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그 여름으로 3부-7화 (337/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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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은 샴페인을 홀짝이면서 천천히 파티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고,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특이한 것은 보통 회장 취임식이라고 하면 나이 든 회장이나 사장, 아니면 고위관료들이 참석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런 사람들 외에도 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참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장소진이 사교계에 첫 등장하고, 장성그룹에서 앞으로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런 것 같았다.

성진은 멀찍이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 여러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연코 어머니의 미모는 눈이 부셨지만, 최근에 성진의 사랑의 듬뿍 받고 있는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도 본인들만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성진은 그런 자신의 여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성진씨. 저 왔어요.”

누군가가 반갑게 성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김소영이 방실방실 웃으며 서 있었다.

“와.. 소영씨. 소영씨도 초대받아 오신 거예요?”

“네. 대통령님의 손녀인데, 당연히 초대받았죠. 호호호.”

“그랬구나. 반가워요. 이야~ 오늘 우리 소영씨 진짜 아름다운데요.. 하하..”

성진은 낯선 곳에서 김소영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김소영도 그런 성진을 만나서 좋은지 옆에 바짝 다가서서 성진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런데 성진이 그런 김소영에게서 무언가 어색한 느낌을 느꼈다.

자신을 좋아하는 김소영이면 보통 성진을 보자마자 좋다고 팔짱부터 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옆에 서서 웃고만 있는 것이었다.

“아.. 성진씨 잠깐만요. 제가 소개해 드릴 분이 계세요.”

그러면 그렇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진은 피식 웃어버리고는 김소영을 바라보았다.

“짜잔.. 성진씨 인사하세요. 김 진짜 철짜, 저희 아버지세요.”

아무 생각 없이 김소영이 소개해 주는 사람을 바라보던 성진은 얼굴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머.. 성진씨. 설마 제 아버지 만나셔서 지금 쫄아버리신 거 아니죠?”

성진은 그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김진철이 누군가?

바로 김현삼 대통령의 장남으로 황태자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대통령은 가족을 정치에 참여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완성시키고,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는 난 인물이었다.

나중에 한부철강 대출 알선 사태로 문제가 생겨 감옥에 가기는 하지만, 아무런 정부직책이 없는 가운데도 막후에서 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다.

“흐음.. 자네가 이성진군이군. 우리 소영이가 하도 자네 이야기를 하고, 아버님도 자네 이야기를 해서 누군지 궁금했다네. 내가 소영이 애비 김진철일세.”

“아.. 네.. 네. 안녕하십니까? 이성진입니다.”

“에이.. 성진씨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여기 부모님께 인사하는 자리 아니니까.. 그냥 아버지랑 같이 온 김에 성진씨께 인사시켜 드리는 거예요. 호호..”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김소영은 성진의 색다른 모습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성진은 김소영의 아버지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정치와 썩 친하고 싶지 않은 성진의 입장에서 현재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김진철과의 만남은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성진은 김진철이 한부철강에 대출을 알선해 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금액이 무려 5조가 넘는다.

그런데 나중에 조사에서 한부철강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 중 직접 사용한 금액이 5천억도 안 된다.

그러면 나머지 금액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행시킨 인물이 김진철이다.

굉장히 똑똑한 인물이지만, 썩 좋은 인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인물이 성진 앞에 나타났다.

성진은 왠지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김소영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성진은 고민이 되었다.

김진철이 자신을 찾아왔다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곧 성진은 서울지역 학교급식을 담당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이권이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오늘 홍라경 여사가 발표하겠지만, 올해 안에 신규이동통신 사업도 시작하게 된다.

전 대통령이 사돈집에 몰아주고 노후자금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사업도 이권이 어마어마한 사업이다.

도대체 김진철이 하필 이 시기에 성진 앞에 왜 나타난 것일까?

성진은 살짝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러자 자신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김소영까지도 별로 예뻐 보이지 않았다.

김소영이 분위기 띄워보려고 농담까지 했는데 성진의 표정이 썩 좋지 않자 급격히 안색이 나빠졌다.

“성.. 성진씨. 제가 너무 갑자기 아버지를 소개해 드렸죠? 죄송해요.”

김소영은 성진에게 말도 없이 부모님을 소개한 것이 성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오해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진철이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위명도 당당하신 분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금융실명제는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응? 금융실명제? 내가 거기 개입했다는 거 어떻게 아는가?”

성진이 금융실명제를 들먹이며 김진철을 띄워 주자 불편했던 기색을 거두고 흥미롭다는 듯이 성진을 쳐다보았다.

“알려고 하면 모를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냥 주워들은 거죠.”

“허.. 하하.. 아버님 말씀대로 특이한 친구일세.”

김진철이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성진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아버님 좀 많이 도와드리게.”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조만간 만나서 얘기 좀 해 봐야 할 거 같구만. 똑똑한 친구니 무슨 말인지 알지?”

역시 성진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김진철은 이곳에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분명 성진을 만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성진은 그 목적이 무엇인지 골치가 아프려고 했다.

“예. 알겠습니다. 조만간 식사 한 번 같이 하시죠.”

“그래. 역시. 눈치가 빠르군. 알겠네. 내 조만간 연락하도록 하겠네. 우리 소영이와 데이트 잘하게. 하하..”

김진철은 김소영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성진은 그런 김진철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저.. 성.. 성진씨. 죄.. 죄송해요.”

성진은 그제서야 아직 김소영이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바꾸었고, 어색한 분위기에 들고 있던 샴페인을 마셨다.

“저는 아빠가 성진씨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그냥 간단히 인사만 하도록 소개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김소영이 성진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김소영도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냥 인사차원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휴~ 역시, 순수하게 만나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김진철 때문에 짜증이 난 성진은 김소영을 만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김소영만 놓고 보면 정말 멋있고, 예쁘고, 마음이 잘 맞는 여자였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김현삼 대통령도 몇 번이나 김소영과 성진을 이어주려고 했는데, 솔직히 거기에 순수한 의도만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김진철은 아예 노골적으로 성진을 만나기 위해 딸인 김소영을 이용했다.

이렇게 되면 김소영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한 건지 아니면 어느 일정 부분 김소영도 계획에 가담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김소영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진짜인지 연극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의심스러운 법이다.

김소영이 산업스파이도 아니고, 성진을 꼬셔서 특별히 이용해 먹을 게 없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일정 거리를 두고 싶은 성진의 입장에서는 김소영의 이런 포지션은 성진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게 만드는 스트레스 거리 일 수도 있었다.

또한 김소영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의도치 않게 이용되어진다면 대통령의 손녀라는 위치는 일종의 원죄와도 같은 것이 된다.

성진은 김소영이 똑똑하고 성격도 쿨하고, 예쁘기도 하며 더구나 속궁합도 좋았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김진철과의 만남을 통해 자꾸 의도치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김소영에게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진의 차가운 듯한 말에 김소영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 혹시.. 성진씨. 지금 그 말은.. 앞으로 저 안 만나시겠다는 말이에요?”

“아.. 그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영씨를 이용해서 의도를 가지고 다가온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아.. 아니에요. 성진씨. 그건 오해에요. 저나 저희 아버지나 전혀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저는 그냥.. 저희 아버지께 성진씨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네. 충분히 소영씨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제가 좀 예민해졌네요. 죄송합니다.”

마침 그때 홍라경 여사의 회장 취임식을 시작하겠다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아.. 식이 시작하려나 보네요. 저는 그럼 일행 있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럼..”

“어? 어? 성.. 성진씨.”

성진이 김소영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어머니 있는 곳으로 걸어가 버리자 김소영은 당황해서 울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성진이 어머니 옆으로 다가가려고 하는데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 어머니를 무대 쪽으로 이끌고 가더니 귀빈석이라고 놓인 몇 개 테이블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성진도 그쪽으로 이동했고, 테이블에 가 보니 어머니와 성진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어 그곳에 앉았다.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소수의 인원만 자리를 마련하고, 그중에 성진과 어머니를 포함시키다니 홍라경 여사가 성진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성진이 다가오자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은 성진을 향해 방긋 웃고는 구석의 계단을 통해 단상으로 올라갔다.

성진이 어머니 옆에 앉아 테이블을 둘러보자 현재그룹의 정회장 및 재계 서열 5위 그룹 회장들, 성진과 인연이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 등 쟁쟁한 인물들만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긴장하는 것 같더니 이런 인물들과 몇 번 만나봤다고 금세 신색을 회복하고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이 든 회장들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자리에 앉자 다들 신기했는지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최근 주식 상장으로 대박을 터트린 HK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하더니 이 자리에 동석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해 주는 눈치였다.

식이 진행되고 드디어 홍라경 여사의 취임사 시간이 되었다.

홍라경 여사가 단상 옆에 서서 곱게 인사를 하고 단상에 서자 기자들의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하지만 홍라경 여사는 그런 것에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듯이 둘러보고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대단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목소리조차 떨지 않다니, 확실히 여장부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희 장성그룹은 앞으로 세계화에 발맞춰, 글로벌 그룹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인사말이 지나고 홍라경 여사의 본격적인 비전 제시가 시작되자마자 기존에는 듣지도 못했던 세계화니 글로벌이니 하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기업 오너들도 눈이 동그래졌다.

홍라경 여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는 엄청나게 유식하게 보였고, 마치 미국의 대기업 회장이 연설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화나 글로벌 같은 단어들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IMF 이후 국내 경제적 위기를 외부로 눈을 돌리기 위해 사용되어지던 단어이다.

그런 단어들이 홍라경 여사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자 모인 사람들이 홍라경 여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고 있었다.

기존에는 여자가 무슨 회장직이냐, 더구나 국내 3위 안에 드는 대기업을 어떻게 아녀자가 회장을 하느냐며 비난의 소리가 많았었던 것이다.

“우리 장성그룹은 대통령님의 정책 모토를 기반으로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수출에 역점을 둘 것이며...”

성진의 옆에 앉아 있던 청와대 정무수석의 입가에 씨익 올라갔다.

홍라경 여사를 여자로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런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대통령님을 언급해 주니 기분이 좋아지면서 홍라경 여사가 정치도 할 줄 아는 여자라고 인식되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장성그룹의 주력 사업은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가 될 것이며, IT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등 우리나라가 성장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할 것이며..”

홍라경 여사의 꿈은 원대했다.

“우리 장성그룹은 이번에 신규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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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코멘트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기냥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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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여름으로... 39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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