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52)

 헤매임. 방황. 그것들은 이상하게도 하나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이거나. 끈임없이 방황하는것. 모두 그 끝에 내게 다가올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설레임. 나는 그것을 지금 느끼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조금씩 어두워 지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특별히 배가 고프다는 느낌따윈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수진이는 무언가를 먹었을까? 그러한 생각에 살짝 걱정된다.

 나는 지금 수진이를 찾고 있다. 수진이와 만나고 싶다 의지. 수진이에게 무어라도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수진이에게 사과를 하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내 입으로 수진이에게 사과를 하고 싶을 뿐이다.

 “어디에 있는거야?”

 허공에 의미없이 중얼거려 보았다. 춥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인걸까? 어제부터 하늘엔 이미 구름이 한가득 끼어 있었지만, 다행히도 아침과 낮에는 많이 춥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추워지려 한다. 좀더 추워지기 전에 수진이를 찾아야 한다.

 이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쉬지않고 계속 수진이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이고 다녔다. 그런데도 수진이는 찾을수 없었다. 그녀의 방에 있는 다이어리에 적힌 전화번호등에 전화를 해 보아도 수진이가 있는곳은 알수 없었다. 다만 겨우 얻은 정보라고는 수진이가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것. 어제는 친구의 집에 들어가 잤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수진이는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겠지.

 보통 밤에 누군가의 집에서 잔다고 해도, 하루가 지나 집의 주인이 외출을 하게 되면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손님은 같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나온 이상 다시 들어가기는 상당히 뻘줌한 일이니까. 수진이의 사회생활을 잘 아는건 아니지만, 그정도의 배짱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 누구보다 수진이와 함께 지내왔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그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난 수진이의 모습만이 아닌, 숨겨져 있는 수진이의 모습까지. 다른사람이 모르는 그 모습을 아는건 나 뿐일테니까.

 하지만 찾을수 없었다.

 별로 크지 않은 이 마을을 거의 다 돌아다녔다. 어릴때부터 이곳에 살아왔기 때문에 이 마을에 대해서는 상당히 빠삭한 편인데. 그런데도 수진이는 찾을수 없었다. 학교에도 없었다. 어디에도 없다. 내가 원하는 수진이는 어디에도 없다. 나와 길이 엇갈려 버린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친구의 집에 가 버린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어디일까? 어딘가에 자신의 비밀장소라도 만들어 둔......

 “아...!”

 비밀장소.

 수진이의 비밀장소. 있었다. 그래. 그곳이 아직 남아있었다.

 아니, 비밀장소라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곳이었다. 어렸던 나와 수진이에게는 부모님에 의해 절대로 금지되어 있던 공간. 지금에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어릴땐 절대 갈수 없었던 공간. 하지만 수진이가 화가 나거나 울거나. 뭔가 안좋을 일이 있을때마다 그곳에 있었다.

 이런 바보! 난 왜 지금까지 이걸 생각하지 못한거지?

 사실 언제나 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때가 딱 한번은 있다.

 언제나 나의 소유였던 흔들의자. 그것 때문에 나와 다투었던 일. 아니. 다투기 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무시였다. 옆에서 수진이가 앉고싶다고 아무리 떼를 써도 나는 결코 비켜주지 않았다.

 어렸을때의 철없는 나는 언제나 수진이에게 빼앗기는것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부모님은 항상 수진이만을 귀여워 한다고 생각했었다. 동생이라는 존재에게 내 부모님을 빼앗긴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입던 옷도 항상 시간이 지나면 수진이가 입었고, 내 장난감도 모두 수진이의 것이 되어 버렸다. 항상 나만의 존재였던 부모님을 수진이와 공유하게 되어버렸고 그런 나에게 나만의 물건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유일한 나의 것이 있었다.

 흔들의자.

 그것만은 결코 수진이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애초에 나만의 것이라고 할수조차 없는 것인데. 어린이의 심술. 쓸데없는 고집.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 옷을 수진이가 입게 된 건 오히려 수진이에게 안된 일이었다. 항상 새 옷을 입지 못하고 내 옷만을 입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내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게 된 것도 그렇다. 내 장난감이라고 해 봐야 쓸데없는 로봇트 따위였으니까. 도저히 여자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것이 아니었었다. 그런데도 수진이는 항상 웃으며 나와 함께 놀았었다. 수진이는 어째서 그렇게 미소지을수 있었던 걸까? 그때문에 오히려 또래의 여자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가져 놀 만한 장난감 따윈 하나도 없었으니까. 바보같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수진이는 항상 나와 어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여튼 결국 나만의 것으로 지켜낸 흔들의자. 그렇게 떼를 쓰던 수진이는 결국 내게 의자를 뺏지 못하고 울면서 집을 뛰쳐나가 버렸었다. 그 뒤로 밤까지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아버지께 심하게 혼났다. 혼난 정도가 아니가 몇군데나 맞아서 몸의 이곳저곳에 멍까지 들어버렸다. 그땐 수진이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벌로 나는 그날 밤 한참동안이나 수진이를 찾아 헤매어야만 했다.

 수진이가 잘 가던 놀이터. 수진이가 좋아하던 뽑기가 있던 슈퍼. 재미난 장난감을 파는 장난감 가게. 수진이의 학교.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하...하하. 그때...부터인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짙게 껴 버린 구름 때문에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웃었다. 왼지 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한것 같다. 바보같은 내 행동 때문에 수진이가 울어버렸던 것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찾아 헤매이는 것도. 나는 바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발을 움직였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집이다. 나와 수진이. 둘만의 집.

 ------- 커피를 탔다.

 수진이가 좋아하는 귀여운 플라스틱의 컵. 그리고 그것과 셋트로 이루어진 또하나의 컵.

 시중에서 흔히 파는 싸구려 커피지만 상당히 좋은 커피향이 우러나온다. 커피를 그다지 잘 타는것도 아닌데. 그래도 오늘은 어느정도 잘 타진걸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렇게 두잔의 컵을 들고 집을 나섰다.

 특별히 문을 잠글 필요도 없다. 가려는 곳은 바로 근처니까. 나는 계단을 올랐다. 한번 꺽어진 계단. 그것을 오르니 커다란 철문이 보인다. 나는 양손에 들고있던 컵을 한손으로 잡은 뒤 문을 열었다.

 끼익

 잘 사용하지 않는 문이기에 상당히 듣고싶지 않은 소리가 난다.

 평소라면 굳게 잠겨져 있어야 할 철문. 하지만 오늘은 열려있다. 어째서일까? 라고 생각해도 답은 한가지다. 수진이가 열었겠지.

 그렇게 열린 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들어온다. 나는 웃었다. 하지만 왼지 씁쓸하다. 이렇게나 차가운 바람. 이런 바람을 얼마나 맞은걸까?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니 왼지 가슴이 아프다. 생각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생각하는것 만으로 내 가슴은 이렇게 아픈데. 나는 그런 수진이의 마음에 직접적인 상처를 내어 버렸다.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조금의 성급함 때문에.

 나는 철문을 통과해 옥상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진이를 찾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두 무릎을 가슴쪽으로 모아 팔로 감싼체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었다. 눈은 뜨고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마치 무언가 결여되어 버린듯 초점이 없었다. 춥기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가 두렵기 때문일까? 그 조그마한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런 수진이의 옆에는 조그마한 라이터와 담배갑. 그리고 이미 핀듯한 담배 꽁초가 여럿 떨어져 있다.

 아아, 부모님. 수진이가 담배를 피웠습니다. 이대로 불량소녀가 되면 어쩌나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죄송해요!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면서 수진이의 바로 곁에 섰다. 하지만 정작 수진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 하다. 내가 조금을 참지못해 해 버린 말 때문에 수진이는 이렇게나 괴로워 하고 있다. 이 죄는 무엇으로 용서받을수 있을까? 나는.

 나는 그렇게 앉아있는 수진이의 바로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렇게 수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수진이는 날 바라봐 주지 않는다. 여전히 초점없이 그렇게 떨고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이렇게나 상처입혀놓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미안해’ 라니. 게다가 이 차분한 어투는 또 무엇인가? 스스로조차 이해할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내 목소리에 수진이는 반응한다.

 “...아? 오...빠?”

 천천히 초점이 돌아와 나를 응시한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린 수진이의 모습. 원래부터 새하얀 얼굴은 더없이 창백해 보인다. 사실 달조차 뜨지않아 확실히 보이진 않지만 느낌이 그렇다.

 나는 수진이에게 커피가 들어있는 컵을 내밀었다. 내 얼굴을 보고선 고개를 살짝 숙인체로 말없이 컵을 받아드는 모습이 살짝 안타깝다.

 “따뜻해.”

 희미하게 귓가에 들리는 수진이의 목소리. 나는 뒤쪽의 난간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25층 아파트의 난간. 너무나 높아서 아래를 보면 두려울 정도다. 하지만 아래를 보지 않고 저 멀리를 바라보면 그것은 오히려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언제나의 베란다에서 보는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세계. 하지만 그 미묘함은 너무나 커서, 더없이 아름다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 난간에 팔을 걸치고 가슴을 기대었다.

 이미 어두워 져서, 하나 둘씩 켜지는 가로등을 바라본다. 이미 불이 들어와 있는 수없이 많은 네온싸인들을 바라본다. 차갑게 얼어붙은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 모든 것은 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또다른 아파트의 불빛. 저 시내의 빌딩에서 나오는 불빛.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

 “미안해.”

 다시한번 말했다.

 “나. 왠지 화가나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해야할 말은 단지 이런 사과일 뿐이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수진이의 얼굴조차 바라보지 못한체로. 이렇게 말만을 전한다.

 한손에 들고있던 커피를 조금 마셨다.

 따스한 액체가 입안을 데워준다. 바람 때문에 차갑게 변해버린 내 몸을 이 조그마한 온기가 감싸준다.

 “바보같이. 네 사정도 물어보지 않고 화를 내어 버렸어. 아니... 화를 낸거 자체가 내 잘못인데. 게다가... 그런 말까지 해 버리고.”

 “......”

 “항상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하하. 그렇게 생각하는 주제에 오히려 화까지 내어 버렸지. 나는 정말 쓸데없는 녀석인지도 몰라. 네 곁에 있어서는 안되는 바보같은 녀석인지도 모르지. 뭐든지 해주기보단 오히려 같이있는것 자체가. 아니, 내 존재의 자체가 너에겐 방해가 되는 건지도 몰라.”

 “으,으응! 아니야!”

 수진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결코 아니라는 듯이 그 목소리에는 귀여운 다급함이 섞여있었다. 나는 이미 수진이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말했드시 수진이는 착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심한짓을 하더라도 결국은 웃으면서 용서해 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러한 수진이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왠지 그렇게 대답해 주는 수진이의 목소리가 기뻣다.

 “나 많이 생각했어. 바보같이 항상 지켜줘야만 하는데. 너를 상처입혀 버리고.”

 “......”

 “아예 수진이의 곁을 떠나버릴까? 그러면......”

 “안돼!”

 내 말을 잘라버리는 수진이. 사랑스러운 내 동생. 사랑스러운 내 연인.

 “안돼. 오빠가... 오빠가 없으면 수진이는......”

 “......”

 “사실은 모두 수진이가 나쁜데. 오빠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수진이가 나쁜데. 그런데......”

 “틀려.”

 “틀리지 않아요! 모두 내 잘못인거야. 사실은 깜짝 놀래켜 주려고. 그랬었는데. 흐윽. 흑.흑흑.”

 울먹이는 목소리. 수진이를 바라보고 있지 않기에 수진이의 얼굴은 당연히 볼수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것 만으로도 내 감정의 무언가가 이상하게 어긋나 버린다. 아아, 부모님. 결국 나는 수진이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절대 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래켜 주려고 했다니? 그건......?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마치 부서져 버린 듯이 사과만을 반복하는 그 목소리가 안쓰럽다. 나는 몸을 돌려 수진이를 바라보았다. 수진이의 목소리는 이미 귓가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 입만은 사과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그런 내 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너무나 미안했다. 분명 나의 잘못인데. 수진이가 사과를 하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어 버린걸까? 왠지 슬펐다.

 “......어라?”

 감작스레 피부를 적시는 차가운 감촉. 뭐지?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서 한송이, 두송이. 천천히 눈이 내리고 있다. 올 겨울의 첫 눈인가. 동생과 함께 첫 눈을 바라보다니. 이런것도 상당히 기분이 좋다.

 “수진아. 눈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수진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수진이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조금전의 그 사과다.

 나는 수진이를 껴안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바라보고 있을수가 없다.

 “괜찮아. 그만. 그만해.”

 내가 잘못했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수진이는 영원히 사과만을 반복할 것만 같았다.

 “그,그럼 수진이를 미워하지 않는거야?”

 “당연하지!”

 “그럼, 수진이를 버리지 않는거예요?”

 “......”

 내가 그런 말까지 했었나? 순간적으로 멈칫해 버렸다. 바보같이 그런 심한 말까지 해 버렸던 거야? 나는? 수진이가 단지 내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지 내게 아무말 없이 일을 했다는 이유로? 나는 어떻게 돼 먹은 녀석인거야!

 “흐,흐윽. 대답해 주지 않아......”

 “아,아니. 내가 수진이를 버릴 리가 있겠니? 그럴 리가 없지! 없잖아!”

 “저,정말?”

 이미 나이가 22살인 수진인데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보인다. 사랑스럽다.

 “당연하지! 난 누구보다 수진이를 사랑한다구?”

 “으,으아아앙~”

 울어버렸다. 또 울어버렸다. 이번에는 뭐가 문제인 걸까?

 “사랑해요. 사랑해요. 오빠. 흐윽. 사랑해요. 흐아아앙~”

 “......”

 나는 가만히 수진이를 껴안아 주었다.

 =========== 쿨럭.

 실수로 지워버렸던...

 시험은 끝났지만 아직 삐뚤어진 상태.

 ㅇㅅㅇ; 세상이 미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