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55)

00089  2장  =========================================================================

“주문하신 커피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습니다.”

“빨리 나왔네. 아무튼 간에 오빠는 중요하겠지. 그래서 질문은?”

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케이크와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두자 수정이 그것을 받아드는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아, 그게 말이지.”

나 또한 아르바이트생이 내어주는 음식을 받들며 조금 전,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미리 말하는데, 공부 문제는 안 된다고? 돈은 뭐 빌려주는 건 가능하지만.”

“아니, 내가 그 정도로 악독하지는 않아.”

하지만 공부는 왜 안 되는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대체 공부를 얼마나 안 했으면 묻지 말라고 할 지경인지.

“아무튼 그럼 물어보고 싶은건?”

“아, 음 그러니까 말이지.”

순간 또 단도 직입적으로 묻고 있으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머리를 긁적이면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정리해 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머리가 더 적응 안 되는 거 있지? 차라리 그냥 말하는 걸 그만 둘가라는 생각이 들 지경.

“뭔데 그래? 말해 봐.”

그녀는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입으로 가져간다. 그 모습이 심히 깜찍하지만 일단 그보다는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

“그게 말이지 음. 보통 어떤 여자랑 막. 이야기 했을 때, 두근 거리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하는 건가?”

나는 양 손을 허공의 한 곳에 모았다가 살짝 풀고 내 표현력의 극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워낙에 답답하니 이러는 것.

“흐음. 뭐야, 오빠 누구한테 두근거린 거야?”

“음 뭐 그렇다고나 할까.”

“딱 처음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

“음. 그렇지.”

만일에 그랬었다면 단순히 한눈에 반했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영 아니니까. 게다가 원래 처음부터 좋은 이웃, 그리고 성적인 관계. 그 관계를 확정내고자 그녀와 친해지려 했던 것인데.

“그렇다면 좀 두고 봐야겠는걸.”

“조금 두고보다니?”

“보나마나 오빠. 그 여자랑 이것저것 놀았겠지?”

“흐음. 안 놀았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노는 관계라고 확정내기도 묘한 관계다. 그녀도 일단 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적인 감정을 줄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당분간 지켜보자구.”

“지켜 봐?”

혹시 하는 건데 수정이도 모르는 것인가.

“응. 보통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려. 그건 누구한테 물어본다고 해서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구나.”

“솔직히 그 여자.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음 그냥 보통의 여자와 비슷하달까. 그냥 좀 어리벙한 구석이 있어서 그럭저럭 놀기 쉬운 여자라는 느낌?”

하나가 들으면 매우 건방지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 여자는 매우 어리벙하고 재밌는 여자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흐음. 그 정도 가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라.”

“으응.”

“오빠이제 보니 그럼 정말로 카사노바인가.”

“카사노바라니?”

나는 한 번도 내가 카사노바라고 느낀 적은. 흐음. 아니지 나 이 정도면 카사노바 맞는 건가. 수영이한테 말은 안 했지만 꽤 많은 여자랑 놀았으니까. 조금 저항심 있는 녀석들이 좀 있긴 하지만 아무튼 많은 여자애들과 놀기는 했으니 말이지.

“내가 보기엔 오빠 그거 배불러서 그런 거야.”

“배 부르다고? 그럼 오히려 두근거림은.”

“그러니까 굳이 말하면 그런 느낌 있잖아? 고양이처럼 배가 부르긴 한데 쥐잡을 구멍은 있다는 거.”

무슨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검지까지 치켜들고 말하는 걸로 보아서 장난은 아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다니. 그 또한 잘못된 투이긴 한데.

“그래?”

“그런 거지. 그런데 두근거린다 이 말이야. 그건 정복감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기분이랄까.”

“그러면 말이야. 오빠 나랑 처음 할 때는 어땠어?”

입가에 아주 약간의 새하얀 크림을 묻힌 이 아이는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나를 바로 지근거리에서 바라본다.

“그거야. 너와 할 때는 확실히 느껴졌다고나 할까.”

“흐음 그래?”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만일 그런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내 계획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데서 사람에 꽂힌다면. 학교에서의 나는 단순히 우정만을 쌓아야 할 지도, 그저 공부나 하고 친구들만 사귀면서 노는 정도랄까.

“오빠 자신은 어때? 그것이 사랑이었으면 좋겠어?”

“글쎄. 딱히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라.”

그냥 그런 기분이다.

“그럼 딱히 아니어도 된다는 거지?”

“음 그렇지.”

“일단 단 한 번으로 그렇게 사랑이라 취급하기는 어려워.”

“그. 그래?”

그런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두근거린다면 의심해볼 필요성은 있지만. 내 생각은 같아. 오빠는 일반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거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 거야?”

“그야 오빠에게는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니까.”

은근 기분 나쁘면서도 묘한 스릴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자신과 똑같다? 그럼 그 말인 즉슨 나를 자신과 동류로 여긴다는 건데.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나와 비슷한 냄새. 오빠는 절대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을 걸? 마치 내가 여러 남자들과 노는 것처럼.”

“그런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의미는 아니겠군.

“아, 그렇다고 해도 성관계는 다섯손가락 안에도 안 든다고? 그리고 나쁜 의미도 아니야.”

“으음 그렇구나.”

나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사랑이라는 감정. 나로서는 쉽게 느낄 수 없다. 뭐 이런 의미가 되는 것인가. 나는 그저 수정이와 비슷한 색이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에 단 한 사람에게만 몸을 의지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라는 건가.

“아니, 아니 그리 풀죽지 말라고?”

잠시 몸을 뒤로 물리고 손을 붕붕 흔든다.

“아니, 풀죽지 말라고 해도 그런 말 들으면.”

“본래 일부다처제란 것은 과거에는 흔했다고.”

“흐음.”

하긴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는 만약에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라면 부딪칠 자신이 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를 취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나는 아직 하나에 대해서 정확히 모른다. 그녀가 과연 정말로 그리 멍청한 것인지. 그 본성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매우 궁금하다. 만일에 내가 사랑하게 된 존재라면 모든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으니까.

“정 그러면 나와 해외여행 같이 가든가.”

“아. 아니야 됐어.”

“그러면 한 번 힘내 보라구? 그것이 진짜 사랑이면 난 응원해줄테니까.”

“응원?”

그런데 얘 나에게 은근 호감있었는데. 내가 연애한다고 하면 나에 대한 반응은 달라지는 것인가.

“응. 응원. 좋아하는 오빠가 사랑을 한다는데 응원해야겠지?”

“그러면 너 나한테.”

“아, 물론 오빠가 연애한다 해도 나와의 관계는 바뀌지 않을 거지만 말이야.”

잊지 말라는 식으로 윙크를 더해간다. 그래. 뭐 이래야 수정이 답다고나 할까. 그런데 정작 나 때문에 자신은 헤어진 꼴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 혼자 연애하기는 너무 미안해지는데. 그래도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 때문에 헤어졌다는데, 내가 뭐라도 해줘야겠지. 적어도 그게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말이지. 나 때문에 너 헤어졌는데.”

“음? 그게 왜?”

그게 왜 라니. 감정이 풍부해서 아무 생각 없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금세 그 남자는 잊어버린 것인지.

“너무 내가 약팔이만 한 느낌이라서.”

“약팔이?는 무슨 말?”

“아무튼 나 때문에 헤어졌는데 만일에 내가 연애하면 나 혼자 행복한 느낌이잖아?”

나는 이제 막 자라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햇빛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머리의 두피를 손가락으로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러자 수정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는 내 말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