실 후보3은 외모상 굳이 섹스를 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주걱턱에 쌍커플 없는 찢어진 눈.
그녀의 답문자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내가 문자를 보냈는데
씹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진료가 거의 끝날 무렵
답장이 왔다.
[6시에 학원 앞에서 봐요.]
[넷]
기운이 빠졌다가
새로운 목표물 등장에 힘이 생겼다.
나는 진료가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학원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안 왔다.
이미 시간은 6시 5분이었다.
그녀가 오면 약속에 지각한 것을
약점잡아 우위를 점하리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수많은 여자들이 학원문을 드나들었다.
후보 3은 거기에 없었다.
6시 1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괜히 문자를 해서
그녀가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늦어서 죄송해요."
뒤에서 그녀가 내 어깨를 쳤다.
그녀의 몸에서 풀꽃 향수 냄새가 났다.
"어떤 영화가 생각 났는데요?"
"아...있어요.."
그녀는 화장을 하고 나왔다.
주걱턱에 찢어진 눈이었지만
짙은 눈썹 화장이
그녀를 다르게 보이도록 했다.
"저녁 안 드셨죠? 우리 햄버거 세트 사서 먹으면서 볼래요?"
"어디서 볼건 데요?"
"그게 좀 오래된 영화라서 비디오방에 가야 있을 거에요."
"네? 비디오방이요?"
"저도 고민해 봤는데...거기 아니곤 노트북으로 봐야 하는데..."
"혹시 이상한 짓 하시려는 건 아니죠?"
"하하....아니에요..."
"전 선생님이 교양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네...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햄버거 사러가요...저 셱셱버거 먹어보고 싶어요."
"네. 걷기는 좀 머네요...택시 타시죠."
"네"
마침 앞에 택시 한대가 서 있었다.
우리는 햄버거를 사기 위해 택시를 탔다.
"셱셱버거 앞이요."
"네~"
택시기사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고 택시를 움직였다.
3분도 안 되어 우리는 셱셱버거 앞에 내렸다.
다행이 줄이 길지 않아 금방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특별히 어떤 메뉴에 집착하지 않아
가장 무난한 걸로 주문했다.
직원의 추천에 따라
햄버거 프라이 밀크쉐이크 그리고 콜라를 받아들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비디오방으로 향했다.
비디오방은 파란색 조명이 음침하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각 방에서 영화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영화 파이란이 있는지
데스크에 물어봤다.
다행히 있었다.
나는 비용을 내고
그녀와 함께 비디오 방에 입실했다.
방 안이 깔끔했다.
나는 방안에 이불과 베개가 옆에 놓인 것을 보고
은근한 기대를 했다.
게다가
방의 유리창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햄버거 봉지를 열었다.
화면에 파이란이 시작되었다.
"이거 좀 오래된 영화긴 한데...아직 안 보셨죠?"
"안 봤어요..."
"최민식하고 장백지라고 유명한 중국배우가 나오는 영화에요...참 슬픈 영화에요."
나는 고작 여대생이
파이란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 보편의 감정이란게 있다고 믿었다.
최민식이 출소하고 나서 사람구실 못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최민식의 연기를 칭찬했다.
"저때부터 연기를 저렇게 잘 했네요..."
"네..전 올드보이보다 파이란에서 연기가 더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우걱우걱 햄버거를 씹어먹으며
간혹 콜라를 빨대로삼키고 있었다.
그녀는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어느새 최민식이 인력사무소의 주선으로
장백지와 위장결혼 하는 장면까지 흘러갔다.
"어머 저렇게 예쁜 사람하고 공짜로 결혼하네요..."
"그러게요..."
최민식이 빨간 스카프를 벗어
장백지에게 주라고 하는 장면에서
나는 벌써 눈물이 나왔다.
벌써 마누라라고 챙기냐~~
싱거운 대사와 최민식의 진심어린 눈빛이
나를 슬프게 했다.
장백지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결혼 서류에는
최민식이 환하게 빨간 스카프를 두른채 웃고 있었다.
영화는 장백지가 팔려가며
룸살롱으로 갔다가
다시 세탁소에 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장백지가 한글을 배우고 최민식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강재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호구에다 살 가치가 없는 인간쓰레기였던
최민식이
그 편지를 읽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생각을 하니
나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감자튀김을 먹던 그녀도 손을 멈추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최민식이 장백지 시체 앞에서
화내는 연기를 했을때
그 이글거리는 눈빛에
내 가슴이 쫄렸다.
영화는 경찰서, 화장터, 세탁소 장면을
지나가고
대망의 하일라이트에 이르렀다.
최민식이 부둣가에 앉아
장백지의 편지 읽었다.
바람 부는 부둣가에 앉아
편지를 읽고 난
최민식이
허둥지둥 담배를 찾아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이지만
그는 담배를 한모금도 제대로 빨지 못하고
오열하며 입에서 덜어뜨린다.
최민식의 연기가 바로 이런거구나.
나는 감탄 하며
그와 같이
눈물을 흘렸다.
결국 최민식은 장백지의 비디오를 보면서
목졸려 살해 당했다.
그리고 장백지의 유골분은 지저분한 방안에 흩어졌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후보 3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올드감성이라
그녀가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땠어요?"
"재미 있었어요...이야기가 아련하게 마음 속에 남네요."
"슬프진 않았어요?"
"슬펐어요."
"그런데 눈물 자국이 안 보이네요?"
"전 슬퍼도 잘 안 울어요."
"들장미 소녀 캔디에요?"
"하하.."
"캔디 아시네요."
"그거 우리 엄마가 보던 만화영환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그때 만화를 보면 이질감이 있긴 한데...스토리에 완성도가 있어요."
"네. 오늘 영화도 그렇지 않나요?"
"비운의 여자가 모르는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그 남편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천하에 쓸모 없는 인간 말종이고 여기서 저기서 무시당하는게 일이다. 하지만 자기를 남편으로 생각하는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을 고쳐먹고 인간답게 살아보려 하지만, 그 남자 역시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다. 여자의 비극으로 시작해서 남자의 비극으로 끝나는 비극 완전체에요. 그 안에서 제 모습을 보고 슬픔을 느껴요."
그녀의 평론은 군더더기 없었다.
사실 나도 최민식이 연기한 강재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고,
장백지가 연기한 강백련에게서도
나를 보았다.
우리는 비디오방을 나왔다.
거리엔 어둠과 찬 공기가 내려앉았다.
"좋은 영화 보여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도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영화 생각이 나면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고마워요. 선생님 이젠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내일 학원에서 뵈요."
나는 그녀를 그대로 보내기 아쉬웠지만,
계속 데리고 있을 명분이 없었다.
화장까지 하고 나온 그녀도
그대로 들어가기
싫어보였다.
"배 안고프세요?"
"안 고픈데요."
그녀가 단순 명료하게 답을 함에
내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칵테일 같은거 안 좋아하세요?"
"네 안좋아해요."
칼같이 대답하는 건...
어쩌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네...그럼 잘 들어가시고요...내일 뵐게요."
나는 순순히 그녀를 놓아 주었다.
집에 돌아오늘길이 허탈했다.
어디서 내 씨앗을 처리해야 하나...
그때 전화가 왔다.
보니였다.
"Hi~ How are ya?"
"Good, how are you?"
"I am very good. Would you come over to me?"
"Now?"
"Yeh~"
"Where?"
"Here is Gangnam, I am with a friend at her place."
"Send me the address, I will come right now."
친구 한명과 같이 있는데
그 한명이 여자라니
나는 아시아 남자 한명과 백인 여자 두명이 등장하는
포르노 비디오를 떠올렸다.
보니는 내게 바로 주소를 보내주었다.
나는 구글 앱을 켜고
보니 친구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니의 친구는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보니보다 더 예쁘고 더 쭉쭉 빵빵한 여자가
내 앞에서 한국말로 인사했다.
"안년하심니까?"
"Hi~ Nice to meet you."
쭉빵 보니 친구가 나를 안아 주었다.
냄새가 야릇했다.
보니 친구도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남자 한명을 불렀다고 했다.
쓰리섬을 은근 기대했는데
물건너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포섬이란 것도 있으니
아주 포기하지는 않았다.
보니친구는 미국출신이었다.
노스타코타라고 하는 아주 시골에서 왔다.
말로는 보니가 살던 고향과
보니친구의 고향은 그 사이에 국경이 있지만
매우 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